*이번엔 스승의 날을 맞이하야
기억나는 선생님 한분…
이건 S/W리뷰도 뭣도 아니지만
5월 3부작 완성을 위해…
5월 가정의 달은 챙길 일도 많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가 잘되고 못되고는 논하지 않겠다.
그냥 옛 생각이 많이 났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 중 내 눈에 띈 사람, 교련선생-
쓰리스타 아들을 향해 맹종하는 교련선생, 드럽다!
전혀 돌아올 가망 없는 댓가를 향해 몸부림치는 교련선생, 가련타!!!
하여 학생과 투덕투덕 끝에 헤드록에 걸려 바둥거리는 교련선생, 꼴좋타!!!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딜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하였거늘, 상노무시키들!
그 못난 교련선생 바라보니
내 중학교 2학년 잘난 담임선생 기억난다.
그 선생 얘기나 해야겠다.
이름하여, 배밭골 잔혹사!
***
내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정말 무서운 양반이셨다
체육선생님이신 이분 태권도 유단자에, 국기원 심사위원이시고,
게다가 UDT 교관이시다(학기중에도 가끔 몇일씩 다녀온다. 군복입고...)
그러니 어찌 공포의 대상이 아니랴(그분에 대해 지금껏 존칭을 쓰는 것도 그 때문!)
이 양반, 공부는 절대 요령이 아니다!
라고 언제나 주장하셨다.
"공부는 무식하게 해야 유식해진다!"
가 그분의 좌우명이자 가훈이자 급훈이다.
(교장이 되면 교훈이 될 것이다)
무식을 통해 유식으로 이르는 한 사례로
"영한자단어암기시험"이 있었다.
매일 교실 뒤쪽 칠판에 영어 단어 1개, 한자 1개를 적어 암기하고
매주 툐요일 종례시간에 쪽지 시험을 보는 것이다.
월화수목금토니까 영어단어 6개, 한자 6개
합이 12개를 외워서 적어내야 한다.
그리고 역시 다음주 월요일 종례시간이면 그에 따른 매타작 시간이 되겠다.
1개 틀리면 1대, 12개 틀리면 12대!
문제는 여기서 끝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주말고사가 있으면 월말고사도 있는 법!
월말에는 4주치를 한꺼번에 본다.
대략 영어단어 25개, 한자 25개 합이 50개!
매타작 방식은 역시 똑같다!
50개 틀리면 50대!
토욜일 4교시는 수업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하던지간에
사방에서 한자 단외 외는 소리
영어 꼬부라진 소리가 마치
통성기도 하듯 메아리쳤으니...
여기서, 끝일까?
월말고사가 있으면 중간, 기말고사도 있는 법!
이지만 다행히도 단어 쪽지시험은 월말고사로 끝났다.
어찌나 감사한지...
학생이라면 의당 열심히 공부하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니
유독 우리반에서만 행해지는 단어쪽지시험에 대해
어찌 감히 불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가령, 월말 쪽지시험을 본다고 치자.
종례시간에 빈종이를 한장씩 쭉- 돌린다.
그리곤, "써!" 이 한마디가 시험 요령의 전부다.
무슨 얘긴고 하니, 가령 오늘의 영어 단어가 student, 한자가 學이라면
의당 선생님이 "자, 1번 영어로 학생~ 그다음 한자는 배울 학~ 자, 썼나? 그다음은..."
이런 식으로 문제를 불러 줘야 할텐데, 오로지 흰 백지다!
그 흰 백지에 무조건 50개의 단어를 메꾸라는 것이다.
단어를 알고, 외우는 것과 그 모든 것을 통째로 기억해서 써내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체육교사이자, 태권도 유단자이시자, 국기원 심사위원이자,
UDT교관이시며, 공부는 무식하게 해야 유식해진다고 믿는
우리 담임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매일아침 한자와 영단어를 쓰고 매주 체점을 했던
내가(그 일을 내가 했었다) 선생님께 50개를 다 외워
쓰는 건 저도 못하니 문제를 불러주고 쓰게 하자고
외람되게도 아주 조심스럽게 건의를 했었지만...
"아니 그걸 왜 못해?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런 식으로 디 외워 쓰면 되는 거지!!
