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하면 떠오르는 게 청정한 바다인데요.
같은 제주안에서도 이곳 저곳 찾아 가본 해안마다 물 색깔이 미묘한 차이가 나는 걸 느꼈습니다.
왼쪽으로 성산 일출봉이 바라다 보이는 백사장의 바닷물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맑았던 기억이 있구요.
제주항 근처는 옅은 녹색의 바다였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문득 오른쪽으로 보이는 아담하고 소박한
작은 마을을 따라
찾아 들어갔던 이름 모를 해변의 물색은 마치 동남아의 바다처럼 선명한 에메랄드빛이었는데
몇십미터 이상 물속으로 들어갔는데도 무릎까지만 차오르던
완만한 수심과 모래바닥 그리고 온화했던 물의 느낌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물색은 마라도로 출발하는 모슬포항의 바다였는데요.
오른쪽으로 기암절벽을 끼고 넘실거리는 바다는 푸르다 못해 검은색을 띄는
검푸른 바다였습니다.
얼마나 깊을지 가늠할 수 없는 물색은 공포심마저 들게 할 정도였고
그 바다를 보면서 제주땅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후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애환과 지난한 삶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제주바다가 좋아 여수나 통영에서도 출발할 수 있는 갈치낚시를 항상 제주에서
해왔고
거의 일년에 한두번 쯤 갔었는데 요즘은 수온이나 환경변화로 어획량이 많이 줄어들어
뜸하게 됐습니다.
갈치는 직접 현장에서 잡아보면 아주 매력있고 재미있는 어종인데요.
4지 이상급의 고기를 끌어 올릴때의 희열은 다를 낚시와는 또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주로 현지 낚시배 운영업체에서 진행하는 패키지 출조를 하는데 비행기 티켓부터
식사와 픽업등 도착부터 떠날때까지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보통 오후 두시쯤 김포를 출발해서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픽업차를 타고 항구쪽으로 이동하며
그 주변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여섯시쯤 배에 오릅니다.
한시간정도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시작하는데요.
시작 전에 낙하산처럼 생기고 농구장 세배만한 수면에 떠다니는 물닻을 뱃머리에 펼치게 되죠
그렇게 하면 제주항 근처 앞바다에서 조류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배가 천천히 움직이게 되는겁니다.
배의 동력은 방향조절에만 사용하고 움직임은 조류에 맡기고요.
배가 흐르는 동안 승선한 이십여명의 사람들은 거의 밤샘을 하며 갈치를 만납니다.
아시다시피 제주바다의 바람과 파도는 상당해서 지독한 멀미와의 싸움 체력과의싸움이 되죠.
하루저녁 낚시를 하고 나면 뱃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일 정도로
만만치 않게 힘듭니다.
장비는 배에서 제공해주는데요.
소형모터가 달린 릴로 밧데리에 연결해서 전동으로 감아 올릴 수 있습니다.
릴대 원줄에 오륙미터 가량의 목줄을 연결하는데 이 목줄에 칠 팔십센티 간격으로
바늘이 달린 또다른 가지줄을 일곱개정도 일정한 간격으로 달아 맵니다.
그리곤 맨 마지막 부분에 쇠로 된 무거운 추를 연결하죠.
미기는 냉동된 꽁치를 제공해 주는데요. 각자 지급된 칼로 꽁치를 양 옆으로 포를 뜬뒤
비스듬하게 1.5센티 정도로 잘게 잘라 등쪽에서부터 바늘에 꿰어 미끼 배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미끼를 꿴 바늘을 자기 몸에 가까운 쪽부터 난간위에 올려놓는데요.
줄이 엉키지 않게 하려면 15센티 간격으로 몸쪽부터 차근차근 난간에 정렬해야합니다.
맨 마지막엔 추를 놓구요.
그리하면 꾼의 자리에서부터 약 1미터 넓이로 7~8개의 채비가 난간위에 놓여지게 됩니다.
그런 후 추를 집어들고 힘껏 바다를 향해 던지면 밤하늘에 미끼와 바늘과 낚시줄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비행궤적을 볼 수 있는데요.
사실 갈치낚시의 묘미는 이런 장면을 보는 데 있기도 하죠.
미끼가 바다로 떨어지면 갑판장이 알려 주는 수심까지 추를 내리는데요.
보통 60~100미터 수심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전동릴에 디지털로 미터가 표시되기 때문에 몇미터 내려갔는지 쉽게 알 수 있구요.
원하는 수심에 다다르면 거의 바로 쿡쿡 쳐박는 입질을 보게됩니다.
갈치는 워낙 먹성이 좋기 때문에 한번 물면 그대로 둬도 잘 떨어져 나가진 않습니다.
그래서 입질이 오더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고 전동릴의 속도를 조절하여 구렁이 담넘어 가는
느린 속도로 서서히 끌어 올리게 되죠.
올라오는 과정에서 다른 고기들이 덤벼들어 추가로 계속 물게 하는데 어자원이 많다면
100미터 수심에서 고기가 없는 2~30미터 수심까지 천천히 끌어 올리며 서너마리의 갈치를
낚을 수 있는데요.
입질이 좋을때는 한번에 대여섯마리의 고기를 볼 수도 있죠.
고기를 떼어 낼때는 먼저 올라오는 바늘부터 떼낸 뒤 다시 아까의 방법으로 몸쪽에서부터
하나씩 바늘을 올려 놓으면 결국 맨 마지막에 추가 자리잡게 됩니다.
이런 작업을 밤새 반복해야 하는거죠.
실제로 낚시하다 보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많지만
그렇게 고생하고도 다음 시즌이 찾아오면 또다시 가고 싶어지는 갈치낚시만의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갈치 배낚시의 진짜 묘미는 은빛 찬란하고 생기 넘치는 고기를 바다에서 배위로
끌어 올릴때에 있는데요.
배 조명이 비쳐 반짝거리는 오지급, 다섯 손가락급 고기를 만나게 되면 밤샘의 피로가
그야말로 저 멀리 달아나게 되죠.
일행들과 함께 호황을 만나 밤새도록 아이스박스 두 상자를 채울 정도로 많은 갈치를
올리면 하룻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거기에 배높이까지 넘실대는 너울과 한없이 푸른 바다를 밤새 바라보는 기분도 특별합니다.
새벽에 선착장에 도착하면 각자 박스를 포장한 뒤 아침식사 후 사우나 들렀다 비행기로
돌아오는 강행군이지만 집에 와서 그중 제일 큰걸로 골라 적당히 소금간을 한 뒤
구워 먹으면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직접 잡은 갈치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사먹는 고기와는 맛이 다를 수 밖에 없죠.
사인펜 지름만한 알이 들어 있다면 갈치알 특유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어
가히 갈치맛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버릴 게 없는 갈치는 적당히 손질한 뒤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일년내내 만만한 먹거리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너무 귀하게 돼서 출조해도 빈작이 되는 경우가 많아
예전의 호황을 만나긴 어렵습니다.
어릴적 어머니가 가마솥밥을 지으신 후 남은 숯불로 그윽하게 구워주시던 갈치향기는
앞으로도 지상 최고의 음식으로 기억될텐데요.
남해안의 갈치어장이 항상 풍요롭게 이어지면 좋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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