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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삼개월 다닌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다녀온 이야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9-01 14:25:54
추천수 88
조회수   2,733

제목

겨우 삼개월 다닌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다녀온 이야기.

글쓴이

변선희 [가입일자 : 2005-04-21]
내용

얼마 전 나는 3개월밖에 다니지 못한 경기도 여주의 시골 초등학교의 동창회를 다녀왔습니다. 3개월 밖에 다니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동창회를 가게 되었는 가 하겠지만, 마침 연락이 된 때 동창회 모임이 임박해 있었고, 그 동창 중의 한사람이 일가인 아저씨벌인 탓에 그 빽도 좀 작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곳은 실상 서울에서 무척 가까운 곳이 되어버렸지만 1970년대만 해도 무척이나 오지 중의 오지라 버스도 안 들어오는 동네였으며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3킬로는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고, 학교 인근 몇 몇 아이들 말고는 모두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등교해야 하는 마을이었습니다.


 


나는 1971년 우리 동네에서 일곱 명의 친구들과 같이 입학을 하였는데, 그 중 남자 친구들은, 한동네에서 낳고 자랐으므로 얼굴도 알고 이름도 익히 알고 있지만 말 한 마디 섞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반상의 구별이 워낙 투철하였던 시대이고, 어른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탓도 있었던 탓에 남자 아이들의 놀이에 낄 명분도 없어서 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중 한 명은 나보다 한 항렬이 높은 아저씨도 끼어 있었고, 동갑이라 너니 내니 학교를 오가면서 아이들과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첫 오락시간이 기억납니다. 당시 김순희란 샘이 노래를 시켰는데, 우리 아저씨가 호기 있게 젤 먼저 나를 추천했습니다. 나는 유치원도 못 다녔고, 동요다운 동요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 시키는 것이니,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가서는, 아버지가 유성기에서 평소 즐겨들으시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부른 겁니다. 뭐 음정 박자 형편없었겠지만 가사는 특유의 잘 외는 성격 탓에 가사만큼은 정확했을 것입니다. 암튼 그 노래를 무사히 다 마치자 선생님은 나를 향해 어째 싸아 하는 눈길을 보내고는 들어가라고만 했습니다.


그 때 앞에서 자리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는 눈치 없는 우리 아저씨가


"와 선희 대단한대!' 하며 자뭇 선망조로 날 쳐다보았습니다^^~


 


암튼 우리는 방과 후면 학교에서 당시 후진국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둥근 바게트빵을 세 개 혹은 여섯개 씩 타서 들고 같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던 길에 십리 좀 못되는 길은 초등생들에게는 길었으니 가재도 잡고 빵도 먹고 그랫는데, 아무것도 안 넣고 먹는 바케트 빵은 정말 맛이 없어서 배가 고파 베어 물었다가도 금방 질리는 맛없는 빵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빵을 소중하게 책보에 담아 가지고 갔는데, 그 이유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이 빵을 기다리며 동구 밖까지 나와 있는 경우가 흔하였기 때문입니다.


동갑 아저씨는 정말 당시에 내게 참 잘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워낙 젠틀한 신사요 선비로 자라났지만 당시에도 동네 아이들을 휘어잡던 아저씨는 내게는 늘 쩔쩔매주었고, 뭔가 친절을 베푸는 멋진 보디가드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잔뜩 의기양양해진 나는, 어느 중간쯤이면 꼭 내가 대장처럼 어깨를 으쓱이며는 꼭 이 말을 했습니다.


"나 여기 있는 애들 다 이겨~"


그리고 거기 있는 친구들을 죄다 둘러보면


우리 아저씨가 내 기세에 금방 기가 죽어서


"난 선희만 빼고 다 이겨."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남친 중에서 그중 인물이 훤출했던 한식이는 또


"난 선희하고 대섭이만 빼고 다 이겨."


뭐 이랬고 내 여친 기영이가


"난 선희하고 대섭이하고 한식이만 빼고 다 이겨."


그러면 태영이라는 꼬마란 별명의 친구가 발끈해서 기영이와 싸웠습니다. 아무튼 둘은 대개 승부가 안 나고 나중에 근순이란 (나중에 묵화를 잘 그린단 소식을 듣던 친구였다.)친구가 고개를 떨구고는


"난 다 못 이겨."


뭐 이런 행위를 하며 우리는 집으로 향하였고 참 즐거운 하교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즐거운 것은 생전 나랑 같이 놀지도 않던 애들이 집으로 나를 찾아와 준 것이었습니다.


