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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때문에 한번 임진왜란 당시 각 좌수영, 우수영 전력과 수사들의 내용을 올려봅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8-02 12:04:07
추천수 37
조회수   2,013

제목

영화 명량 때문에 한번 임진왜란 당시 각 좌수영, 우수영 전력과 수사들의 내용을 올려봅니다.

글쓴이

이선형 [가입일자 : 2002-03-15]
내용

영화 명량 이야기를 게시판에서 보니 당시 경상 좌우수영 및 전라 좌우수영의 수사 및 병력을



올려봅니다.(틀린점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솔직히 임란 초기에 원균이 경상 우수영 병력만 보존했어도 좀 더 일찍 끝날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듣습니다.



임란 초 경상 우수영의 판옥선등의 주력 함선을 스스로 불태우고 자침시킨것은 희대의 병크? 라는 평가가



대세입니다.(박통 시절 이순신 성웅화 작업의 반발로 나온 원균 재평가론은 아니라는 것은 현재 대세



이고요. 저도 차라리 박홍 재평가론이라면 이해가 갈거 같은데 원균은 정말 아니더라구요)



전라 좌수영

1) 영역 : 5관(순천도호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현, 흥양현)

2) 수군기지 : 5포(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

3) 수군 규모 : 4천명

4) 판옥선 : 23척

5) 전라 좌수사 : 이순신

   -> 희대의 군신, 연전 연승...10:1의 전력비도 뒤집는 먼치킨(명량해전)...

      선조의 미움을 받아 죽을뻔도하고 전사한 이후에도  신하들의 반대에도

      선조는 이순신 전공을 깍고 자신의 판단미스를 감추려고 원균을 공신으로 올리기도...


전라 우수영

1) 영역 : 15관

2) 수군기지 : 12포

3) 수군규모 : ?

4) 판옥선 : 25척

5) 전라우수사 : 이억기

   -> 이순신장군을 도와 조선 재해권을 확립한 인물,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간 누구와 다르게

      해전을 독려하다 전사..ㅜㅜ


경상 우수영

1) 영역 : 8관

2) 수군기지 : 16포

3) 수군규모 : 1만 2천명

4) 판옥선 : 70척

5) 경상우수사 : 원균

-> 임란초기 6월 28일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올린 경상도 전선의 상황보고에 따르면 원균이 군영을 모두 불태우고 보유 판옥선을 전부 자침시킨 후 배 한 척 달랑 몰고 도망쳤다고 장계


-> 그 이후는 잘 알려지다 시피 이순신과 반목후 선조의 비호로 종 2품 충청병사로 임명


->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요시라가 반간계로 조정과 이순신을 흔들고 있을 때 원균은 '수군이 출동해서 부산 앞바다에서 위용을 과시한다면 가등청정이 수전에 약한지라 그냥 물러날 것이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림. 요즘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육군 군단장이나 야전군사령관이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작전사령관의 해상작전에 대해 자신이 전직 해군 함대사령관이었기에 잘 안다며 왈가왈부한 것으로서 심각한 월권행위임. 하지만 선조와 비변사가 원균의 상소에 대해서 그럴 듯하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이순신이 파직되는데 결정적 원인이 됨


-> 후에 통제사로 부임후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맞다고 판단하여 수륙 병진책을 주장 및 부산공략을 불가함을 주장 그러나 이전의 상소 및 이순신 장군이 백의 종군하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 부족 및 선조의 체면등등의 이유로 권율에게 곤장 맞고 칠천량 해전을 벌임

칠천량 해전에서 야간 경계 부족으로 기습을 받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리멸렬

이때 박살난 수군이 이순신 장군이 피를 토하며 키운 160척의 판옥선...ㅜㅜ

병력 2만명이 수장된ㅜㅜ 기록적인 대패임

원균은 장렬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미지수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권율의 서장에 따르면 그가 군관 최영길에게 듣기를 원균은 사지를 빠져나와 도망쳐 진주까지 와서 최영길이 그의 말을 들었다라고 함. 그 뒤로도 원균이 살아있으니 찾아내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의가 조정 내에서 반복되지만 선조는 응하지 않았으며, 결국 원균이 확실히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음


-> 미국과 영국 해군 교과서를 쓴 저자들이 쓴 책인 '해전의 모든 것'에서도 이순신장군은

   전설적인 명장 제독, 원균은 최악의 무능제독으로 평가


경상 좌수영

1) 영역 : 12관

2) 수군기지 : 15포

3) 수군규모 : 1만 2천명

4) 판옥선 : 75척

5) 경상좌수사 : 박홍

-> 임란 당시 판옥선 모두 자침 시키고 동래성에 진을 치다가 중과부족으로 도망

   (동래부사 송상헌은 싸우다가 전사..ㅜㅜ)

   후에 선조가 평양으로 도망갈때 좌위 대장에 임명되어 호위,

   임진강 방어전 패전, 지병을 치료하다가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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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2014-08-02 12:22:07
답글

지금도 두고 두고 아쉬운게 충무공이 개전 당시 경상 좌수사라면... 전쟁이 정말 쉽게 진행되었을텐데요...

충무공이라면 개전 당시 경상 좌수영 전력을 박홍의 75척이 아니라 판옥선 150척+ 거북선 전력까지도

가능했을테고... 순수 전투 함대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군 수송 함대를 대상으로 일방적인 학살극을

연출했을겁니다.

고니시 - 카토 - 구로다..... 이 순서로....물고기 밥이 되었겠죠...

하삼도의 수군중... 가장 규모가 작은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건 두고 두고 안타깝습니다.

이선형 2014-08-02 12:28:25

    그리되었으면 조선과 일본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갔을거라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조선의 각종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갔거든요. 조선의 생산력은 영,정조때 되어서야 임란전으로 회복됩니다. 일본은 벌써 생산력만으로도 몇배차를 벌리고 있었고요. 일본이 후에 개화 및 근대화에 성공한 경제적 바탕중에 하나가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김좌진 2014-08-02 20:11:30
답글

명량을 보면서 아쉬웠던 게 전략이 뭐였는지가 제대로 묘사가 안된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다큐 같았을까요? 그저 배 한척으로 고군분투 하다가 (그것도 아주 잘) 나머지 배들이 용기를 내 모여드니 무적이더라, 딱 그 정도? 그랬다면 처음부터 12척 일자진 펼쳤으면 초반부터 쓸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12:300 타이틀을 걸긴 했지만 실제 파워의 차이는 상당히 좁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무기가 압도적이니.

daesun2@gmail.com 2014-08-03 04:38:23

    무서워서 이순신 장군님 명령 불복종 상태였거든요.

이선형 2014-08-03 08:13:46

    그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동일합니다 한 4시간정도 대장선이 길막기 하고 싸웠고요 나머지 함선들은 무서워서 나아가지 못하다가 대장선이 버티는 것을 보고 초요기가 올라가자 안위의 함선부터 기어 나오기 시작하여 차츰 한두대씩 참가하게 된게 명량해전입니다 전투 양상을 사료로 읽어보면 정말 미스테리입니다 분명 이순신장군은 먼치킨급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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