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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이사전-노토비치-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불교와 기독교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7-10 17:09:14
추천수 40
조회수   5,379

제목

[펌] 이사전-노토비치-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불교와 기독교

글쓴이

이명재 [가입일자 : 2002-07-08]
내용

흥미있게 봤던 블로그 글인데 주인장 허락없이 퍼왔습니다(주인장도 퍼온글이라고 써놔서...)

그래도 블로그 링크는 해놔야겠죠? 오타가 좀 자주보이긴 한데 큰 장애는 없어서 원문그대로 옮겼습니다. copy & past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oungnym&logNo=150149770865





불교와 기독교


 


         예수의 13세부터 29세까지의 행적은 성경어느 구절에도 한글자도 밝혀져 있지않다 그동안 서양은 수많은 탐헙가 종교학자들 이른바 (알려지지않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탐구와 연구들이 계속되여 왔고 의문에 쌓인(예수의 17년)을 부단히 밝혀내려고 캐톨릭의 수많은 수도사들 역사학자들이 노력해왔다

그러던중 러시아의 저술가 니콜라스 노도비치는 1887년 인도와 티벹지방을 여행하다가 라닥지방의 수도인 레(Leh),근처 하이미츠(영어 표기로는 히미스:Himis)히미스 사원에서 티벹어로 기록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발견 1894년 불어판으로 <<알려지지않은 예수의 생애ㅡ성(聖) 이사(ISSA)의 일대기>>를 출판한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이책은 곧 영어로 번역되었고 속속 독일어,스페인,이태리에서 출판되였다

그후에도 수많은 학자 탐험가들이 인도와 티벹을 방문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불교사원의 고문서들을 목격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서 잠시 기독교도들이 절대신으로 부르짖는 예수와 유태교의 민족신 야훼와 여호와의 연관성을 잠시 집고가면서 성서가 만들어지게 되는 당시의 배경을 보고 가겠습니다



약 육천여년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창조주 야훼(YHWH)신을 구세주로 섬기면서 살아오던중 에집트로부터 노예생활 탈출후의 과야에서 고난등 무수한 고통속에서 살아오면서 BC 3세기부터는 그들의 지존자 절대신인 야훼의 이름을 호징하지 못하도록 율법으로 제정되기에 이릅니다



그이유는 고통받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해주실 절대자 이기에 지나치게 함부로 입으로 부르지 못하게 되자 히브리인들이 구세주라는 간접용어로 히브리어로 "옐루힘"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게 되였고 후일 예배용어로 구세주라는 말을 "아도나이"로 불르게 되였는데 아도나이의 발음되는 A-o-ai를 절대 지존자 야훼라는 네개의 자음자인 YHWH 사이사이에 끼워서 읽게 될경우 Yehowah 여호와라는 호칭의 대명사가 생기게 된것입니다



이후 인간들의 흥망성쇄의 흐름따라 로마인들이 북아프리카로 부터 북쪽으로 흑해연안을 지나 전유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던 시절 가나안땅의 이스라엘 민족들의 지역가지 통치하게 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사렛 마을의 예수가 나타나서 구세주라고 세상을 구원하실 왕중의왕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예수 추종자들이 많이 생겨나자



유태인들의 민족역사이며 전통 민족 종교에서 보기에는 말도 되지않는 더구나 위대한 절대 구세주를 함부로 합리화해서 야훼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인정할수 없었던 유태교의 랍비(유태교의 성직자들)에 의해서 당시 그지역을 지배하던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발을 하여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한것입니다 그러나 실재의내용은 로마총독이 유다를 이용하여 예수를 죽이게 된다



근본 이유는 어떻게 인간의 몸을 가진 인간예수가 그들의 위대한 유일신 야훼신과 동격으로 합리화 한다는것을 용납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예수가 죽고 AD50년~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까지 종이가 없던 시절양피지가죽에 예수의 복음이 예수의 제자들에 의하여 양이늘어가면서 약 300년이 넘도록 예수복음의전도로 늘어가는 기독교도들을 위한 교재로 양피지에 필사본으로한 복사에 복사로 수많은 성서의 기록이 늘어가게 됩니다



막강하던 로마제국도 서로마제국 동로마제국으로 양분되면서 동로마 제국이 현제의 터기 지역을 중점으로 수도를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로 정하면서 막강했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코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난립되여있던 양피지 두루마리의 복음들을 한권으로 모아서 만들도록 하는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후 동로마 황제가 대어주는 막대한 자금을 후원받고 성서학자들이 하나의 성서로 합쳐서 만들게 되자니 의견이 분분 할수 밖에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이 종교인들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배경의 힘으로 동원하기는 마찬가지 였기에 당시의 북방으로 전유럽을 삼키고 북아프리카등 넓은 지역을 통치하여야 하는 황제로서는 예수 복음서로서 로마 통치의 세력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야망도 있었던 것입니다