"선희야 노올자~"


이런 부름 소리는 정말 달콤합니다. 나는 당시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고 할머니와 있었으므로 눈치를 보며 친구들을 따라 나서면 그 아이들은 능숙하게 도롱룡도 잡고 위장에 좋다는 도롱룡의 알을 발견하여 건지는 법도 가르쳐주고 고사리 꺽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논에서 도롱룡 알을 건지는데, 논에 들어가려던 나를 말리며 한식이가 흰고무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 말고 나에게 흰 고무신을 주며


"니가 갖고 있어."


뭐 그러면서 대신 도롱뇽의 알을 건져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맨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 한식이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구나.’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남자애들은 점점 더 깊숙한 논으로 가버렸고 우리들은 달래를 캐러 다녔는데, 난 어느 논가에 한식이 고무신을 놓고 나중에 찾으러 갔지만 이상하게도 그 논이 그 논 같아 결국 못 찾고 말았습니다. 당시 고무신은 참 귀했고, 새 고무신을 잃어버렸으니, 집에서 퍽 혼이 났을 텐데. 그 티도 안 냈던 게 마음에 걸려 나중에 나는 하얀고무신이란 황혼로맨스의 글을 쓴 적이 있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 어린 친구들과 작별도 못하고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부모님이 서울로 나를 데려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고향생각이 나는지 친구들과 놀던 개울가를 떠올리며 냄새나는 개천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친구들을 생각했지만 여의치 못하였던 아버지의 사업 덕분에 우리는 이년 여 기간을 집에 내려가지 못하였고, 장남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괴로워하는 모습만큼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갔습니다. 그리고 후에 방학때마다 고향에 내려갔지만, 당숙 외에 우리 동기들은 나를 봐도 소 닭 보듯 무심히 지나쳤고, 실제로 마주친 일도 별로 없습니다.


 


암튼, 우리 아저씨 덕분에 내가 그 삼개월 밖에 안 다닌 그 초등학교 동창회에 초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금방 소문을 내서 한식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난 고무신이야기부터 했는데, 그 바부탱이 같은 친구는 고무신은 아예 기억도 없더군요. 그러면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정 그러면 한 켤레 사주던지."


그리고 반가운 소식 하나는 안 오려던 참에 나를 기억하고 있던 내 짝궁 여학생이 참여한다고 해서 정말 기분이 들떴으며, 또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 남편에게도 허락을 받아 무려 1박 이일의 동창회를 가게 된 것입니다.



나와 동갑인 아저씨의 차를 타고 고향에 가는 길에 거기서 오래 이장을 하시고 군의원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셨다는(날 태워준 당숙의 부친. 독학이라는 학력으로 군의원 당선되심. ) 말을 듣고


일부러 제일 좋은 복숭아도 한 상자 사고, 커다란 수박도 한통 사고


잠시 들려 인사를 드렸습니다. 원래 편찮으시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게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게 나는 그 분께 절하는 게 처음입니다.


 


윗대 조상님 중 어느 대에선가 그 댁은 서출이라고 해서 그 댁의 그 누구도 아저씨나 할아버지 호칭을 한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어른들이 그러니 우리는 의례 그러려니 했고, 그저 누구 아버지 하고 동갑아저씨한테도 이름이나 불렀는데,


사실 우리 조모님 혼자 고향에 계실 때 음으로 양으로 가장 많이 찾아뵙고 도움을 드린 분이 할아버지신데다가,


꼭 대접을 하여드려야 하는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근데 그분들 뵈니 우리 엄마가 생각나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아무튼 너무나 반가운 얼굴을 뵙고 친구들과 만났는데 하나도 서먹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기억해주는 몇 친구도 있었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금방 고향 이야기에 빠져들어 거의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기 소유리란 마을의 한 아방궁같은 산자락 전부가 음식점인데다가, 집이 세 채나 되는데 모두 텅텅 비어 있는 방들이라


우리 아저씨는 제일 좋은 방에 이불이며를 다 깔아주고,, 거실에서 잠자는 남동창들.. 코고는 소리 들린다고 문도 닫아주고.. 보초도 서주는 등.. 정말 간만에.. 어린 시절.. 고향의 소쩍새 우는 밤이 깊어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학년 때 내 짝궁인 윤현자란 친구는 나를 기억하고 안 오려던 동창회에 단지 내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인천에서 차를 달려 제일 먼저 도착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할머니께서는 일끼지 아침을 차려놓고 거기에 와서 아침을 들라고 해서 시골의 맛갈스러운 음식에 백중에 하셨다는 증편까지 얻어먹고.. 오이지며 말린 표고버섯이며 감자등을 그야말로 사과박스 이상 크기로 한아름 당숙의 차에 실어 놓으셨다.. 나 완전.. 수 났음..ㅋㅋ


 


그리고 친구들이 모여있는 그 친구가 한다는 음식점에 갔는데 계곡이 흐르는 옆에 데크로 설치한 큰 테이블 여럿을 붙여놓고, 그 곳 음식이라는 염소고기 전골 오리고기 전골 등을 먹는데, 정말 즐거운 것은 나타난 친구들이 정말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모습이었던 겁니다.


