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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오리지널 원판 -어머니의 노래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4-05-08 21:08:27
추천수 4
조회수   2,883

제목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오리지널 원판 -어머니의 노래

글쓴이

표문송 [가입일자 : 2003-03-25]
내용
(어버이날을 맞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음반 얘기를 하나 하겠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이 있다.

회고적인 자세로 되돌아 보면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미소를 보낼 수 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었지,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이 그나마 좋은 시절이기에 가능한 것이나 아닌지.



어린 시절 우리 집에 닥친 불행은

평탄하던 내 인생사를 온통 뒤흔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70년대의 마지막 해, 나랏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양반이 사라지기도 했던 그 해,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의 불행은 거두절미하자면 “사기를 당했다”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마치 영화에서 망한 집안이 늘 그런 모습으로 등장하듯,

리어커에 이불 몇 채와 내 앉은뱅이 책상, 그리고

구차한 세간살이를 싣고 비오는 거리로 나 앉았다 시피했다.



***



우리 가족이 거리로 나오기 전날밤,

대문옆 문간방에 짐을 옮겨 놓고

마지막 결별의 결심을 미루시던 아버지…

대문 밖을 나가면 이제 아버지의 형제들과 다시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기에, 아버지는 망설이셨다.

그랬다.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

아버지에게 사기를 친 사람들은 아버지의 친형들이었다.



당신의 전재산을 두 형의 사업에 투자하면서도

형제간에 무슨 문서가 필요하냐고, 핏줄이 문서라고 마다했던

아버지는, 어리석었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속이고 절망시킬 수 있을런지?

시험이라도 했던 것일까?

심지어는 할머니를 속여 선산을 팔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아버지 적부터 살아 오던 대궐 같았던 본가의 바깥채를

전부 세놓고는 발뺌을 한...

아버지의 형제들.



어리숙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의심이 없었기에

본가 바깥채의 방들을 세주며 계약을 했던 내 어머니…

그러나 그 집이 이미 저당에 잡혀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버지의 형들은 이중삼중으로 여러 사람을 속여 먹었고,

뒤늦게 계약자들이 전세금을 요구하자 어머니가 할머니 인감을 무단 이용하여

돈을 빼돌렸다는 기가 막힌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마침내는 세입자들이 우리 어머니를 고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이야 당연히 계약 당사자에게 돈을 받아야 할 테니 그럴 밖에.

하지만 그 돈은 이미 아버지 형제들이 말아 먹은 지 오래였고

속절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급전을 해서라도 일을 막아야 했다.

시쳇말로 우리 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망설이셨다. 아무리 죽일 놈들이라도

내 형제들인데… 그러셨다.



말의 자식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의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는

감언이설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할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 마지막으로 한번

세째가 모셔야지 않겠냐는 말로 큰집, 본가로

아버지를 불러들인 아버지의 형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와 아들놈 때문에

그런 고행의 길로 들어서게 될 줄은 까맣게도 몰랐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망설이셨다.

그래도 사람이 우선이다.

죽일 놈들이라도 내 형제라고… 망설이셨다.



***



밤새 비가 내렸고, 천장에서는 쥐가 울어 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와 내 두 동생들도

모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쥐의 울음 소리때문일까?

내일에 대한 걱정때문일까?

잠자리를 뒤척이던 아버지는 불연듯 일어나

천장을 주먹으로 치셨다.

잠시, 그야말로 잠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으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국민학교 2학년이던 막내가 시끄럽다고 칭얼댔나 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며, 쥐 울음 소리, 그리고 당신의 쥐새끼 같던

아이들이 칭얼대는 소리까지…당신은 무척 괴로우셨을 것이다.

천둥 번개도 내리 쳤던 것 같다.

순간, 아버지의 눈에선 불이 일었다.

쥐 울음 소리가 나는 천장을 천둥번개처럼 주먹으로 다시 내리 치셨다.

천장에 구멍이 났다. 그 정도일 줄이야, 우리 가족 모두 놀랐다.

그리고 더 큰 놀라움은… 천장이 뚫림과 동시에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쥐가 방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쥐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막 해산한 어미 쥐와 눈 못뜨는 갓난 새끼 쥐 몇마리였다.