무조건 외워서 쓴다, 잔소리 말고~"
몰라서 못쓰는 게 아니라,
무슨 단어가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못쓰는 시험
그게 우리가 매주 치뤄야 했던 시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요령이 생겨서
한자는 한자대로 문장이 되게끔, 즉 어제의 한자와 오늘의 한자
내일의 한자가 한 문장이 되게끔 출제했으며
(즉, 말죽거리잔혹사의 '고추보집물'처럼...
그건 영화가 아니다. 나도 이글을 읽는 당신도 다 그러하지 않았던가?),
영어 단어는 a-, ab-, abc- abcd- 식으로
순차적으로 새 단어를 만들어 갔고
또 친구들에게 그 요령을 통해 백지에 대처하는 법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는 요령이 아니다!
는 담임의 말을 절대 복종 순종하는 것인지
그 요령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몸으로써 시험에 응했다.
즉, 열나게 맞았다는 얘기...
솔직히, 나는 1년 내내 그 매를 피할 수 있었다.
내가 낸 문제에 내가 맞는다면 그 또한 쪽팔린 일 아닌가.
하지만, 같은 반 동료로서, 친구로서
매주초, 월초 매타작 종례시간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50대를 고스란히 맞는 녀석들도 부지기수였으며
누구라도 십여대 이상 맞기는 다반사였으니
그 피튀기는 시간을 매한대 안맞고 앉아있기가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죄없이 죄스러웠다.
게다가, 매타작을 하는 선생님! 우리 담임선생님이 누구란 말인가?
체육선생님이시고, 태권도 유단자이시며, 국기원심사위원이시고, UDT교관 아니신가!!!
그가 사랑의 매를 들었다면, 이는 엄청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지금의 내 몸으로 당시의 매 "딱 1대"만 맞아도
몇일은 결근을 해야할지 모른다. 어쩌면 입원도 피하기 어려우리라...
그것은 한마디로,
가공할 파워!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탠다면
가공할 공포!
였다!
아....
그해, 11월초로 기억한다.
역시 10월말에 본 월간종합단어쪽지시험 답안지가 돌려지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할 시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처럼 밀대걸레에서 걸레를 해체하여
긴 몽둥이만 손에 들고 붕붕- 바람을 가르며 가볍게 한마디-
"순서대로 나와!"
여기서 순서는 물론, 당연히 번호를 뜻한다.
1번이 사색이 되어 나갔다.
"몇개?"
담임의 질문은 몇개 틀렸냐는 것이며,
이 틀린 갯수는 그대로 맞아야 할 댓수로 환산된다.
즉
"몇대?"
와 동의어다.
녀석은 아마도 30몇개쯤이라고 대답한 거 같다.
그러니 녀석은 30몇대쯤을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윽고-
가공할 파워가, 바람을 가르는 가공할 소리와 함께
녀석의 엉덩이를 향해 돌진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
가공할 파워와 소리가 20고개를 넘어 30을 향해 치닫는 순간
녀석이 고꾸라지며, 정말 의외의 소리를 내 질렀다!
"이런 씨바~ 조까튼 새끼야
니가 담임이면 다냐
이런 조까튼 학교
안다니고 만다, 엉엉엉---
이런 씨바 너도 한대 맞아 봐라!
대한민국 학교 좇까라 그래!!"
며 담임의 몽둥이를 뺏어 담임의 정수리를 향해 한대 휘갈겼으
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시 한번 상기시키건대, 우리 담임이 누구인가?
체육교사이시고, 태권도 유단자이시며, 국기원심사위원이시고, UDT교관 아니신가!!!
저 말죽거리의 어리버리 교련선생과는 차원이 다르시다!!!
누가 감히 그에게 반항할 것이며, 설사 그에게서 몽둥이를 뺏을 수나 있단 말인가?
운좋게 몽둥이를 뺏어도 그의 정수리를 갈 길 수 있겠는가?
체육교사이시고, 태권도 유단자이시며, 국기원심사위원이시고, UDT교관인 그의 두 손발은 호구란 말인가?
정작, 그 순간 녀석이 죽어 가는 소리로 내 뱉은 말은,
하지만 위에 상상하던 그 욕지거리보다 더 섬찟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선생님, 그으으으만-
ㄸ...또----오옹 나와요....."
이삼십여대를 맞아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던 녀석은
엉거주춤 뒤를 쥐어잡으며 교실문을 박차고 화장실로 기어기어 달려갔다.
