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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왜 들으시나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9-15 17:32:51
추천수 25
조회수   1,401

제목

음악을 왜 들으시나요?

글쓴이

김영진 [가입일자 : 2004-11-29]
내용


어제 올렸던 먼지가 되어라는 음악에 댓글이 달려 쓰려다 보니 머리 속의 생각이 어려가지가 겹치네요.




옛날 생각이 납니다.


 


90년대 초반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소개시켜주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개팅이나 미팅은 우아하게 경양식집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돈까스를 썰면서 몇 년만에 처음보는 다른 전공의 여자와 이야기를 하였지요. 그 여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로 어느 공연단에서 키보드를 치는 사람이었는데 음악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는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가 좋다고 이야기를 하였지요. 저 역시도 음악은 관심이 있던지라 이쁘장한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급관심을 가지게 되고 헤어지자 마자 레코드가게에서 창신동 어쩌구 하는 앨범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가 당시에 그 노래를 소개해 주면서 이윤수가 리메이크한 노래라고 소개해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게에서 산 창신동 어쪄고 하는 앨범 제목은 어린 시절 창신동에 살았던 아련한 기억을 불러 내주는 그런 앨범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살던 시절 동대문에는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있었고, 동대문 너머에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사람으로 북적북적 대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실내스케이트장에서부터 동대문까지 길가에는 카바이트 불빛으로 밝게 밝혀 놓은 니어커며 좌판에서는 야채, 떨이 옷, 간편한 요깃거리를 팔았었지요. 가끔 신구판 선데이 서울을 팔던 니어커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가서 아저씨 좋은 것 있어요 하면, 니어커 속을 뒤적거려 플레이 보이나 펜트하우스 잡지를 고가에 팔곤 하였죠.


 


당시 저희는 관심사가 만화였던 것 같습니다. 마성기(당시 말XX라고 했고 발기하면 팬티를 찟고 나오는 용맹을 부리곤 했지요)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였는데 철필로 그려서 등사기로 찍고는 스탬플러로 대충 찍어 제본하여 파는 것인데 당시 중학생들에게 공전의 희트를 쳤던 것이었지요. 당시 좀 놀았다거나 용기가 있는 아이들은 동대문에 가서 신판나온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사오기도 하였는데, 그 동네에 살던 저에게 아이들이 신판 나왔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오라고 했는데, 시골에서 올라와 얼마되지 않았던 저는 니어커 근처에는 갔지만 무서워 말도 못부쳤던 기억이 납니다.


 


월남전 파병에서 돌아온 외삼촌이 사다 준 노란 고무줄로 라디오만한 6V 밧데리를 묶은 가죽커버가 있는 일제 내쇼날 라디오에서 들었던 산울림의 아니 벌써”(당시 저는 그 노래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이거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는 아무리 고급 시스템의 오디오에서 들어도 동일한 감동이 되지 않고, 당시 그 라디오로 들었던 이수만, 조경수, 김만수, 고 최헌, 채은옥 등의 입담과 노래는 지금의 어떤 음악프로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지요.


 


시간은 지나가고 컴퓨터를 연결하여 음악을 듣거나, 고급 오디오로 음악을 듣지만 기계가 고급화되었다고 하여 어린시절 머리를 때리던 감동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감정, 어드선가 들려오는 낯선 선율에서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 이만큼을 살아왔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은 음악이 아니면 줄 수 없는 편안함이라 생각됩니다





언니네 이발관 - 가리봉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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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서울의 부심이였던 동대문이지만 조금 벗어난 창신동은 마치 가리봉시장과 같은 느낌의 그런 곳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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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2014-09-15 17:46:09
답글

글 쓰신 것으로 봐선 제가 겪었던 것들을 그대로 주마등처럼 스쳐가게 하는 세대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모노 야외전축으로 듣던 빽판들을
아버지께서 황학동 시장에서 티알반 진공관 반 케이스없는
스테레오앰프(정확히 말하면 독수리표 스웨이코 전축)를 사다 주셨을 때
SP, LP 바늘 돌려 시계드라이버로 바늘끼우는 싸구려 턴테이블에 걸어서 들으며

아! 이게 스테레오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게 했던 음악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

지금도 그런 사운드는 들어본..아니 들어볼 수도 없을 거 같습니다.

김영진 2014-09-15 17:54:29

    어르신 보다는 제가 조금 아래일 것 입니다. 당시는 발전이 빠르지 않았으니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기억들이 많지요.

저도 서울와서 황학동에를 처음가보고 납땜을 배우게 됐습니다. 중학교 내내 황학동과 청계4가를 오가며 TR과 고물에서 뜻어낸 저항과 콘덴서로 앰프도 만들고 lp 플래이어도 만들었지요. 황학동에서 사온 빽판으로 듣던 직접만든 앰프의 소리는 맨날 등던 모노 라디오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열정도 식고 그냥 돈주고 사지 뭐하지만....