점점 늘어가는 예수 복음의 추종자 들과 또 당시 주변이 아랍 모슬렘 교도들의 난립 또다른 여타 소규모 종교 추종자들 등등 제반 여러 가지의 난제들을 하나의 강력한 종교의 힘도 필요한 때인지라 막대한 자금을 대주었는데 하나로된 성서는 만들어 지지않고 성서 학자들이 미주알 고주알 자신들의 견해가 옳고 다른 견해는 틀렸다는등 의견 대립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본 황제가 강력한 명령과 정해진 기일안에 성서가 하나로 만들어지지않게 된다면 모두 참형을 내린다는 엄한 명령하에 성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강한 생명을 담보로 한 성서를 정해진 기일안에 만들어지다가 보니 교정이 잘못될 수도있고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토마스복음 같은 것은 예수 제자중에서 예수의 13~29세까지 의기록을 가장 인간적인 면에서 많이 다루었는데 동로마 황제의 힘의 배경을 등에 업은 성서학자들에 의해서 토마스 복음서는 통째로 빠지게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하여 현제의 성서안에는 예수의 12세이후 13세부터 무수한 인도에서의 종교 철학을 답습하고 최종 10년 동안 히말라야에서 불교(밀교)승려로서 수도하는 기록은 통째로 빠지게 된것을 알수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성서 신구약을 자세히 보면은 예수의 생몰 연대도 루카(누가)복음과 마태우스(마태)복음의 예수 생몰 연대가 50년 차이가 나며 구약성서도 유태교에 있는 히브리어로 된것을 축소하여 만들어지면서 절대적인 신의 계시로 쓰여진것이라는 신비감을 주기위하여 70인이 모두 각각 다른지역에서 다른시간에 쓰여진것을 모아서 하나의 성서로 만들때 보니까 70인의 번역서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더라 한것은 그만큼 신의 절대서라는 믿음을 주기위한 꾸민 말인것입니다



이렇게 동로마 황제의 자금으로 엄한 명령으로 만들어지게 된성서를 자세히 뜯어보면 수정되여야 할 부분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요한계시록과 사도신경으로 일체 따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 마지막절에 보면은 이성서에 한글자를 보태거나 한글자라도 빼는자가 나오면은 영원히 천국에 못간다는 영원히 꺼지지않는 불에 태워죽인다 하였으며 사도신경을 되뇌이게하여 무조건 믿게 만드는것 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이해하고 떠져서 아는것이 아니라 믿을수 없는 사실을 믿는것이 축볻이며 신앙의 근본이며 출발인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성공회 교회에서는 성서가 만들질때 참고가 되지않은 성서에 들어오지 못한 기록들을 외경이라고 하는데 성공회의 교회에서는 현제 성서외에도 별개로 만들어서 열여섯편의 외경을 예배때마다 별도로 함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2층 도서실에는 성서를 편집할당시 들어오지 못한 무수한 외경들이 많이 있는데 언제고 햇빛을보고 일반인들에게도 읽혀지게 될날이 있게 될것입니다



토마스 복음서는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는데 상형문자와 희랍문자를 겸용한 고프트어로 쓰여진 것으로 슈아레의 연구에 의해 세상에 밝혀졌다 <<토마스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것으로써 114항목으로 되여 있는데 그 가운데 한귀절을 이용해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다 만일 너희들이 이끄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새가 너희들 보다 먼져 하느님 나라에 갈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다속에 있다고 말한다면 물고기가 너희들 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져 갈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있다 동시에 너희들 밖에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안다면 너희들은 아버지인 하느님의 아들이 너희들 자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면 너희들은 가난한 나라 안에 있고 가난함이란 너희들 자신일 것이다]



하느님이 너희들 속에있고 동시에 밖에 있다는 말은 불교에서의 불성내재론의 표현이고 토마스복음서의 존재는 예수의 사상이 불교사상 그중에서도 불성 내재를 역설한 법화경과 유사한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신약성서의 <탕자의 비유>도 법화경의 유명한 장자궁자의 비유에서 빌려간것이다 그외에고 예수의 기적으로 손꼽는 물위로 걷는것 떡으로 여러사람을 먹이는것도 불교경전의 내용보다 조금 축소된 정도를 볼수 있다



유태교의 토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불교의 법화경 사상이 실크로드를 거쳐 이스라엘까지 간것으로 생각할수 있고 기독교 신약성서의 수많은 내용이 불교의 법화경에서 옮겨간것은 민희식 교수(한양대학 불문과교수)가 지은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책에서 많이 논술되여있다 실제로 로마가 통치하던 시절에도 불교의 법음이 북아프리카 에집트지역까지도 전파된 기록이 있으며 초기 로마 카톨릭에서는 다수의 예수 복음을 믿는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불교의 윤회설을 믿는 지도자들이 있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후에 만들어지게 되는 성서의 결집당시 불교의 윤회설을 내세우는 신부들은 동로마 황제의 명으로 사형이 집행 됐으며 사형의 난을 피하려고 일부 성서학자들중 중국으로까지 피신하여간 역사 기록도 있다



예수가 동방의 여러나라를 편력 한것은 엣세네파의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에 대한 기록은 초기 로마 교회가 삭제해 버렸던 헷세네파의 책들을 포함한 여러가지 자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성경이 만들어져야만 할것이다



현제 라다크 지방의 몇군데 수도원에는 예수에 관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중 히미스 사원의 두루마리기록은 거의 완벽한 기록이 티벹트어로 남아 있다 이것은 1887년 제정러시아 시절에 니콜라 노토비치가 라다크 레에서 남방 40킬로미터 되는 히미스 사원에서 발견하여 그것을 프랑스어로 번역 1894년에 프랑스어로 출판하였다 당시 <예수의 생애>라는 대작을 쓴프랑스의 에르네스트 르낭은 이 발견물들이 세상에 알려지지못하도록 기존 기독교도들에게 방해와 박해를 당하였다



그후 도울링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보병궁 복음서>를 서술하였고 복크(Richard Bock)는 티벹의 여러 수도원에서 새로 발견된 기록을 붙여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 후많은 자료가 발견되어 왔으나 너무나 많은 분량이기에 여기에서는 히미스 사원의 기록된 예수에 관한 자료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게 하고자 한다



예수의 생애는 불교의연대기에 기록된것이 있고 기독교에서 기록된것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기독교 계통의 전기를 가지고 추정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것이 바뀌여져야 할것이다



현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도 물론 불교에서 기록한 연대기가 있고 기독교계통에서 기록한 연대기가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다름가하면 불교계통의 연대기는 그 단시 사건이 정확하고 있는 그대로의 기록에 가까우나 기독교 계통의 예수나 그 밖의 기독교에 대한 기록은 예수가 죽고 많은 세월이 흐른다음에 기독교적인 이념에 입각해서 맞추어져 기록되었기에 왜곡되고 잘못된것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기록차이에 대해서 차이점을 알아보자면