기막힌 멋쟁이 여친은 채희라는 개명도 하고 나타났고, 시골서 농사짓는 친구에 다양한 직업군의 친구들이 얼굴이 어찌 하나같이 친근한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웠는데.. 어디나 나름 출세한 친구 몇이 있기 마련.


친구들의 편의를 봐줄 정도로 잘 된 친구도 있었고,


 


내가 고무신을 잃어버렸던 한식이는 동탄에서 세탁소를 한다는데, 새로 뽑은 신형차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대개 무슨 일이던지 사업하는 친구들이 더 여유가 있는 거, 학력과 관계없이 땀 흘린 친구들이 잘 사는 거는 정말 흐뭇했죠.


 


근데 한 친구가 뒤 늦게 나타나, 한식이란 그 친구가 선희가 내 첫사랑인데, 전화를 받고는 무척 설레었다 하는 뒷 이야기를 들은 일도 재미있었으며


 


경조사 챙기는 사이가 되자며.. 가을 수확하면 땅콩 보내준다고 차에 와서 손을 부여잡던 착한 남동창, 우리 동우회에서 맛 본 지평막걸리 사러간다고 나서던 울 동창 하나, 멀리 횡성에서 농사짓는 여동창은 철마다 뭔가 보내겠다고 주소까지 꼼꼼히 적어 갔고,


여주 친구들은 가래논 쌀 보낸다고.. 그 쌀에 대하여 설명이 구구하였습니다.


 


사실 저의 가계에는 소현세자가 자리합니다. 인조 임금의 시대, 가장 불운한 세자로 불리는 그는 결국 독살이라 의심할만 한 죽음을 맞고 그의 아들들 조차도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소현세자의 따님 중 경순 군주가 시집와 이룩한 곳이 우리 집안입니다. 하지만 경순군주의 남편 황창부위 또한 신혼 시절, 자객에 의한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습니다. 무엇이 두려워 아들과 손자 손녀 사위까지 죽음으로 몰고 가야 했는지.


 


다시 마을을 지나는 길에 할머니 한 분 앉아계시는데, 거기는 이미 고향 분들은 거의 떠나고 타지역의 사람들 관사같은 현대식 집들로 가득) 그분의 낯이 익어 차에서 내려 인사하는데 또 어찌 그리 눈물 나게 반갑고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에 또 눈물이 났습니다.


일근이엄마, 경애 엄마 그런 분들. 만나 얼싸안고 인사하며 꼬깃한 지전 몇 닢 겨우 손에 쥐어드리니 괜히 더 애잔하게 울 엄마 이야기 해주시며 안아주셨습니다.


조모님 돌아가신 후, 연고가 사라진 고향에는 어머니 산소에나 겨우 갈 뿐이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그리웠던 고향을 찾은 것만 같습니다.---제가 여성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각고의 노력도 포함되었음을 가상하게 봐주소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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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enteur@hotmail.com 2014-09-01 14:35:08
답글

일상의 맛깔스런 사람 냄새나는 글이군요. 추천 한 방하고 감사합니다.

변선희 2014-09-01 16:25:19

    어릴 적 친구가 그렇게 반갑고, 고향이 그렇게도 좋은 건 줄 새삼 느꼈던 날이었습니다~거기 진짜 사람 냄새가 나는 친구들이 살고 있더라구요. 이민재님 감사합니다.

조한욱 2014-09-01 14:38:07
답글

저도 추천 한 방.

변선희 2014-09-01 16:48:22

    조한욱님 감사합니다.

오권식 2014-09-01 14:40:10
답글

여성이면 어떻고 남성이면 어떻습니까 이곳이 그냥 편한고 마음기댈수 있는 그런곳이 되길바람니다. 힘내시고, 상처입은마음 훌훌털어버리시길.....

변선희 2014-09-01 16:49:33

    솔직히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게 게시판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으나 공연한 오해가 생겨서 말입니다. 그리고 전 이 곳이 실명 싸이트라 좋았는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수영 2014-09-01 14:42:23
답글

한식이라는분 어쩐지 멋있을거 같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ㅎ

변선희 2014-09-01 16:29:49

    한식이 멋있더군요~어려운 시절 힘겹게 견디면서 어렵게 성공을 이룬 친구의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재밋는 것은 제 아들이 공군에 입대해 있는데, 한식이 아들도 공군이라더군요. 그 친구 아들은 서산에 근무하고 제 아들은 서울 재경단에 근무합니다.
한식이 하는 말 재밋었습니다. 저랑 놀러왔는데, 저의 할머님이 얼마나 무서운 지, 집 문 앞엔 얼씬도 못하고, 그저 울 집 앞 개울에 커다란 수양버들나무가 있는데 그 밑에 앉아 낯만 열심히 씻고, 또 씻으며 기다려주었다는데,아쉽게도 전 안채에 있어 사랑쪽 그 개울에 누가 있는 지 몰랐더라구요~ 나름 아쉽~ㅋㅋ

임한영 2014-09-01 14:48:01
답글

글 중에 나오는 지평 막걸리 맛있습니다.

