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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와 이육사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9-22 13:06:47
추천수 31
조회수   2,040

제목

서정주와 이육사

글쓴이

이승우 [가입일자 : 2002-06-20]
내용
 시도 음악과 같이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면 감정이 요동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서정주시인은 현대시의 최고봉이라 할 정도로 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유치환과 함께 생명사상을 노래했지만 그의 작품은 동양사상, 신라의 미학, 불교적 색채 등 작품의 범주가 다양하고 요약하면 일단 시가 재미있습니다.


 


이육사시인은 40세를 채우지 못한 짧은 생애 동안 40편의 시를 남겼고 해방을 1년 남겨둔 1944년 새해에 북경일본영사관 형무소에서 옥사하신 당시 전과 17범의 시인이셨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이던 1980년대 초 학교에 온 서정주 시인의 현대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로는 교과서에서만 본 살아있는 시의 전설을 볼 수 있다는 흥분이 있었지만 강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현대시 몇 편을 시인만의 독특한 해석을 곁들이면서 강연을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육사가 북경형무소에서 남긴 절명시 광야였습니다. 서정주시인은 다른 시를 읽을 때와는 달리, 이육사의 광야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읊고 나서, 이런 시는 우리 같은 사람은 쓸 수 없어. 진정 초인이야 초인!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알다시피 서정주 시인은 일제 말기 친일 국민문학에 가담하여 쓰지 말아야 했을 친일찬미와 징용을 권장하는 시를 다수 남겼습니다. 그러나 제생각에는 적어도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육사 시인은 단순히 저항시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서정성이 사물을 관찰하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분이셨다는 게 많지 않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 시재를 온전히 문학에 몰입하지 못하고 굴욕의 역사와 시대를 온 몸으로 거스르며 항일 투쟁을 해오신 분이라 아쉬움이 많습니다. 1년만 더 버티었으면 그렇게 고대하던 해방된 조국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였을 거란 회한이 남습니다. 그러면 거짓된 말장난과 같은 시가 아닌 시인 그 자체인 시를 많이 감상할 수 기회가 많았겠지요. 하지만 전 이육사 한편의 시가 작가의 진심이 숨겨진 천 편의 시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육사 시인의 시를 끓임 없이 되새김질 합니다. 할수록 진 한 맛이 느껴지네요.


절정에서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초차 없다.” 광야에서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암담한 현실을 표현한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눈물이 납니다.



 







동방은
하늘도 끝나고


방울 나리잖는 때에도


오히려  빨갛게 피지 않는가.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새벽은


깊이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에는


나비처럼 ()하는 회상(回想) 무리들아.


오늘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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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2014-09-22 13:17:21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두 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서정주 시인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승우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꼇다면

자신의 행동을 시대논리로 푸려는 여타의 친일과는 달라 보입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서정주 시인이 염화시중같은 거 말고 과거에 대해 진정어린 후회를 명시적으로 했는지 궁금하네요.

김주항 2014-09-22 13:34:10
답글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읽을때 마다
가슴이 두근 거리는 힘이 느껴짐돠.....~.~!!

김좌진 2014-09-22 13:45:07
답글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김좌진 2014-09-22 13:46:27
답글

80년대 초반이라면 아직 정신 못차린 게 틀림없습니다. 전두환 빨아준 게 그보다 훨씬 이후니까요.

이종호 2014-09-22 13:51:17

    만주벌판을 다까키 마사오 모가지를 비틀기 위해 고군분투 하시던
김좌진장군님의 일갈에 서릿발이 서려 있습니다.

김좌진 2014-09-22 13:49:12
답글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변선희 2014-09-22 13:51:58
답글

저도 질마재 신화를 읽으며, 서정주 시인을 인용하며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헌데 어느날 전 머시기 하는 대통령시절에 그 미소를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라나 뭐라나 하며 표현하였다는 응징(?)으로 더 이상 그의 시를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이 시대가 양분화 된 것이 우리의 한 눈을 가리는 결과가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 이육사님 시 저도 좋아합니다. 수번이 육사라서 이육사라 하셨던,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하는 시쯤은 저도 외웁니다. 하지만 저는 깃발이 좋던데요. 이욱사의 싯속에서 저항정신보다는 나라 잃은 슬픔에 목놓아 울고 있는 그 거룩한 서정성에 더 탄복합니다.