자금부터 3000년전에도 인도에는 뛰어난 문화가 있었고 그당시 이스라엘 에집트 심지어는 서양도 인도와는 교류가 있었다 이스라엘,이집트등도 교류가 많았다 최근에도 많은 당사의; 문서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그당시 상인, 학자,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때 그때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전하고 한것이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계통의 편찬은 예수가 죽고 나서 후에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거기에서 불교적인 것은 모두 제거를 했다 좋은 예가 초두에 예를 들었던것 같이 토마스 복음서는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을 머무많이 설하여져 있기에 동로마 황제의 자금과 후원을 받은 신학자들에의해 만들어지는 신약성서에서는 모두 제거되어 신약의 복음 안에는 토마스 복음서가 들어있지 않게된것이다

[Le tout est sorti de moi Et tout est parvenu a moi

Fendez du bois :je suis la Soulevez la pierre

Et vous me trouverezㅡ la. 토마스 복음서]

번역:모든 것은 나에서 나오고 모든것은 나에게 이른다

나무를 잘라보라 나는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봐라 나는 거기에 있다.

불교 계통의 연대기에 마오는 예수의 생애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기록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어떤 점이 다른가?

첫번째 문제점으로 구약성서에서 모세네 대한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기원전 1300년의 일로 그 기록은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인도네는 구약성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이 다시정리된 불교연대기에 다시나온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인도에서 모사((MOSSA)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한 기록이 좀 특이하다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예수의 청소년기의 기록은 기독교에서는 전혀 알지를 못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는 그저 막연하고도 단순하게 사막에 있다가 30세에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구가 13세부터 30세까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 기록한것을 찾아볼수가 없다



그런 반면 불교에서 의외로 불교 연대기에서는 매우자세하게 예수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불교연대기는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세번째로 예수의 처형에 대한 문제인데 예수가 로마의 그당시 총독인 빌라도에 의해서 처형당한 것에 대해서 기독교에서는 그것은 유태인들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반해서 죽게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연대기에서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지만 로마의 빌라도 총독이 계획적으로로 예수를 죽였다고 되여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유다에 관한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다는 것이 기독교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불교 연대기에는 유다는 예수를 배반 한 것이 아니다



빌라도의 책략에 걸려 예수를 밀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독교 계통에는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자살했다고 하는데 유다는 자살한것이 아니고 빌라도가 잡아다가 죽인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죽은 후에 죽은지 바로 직후 유태인들의 유월제가 가까워지자 유태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래서 폭동이 날것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무덤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불교에서는 예수를 편견없이 있는그대로 하나의 성인으로 한인물의 생애를 그려내는데 기독교 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서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했기에 꾸며진 기록들이 많을수 밖에 없다



예수는 왜 13살때 집을나가 멀리 인도 티벹 페르샤의 여행의 길을 떠났는가 ?당시 유태인들의 관습으로는 13살 이상이 되면은 가장으로서 권리를 갖게된다 예수는 머리가 상당히 영리하였고 13세전부터 부유한잡 딸을 둔 집안에서 사위로 맞아드릴려고 떼를지어 몰려 들었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매우 만족했으나 예수는 타오르는 지식 욕구에 사로 잡혀 결혼을 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생을 원치않았다 그러나 주어진 관습대로 고향에 머물다가는 결혼을 하지않고는 피할길이 없는것을 알고는 인도에서 온 상인을 따라서 13세되는 해에 멀리 고향을 떠난 것이였다



이스라엘을 떠난후 인도 테벹 페르샤에서 공부하고 29세때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 까지의 사건이 불교 연대기에는 자세히 기록이 되여 있다 신약성서는 30세가 될 때까지 예수는 혼자 사막을 헤맸다든가 그 밖의 황당 무계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에 관해 논하고 있다 예수에 대한 모든 기록이 불교연대기에는거의 정확한데 비해서 역설적으로 기독교 에서는 예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AD325년과 한차례 더하게 되는 니케아 종교회의 당시까지는 당시 신학자들이 예수에 대한 기록을 토마스 복음등 그외의 기록들로서 다알고들 있었지만 강력한 동로마 황제의 후원을 받은 신학자들의 세력으로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드는데 방해 요소가 되는 예수의 13세이후부터 29세까지의 기록이 통채로 빠지게 되기 때문에 토마스전서등 예수의 동방에서의 수학기간 동안의 기록이 빠져진 이후의 성경의 기록만을 보게되는 사람들은 예수에 관한 역사를 일체 알수 없게 된것이다



예수의 처형에 대하여서도 신약 성서에서는 예수를 미워하는 바리세인들 즉 위선자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를 없애려고 빌라도에게 넘긴 것으로 기록되여 있으나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 자신이 죽이지 않을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사정도 상당히 복잡하였지만 그때 로마에서 큰세력 다툼으로 빌라도를 지지하고 보호해주던 황제(세이아누스황제)가 몰락하고 테베리우스 황제에게 싸움에서 져서 로마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따라서 빌라도도 목숨이 위태러워지고 유태인의 반란이 일어나면 자신이 모함을 당하거나 책임추궁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당시로서는 유태인들에게 영향력을 줄수 있었던 사람을 없애야만 했던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선(禪)수행을 많이 하고 돌아온 선사(禪師)라고 부르는 수행을 많이 쌓아서 빌라도의 계락적인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는다 간음한여자의 비유나 세금을 내야하는 이유를 묻고 대답하게 하는 등 모든 빌라도의 계락에도 걸려들지않는다 또ㅠ 예수가 29세에 나타난것은 병고치는자로서 예수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치료하는 방법은 티벹에서 배웠지만 테벹에서는 쓰지않는것인데 스님이 예수에게만 특별히 스도록 허가해준다 예수는 병자들을 고치고 영적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