정작, 아버지는 망연자실해 쥐가족을 물끄러미 바라 보셨다.

잠시 후, 아버진 다시 그 쥐 가족을 구멍 뚫린 천장으로 밀어 넣으셨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어디선가 리어커를 구해 와

짐을 싸고 집을 나섰다. 그 뒤를 쥐새끼 같던 우리 가족이 뒤따랐다.



***



돌이켜 보건데,

아버지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동물의 새끼도 제 자식, 제 형제를 아끼건만

인간의 자식 형제들에게 속은 자신의 처지를 비탄하신 건 아닐까?

칭얼거리는 당신의 새끼들을 보고

눈 못뜨는 쥐새끼들을 불쌍히 여긴 것일까?

구멍난 천장에서 떨어진 쥐나 당신이나

나락에 떨어진 똑 같은 처지라고 여긴 것일까?



***



당장 비를 그을 수 있는 방이라도 얻어야 겠기에

처분할 수 있는 살림살이는 모두 처분했다.

그 와중에도 내 공부방은 마련해야 한다며

단칸방을 마다하셨다. 아비로서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살림살이는 물론이거니와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시던

화분조차 모두 처분해 버렸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하긴 그 많던 화분을 어디에 들여 놓을 것이란 말인가?



그 바람에 어린시절 내 음악 생활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말이 음악생활이지, 그냥 어느 때부턴가 눈에 사물이 들어 오면서부터

눈에 띄던 전축으로 발에 채이던 음반을 듣던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내겐 너무나 행복했었고 마냥 좋았던 음악이

그날 부로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엊그제 장마비를 뚫고, 쥐새끼 울음 소리를 뒤로 한채

거리로 나와 세간살이 팔아 겨우 거처를 마련한 우리 가족에게

독수리가 그려진 전축이란, 음악이란 사치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잊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었을 뿐이다.



***



그래도 중학시절에 내 곁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손바닥 두개를 펼친 것만한 그것의 안에서 바흐와 베토벤과

브루크너와 말러가 흘러 나왔다.

그 이전에 풍요롭던 시절의 여흥으로나마 귓가를 간질이던 그 소리들은,

돌연 내게 엄청난 무게를 지닌 의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 없고 고집 많고 내성적이던 중학시절의 내게 유일한 위안과 친구는 음악 뿐이었다.



음악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음악의 심장에 다가 갔고

음악에 대한 환경 없이도 음악의 정수를 맛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처럼 음악을 목마르게 들었던 때가, 없었다!



***



고등학교에 들어 갔다.

1학년 2학기에 처음으로 전교1등을 했다.

아버지의 바람처럼 공부를 잘했다지만, 전교 1등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기뻐하셨고, 나를 위해 기념하고

격려해 줄 그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하셨다.

그 무언가가 콤포넌트 오디오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에 배달되어 왔다.

카세트 데크와 턴테이블과 튜너가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지금 본다면 한숨 밖에 안나오겠지만, 작년에 쭈누(네살바기 큰 아들)가 분지러먹은

전축 바늘 한 개의 반에 반도 안되는 가격이었지만,

그 오디오가 온 날은 비오는 날 거리로 나선 이후

가장 기쁜 날이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한 크기의 오디오였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처음으로 사 주신 오디오였다.



물론, 아버지는 오산을 하셨다.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전교 1등을 하지 못했다.

그 볼품없는 오디오를 끼고 살았으니, 그제부터 공부는 둘째였다.



***



이른바 까만 엘피판을 돌릴 수 있는 전축이라는 게

4년만에 다시 우리집으로 들어 온지 며칠 뒤,

어머니가 날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다.



“이것 좀 틀어 주련…”



뜻밖에도 어머니가 내민 것은

7인치(도너츠판이라고도 불리던 것) LP였다.

세월의 무게가 얼룩진 그것엔 신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도무지 난 그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판을 뒤집에 보니 거기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이 있었다.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결혼하신 날짜와 장소까지.

요즘에야 누구나 기본으로 하는 비디오촬영처럼,

그것은 이른바 결혼식 실황앨범이었다.

그 당시에 그런 게 있었나?

(나는 여지껏 어디에서도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지금껏 있었던 거지?