강민구 2014-09-22 14:22:42
답글

서정주 참 어렵습니다! 그의 시를 친일이라는 죄목으로 불태워야할지 어떨지 참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시따위를 하시는 분이라면 당근 그를 목메달라 버려도 상관없을 것이지만 화사집을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제껏 나온 시집중 가장 훌륭한 시집중 하나라 생각하면 참 난감해집니다.

오래전이지만 그의 자화상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는 이 싯구 하나만으로 주위에 시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아들이 한국시에서 무엇을 먼저 읽어봐야할까요 물어본다면 전 단연 이 화사집과 김수영의 시집을 말할 것인데 근데 서정주 야는 친일분자아니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해봅니다. 그래도 대답은 시간에 따라 점점 변하고 있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그 시집을 읽겠다" 입니다.

lalenteur@hotmail.com 2014-09-22 15:10:24

    저도 서정주의 문학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민구님의 의견과는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해 봅니다. 저는 서정주의 시집을 싸그리 모아서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한사람입니다.

흔히 해방 전후의 시기에 오장환, 이용악, 서정주를 시단의 3대 천재라 했는데 두 명은 월북으로 남은 이 者(서가를 말함, 한자로 놈자임)는 친일부역자에 독재자에 빌붙어 호의호식호주(好衣好食好住)에 한세상 잘 살다 갔구만요. 죽어서도 좋은데 간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러고 보니 3대 천재가 무척 불우한 시대에 불행으로 점철되어 살다 갔군요.

서정주는 의식적으로 읽지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자연스럽게 빼어난 것은 그의 문재인데요. 그러면 뭐하냐 말입니다. 그 좋은 재주에 영롱함이 깃들지를 않고 썩은 향만 풍기는데 날고 긴다 해도 인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지요.

재주가 뛰어난 자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아 먹고 나라를 팔아 먹고 자신의 동족을 사지로 몰아 넣는 것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찮은 짐승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러한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민구님께는 개인적으로 사감은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이상입니다.

이종호 2014-09-22 15:19:10
답글

민재님의 댓글에 힘을 싣고 싶습니다...이땅의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강민구 2014-09-22 15:35:58
답글

민재님 오해라니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답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못하고 "나는"입니다. 아직도 모호한 스텐스인거죠

이승우 2014-09-22 15:38:13
답글

서정주 시인의 시는 뛰어남에도 그러한 이유로 제게는 자연스럽게 덜 읽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시는 시로서 봐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시인의 인생이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좋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이 되기는 힘든 거 같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작가의 진정성이 있는 작품이 그리워 지더군요.

lalenteur@hotmail.com 2014-09-22 16:05:11

    예전 김O정님의 글과 댓글을 통해서 승우님 글은 자주 접했습니다. 그때는 워낙 빼어나신 분들이 많이 계신 관계로 제 원래 자리인 눈팅 회원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오늘 초면 같은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요즘 작가들은 예전의 작가만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칠조어론의 박상륭 소설가, 광장의 최인훈 선생, 지리산의 故 이병주 선생, 임꺽정의 벽초 홍명희 선생 그리고 대중적이고 통속적 이였을망정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인호씨 정도도 못 따라 가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 이승우씨와는 동명이시군요. 혹시? 아니시겠죠. 이승우씨의 소설은 몇 작품을 읽기는 읽었습니다만 너무 어려워서 뭔 내용인지는 도통 파악하기가... 아무튼 우리 문단에서 독특한 문체의 소설가입니다.

이종호 2014-09-22 16:25:32

    그래도 승우님과 같은 분들이 고급진 글들을 올려주시니 자게가 한결 묵직하고 알차 지는것 같아
무척이나 기분좋습니다...^^

저 처럼 알맹이 없고 일회용 껌 포장지 같은 글 보다는 곱씹어 볼수록 향기나는 이런 글들을
써서 올릴 줄 아는 분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빨간 비옷 입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던 O소정님의 글이 그립습니다...