빌라도의 책략에 의해 결국은 유다는 예수를 고발하여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러 왔을때 기적이라도 일으켜서 로마사람들을 무찔러 주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고 또 고문에 못이겨서 유다는 예수가 유다의 왕이라고 했다고 고발을 한다 예수는 그말때문에 죽게 된다 그래도 예수는 유다를 원망하지않고 사랑하고 축복해준다 고발후 유다는 도망치려했으나 빌라도가 바로그날로 그를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유대인들이 유월제에 폭동을 일으킬까봐 걱정을 했으므로 빌라도는 일방적으로 예수를 처형했고 유월제가 일어나기전에 예수의 시체를 옮긴것이였다 이것이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확대된다



불교의 연대기와 기독교의 기록중 어느쪽을 믿어도 상관은없다 불교는 무엇이 옳으니 이것을 믿어라 이것만이 진실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한테 강요 할것은 이세상 아무것도 없다 자기가 좋으면 믿게되어있다 어느쪽이 옳고 그른것것이 아니고 우리는 양쪽을 비교해가며 겁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서학자 쪽에서는 예수 행적 불명 시대에관한 연구에서 예수의 불교연대 기록에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을 인정한다는데 있다



예수의 인도기행기록 이나 티벹,특히 오늘날의 캐시미아,라다크지방,그곳은 지금도 불교의마지막 안주지이지만 거기에는 예수에대한 기록이 여러사원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외에도 기독교 계통의 사해 문서에도 예수가 멀리 따난 것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갓다는 부분이 없어서이지 갔다는것의 기록은 남아 있다 그러하기에 기독교성서학자들이 스스로 예수의기록을 보고 찾아가기를 안내를 돕고 있는 것이다



히미스사원의 두루마리 문서에 의하면 예수는 팔리어 산스크릿트어에 능통했다고 되어있고 많은 동료 수도자들중에 너무나도 뛰어나서 예수가 고향으로 돌아갈때 많은 기적의 행적을 하게끔 이적행위를 지도해준 그절고승의 기록에도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해고 손색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 큰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단계를 10단계로 나누는 것과 51지우로 나누는 단계로 나누는 것이 있는데 히미스 사원의 기록으로 볼대 예수의스승 스님이 예수가 고향으로 가서 목매한 자신의 고향 중생들에게 이진리의 말씀을 전허러가겠다고 할때에 예수를 보고 너는 이제 3지위에 들러가 있는 정도이니 마지막 해탈을 얻으려면 10지위를 지나는 수행을 통하여야 하니 떠나지말라고 말리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예수의 끈질긴 고향행의 고집으로 스승이 떠나도록 허락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첫번째 두루마리에 있는 예수의 호칭을 '이사'라고 되여 있는 것을 알수 있는데 예수를 이사로 부르는것은 예수의 고양언어 히므리언어로 그대로 발음되여지는것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사의 죽음에대한 기록도 첫번째기록에 나오녀 두번째 두루마리에서는 모사(모세)의 기록이 나오며 세번째 두루마리에서도 모사에대한기록이 상세하게 여기에서는 모세가 유태인이 아니다 이집트인의 파라오의 서자출신이기에 머리가 독똑한 모세는 서자로서 와이 될수 없음을 알고 노예인 이스라엘인 노예들을 이끌고 가나안 당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려는 계회을 했다는 것이다



네번째 양피지 두루말이에서는 이사(예수)의 탄생 그리고 성장에 대해서 기록되어있다 예수는 2사람이 있었다 그러기에 4복음서에도 그 연대가 다르다 그것은 서구의 도서관 비밀문헌에도 보면은 예수가 두명이라는것이 증명된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예수의 생몰연대가 50십년차이가 나오는 것을 볼수가 있다 현제 모든 기독교도들이 보고있는 신약 누가와 마태복음을 잘 살펴보면 알수가 있다 이름이 같은 다른 두사람인데 성서를 만들때에 학자들이 동로마 황제의 시간 독촉에 쫓기면서 혼동하여 요즘으로 표현을 빌리자면 교정이 잘못 되여진것 같다



그다음 네번째 두루마리에서 나오는 13살 예수를 사위를 삼으려고 여자를둔 색시집들 에서의 쟁탈전 기록이 상세히 나오며 그로 인하여 인도로 도망하지 않으면 않될 사정까지 상세히 나오는 것을 알수 있다 다섯번째 두루말이 기록을 보면은 14살의 이사(예수)가 아리아인들 가운데 정착하여 수도생활을 한다 부다가야에서 얼마 내려가지않은 힌두교 사원에서 예수가 베다경전을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베나레스(부처님이 최초에 5명제자를 만난곳으로 사르나트에서 10킬로미터 밖에 안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부처님이 6년고행을 했던것을 본을 따서 6년동안 고행을 하게된다



