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곱 살 때 집에서 돼지를 두어 마리 키운 적이 있습니다.
200여 평쯤 되는 텃밭 맨 끝에다 얼기설기 돼지우리를 만들고
새끼 돼지 두어 마리 사다가 음식 찌꺼기 먹여 키웠는데
그때 그 시절에만 해도 환경오염이니 뭐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우리 동네에서만도 한 절반쯤은 돼지를 두어 마리씩 키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공서에서 닭 토끼 돼지 등 가축 키우는 것을 장려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하루는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집으로 건너와서
엄마하고 같이 돼지우리 옆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보니 그때 오간 이야기들을 세세히 다
떠올릴 수는 없어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강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엄마하고 같이 돼지우리 안을 들여다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돼지들이 먹기는 잘 먹는데도 안 크는 게 짜구난 거 아니냐고 물었고
엄마는 그게 아니라 잡종이라서 잘 안 크는 모양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릴 적부터 원체 영특하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었던
(이거 순 실화임돠! 어렸을 적에 동네 분들이 저를 천재라고 불렀씀돠.)
제 머리 속에 아마도 “잡종 = 잘 안 큰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얼마쯤 뒤 이번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아니라
엄마 친구 분이 놀러 오셨었는데 그 분이 저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보석이 쟤는 좋은 건 다 골라 먹이는데도 왜 저렇게 안 커?”
그 말에 천재라서 기억력도 뛰어나고 입출력도 출중했던 제가 <ㅡ 아, 그려! 나 원래 자뻑여!
얼마 전 입력되었던 “잡종 = 잘 안 큰다”는 공식을 전광석화처럼 출력시켜서
곧바로 한 대답이....
“잡종이래서 그래유!”
그 대답 한 마디로 제 별명은 영영 잡종이 되어버렸고 엄마 친구 분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엄마 보기만 하면 “잡종 잘 커?” 하고 물었답니다.
이상으로 제가 원래는 분재가 아니라 잡종이었음을 증명하는 봐임돠, 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