남두호 2014-09-22 16:41:02
답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가 득세하지 않았다면
서정주의 문학이 지금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싶네요.
문학(예술)은 현실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선 평론가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평가도 존중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 같으며, 글은 곧 사람이기도 하지요.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명히 갈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학이 그 자체로서만 평가를 받는 일이 없다는 점이죠.
문학 작품이 빼어나기에 그 작가도 좋은(?) 대접을 같이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만약 해방 이후 친일파가 득세하지 않았더라면
서정주를 비롯한 수많은 친일 문사들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친인 문사들의 글이 추앙 받는다면,
국권을 침탈 당하자 한 줄의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황현 같은 분은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친일 작가들의 그 더러운 입으로 민족 문학을 말하는 자체가 넌센스요,
그분들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lalenteur@hotmail.com 2014-09-22 16:48:47

    두호님께서 깔끔하게 정리를 잘 해주셨습니다. 이것참 아직도 조심스럽습니다만 기개가 있고 민족을 생각했던 분들이 애석하게도 저쪽으로 많이 넘어 갔습니다. 이념이 무엇이라고... 우리민족의 큰 불행이지요. 남북이 하나가 되도 모자랄 판에 두쪽으로 나누어 아직까지도 이 꼴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꼭 남의 얘기하 듯 합니다.

강민구 2014-09-22 17:09:41
답글

많은 분들의 말씀처럼 무자르듯 쉽게 잘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서양과는 다르게 울나라의 경우 시인이나 글짓기가 양반계급에서 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서양에 없는 책임의식같은 것이 문사에게 지워져있는 느낌입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론 서정주의 화사집은 금서로 묵어놔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찾아서 읽어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이후의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문학이 사회보다 힘이 있지는 않지만 엄현히 사회와는 다른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정주를 단죄하던 말던 그것은 그 사회의 성숙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미개성이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친일문학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화사집이 서정주가 친일로 처형을 당했어도 저는 읽혓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육사의 경우 독립운동가였지만 좋은 시를 썼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한 반대로 서정주는 친일파였지만 좋은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인이 되고자하는 사람들은 그의 화사집을 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서정주처럼 살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말이죠 저는 서정주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옹호하고자하는 것입니다.

제임스조이스가 아일랜드를 떠났듯이 에즈라파운드가 미국을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이라고 말하며 떠났듯이 사회가 그 시인들을 단죄하고 처벌할 수있어도 시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시가 훌륭하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찾아 읽을 것이기 때문에요

쉽게 말하면 시인이 현행범이라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쓴 시는 시간과 대중에 의해서 처벌될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용정훈 2014-09-23 01:34:56

    글쎄요. 물론 육사의 시들이 미당의 시들에 비해 완성도가 좀 들쑥날쑥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절정 같은 시를 보고 좋은시가 아니라고 하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육사만큼의 정신적 깊이를 보여준 시인을 지금 당장 생각해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김윤식은 그 시를 근대의 논리를 초극해버린 걸작으로 평가했죠. 꼭 그런 문학사회학적/사상적 평가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때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로 끝나는 시는 어린 마음에소름을 돋게하기 충분했거든요. 지지리 외우는 거 못하던 제가 외우던 몇 안되던 시였습니다.^^;

김동현 2014-09-22 17:31:46
답글

글쎄요.

아마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보다

화사집이 라는 문학작품이 한글을 쓰는 사람이 남아 있는한

더 오래 영원히 남게될거라고 봅니다.

lalenteur@hotmail.com 2014-09-22 18:23:48
답글

도올 김용옥선생, 이 분의 책은 쓸 데 없는 잡소리가 많이 섞인 것이 특징입니다만 그래도 쓸 데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민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 지적해 주신 칼럼집이 있습니다. 이에 소개해 봅니다.

예전에 월간 신동아에 연재하였던 것을 정리한 단행본 책( 도올세설, 도올 김용옥, 통나무,1990)인데, 제가 읽은 지가 오래 되어서 기억이 희미합니다만 기억을 더듬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책의 본문 내용 중 '굼발이와 칼재비' 이 장에서, 이분이 주장하는 것은, 서양의 역사에서 왕정과의 단절은 왕의 목을 시민이 직접 쳤다는 것과 그에 반해 우리는 역사 이래 그렇게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루마니아의 철권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시민에 의해 단죄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압니다.