변선희 2014-09-01 16:31:58

    이거 정말 맛있죠? 전 최근 양평에서 동우회 모임에 갔다가 처음 맛보고는, '이 거 내꺼! 니들은 다른 거 마셧' 하고는 정말 그거 한 두어병 마셧는데, 어릴 때 집에서 담근 모주에 설탕난 맛이라고나 할까. 정말 좋았습니다~--참고로 전 술꾼은 아님~ㅋ

장석정 2014-09-01 14:52:49
답글

남자는 속이 넓고 여자는 속이 좁고....이런말들 많이 하죠... 이말이 맞는 말이다 치더라도 경험상
기본적으로 넓은 속을 가지고 태어난 남자라 하더라도 넓이만 넓고 굉장히 얕고 얕은 속을 남자들이 많더군요..
반대로 좁은 속을 가진 여자라하더라도 그 깊이를 알수 없이 깊은 속을 가진분들도 있구요. 제 생각엔 선희님은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분이라 생각되네요....^^ 각고의 노력안하셔도 믿을사람은 다 믿습니다...

변선희 2014-09-01 16:34:55

    세상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고, 그리 알고 있으나,솔직히 저의 남편만은 저에게 투덜이 스머프라 부릅니다. 소풍을 먹으러 가는 것이라 여기고 잔뜩 챙기고는 싸간 것은 안 먹고 다른 거 사달라고 조른다며, 등산가서도 조금 걷고 다리아프다고 투덜댄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온갖 이쁜 저의 여친들 중에 그중 백미라 치켜준 유일한 남성이자. 정말 존경할만한 사람이라 뭐 대체로 그 안목에 수긍합니다. ㅋ

김대선 2014-09-01 14:54:19
답글

귀한 글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글고.. 쉰내가 삼일묵은 기정떡같은 노친네들 글하고는 역시 차원이 다르네요 ㅎㅎ

변선희 2014-09-01 16:36:21

    대선님의 심성이 더 곱고 따뜻하게 느껴져 고맙습니다~

translator@hanafos.com 2014-09-01 15:03:44
답글

어렸을 적에 꼭 황순원님의 단편 소나기에 나오는 윤초시댁 손녀처럼 선망의 대상이셨겠군요.^^
다정다감이 뚝뚝 묻어나는 따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글 종종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추천 한 방은 기본입니다.^^

변선희 2014-09-01 16:45:08

    ㅋㅋ 쫌 그랬죠~ㅎ
이번 동창회에서 제일 즐거운 시간은 전 날 밤, 미리 도착한 친구들과 늦도록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아저씨를 따라가는 바람에 다 남자 동창들 속에 끼어 앉아 제가 준비해 간 와인도 따고 꽤 효과 있다는 피로 회복제도 챙겨가고 해서 미리 포석을 깔아 두었죠.
동창회 이브의 밤. 온갖 이야기들로 스스러움이 없던 게 정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밤새가 울고, 풀벌레도 울고, 그 와중에도 남친들과 조금이라도 붙어 앉아있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저씨의 투철한 보호로 저는 여럿의 남친들과 마주보고 무슨 좌담회 사회를 보는 듯한 기분도~ㅎ

노현철 2014-09-01 15:08:07
답글

재밌는 수필 하나 읽었네요. 추천 한방으로라도 값을 치러야겠습니다^^

변선희 2014-09-01 16:45:52

    노현철님. 감사합니다~

이선동 2014-09-01 15:13:14
답글

천상 여성이네요 ^^

변선희 2014-09-01 16:50:21

    네. 집안 대소사 다 챙기고 놋그릇 닦아 제사 모시는 며느리요 애들에게는 다정한 엄마죠.

황준승 2014-09-01 15:45:36
답글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

변선희 2014-09-01 16:51:10

    어제의 불안한 마음이 님들 덕분에 따스해 집니다.ㅎ

김민관 2014-09-01 15:57:26
답글

누나 잘봤습니다.이곳에 눌러 앉으세요.

