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고의 문호인 쿠쉬완트 싱의 최고 역작 <델리>의 역자후기입니다.
이 책을 내기로 한 출판사에서도 저의 뜻에 공감하고
역자후기로라도 민족반역자와 그 새끼들을 까대는 것이 옳다고는 하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 너무 직설적으로 까댄 게 아닌가 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회원님들의 조언을 구하고자 하니 고칠 점을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옮긴이의 말
25년여에 걸친 문학으로의 색정적 유랑을 거친 끝에 태어난 산물인 이 소설에서 쿠쉬완트 싱은 델리의 역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에 말 그대로 자신의 정액을 다량으로 주입시켰다. 깊이 있는 통찰에 익살맞은 유머가 곁들여진 이 다채롭고 에로틱한 작품은 현재와 과거의 델리를 무대로 해서 역사와 현실을 웅변적으로 결합시켜 델리라는 도시와 그 곳 사람들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개발이라는 미명 하의 혼란통 속에서 잊혀진 델리와 그 인근의 여러 장소들을 되살려내어 역사에 대한 감수성을 부추기기도 한다. 쿠쉬완트 싱 특유의 음란하고 신랄하고 해학적인 스타일로 과거와 현재를 누비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시대를 가로질러 델리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다.
저널리스트이면서 때로는 관광 가이드 노릇도 하는 화자는 600여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델리의 역사를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추적한다. 언뜻 보기에 이 소설은 늙은 시크교도의 눈에 비친 델리를 중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역사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이고 조금만 더 파고들어 보면 작가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가능한 모든 창조적 문학적 기법들을 총동원해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각기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들이 말하는 다른 이야기들로 델리라는 도시의 역사를 투시화처럼 조망한다.
숭고함과 비속함, 심오함과 천박함, 진지함과 엉뚱함, 신랄한 풍자와 익살맞은 해학이 기발하게 어우러지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델리의 각 시대별 모습들 사이사이에 바그마티라는 남녀추니 창녀와의 변태적인 성행위와 다른 여자들과의 짤막짤막한 정사 이야기들을 삽화처럼 끼워 넣어 사랑과 혐오로 채워진 독특한 모습의 델리를 창조해낸다. 신구 사이의 교차로에 있는 델리에 대한 사랑을 음탕하고 추잡한 바그마티에 대한 사랑과 병치시켜 그 도시와 바그마티에 대한 평생의 애증이라는 이상한 패러독스를 늘어놓는 것이다. 1인칭 전지작가적 시점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로 이야기하는 쿠쉬완트 싱만의 이 독창적인 역사는 우리를 이런저런 거리들, 성채들, 버려진 궁전들, 제방들, 탑들, 사원들, 기념관들, 묘지들, 커피하우스들로 끌어들여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놓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이 즐거움과 웃음만을 주는 것은 아니며 신중한 독자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심오한 삶의 철학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기도 한다. 빙퉁그러진 로맨스를 통해 들춰내려는 델리의 영광과 비참 모두에 걸쳐진 이야기들로 중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 놀라운 통찰력을 불어넣으며, 쿠쉬완트 싱은 우리에게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참혹하기 일쑤였던 역사적 사건들을 탐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번영이라는 안일한 영역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심란해 할 수도 있는, 숨겨진 진실의 영역으로 파고드는 인간 정신도 탐사하는 것이다.
역사는 때로 지루할 수도 있지만 쿠쉬완트 싱은 델리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소설적 구성 속에 고스란히 다 짜 맞추어 매우 흥미롭고도 일목요연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특히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인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꽤나 많이 닮았다는 데에 있다. 외세의 침탈을 받았을 때마다 애꿎은 민초들이 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참상과 고된 삶이 닮았고, 지배층이 보였던 허세와 무능과 비겁이 닮았고, 침략자들에게 빌붙어 굴종하고 아부한 민족반역자들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려왔다는 것도 닮았다.
인도 최초의 독립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세포이의 난 이후 국왕은 폐위당해 버마로 쫓겨나고 왕족은 몰살당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독립투사들은 대포에 맞아 갈가리 찢겨 죽거나 영국인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한 교수형을 당했다. 반면에 영국인들의 개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던 간악한 귀족들은 대를 이어 누릴 부귀영화를 보장받았고, 돈에 눈멀어 영국군의 앞잡이가 되었던 무지한 자들은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반세기 후에 우리가 일제의 침탈로 인해 겪어야 했던 치욕의 역사와 너무도 흡사하다.
이 책에서 보이는 인도는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순과 혼란의 땅이다. 그래서 정신적 문화의 정착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 물질적 문명으로 인해 물신주의에 빠져든 우리 눈에는 인도가 미개하고 무지하고 빈곤한 군상들의 나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근대사를 들여다보면 인도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히도 간디라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와 그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나갈 후계자들이 있었기에 민족반역자가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일도 없고 민족반역자의 후손들이 권좌에 오르는 일도, 정관계와 학계에 포진해서 역사를 왜곡시키려고 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인도를 우리보다 더 미개하고 무지한 군상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인도의 저명한 동서비교사상가인 리트하크리쉬단은 인도인들이 무엇보다도 정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면서 그런 정신적 가치들이 인도 정신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것은 곧 인도인들의 정신세계가 명상으로 무욕을 추구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안빈낙도하는 자세와 일맥상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외국 소설을 읽을 때 흔히 느끼게 되는 우리와 이질적이라거나 동떨어졌다는 느낌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도 들 것이다.
5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인도 문학은 그 다양성과 문학의 배경을 이룬 종교 사상에 있어 다른 어떤 나라의 문학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인도문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장애 요인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종족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동화되어 왔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가 지극히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어서 천일야화를 능가하는 숱한 이야기들이 기록으로 남거나 번역되지 못한 채 설화문학 수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인도 문학작품들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책의 옮긴이로서 그런 뛰어난 작품들이 사장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선진국 작가들의 작품은 선호하고 후진국 작가들의 작품은 경시하는 일종의 사대주의적 경향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