우리에게는 역사 이래 그렇게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역사를 늘 지배계층에게 끌려 다니기만 했다 이러한 주장도 했지요. 칼잽이는 일본의 사무라이를 예로 들었으며, 굼발이는 박정희를 예로 들었고요. 왕의 목을 친 역사가 없는 나라는 역사의 단절을 능동적으로 할 수 없으며, 앞으로 한발자국을 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고요. 1990년도의 정국상황도 지금과 같이 흩으러 질대로 흩어져 있었지요.

동양 고전 사기 유림전을 보면 배운 사람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을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배움을 굽혀 아첨하지 마라." "曲學阿世"입니다. 이를 행하지 못한 자는 금수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이 예전의 선비사회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를 얘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고 하나의 잣대로 젤 수는 없으니 민구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십분 이해합니다. 이상 두서없는 글을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민 2014-09-22 18:36:51
답글

전두환이 투표를 앞 둔 80년 어느날
tv에서 "해맑은 웃음을 가진 전두환을 가족 모두 지지"한다는
서정주의 말을 듣는 순간

예술은 절대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11.36.***.221 2014-09-22 23:02:57
답글

예술작품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서야 뭘 그리 아름답겠는가?

14.47.***.80 2014-09-23 01:19:43
답글

좋은 글과 댓글들을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문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깊있는 논의들이 고고가는 모습에 정말 뿌듯한 기쁨을 느낍니다.

고등학교 문예반 때, 학교 축제에 천상병 시인을 섭외하러 멀리 동두천 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던 천시인은 "강남에 있는 학교에는 가지 않는다"며 직설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마나님이 미안하다며 설탕에 절인 토마토를 대접해주시더군요. 저는 천시인께 화도 나고 답답해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느냐고 하소연 겸 따져봤지만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마나님이 위로를 해주시며 설탕뿌린 토마토를 대접해주시더군요. 그 때 천시인의 집은 비닐하우스 판자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초대가 무산된 다음 지도선생님이 서정주시인을 섭외해서 초대했습니다. 입담도 대단하시고 젊은이들과 격의 없이 잘 어울리시더군요.

고등학교 때, 김춘수 시인과 동리선생도 뵌 적이 있었죠. 특히 김춘수시인은 학교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제가 프랑크푸프트학파에 대해서 여쭈니, 굉장히 명료하게 특징을 짚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그야말로 늘 공부하시는 분이었죠. 제가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시인들은 김광균과 김수영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제 의견도 덧붙이자면, 서정주의 시는 서정주의 행적이라는 컨텍스트를 알고는 절대로 그 이전과 같이 감상할 수는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가 야만일 수 밖에 없고, 삼성의 행태를 보고 겔럭시를 맘편히 쓸 수 없으며, 팔레스타인 이후, 스타벅스와 네슬레의 맛을 즐기는 것 또한 야만이듯, 서정주의 미감은 혐오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 시를 음미할 때 딸려나오는 그 썩은 냄새를 잘라버리기 힘들테니까요. 다만 그 재능을 안타까워하고 인간의 비겁과 나약을 슬퍼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가 제가 그분 시가 가지는 아름다움의 무게를 잘 젤 줄 몰라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화사 같은 시를 배우면서 감탄하긴 했지만요.

용정훈 2014-09-23 01:20:34

    여튼 시간이 지나고 천상병시인의 이력과 성향을 알게 되면서 그 행동이 납득이 가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상병과 미당, 정말 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승우 2014-09-23 01:41:20
답글

이민재님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승우란 이름이 좀 흔해서 그 소설가와 동명이어서 영광이네요.

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닌 이상 시와 시인을 동체라고 생각하니 위의 용정훈님 말씀처럼 서정주 시인의 시에는 이전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옛날 고문학을 보더라도 오랜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진한 감동을 주는 명작들은 그 문인의 진정성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거 같습니다.

이숭우 2014-09-23 14:06:46
답글

뒤집어 봐서 어언 옛날, 장정일도 한다리 건너 우리 패거리였던 그 시절...
우리 패거리 사이에서 그의 통칭은 x정주였습니다.
문단의 위치에서 비교하자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인물이였지만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습니다.
이유라면 윗분들께서 충분히 말씀하셨고.
허구한 날 날밤새는 막걸리 자리에서 x정주를 성토했지요.

김수영, 김현, 김명인, 염무웅, 황동규, 신동엽, 신경림, 정희성 (이하 생략)등의 존함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추천을 해주셨지만 기대에 못 미쳤던 이*철선생님께도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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