왜 예수는 브라흐만에 대하여 불만을 갖게 되는가? 예수는 공부하면서 바라문교가 어떻게 해서 출현하는가를 연구한다 아리아 인이 인도에 왔을때 그들은 식량이 부족 하였고 원주민을 지배해야 했기 때문에 소수자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무력을 신탁의 카스트제도를 만든것과 소수의 아리아 인들이 다수의 수드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만든 바라문의 철저한 윤회 사상을 비판하고 바라문교의 교리를 떠나 불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히미스 사원에 이사의 기록이 탄생부터 기록되여지는 것 그사원에서 이사를 지도하던 주지스님으로 부터 예수는 고향에서 몇년만에 고향 사람들을 제도하고 히미스 사원으로 돌아와서 더욱 큰도를 이룰것으로 지시를 받았기에 히미스 사원에서 불제자로서 수도를 하면서도 그절의 큰스님으로 부터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즉 예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지상에서 계급제도를 타파하기 시작한다 6번째 두루마리 에서는 예수와 바라문과의 대립 논쟁이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일곱번째 두루마리에도 이논쟁은 계속되어 있고 여덟번째 두루 마리에는 예수가 위험해서 바라문을 피해 북쪽으로 가면서 불교 신자들에 의해서 구출을 받게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불교에서 자기의 마지막 안주지를 찾는다 불교를 연구하고 법화경을 줄줄 외웠다 기독교는 예수가 창시한것이 아니고 후에 제자들에 특히 사도 바울이 만들었지만 기독교 바탕이 되는 삼위일체나 그 밖의 중요한 사상이 법화경에서 나오게 된다



그다음 두루마리에는 예수가 불교를 연구하는 과정이 나오고 팔이어나 산스크릿트어를 예수가 빨리 통달하고 불교의 경전을 통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경전을 예수가 얼마나 빨리 이해 했는가에 대한 놀랄만한 기록이 나와 있다 9번째 두루마리에는 예수가 불교에 감화를 받은후 자기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동기에대한 기록이다 9번째 두루마리에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에 들려 짜라스트라교도와 대화하고 그들과 논쟁하면서 몇번씩을 죽을 뻔한 기록이 나와 있다



예수가 여러해를 외국에 있다가 돌아왔을때 고향인 이스라엘 사람들중 집안 친척되는 사람들은 그에게 상당히 냉담했다 17년이나넘도록 고향을 등졌다가 돌아온 아들이 집밖에서 들어오라는 어머니 마리아나 동생누이들에게 누가 진정한 내형제이며 자녀인가 나의 진정한 형제자매의 연을 맺고 싶으면 모두 나를따라 집을 버리고 나오라고 하는 대목은 현제의 기독교도들이 보고있는 누가복음에도 자세히 나와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하면은 바로 예수가 티벹의 인정받는 승려로서 고향을 돌아왔기에 어머니 마리아의 부름에도 개의치않고 동생들보고 모두 집을 떠나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라는 아주 전형적인 불교 승려로서의 행동이였다 이런면도 성서가 결집당시 시간에 좇기어 섬세하게 교정이 되지못한 부분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높은 차원으로 알르켜줄겸 예수는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실감하고 '탕자의 비유'를 법화경의 내용보다 알기쉽게 간추린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그 대문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열한번째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빌라도가 첩자를보내서 '이사'에 대해서 조사하는것 그리고 '이사(예수)'를 체포하기위해서 여러가지 모략을 쓰고 예수가 선문답을 통해 그것을 벗어나는일에 기록이 나온다



12번째 두루마리에도 빌라도와 첩자들에 의한 음모가 나온다 13번째는 유대인 사제와 빌라도의 대결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사제는 예수를 받들고 살리려고 대결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사제는 예수를 받들고 살리려고 노력하고 빌라도는 죽일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힘이 없어서 빌라도가 죽일려는 계획을 따르게되는 비장한 기록이 나온다



열다섯번째 두루마리에는 예수의 처형을 굉장히 애처롭게 그리고있다 그리고도 그후 무덤을 왜옮겼는가 이런것에 대한 것이 기록 되어있다 여기에서 볼수 있듯이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관계없이 예수에대한 기록은 불교연대기 쪽이 정확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원시기독교의 최초의 역사는 병치료 활동의 역사이며 그것은 병 그 자체에대한 투쟁이라기보다 유대사회가 병에 대하여 강조해온 의미와 투쟁이며 결과적으로는 '지배의역학'과의 투쟁이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나오는 115가지의 병치료의 이야기는 그대로 초기기독교가 차지하는 치료활동의 비중이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것을 나타내고 있다기독교 성립의 초기에는 구원이 예수에의한 예수의 이름에의한 치료라는 사실과 뗄수 없는 것이다 병치료가 유태인의 사회에서 지배의 원리나 차별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전투적인 투쟁형태였던 것이다



구약의 욥기에의하면 저주받은 병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난 인간은 사막의 죽음의계곡에서 여생을 마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욥기:15~28 죽음의 계곡은 무덤이였고 그것은 지하의 구멍을 통하여 어두운 물속 명계(冥界)와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온것이다 구약의 레위기에는 저주받은 병 더렵혀진병의 진단에 필요한 병의 징후가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러한 일련의 의료행위ㅡ검진ㅡ진단

ㅡ치료ㅡ격리 사화복귀의 권한 모두 유대 최고 법원을 통하여 사제의손에 맡겨져왔다 사제는 임상의 처럼 이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사회에 등장하여<신의저주>라는 이름의 끔찍스러운 감옥에 갇혀 있는 병자로부터 그 부당하게 강제된 의미를 제거하기위하여 그의 활동을 시작한것이다 예수가 치료해준 병자가운데는 악령에 사로잡힌자 장님 문둥병자가 주로 중심이 됐다 이러한 불치의병의 근원에는 더럽힘과 죄강;ㅆ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한것이 유대사회의 확고한 신앙이였다 이러한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관념상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힘이된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놀라운이요 기적이였던것이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는 병고치는 이야기가 많은데 바울의 편지에는 그런것이 없다 바울은 베드로와 더불어 초기 기독교사를 통해 예수의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으로 베드로가 유대인기독교에 머물러 그 영향이 사라진데 비해서 바울은 헬레니즘의 세계에 진출하여 이윽고 희랍 로마의 세계속에 기독교를 확립하기 위한 초석이 되였다 니케아 종교회의후 성경이 하나로 결집이 될때 바울의 편지가 13통이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신학자들의 의도적인 뜻으로 예수가 병자를 치료하는 기록이 하나도 없게 삭제되여 있음을 알수가 있다 당시 신학자 들로서는 치료자 예수를 무시 하는데 큰 저항을 느껴오지 않은것은 사실일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예수가 뭔지 알수 없는 팔리어나 산스크릿트어로서 주문을 외우거나 진흙을 침으로 반죽하여 장님의 눈에 칠하였던가 테벹의 밀교에서 간작 되어있는 주술과 유사한 것을 사용한 기술이 나오는데 그자체가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느는데 저해요소가 되는 불교를 수학한 더구나 테벹의 승려들 밑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예수의 기록을 넣을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예수는 전도활동 초기에 석가와 마찬가지로 병을 고치는의사로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뿐만아니라 최초의 기독교회는 예수를 구원이 바로 병치료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사로서 받아들인것이다