변선희 2014-09-01 16:46:52

    전 막내라 동생이 없는데, 누나 되게 좋은 어감이군요~감사~

조세훈 2014-09-01 15:58:01
답글

이런 글이 원래 와싸다 자게스러움이죠.
정말 정겹기도하고 정성스런 글 잘봤습니다.

변선희 2014-09-01 16:47:47

    감사합니다. 조세훈님.

박창호 2014-09-01 16:15:16
답글

25번째 추천 드리고 갑니다.. ^^

변선희 2014-09-01 16:53:54

    박창호님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경은 2014-09-01 16:18:21
답글

선추천후 글읽었습니다. 따뜻한글 감사합니다.

변선희 2014-09-01 16:54:46

    김경은님 감사합니다. 강아지를 키우시는 군요. 저도 갈색 포메를 막내 아들 삼아 데리고 있습니다~ㅎ

어후경 2014-09-01 16:23:47
답글

와싸다 분위기가 달라지는군요. 한번도 추천 누른적 없는데 이번에 누릅니다.

변선희 2014-09-01 16:55:16

    이후경님 고맙습니다. ㅎ

임재우 2014-09-01 16:34:23
답글

저도 고향은 없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런 고향이 있었던 것처럼 아련한 추억이 그려집니다. 추천 꾹~^^

변선희 2014-09-01 16:52:58

    어디 고향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곳이 향토색 짙은 시골인 것을 말씀하시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임재우님.

이헌규 2014-09-01 16:54:30
답글

정감있는 좋은글...감사합니다.
어릴적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셨네요...^^

변선희 2014-09-01 16:56:03

    어릴 적 이야기 중에는 쫌 웃긴 이야기도 많습니다. 기회되면 살짝 들려드릴게요~ㅎ

권윤길 2014-09-01 17:09:59
답글

처가가 여주라서 글 속의 무대가 어디일까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변선희 2014-09-01 17:19:07

    전 고향이 이포나루 근처 입니다. 친정아버님께서 젊은 시절 이포면서기를 하셨대고, 증조부께서는 이포나루에서 쌀을 싣고 직접 마포나루까지 가서 팔고 오셨다고도 합니다.

김길권 2014-09-01 17:13:53
답글

고향 떠나고 친구들 만나지 정말 오래 되었는데 ....
제가 친구들을 만나는 착각을 할정도로 정감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변선희 2014-09-01 21:06:30

    사실 순 엉터리 동창을 그렇게 반갑게 맞아준 시골 친구들 인심이 좋았죠. 고마웠어요. 무척요.

전성일 2014-09-01 17:20:42
답글

아. 참 글 재미있네요...장문글을 쓰시느라고 고생 많으셨겠어요..^^

변선희 2014-09-01 21:07:14

    뭐 친구들 떠올리면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강성배 2014-09-01 17:58:59
답글

같은 시대에 자라며 살아간 저로서는 특별히 공감 가는 글 이네요. 절로 맘이 따뜻해지는 글 고맙습니다.^^

변선희 2014-09-01 21:05:21

    반갑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공감하는 것들이 같으셔서 말에요~

남두호 2014-09-01 18:10:20
답글

와싸다 전속 작가로 추대해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동창 밴드에 퍼가도 될까요?
저는 72년 입학인데.. ㅎ

변선희 2014-09-01 21:04:10

    퍼가지 마세요~ 친구들 이름도 실명이구요~

이계종 2014-09-01 18:24:19
답글

앗! 71년 입학이면 77년 졸업 맞죠? 저랑 같은 학번이시네요..71학번. 반갑습니다. 글 잘 읽었고요~ 그 시절 시골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것 같네요..

변선희 2014-09-01 18:29:17

    이 계종님 77년 졸업이 맞구요. 전 대학 83학번입니다. ㅋㅋ 초등입학으로 학번을 정하시니 잠시. 머뭇했음. ㅋ

김승수 2014-09-01 19:59:52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변선희 2014-09-02 14:37:11

    김승수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승수님 글도 열심히 읽겠습니다~ㅎ

이상희 2014-09-01 20:21:07
답글

1971년이면 용띠...저랑 갑쟁이시로군요...여주인데도 서울이랑은 많이 다른 모습이었네요
저희는 전교생이 5400명으로 학교가 항상 애들로 바글바글했었습니다
4,5,6학년을 쭈욱 같은반으로 올라가는 실험을 한 학교라 친한 친구들이 많은편인데
이 글을 보다보니 예뻤던 짝꿍도 생각나고 저만 아는 비밀 산딸기밭에 손잡고 떠억
데려가서 "내가 이정도야!!"잘난체하던 어린시절이 마구마구 떠오릅니다

지금은 길에서 스쳐도 못 알아볼 친구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어디서든 나름의 행복을
잘 가꿔나가길 소망해 봅니다..좋은 글로 막 미소가 지어지는 저녁이네요...