그 가공할 파워와 모진 매를 녀석의 괄약근이 더이상 견뎌내지 못했나 보다.
일년 내내 너덜너덜해진 녀석의 엉덩이가 마침내 터진 것이다.
그 다음은...2번의 차례이니
2번은 이미 얼굴이 똥색이 되었을 터-
하지만 그날의 매타작은 1번으로 끝났다.
아무리 체육교사이시고, 태권도 유단자이시며,
국기원심사위원이시고, UDT교관이신 우리 담임도
그 지경에 이르니 더 이상 매질을 할 기분이 아니었나 보다.
하긴, 사람인 이상....
물론, 사람 아닌 선생도 많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단어암기와 시험이 폐지되었다.
나름대로 담임의 "위대한 결단"이었다.
공부는 요령이 아니며, 무식하게 공부해야 유식해 진다는
그의 좌우명과 가훈, 급훈 (향후 교훈이 될 뻔 했던) 모두가 무너지는 중대한 사태였으니
어찌 위대한 결단이 아니었겠는가?
우리가 할 일이라곤
아무 일 없었던 듯 헤헤 거리는 1번을 향해
"야! 이왕 똥 싸는 거 한 3,4월에 그랬으면
일년 내내 이 고생은 안했잖냐!"는 핀잔을 주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어찌 우리가 1번에게 감히 핀잔을 줄 수 있겠는가?
그 덕분에 11,12월 두달을 단어 암기에서 해당되었고
우리 후배들도 아마 그 굴레에서 해방되었을 테니 말이다.
녀석이야 죽어가는 피똥이었지만, 우리 담임도
똥 한번 제대로 밟은 셈이었던 것이다.
그게 우리의 중학교 2학년
어느 초겨울의 풍경이었다.
*윤양진님 얘기 듣고 생각 난 거 하나 더!
이 가공할 파워의 담임선생님,
암튼 독특한 교육관의 소유자 되겠다.
그에게 교육의 소명은
"발전" 되겠다.
조그만 진보와 발전은 고무하고 칭찬할 바,
허나 쬐그만 퇴보와 역행은 용납 못할 일!
어차피 누구나 타고난 바가 있으니 공부 못하고 잘하고는
운명 소관, 단지 교육은 그 운명의 바늘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진보시키는 것에 있다는 것!
하여, 공부 못한다고 때리고, 잘한다고 마냥 칭찬하지 않는다.
모든 운명은 학기 초에 결정된다.
첫시험이 앞으로 일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
첫시험에 대하여는 아무런 질타를 하지 않는다.
0점 받으면 어, 그래 너 빵점 받았구나. 공부 좀 못하는 구나!
100점 받으면, 온냐, 이쁜 놈 백점이구나! 니가 공부 좀 하는가 보다~
이게 다다.
0점 받은 놈은 약간 안도해도 좋겠지만,
100점 받은 놈은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때부터 인생 꼬이는 거다.
그의 "교육은 발전이다"란 지론에 따라
다음 시험부터는 "발전"의 혹독한 댓가를 치루게 되는 것!
시험점수와 상관 없이 앞선 시험보다 1점이라도 올라가면 OK!
앞전 시험을 아무리 잘봐도 다음 시험에 1점이라도 떨어지면 NOK!
빵점 받은 놈이 5점 받으면, 그렇지~ 교육의 효과가 있구만, 앞으로 더 노력할 것!
100점 받았던 놈이 5점이라도 떨어지면, 네가 반평균을 책임질 놈이 5점씩이나 떨어지다니, 지난달보다 나아진 게 뭐냐? 더욱 분발할 것, 퍽- 퍽-(마대자루 휘두르는 Sound Effect)
100점이 그의 굴레가 되는구나!!!
(이 원칙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소문이 파다하다.
학기초 첫시험 때 못하는 친구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하고
잘하는 친구들은 갈등을 때리게 된다. 이거 100점을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어차피 이성과 논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게, 그게 학교니까!)
이 선생님의 독특한 교육관으로 인하여 나도 몇대 좀 맞았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학창시절 매 없이는 보낼 수 없나 보다.
우리 아들 준우의 어린이집 입학식...
꼬마녀석들에게 교복을 입혀 놓으니
가관이로구나... 저 녀석들도 엉덩이가
깨끗하게 자라야할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