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들은 악마였다.
은근한 목소리로 꼬드기는...
항상 취해 있었다. 술인지.. 마약인지..
녀석들이 들어서자 마자 나는 lp를 습관처럼 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변함없는 레파토리.. Foghat의 Slow Ride. B.T.O의 Don"t get yourself in trouble..
맥킨토시 프리 파워에 알텍 스피커로 울려대는 실황연주는 넓은 홀을 채워 흘렀다.
연주가 절정에 이를 무렵이면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군채, 온 몸을 떨며 음악속에 빠져들다
끝나고 나면 조용히 가게를 빠져 나갔다..
그렇게 드나들기를 몇 계절이 지나고
녀석들 중 한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랑 이태원에 놀러가요."
"그럴까..."
이태원의 술집은 미군들로 초 만원이었다.
바로 귓가에 대문짝만 한 스피커로 울려 대는 소리는 고음 저음을 없애버린
찢어질듯 한 중음의 악다구니였다.
내 목소리를 내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귀에 대고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 우린 곧바로 바를 빠져 나왔다.
"술 한 잔 더하고 가요"
"글쎄.. 어디로 가지.."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선 칵테일 바는 작고 아담했다.
나지막한 조명 아래 몇몇의 커플들이 보였고 느슨한 재즈 사이로 아지랑이 같은 담배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어머, 오랜만이네.."
볼 가득 보조개를 품은 그녀가 우리를 반겼다..
육감적이었다. 웃으며 애기하는 그녀의 하얀 치아와 살짝 감기는 눈, 귓가에 출렁이는
얇은 귀걸이에 시선이 향했다..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그녀의 소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형.. 저 먼저 일어설게요. 이따가 약속이 있거든요.. 가게로 가실거예요?"
"그래.. 지금 가면 애들 다 깨우니까 조금 더 있다 갈께.."
깊은 밤이었다. 옆자리의 커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제목도 모르는 섹소폰이 내 곁을 채울 무렵 나는 혼자였다...
분주하게 정리하던 그녀가 테이블 맞은 편 키 큰 의자에 앉았다.
"심심하시죠.. 저 한 잔 주세요"
잔을 내미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시야를 파고들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보일 때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 올 때 그녀는 핑크빛의 칵테일을 내밀었다.
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어지러웠다..
"저기..... 이제 문 닫을 시간이예요.."
"아.. 그.. 그래요?.. 가야겠네요.."
"갈 데 없으면 문 닫고 이 곳에서 저랑 한 잔 더 하실래요?.."
"그.. 그러죠.. 뭐.."
뒤로 묶었던 머리칼을 풀어 내린 후, 그녀는 출입구로 걸어 가 셔터를 내렸다.
다시 돌아 오는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눈빛, 몸짓이 달라보였다..
공중에 뜨는 기분이었다.. 온 몸이 흘러 내렸다..
몇 잔의 양주를 주고 받은 후 말없이 일어 선 그녀는 홀 한 쪽 구석자리로 걸어갔다.
길다란 테이블을 밀어 내고 넓직한 소파들을 한 곳으로 모으며..
민 소매 윗 옷을 벗어 내리고 한 뼘 만 한 가죽 스커트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차근 차근 몸을 감싸고 있는 하얀 속옷을 풀어 헤쳤다...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떤 말도.. 숨 쉬기조차 버거운 적막 속에 여전히 음악은 흐르고 있었다..
얇은 슬리퍼 하나만 몸에 지닌 채 천천히 다가 오는 그녀는 환상같았다.
아니... 마치 깨어나기 어려운 꿈이고 싶었다.
그날 밤, 난 한 마리의 맹수를 보았다..
오랜 시간을 굶주린, 먹잇감 앞에서 날카롭고 치열한 발톱을 치켜 세우며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토해 내는 야수 아래서 나의 온 몸은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그 날 새벽..
이태원의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는 차라리 환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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