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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와 이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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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2 13: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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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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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와 이육사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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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가입일자 : 2002-06-20]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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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음악과 같이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면 감정이 요동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서정주시인은 현대시의 최고봉이라 할 정도로 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유치환과 함께 생명사상을 노래했지만 그의 작품은 동양사상, 신라의 미학, 불교적 색채 등 작품의 범주가 다양하고 요약하면 일단 시가 재미있습니다.
이육사시인은 40세를 채우지 못한 짧은 생애 동안 40편의 시를 남겼고 해방을 1년 남겨둔 1944년 새해에 북경일본영사관 형무소에서 옥사하신 당시 전과 17범의 시인이셨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이던 1980년대 초 학교에 온 서정주 시인의 현대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로는 교과서에서만 본 살아있는 시의 전설을 볼 수 있다는 흥분이 있었지만 강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현대시 몇 편을 시인만의 독특한 해석을 곁들이면서 강연을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육사가 북경형무소에서 남긴 절명시 광야였습니다. 서정주시인은 다른 시를 읽을 때와는 달리, 이육사의 광야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읊고 나서, 이런 시는 우리 같은 사람은 쓸 수 없어. 진정 초인이야 초인!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알다시피 서정주 시인은 일제 말기 친일 국민문학에 가담하여 쓰지 말아야 했을 친일찬미와 징용을 권장하는 시를 다수 남겼습니다. 그러나 제생각에는 적어도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육사 시인은 단순히 저항시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서정성이 사물을 관찰하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분이셨다는 게 많지 않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 시재를 온전히 문학에 몰입하지 못하고 굴욕의 역사와 시대를 온 몸으로 거스르며 항일 투쟁을 해오신 분이라 아쉬움이 많습니다. 1년만 더 버티었으면 그렇게 고대하던 해방된 조국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였을 거란 회한이 남습니다. 그러면 거짓된 말장난과 같은 시가 아닌 시인 그 자체인 시를 많이 감상할 수 기회가 많았겠지요. 하지만 전 이육사 한편의 시가 작가의 진심이 숨겨진 천 편의 시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육사 시인의 시를 끓임 없이 되새김질 합니다. 할수록 진 한 맛이 느껴지네요.
절정에서 “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초차 없다.” 광야에서 “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암담한 현실을 표현한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눈물이 납니다.
꽃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때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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