사실 불교도 고매한 철학이기 전에 병을 고치는 의사가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불교 이전에도 병을 고치기 위한 주술과 같은 것은 많이 있었지만 불교가 여기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것은 병이 낳으면 불교의 힘에의한 것이며 설사 인간이 죽는다해도 극락정토가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리라 병이 낫거나 죽거나에 불교는 효력을 갖게된다



그것은 현세와 내세의 양쪽에서 구제의 힘을 뻗칠수 있는 종교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 기독교의 경우도 병을 고치는 신앙이면서 또한 죽은 후의 구제라는것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수 자신의 실천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죽거나 살거나 양쪽에 다 구제가 가능한 불교적인 특징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의 여호와의신은 노여움과 저주의신이다 사람을 저주하면 문둥병자로 만들어 버리다 동시에 여호와는 병을 고치는 신인것이다



결국 예수는 여호와는 다른 것이다 인간이 병든 모습은 토지가 병지가 병든 보습 즉 문둥병자는 사막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변자를 고친다는 것은 사막이 녹지로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약에서도 신이 사막에 들어가 악령을 쫓으면 사막은 옥토가 된다 그리고 문둥병자도 병이 낫는다 이러한 환상이 고대 유대인네게 있어다는 것은 예수의 병치료를 단순한 의료행위의 수준만이 아니고 인류 구제라는 사상적 기반에 두고 이 문제를 다루어야만 할것이다



1945년 이집트의 나즈 함만디(Naj Hammandi)의 마을 언덕에서 단지에든 그노시스(Gnosis)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단지에는 복음서묵시록,서신,비밀문서등 42권으로 그 어느 것이나 신약성서의 아포크리파(apocrypha, 외전)에 속하는 것으로 그대부분이 그노시스파의 교의를 담고있는 교전이다



그중에서 토마스복음서는 토마스가 마태복음 이하에 나오는 사도로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예수의 부활을 의심한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상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서 성립 되었으며 신약성서의 성립연대는 고린도서가 기원 50년 데살로니카서가 51년,로마서가55년,골로새서가 57년,빌립보서가 57년,마가복음이 70년,누가복음이 80년,마태복음이 90년,에베소서가 100년,디도서가 110년,유다서가 110년,디모데서가 150년이다



이처럼 신약성서의 성립 과정을 볼때 각기 양피지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여러부 복사 되여 오면서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심한논쟁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렇게 교재로서 한권으로 모아지는 현제의 성서의 기본형이 될때에도 엄청난 논쟁으로 동로마 황제의 강력한 감독 지시가 있었는데도 의견이 분분 하였었는데 초기에야 오죽 하였겠는가



디도서에서는 유태인의 신화주의가 공격당하고 디모데 전서에서는 신화나 신의 계보에 대한 논쟁이 공격 당하고 디도서에서도 어리석은 논의나 율법에대한 논쟁을 피하라는 공방전이 있었다 바울의 열열한 적극적인 활동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그노시스파처럼 단순한 신비주의 사상으로 머물렀을것이다



토마스복음서는 신약 디모데서와 같은시기에 기록된 것임이 밝혀졌다 4세기초 니케아 종교회의(325년)기독교의 과격파 즉동로마 황제의 비호를 받은쪽에 의해서 예수가 신의 외아들 이라는 것이 조작되고 기원367년 신학 논쟁때 아시나시우스가 토마스복음서를 이단의서로 간주하고 불태워 버렸으나 이미 그전부터 모든 양피지의 두루마리 복음서들은 근300년가까이 교재로 활용되면서 모든 신약 복음서들이 필사본으로 다량 복사되고 있었기에 토마스복음서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재발견될수 있었던 것이다



현제 바티칸교화청 2층독서실에는 니케아종교회의 전부터 모아졌던 신약복음서복사본들과 하나의 성서로 모아진후 성서에 의견대림이나 과격파들의 힘에의해서 들어오지 못하였던 많은 외경들이 상당한 숫자의 외경들이 많이 있다 1947년 "사해문서"가 발견됨으로서 기독교에대한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의 여류성서학자 에렌페젤(Elaine Pagel)은 "나즈함만디(Naj Hammandi문서)"를 연구하고 1981년에"그노시스복음서"를 발표하여 세상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책에서 그녀는 그리스도(Christ){힌두교의신 크리스티나(Krishna)} 의 부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녀의 기록에의하면 기독교는 삶과죽음의 싸이클(cycle)을 반전시킨 종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대한 동경을 부르짖는 다른종교의 싸이클과는 반대로 현실적으로 죽은 인간이 살아났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후 정통파 기독교에서는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후 묻혔고 죽은지 삼일후에 살아났다는 믿음을 일관하여 갖고 있으나 그것을 문자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붓다를 진리의 체현자로 생각하고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붓다란 진리 자체인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 우주불(宇宙佛)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중심에있는 부처인동시에 우주그자체가 부처라는 것이다 이 우주불은 유태교에서 말하는 야훼=여호와 기독교도들이 한글로 번역한 하느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신과 매우 유사한것이다 이러한 우주불을 현실의 불교에서는 비로자나불 즉 산스크릿트어로 바이로챠나붓다를 하자어로 음역하여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이비로쟈나불은 침묵의 붓다이기때문에 설법을 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비로자나불은 우주자체 즉 우주불이기 때문에 우주의 언어밖에 쓰지않으며 우주어의 설법이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것이다