이종호 2014-09-15 17:59:06
답글

저도 동대문실내스케이트장과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많이 그 주변을 돌아다녔었습니다.
특히 청계천 헌책방....ㅠ,.ㅠ^

전성일 2014-09-15 18:06:37
답글

세상에는 참 알수없는 [연결]이 있는 듯 합니다. 89년쯤에(대체로 군 제대후 취직할 정도의 나이-저 나이때) 급성백혈병으로 2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불x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음악을 좋아해서 동대문 등에 백판을 사러 많이 다녔고, 관심없는 친구들에게 그 많은 열정으로 침튀겨가며 자기가 받았던 감동을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출근길에 매일 레인보우를 듣는데..오늘 문득 이 친구가 침튀겨가며 좋아라했던 노래가 떠오르더군요..Bob Welch의 [EBONY EYES]란 노랩니다. 이 노래만 들으면 무심하게 세상을 등진 그 친구가 떠오르거든요..

낮시간에 잊고 있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니 아침에 아련히 떠오른 친구를 다시 생각나게 하네요..

이종호 2014-09-15 18:13:43
답글

ㄴ 저도 제작년 딸내미 결혼시키고 목을 매어 먼저간 친구넘이랑 같이 불렀던
어니언스의 '편지", 4월과 5월의 "화"......저에게서 통기타를 배웠던 넘인데....
그 노래를 들으면 그너마 생각이 납니다

고교시절 그너마 집에 가면 늘 누런 양은 대형 냄비에 라면끓여서

"종호야! 많이 먹어라"

하시며 다른 넘들보다 조금은 더 담아 주셨던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 뵌 엄니의 초췌한 모습이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ㅠ,.ㅠ^

박병주 2014-09-15 19:25:36
답글

시골에서 가끔 라디오과학이나
전자과학책보고 부품사러 그 먼길 왔다갔다ㅡ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네유
ㅠ.ㅠ

염일진 2014-09-15 20:08:10
답글

음악을 안들으면..그래서 티비를 보면..그냥 그 시간이 허비되는 느낌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아름다움이 내 가슴 속으로 가득차니.....흐뭇하죠..그래서 음악을 듣습니다.

박병주 2014-09-15 21:07:32

    다넌컨데 그중에 갑은 생음악(?)임돠
ㅠ ㅠ

김용원 2014-09-15 22:59:13
답글

종호님 칭구를 가슴에 묻었군요.
저도 묻었습니다. 살아있는 넘이지만. . .

권민수 2014-09-15 23:06:49
답글

숭인동에서 30년넘게.살아오면서 창신동도 자주 들락거렸는데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도 그 동대문 롤라장에서 엄청 탔는데.. ㅋ 창신동 지금은 아파트가 많이.들어섰죠 고층건물도 있고 하지만
그 와중에 정말 아직도 오래전 그 모습이.그대로 남은 곳도 있답니다.

김영광 2014-09-15 23:18:08
답글

음악 들으면 그냥 좋아요...누워서 들어도 좋고 뭐 하면서 들어도 좋고 인터넷 하면서 들어도 좋고..

김영진 2014-09-16 00:31:31
답글

음악을 들으면 어떨때는 신나고, 어떨때는 슬프고, 또 어떨때는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도하고, 또 어떨때는 슬프거나 화가 나있다가 즐거워지기도 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더 빠지게 할때도 있고 반대로 감정을 확바꾸어 놓을때도 있어서 인것 같습니다.

이종호 2014-09-16 09:54:34
답글

으막은 제 인생의 일부입니다...으막이 없었음 와싸다도 몰랐고 이곳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 동생들도 못만났고
특히, 갈취란 묘한 중독성의 취미도 갖지 못했을 뿐더러 아마 황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글구, 용원님^^ 살아있는 칭구를 묻은 것은 저도 몇 넘들 됩니다....ㅡ,.ㅜ^

정영순 2014-09-16 15:54:02
답글

좋은글과 좋은댓글들 무척 감사하게 잘 보고 갑니다.^^

lalenteur@hotmail.com 2014-09-17 09:00:34
답글

제 때?에 이글을 읽지 못하고 지나쳤군요. 늦게나마 댓글을 달아 봅니다. 80-90년대 동대문, 청계천 많이도 다녔었지요. 도시의 차가운 회색빛 철근 콘크리트가 위압감을 주었다면 그래도 낡고 때묻고 더러운 상처 받은 영혼들이 모였던 그곳이 무작정 끌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예전 철거 전의 청계천 고가도로는 남북을 가르는 철책처럼, 다른 점, 남과 북은 꽉 막혀 있으나 그래도 청계천 고가도로를 자유로이 드나들고 남북을 공존하였다는 점이 다르겠군요. 또한 군상을 이루는 노점상, 이들도 어쩌면 우리 세대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제 Sony, Sharp, Doshiba, Mitsubishi, Fujitsu 등 가전제품의 최절정기였지요.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와 휴대용 워크맨을 사서 들었을 때도 생각나고 그렇군요. 물론 용돈을 모아서 중고로 산 것이지요. 추억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종호 2014-09-17 09:38:59
답글

제가 기억하는 청계천은 무허가 판자촌과 3.1고가도로가 생기기 전의 하천을 아버지 손잡고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다리를 건너 창신동을 갔었던 것이 최초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시절, 제 짝이었던 친구집을 찿아 간 곳이 사창가....ㅡ,.ㅜ^
지금은 성동기계공고 자리가 있던 그 뒷쪽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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