변선희 2014-09-01 21:03:39

    여주는 그랬지만 바로 서울로 올라와 보니 정말 한 학년에 한 오육반이 있더군요. 반에는 칠십명이 넘는 인원이 있은 적도 있고요.

백경훈 2014-09-01 20:35:54
답글

존글 잘봤심다.
근데 냉장고가 많다고 하셔서 혹
화장품 냉장고도 있으심꽈?
ㅡ. ,ㅡ

변선희 2014-09-01 21:02:37

    화장품 냉장고는 없군요. 사야지 하면서도 기회를 번번이 놓쳐서. 대신 이번에 양문냉장고는 고장나는 바람에 860으로 바꾸었습니다~ㅎ

이준엽 2014-09-01 21:24:18
답글

저도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와서 3개월 다니고 졸업했습니다.
근데 아무도 연락을 안해줘서 동창회 못갑니다,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꾹!!

변선희 2014-09-01 23:16:06

    제가 동창회 갈 수 있는 팁을 좀 드리겠습니다. 우선 그 초등학교의 밴드에 들어가세요. 공식밴드는 그 누구도 안 말립니다. 가서 그리웠노라 누구가 기억난다 고백해 보세요. 의외로 첫사랑 그 소녀가 댓글 달지도 모릅니다~ㅎ

translator@hanafos.com 2014-09-01 21:46:14
답글

준엽님께서 좀 약오르시겠지만...^^

저는 고등학교 동문들도 두 팀, 대학교 동문들도 두 팀입니다.
먼저 다닌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한 학기, 1년 밖에 안 다녔지만
고등학교 때는 숙달된 땜쟁이로서 동기들에게 땜질을 가르쳐주었고
대학 때는 방송국 땜쟁이였던 덕에 두 군데서 다 불러줍니다. 불 없지요?^^

변선희 2014-09-01 23:17:55

    보석님 땜질이 뭔가요?

translator@hanafos.com 2014-09-01 23:49:05

    라디오, 오디오, TV 등 전자기기들을 만들고 고치는 것을 전문용어(?^^)로 땜질이라 한답니다.^^

제가 중 2때부터 진공관 앰프들을 만들었던 탓으로 처음에는 청주공고 전기과로 진학했고
약전반(가정용 전원을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을 다루는 반)에서 실습조교 노릇을 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제 IQ가 150이 넘는다며 너는 나중에 뻰찌 들고 드라이버 들 놈 아니고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야 할 놈이니까 인문계로 가라고 설득하셔서 청주고로 옮아갔지요.

첫번째로 다닌 대학에서는 제가 방송국 엔지니어로 들어간 덕에 제 1회 방송제를 치렀는데
방송제에 쓸 기기들 만들고 조정하고 점검하고 그러느라 축제 파트너도 구하지 못해서
방송제 끝나고 쌍쌍이 즐기는 축제가 시작되었을 때는 혼자서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ㅜ,.ㅠ
그래도 재미는 꽤 있었는데 그 놈의 수학이 너무 뭇셔워서 결국 다른 데로 도망을 치고야 말았지요.
(제가 신입생 환영회 때 열창했던 Epitaph이 몇 달 내내 아침마다 교정에 울려퍼지기도 했더랍니다.)

다행히 작년 12월에 방송국 동아리 밴드가 생겨서 20여 명이 들락거리며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특히 친했던 동료들과는 종종 만나서 밤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주님을 영접하기도 하고요.^^

변선희 2014-09-02 01:14:48

    황보석님께서 그런 남다른 재주가 있으시군요~ 울 남편이 알면 아마 스카웃해서 며칠 같이 지내자고 붙들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를 남편이 먼저 알고 늘상 컴텨 앞에 붙어 앉아 있어 뭐하나 보면 여기 오디오 게시판을 보거나 벼룩 장터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남달리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정말 길가의 스피커꽤나 주워 날랐고, 저는 또 슬쩍슬쩍 경비 아저씨께 얼마든 드리고 치우기를 반복했는데도 그 시설 등이 집안에 버글버글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딸 아이가 악기를 전공하게 되어서--드럼 전공으로 재수중입니다. 그 오디오나 스피커가 딸아이 연습실에서 요긴하게 쓰이게 되자, 신이 나서 설치해 주느라 죽어라 제 친구들 모임에 따라나서는 남편이 이번엔 집에 있었습니다~
아들 아이도 아빠를 따라 컴텨를 또 열심히 분해하더니, 이래 저래 해서 미국에 디지펜 공과대학에서 컴텨 전공하다가 지금 군복무 중입니다.

translator@hanafos.com 2014-09-02 03:01:11

    저도 집에 아래위층 방방마다(단 마누라가 쓰는 안방은 제외^^)는 물론이고
뒤꼍 창고에까지 수십 년 동안 수집한 오디오 기기들이 잔뜩 쌓여 있답니다.