허지만 비로자나불은 수많은 석가모니불같은 헤아릴수 없는 부처를 방출하여 우주의도처로 설법을 하라고 파견한다 비로자나란 "태양"이란 뜻으로 사방에 광선을 비추듯 수많은 석가불을 과거로부터 수억천만의 헤아리기도 힘든 부처를 방출하여 파견하고 있는것이다



바로 지리산의 화엄사의 대적광전에 가보면은 중앙에 비로쟈나부처님 좌측에 석가모니부처님 우츧에 노사나부처님 세분이 앉자계신것이 바로 이러한 우주자체 법신불인 비로쟈나부처님과 영겁의 세월을두고 끝없이 출현하는 석가모니불같은 무수한 부처님의 화신불이 분신하여 우리인간 세계에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인것이다 그래서 응화신이라고 하는 인간의모습으로 화현하신 석가모니를 통하여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불교의 가르침을 아는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근본적으로 같은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밀교에서는 비로자나불에 해당되는 우주불을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부른다 비로자나가 태양이라는 뜻이므로 그 뜻은 같고 붓다와 여래도 같은 의미이므로 같은 것이지만 전통적으로 명칭만 달라진것이다



그런데 현교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의 붓다이지만 밀교의 대일여래는 스스로 설법을 하는 웅변의 붓다이다 다만 대일여래의 설법은 우주어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들어도 무슨 말인자 알지를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밀교라고 부른다 대일여래가 말하는 우주어는 일종의 상장언어이다 밥하늘에 반짝이는별,꽃의속삭임,흐르는물소리,새들의 지저귐이 바로 대일여래의 언어인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닦으면 대일여래의 설법을 알아들을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는 석가불의 매개없이 직접 우주불의 설법을 듣는 불교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사랑의 신인데 비해 불교의 붓다는 진리의 붓다이다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사이에 큰 단절이 있어 단절을 메우기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위에 다시군림한것이다 그러나 불교에 있어서는 붓다와 인간 사이에 아무런 단절도 없다 붓다와 인간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지만 인간은 붓다를 향하여 한걸은 한걸은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붓다가 되기위한 가르침이 불교인것이다



필립 슈아레의 주장에의하면 기독교는 유태교가 부르짖는 메시아 즉 구세주에게 권위를 부여한 점과 기독교가 전파될무렵 지중해세계를 지배한 희랍철학과 맞추려한 점때문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지금 이 곳이 아닌 다른곳에 있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정신작용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미래,희망 속에서 욕망을 통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우리가 더 질문할 수 있고 답할 수 있고 연기할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당장 자기몸에 위험이 닦쳐오면 인간은 생각할 여유도없이 행동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만이 인간을 구할수 있다 붓다와 예수는 깨달은것이다



성직자들은 인간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 미레에 인간이 많은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를 닦지 않고 모든 노력을 외부생활에 기울인다면 영원히 하느님의나라에는 가지못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관리자인 성직자들은 역설적으로 종교의 적(賊)이 되기 쉬운 것이다 예수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외치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장이란 갈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괴로운 투쟁을 통하여 내면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는 고대 유태교의 엣세네파의 신비주의 공동체에서 매우 초자연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것은 악마와의 투쟁을 위한 훈련이다

붓다가 니련선하 강변의 보리수나무아레에서 악마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완전한 절대적 존재가 되고 악마는 다시 붓다를 유혹할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마태복음에도 악마는 예수의 곁을 떠나 다시는 예수를 유혹하는 일이 없게 된다



초기 기독교 형성에 있어서 예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서 치료신(神)으로 활약하였으며 유태인들이 사회에서 축출한 신의 저주를받은 문둥병자나 정신병자들을 치료해줌으로서 붓다의 자비를 실천하였으나 이 점을 바울은 매우 싫어하여 그러한 기록을 없애려 했던것이다 예수는 티벹에 가서 많은 영험을 익혔으며 후세에 밀교로서 발달하게 되는 예수의 영험은 토마스복음서 와도 관계가 있다



예수가 밀교에 발리 접근할수 있었던 것은 인도에 도착하여 힌두의 베다 찬가를 중심으로 기도 주문 제식등을 연마하였고 의례 교훈 서사시 등의집대성인 메다를 본질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한여/ㅅ다는 기록이 말해 준다

베다는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처럼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인간에 의해서 성립된것이 아니고 수백년에걸쳐서 긴세월을 구전으로 전승된 민죽의지혜의 결정이다



베다는 제례의식고관련하여 발전해 왔으며 여러 민족이 섞인 인도의 통치에 무력보다 문화의 중요성을 느낀 아리안계 종옥은 문화의중심에 종교를 둔것이었다

베다는 한가지가 아니라 리그베다(Rig Veda),사마베다(Sama Veda),야주르베다(Yajur Veda),아타르바베타(Atharvada)의 4가지가 있고 처음의세가지가 찬가,가요,제사의 집대성으로 그권위를 지녀온데비해 아타르바 베다는 재앙,주술에 관한 집대성으로 당초에는 베다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으나 후에 그 내용이 정비되어 베다의 위치를차자하게되고 제식의례 전반을 통활하는 기도제관 브라만에 속하게 된 것이다



