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년 전 OO대학교 O대학 학장으로 임명받아 취임하던 때에는 40대 중반의 젊은 학장이라고 제법 호기를 가지고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의욕과 노력을 보였던 것 같다. 학회나 지방 의회에 가게 되면 그 주위의 유명 사찰을 방문할 때가 많았었고, 그 때마다 부처님께 참배하고 나서 본교와 제자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복전함에 꼭 작은 공양일지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이 있었던지 우리대학이 성장하는 기세가 보이기도 했다.
2년이 번쩍 지나 학장 임기가 끝나고 나니 외로움과 서운한 생각이 그지 없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상의하여 찾아오던 동문교수들이 나를 멀리하는 듯한 서운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며칠 후 태안사의 청화 큰스님을 찾아 뵙고 그 자비스러운 존안을 대하고 나서 나의 괴로움의 근원이 바로 그 분의 교훈대로 ,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의 오독심(五毒心)이며 특히 나에게는 학장 2년에 얻은 학장병이라는 아만심이 나도 모르게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큰법당에서 부처님전에 하심하는 마음으로 몇 차례 백팔 배를 올리고, 온몸이 홍건하게 젖은 체로 부처님 앞에 가부좌하고 있으니"땀구멍마다 아만상이 다 새어나오고 나서 이제는 본래의 평범하고 순진한 평교도로 환원되었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그 때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즉 사람은 "사람이 올라가기도 어렵지만 내려오기는 더욱 어렵구나" 하고
오늘날 서양식 승리주의 교육만을 받아 온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는, 어느덧 저 위로 대통령부터 저 밑으로 통반장까지 모두 올라가려는 것만 배우고 가르치다 보니, 잘 내려가는데 대한 지혜와 마음의 여유를 잃은 지 오래 된 것 같다.
4년 전 선거에서 내가 다시 학장으로 선출되고 나서, 동료 교수들로부터 학장 당선에 관한 인사말을 요구받고서,
"나는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학장의 자리는 공임이며 공적 소임에 정성을 다하여 지켜 갈 자리이므로, 개인의 영광이나 명예나 이해로 생각하는 마음이 앞설까 염려해서 입니다." 하고 말했던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 학장 때에는 노력하고 반성했으나 아직도 아만의 때꼽째기가 더덕더덕 마음속에 붙어 있음을 느낀다. 나를 나로만 보고 우리로는 보지 않는 것이 아만심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위스의 대통령 임기는 1년이라고 한다. "쉽게 내려오는" 공부는 우리로 돌아가는 공부가 아닐까? "나는 내려가서는 안돼." "나는 못살아서는 안돼." 이런 생각이 사회 지도층까지 깊어지니 우리의 시련은 남의 시련이고, 자기만의 행복과 이익을 분리하여서 생각하기에 익숙하다. 고전 사상 공부를 많이 하신 선배 교수가 하신 말로 마무리 말을 적는다.
"사람은 철들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워질수록 현명해진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외로웠을까? 부모가 실은 외롭고, 스승이 실은 외롭고, 수행자가 실은 외롭고, 아마도 성자님들은 가장 외로움을 극복하여 왔을 것이다.
※출전
금강경, 윤을순, 신우당, 1997, P112-113 의 부분 재인용이고,
윗 글의 원 저자는 정환담, 교수신문, (1994년4월) 으로 추정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