한 10년쯤 전까지 아파트에서 살 때는 지고 살래 이고 살래? 하는 타박도 많이 들었더랬지요.

저도 음악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나 좋아해서 팝은 두루 다 섭렵했고
다음에는 샹송, 칸쪼네를 거쳐 월드뮤직을 파 왔는데 1998년부터 모으기 시작한
월드뮤직 음원을 현재는 방송국 라이브러리 뺨칠 정도로 방대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KBS와 EBS에서 하는 세상의 모든음악과 월드뮤직을 다 커버할 정도지요.

그런테 태생이 원체 깊이가 없어서 그런지 구라식과 찌~즈, 블루스에는 통 정이 안 가더군요.^^

js9401@hanafos.com 2014-09-01 21:55:23
답글

정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3년 다니다 전학했는데 초등학교 동창 하면 입학한 학교 아이들이 그리운데 막상 동창회에는 제 이름이 없어서 선희님의 글을 읽으니 부럽기도 하고 다시 옛날 섬에 살 때 그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변선희 2014-09-01 23:20:19

    이경서님도 우선 학교 밴드를 방문해 보심이...섬 친구들이 많지 않다면 분교형식으로 되었어도 이름만은 남아 있을 것이구요. 그 중 몇 반 알게되면 줄줄이 연락이 될 겁니다. 물론 밴드에 안 들어올 수도 있지만....끈질기게 잠복해 보시죠~

진현호 2014-09-01 22:10:31
답글

예전에 냉장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시다는 말과 함께 .. 세상 살다보면 어디든 몇몇 정신나간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니
어떤 정신나간 인간이 황당한 말을 하더라도 여기가 그런 곳인가 하며 곡해를 하시기 보다는
어디든 한둘씩은 꼭 있는 또라이려니 하시고 .. 종종 좋은 글 남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변선희 2014-09-01 23:14:02

    전현호님. 반갑습니다. 쫌 감사하구요. 덕분에 냉장고 요긴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실 스탠드형 냉동고가 탐나는데, 그걸 사면 남편이 정말 창고 하나 지어주고 나가살라고 할 것 같아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ㅠㅠ..

백경훈 2014-09-01 23:03:50
답글

냉장고는 갠춘한데
저는 울집 마누라가 대형 고무다라이 산다면 가출 할껌뉘다..
ㅡ,.ㅡ;;

변선희 2014-09-01 23:11:46

    백경훈님 전 그거 대형 고무다라이 붉은 계통의 꼭 욕조만한 크기 있습니다. 이거 무척 요긴해요. 김장 할 때 전 사오십 포기 김치 하거든요. 그럼 양념만도 한 그릇에 안 되는데, 여기 하면 거의 가득 양념이 들어갔다가, 숨이 죽어 한 삼분의 일 정도로 되고, 한 그릇안에서 버무리므로 맛이 똑 같습니다.
평소에 이거 어디 두느냐가 관건이겠죠? 전 안방 베란다에 창고가 있고, 그 밖으로는 베란다 화단이 있는 구조인데, 창고쪽 시멘크 벽에 큼지막한 못을 박아두고, 고무 다라이에 송곳을 불에 달구어 구멍을 뚫고 튼튼한 끈을 묶은 다음에 거기 걸어 둡니다. 그러니까 절대 걸리적 거리지도 않고 흉하게 밖에 보이지도 않아요.
전 이게 김치 만드는 용도라 반신욕 등의 기구로는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근데 왜 가출하신다는 건대요?

translator@hanafos.com 2014-09-02 00:21:47

    그 고무 다라이 쓰실 때 꼭 비닐 씌우고 쓰세요.
그게 폐고무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유해성분이 꽤 들어 있다더군요.

변선희 2014-09-02 01:09:03

    그 고무다라이를 쓸 때마다 나름 기억나는 게 있어 좋습니다. 여고때 문예담당 샘이 그러시더라구요. 지금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는 그 고무다라이가 사실은 내 처남이 하는 거다. 어느날 교사 월급 얼마 받느냐고, 자신과 일하자고 해서 갔더니,
아주 보잘것 없는 삼실에 동사무소 철제 책상 하나 딱 있더랍니다. 그래도 양복입고 샘 소리 들으며 살았는데, 이건 못하겠다 싶어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는데, 이제 그게 집집마다 쓰이는 살림이 되어 아주 떼부자가 되었다나요. 그 샘 애도래해 하였던 게 기억나서 쓸 때 마다 아직도 이 사업주는 우리 샘의 처남이실까? 뭐 이런 생각하며 재밋습니다.

