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국경을 초월한지가 줄잡아 이삼십 년은 넘은 것 같고,
개인 의지에 따라 국적 선택의 자유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진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애국’이란 말을 들으면 뭔가 좀 불편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애국’ 말 그대로 풀어보면 [나라를 사랑함]이며,
사랑의 대상이 나라 즉, 국가란 말입니다.
그러면 ‘애국’이란 말은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영토 우리 땅을 사랑하는 것은 일단 잘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피끓는 청춘을 바쳐 군엘 가지요.
다음 국민을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같은 사람은
많은 수의 국민을 사랑하기가 어렵죠.
그저 가족, 동료, 이웃을 아끼고 친하게 지내면 만족할 것입니다.
많은 수의 국민을 사랑해야할 할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아닐까합니다..
주권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주권을 지킨다는 개념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은 지가
불과 몇십 년전 부터입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애국해야 한다고 주구장창 외쳐댔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사랑 해야 할 주권을 주지도 않고
사랑하라고만 외쳤을 뿐만 아니라 거의 세뇌시키듯 하였습니다.
사랑해야할 주권이 우리에게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 자유 의지에 의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과거의 흔적으로 피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애국’의 대상을 살펴 보았으니 다음으론 그 주체를 생각해 봅시다.
국가의 구성원은 당연히 국민인데
이 국민을 어떻게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민은 개개인으로 볼 수도 있으며
개개인이 모인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단체는 여러 형태이며, 정치 단체와 정권도 국민의 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개개인의
국가 사랑만을 외쳐 온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애국’을 해야할 주체인 정권을 애국의 대상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과거엔 외부적 분위기나 세뇌에 의한 것이었지만,
요즘은 그 흔적에 의한 자발적 현상같이 보입니다.
국가는 사랑해야할 대상이 맞기는 하지만
열띤 언변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두드러진 행동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비애국은 아닌 것입니다..
삼성 주식의 절반을 외국인이 가졌습니다,
외국 기업인가요? 매판 기업인가요?
그 외인들이 우리나라를 사랑할까요?
‘애국’이란 말이 가지는 함의(뉘앙스)는 다양합니다.
그 함의를 따져 보지 않고 연극의 탈과 의상을 보여주듯
애국, 애국 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초국적 자본주의의 시대에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은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유지 하면서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평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이며, 애국이 무엇인지요.
그들의 머리 속에 있는 애국의 개념과,
길거리나 인터넷에서 애국을 외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애국의 개념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 생각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