어머니는 그것을 이불장의 가장 아래 이불 밑에서 꺼내셨던 것이다.



아….



턴테이블에 올리니 지글지글 거리는 잡음과 함께

20여년전(당시로선) 부모님 결혼식의 실황이 재현되었다.

딴딴따단~에서 마지막 행진까지 결혼식의 온 과정이 고스란히

수록된 것이다.



말없이 들으시던 어머니는 아주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의 의미를 헤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눈물을 못 본 척,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빗속의 거리에서 많은 음반들이 사라졌었다.

그 와중에 LP는 밥이 되지도 못했고 내 방을 마련해 주지도 못하는

단지 자리만을 차지하는 애물단지였으니까…

독수리가 그려진 전축이 팔려 나가면서

게다가 그건 무용지물에 불과했으니까...

어느 통에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 LP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런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LP만은 이불 속 깊이 간직되어 다시 돌아 온 것이다.

나는 그 좋았던 시절에 그것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어쩌면 함에 딸려 온 혼서지와 청실홍실처럼

그렇게 깊숙히 어머니만 아시는 공간에 함께 모셔두었던 것은 아닌지…

길거리로 나 앉은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그것을

그토록 소중히 간직해 오셨던 것인지...



어머니 홀로 애면글면 그 LP를 간직해 왔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 졌다.





내가 결혼할 때도

내 두 동생이 결혼할 때도

우리 가족은 새로 생긴 가족들과 함께

이 음반을 꺼내어 들었다.

나의 근원이고, 우리 가족의 역사이고,

고통과 그리고 기쁨이 담긴 음반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5천여장에 달하는 내 음반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오리지널 원반(표지에

그렇게 써 있지 않은가!)은 바로 이 음반이다.



내 아들 딸이 더 큰다면,

그리고 시집 장가 가는 그 날이 온다면

역시 내 아들 딸에게도 들려줄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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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korea.com 2004-05-08 21:47:27
답글

정말, 정말 어떤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부모님과 가족분들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앨범이겠습니다... 부럽습니다... ^^*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잘 읽었습니다... (^^)/

이웅현 2004-05-09 20:50:20
답글

이럴수가! 근래들어 너무나 큰감동을 준 글입니다.눈물이 흐르는군요.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김종태 2004-05-11 10:03:07
답글

표문송님 매니아가 되어가는군요. 글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

commuine@yahoo.co.kr 2004-05-12 12:10:29
답글

문송님 친절하신 메일에 다시 감사드리구요. 글을 정말 잘 쓰시는군요...기교가 아닌 가슴을 담아내시는군요..존경합니다. ^^/

bagdall@yahoo.co.kr 2004-05-17 14:11:09
답글

댓글을 달아야한다는 의무감이 밀려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또한 부럽네요.

skylark@dreamwiz.com 2004-05-21 08:48:09
답글

오래만에 문송님 글 읽었습니다. 항상 잔잔한 감동이 있는 글들이었는데 오늘 글은 칠순이 넘으신 어머님이 생각나며 눈이 붉어지게 만드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bny@lawleeko.co.kr 2004-05-21 20:53:59
답글

댓글을 다는 것이 잘 그려진 그림 위에 덧칠을 하는 결례가 되는 것 같아 망설여 질 정도입니다.

표문송 2004-05-24 12:40:18
답글

법렬님, 그런 말씀 마시요.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nuthing@naver.com 2004-05-31 20:42:53
답글

이제야 읽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a7942@hotmail.com 2004-06-09 11:39:22
답글

ㅠㅠ(눈물 흘렸음) 님은 가족과 함깨한 고생이 님에 인생에 있어서 약이 됐다고 봅니다 어려운 역경속에서 반듯한게 가정을 이끌어오신 님에 아버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ysb0111@yahoo.co.kr 2004-06-09 12:13:36
답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

서정학 2004-07-04 11:24:57
답글

아!!!<br />
비오는 일요일 아침에 가슴 찡-한 글을 읽었습니다<br />

김형곤 2004-07-07 22:27:09
답글

ㅠ ㅜ

강인숙 2006-02-09 11:25:39
답글

저도 이제야 읽은 것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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