translator@hanafos.com 2014-09-02 02:49:12

    고등학교 때 문예반이셨으면 저하고 또 인연이 닿겠네요.^^
제가 도망쳐서 옮아간 대학에서는 블란~사어를 전공했고 지금까지 번역쟁이로 밥을 벌어먹고 살거든요.
구글, 다음,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제 이름으로 검색하면
번역가 황보석 관련 기사들과 문서들, 블로그들이 꽤 많이 뜨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

전공은 불어에 부전공은 독일어인데도 밥은 영어로 벌어먹고 있어서 저 스스로를 잡놈이라 칭하고 있습지요,^^

변선희 2014-09-02 11:41:01

    남편이 했던 말이 와싸다에는 실명을 쓰므로 꽤 이름이 알려진 분들도 있다. 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게오르규의 자서전도 번역하셨군요. 여고때 집에 허락도 안 받고 덥석 삼성판 문학전집 50권을 샀다가 나중에 그거 땜에 무척 혼이 났지만 그래도 가장 번역이 잘 된 소설들이라고 자탄하며 열심히 읽었던 소설 중에 25시가 기억납니다. 그의 25시가 궁금하군요. 그 전에는 세계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소설들을 읽었지만 대개, 번역가가 아닌 분들이 문장 구조를 몇 개 바꾼 것들 일색인 것을 나중에 알았죠. 그 중에는 세익스피어의 문장도 있고, 그 작가의 문장도 있고~ㅋㅋ 전혜린이 번역한 글 읽으며 열광하던 시절을 지나 전 지금은 저의 지인이신 시인 김정란 교수님 번역 소설 참 좋더군요. 그 분이 저와 지척에 사시는데다 이런 저런 사연이 좀 있기도 하고, 까칠하신 그분이 저와 식사하는 것은 좋아하심.. 제 음식은 쫌 더 좋아하심~ㅋㅋ 페북에서 발견후 친구 신청을 했는데, 넘 정체가 많이 드러나겠슴..ㅎ

최기성 2014-09-02 12:07:44
답글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시는군요.
덕분에 옛날 초등학교 때 여주 연라리에 사시는 친척분댁에 놀러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연라리에는 그 당시에 전기가 안들어와 밤에 촛불키고 있던 생각이 납니다.

변선희 2014-09-02 12:20:43

    경기도가 가깝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발전을 했어요. 저의 고향마을도 76년 정도에 가서야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전기야 반길 일이었지만, 해당화 나무로 울타리가 된 아름다운 넝쿨을 죄다 자르고, 삭막한 시멘트 막대로 올려놓은 담장을 하라해서, 모두 없어졌죠.
새마을 운동은 자연을 훼손하는데 무척 일조한 것 같아요~

김성학 2014-09-02 16:10:55
답글

유령회원인데 댓글 달게 만드시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옛날 국민학교... 그시절이 생각나네요...
저도 동창회에서 친구들 만나고 있습니다...^^ 나이도 저랑 동갑이시구... 학번도..

변선희 2014-09-02 18:04:10

    유령회원, 저희 남편같은 회원이시군요? 누구보다 이 와싸다를 즐겨 찾고, 그 누구의 이야기도 잘 읽는 탓에 대개의 회원분들의 신상도 알고, 벼룩시장에서 제가 무엇을 고르면 그분은 업자니, 다른 걸 고르라는 충고도 해줍니다. 이런분 맞죠? ㅋㅋ 저는 선무당입니다~

yhs253@naver.com 2014-09-02 18:16:47
답글

저는 업자지만 댓글 남깁니다...

변선희 2014-09-02 18:39:42

    ㅠㅠ..임호삼님~업자시군요? 와싸다에서 영업은 잘 되시는지요? 업자니.. 하는 말에 마음 상하셨겠습니다.
사실 저는 업자분들거 잘 삽니다^^~바로 엊그제도 필요해서 샀구요. 남편이 뭐라해도 몰래 사는 건 제가 사고픈거 다 삽니다. 근데 전 솔직히 어느분이 업자인지. 잘 몰라요. 딱 한 분. 유..주 하는 분만이 하도 많은 문량을 게시하셔서 알 뿐입니다. ㅎ 마음 푸세요~

yhs253@naver.com 2014-09-02 20:21:43
답글

아니요...개그를 다큐로 받으시지 말고요...^^
막걸리 판매 업짜 입니다...와싸다 하고는 상관없고요 ,,
업자라는 말이 와전되어서 그렇지..일종의 전문직? 입니다요 ...저는 훌륭한 업자라 생각되옵니다...좋은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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