예수가 인도에처음으로 들어와서 자연히 힌두의 베다를 알게되고 밀교의 아타르바 제다도 접하게 되면서 불교가 성하게된 사회적배경 권력을 남용한 바라문계급이 쇠퇴하고 왕족이 새로운 권력을 장악한 접과 상인계급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불교는 성립시에 부유한 상인들을 지지자로 가졌고 베다에 기반을 둔 제사만능주의에 재한 자유사상이 일어남을 무력으로 배경으로 한 왕족의 권력장악이 배후의 힘이되었고 인도를 휩쓴 불교는 부다의 입멸후 100년이지나자 불교는 성립시기에 있어서는 성직자를 위한 것이였기 때문에 서민생활에 침투하지못하고 당시 바라문의 권위에 비판적이였던 왕족과 대도시의 상인에게 받아들여졌으나 인도에 정착한 농민에게 침투하지 못한것은 후에 인도에 있어서 불교쇠퇴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도 본토에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밀교를 바탕으로하는 티벹불교쪼으로가지 섭렵하게되는 예수는 인도 북부와 티벳에서 많은 주술을 익히면서 유태교와 다소 공통점을 가진 밀교에 큰 관심을 가지게되고 연구를 하게된것이다 내일여래의존재를 최고의 원리로 하였을때 밀교승려들은 석가와 갈라진것이며 예수는 부처님이 설한 인간이 벗어날수 없는 생오병사나 윤회전생의 관념도 모든것이 마와 신의 대림에서 오는 것이며 종교는 여기서 벗어날수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따라서 열반에 이르기위한 해탈은 마나 신이 없는 세계에서의 지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붓다는 평소에 설한것과는 달리 말년에 인간의 정신이 다시마와 신의 개념에 얽매이는 날이 온다는것을 불교 초기부터 예언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주술신으로서 예수에대한 서적이나 치료신으로서 예수에 대한 서적이 많이 나오는 것도 예수의 불교 연구의 정점이 밀교에 이르렀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것이다 특히 인도에 처음 들어와서 불교를 공부하기전인 힌두교의 바라문의 베다를 6년동안이나 철저하게 바라문교를 연구한 예수에 있어서는 불교자체가지닌 바라문교의특성에 끌려간것이며 후에 짜라트스트라교나 희랍의 사상이 가미되어 예수의 독특한 사상이 형성된것이다



본래 기독교는 "성서는 믿는것이지 이해하거나 설명할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해온것도 성서가 고시하는 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고 예수가 신의 지배 라 부르고 원시 기독교교단이 부활의 그리스도라고 칭한 사실의 근거도 예수 자신의 밀교에 대한 연구와 관련이 있으므로 여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바람직한 일이다



토마스복음서는 기독교 복음서 가운데 가장 불교사상이 생생하게 나타나있는 복음서일뿐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복음서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무엇과 같으냐?"고 물었을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의의 천사와같다 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청교도이며 도덕가로 자기의부덕에 대한 죄악감에 시달려 왔기 대문에 예수님을 도덕적으로 완전한 순결성의 산징인 정의의 천사라고 말한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이해를 초월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마태는 덕보다는 지식을 탐구한 것이며 그점에있어 베드로보다는 더 과학적이다 마태는 지식,원칙,이론체계,철학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에는 생명이 없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원하는 바에따라 예수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것이다



예수님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은것이다 도덕이나 지식은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이세상의 모든 사물의실상은 도덕이나 지식을 초뤌한다 베드로는 도덕

의 기초를 이루고 마태는 기독교신학의 기초를 세웠다 따라서 기독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도덕성과 신에 대한 이론으로 매듭짓게 된것이다



토마ㅣ스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를 이해하지못한점을 지적한 유일한 복음서이다 동시에 불교사상의진수를 전하는 복음서이다 인도에서 예수님이 설교한 내용을 하나만 소게하여보자

"어떤 사람이 메마르고 단단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땅을 갈아도 겨우 먹고 살 정도의 곡식밖에 생산되지 않았다 어느날 한 광부가 농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농사짓느라고 황금의 산을 밟기만하고 있습니다'이 바위밑을 파면 보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농부가 바위를 제거해보니 깊은 땅속에서 금광이 나욌다 "

이것은 토마스 복음서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마음속에 있다는 불성내재론의 멋진 비유이다.



토마스복음서에는 부처님의 씨앗의비유 말씀이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오며 여기에서 생명의 실상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하느님 아버지인 여호와신과의 계약에 입각한 유목민족의 토지획득을 위한 이야기라면 신약성서는 여기에 대립되는 대지의 신의 결혼과 축제 즉 발르신의 부활과 기적에 얽힌 니야기가 중심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동양의 신화만으로는 신약의 예수님의 부활이나 기적 병치료 또는 처녀수태이야기의 사상적 배경이 약하므로 불경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희랍어가 사용되던 시대에 옥시린코스(oxyrhynchus)의 이름으로 알려져있던 이집트의 한도시에서 3개의 희랍어 파피루스 단편이 발견되어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한 단편은 제3기에 기원하여 예수에게 귀속되는 단독의말을 15개 내지 16개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는 말씀하셨다"는 도입정식 이외에는 어떠한 관련도 없이 도입되었다 이 언어 속에는 정전복음서(正典福音書)에 있어서 예수에게 귀속된 말과 아주 유사한 것과 병행문을 이루는 보통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한 두개의 말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후대에 이르러 찬미가의 주제가 되어있다 아음과 같은 말이 그렇다 <두 사람이>있는 곳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신이 함께 계신다 혼자 있는 곳에서는 <내가 말해두지만>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있다 "돌을 들추어봐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무를 쪼개봐라 그러면 거기에 내가 있다 "(1897년네 발견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1)



하나의 단편(1903년에 발견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속에 이롸 같은 말의 집성에 대한 서문이 분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은 예수가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언어이다 그는 살아계시다 그리고 토마스와 그 10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나 이 말을 듣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말이 계속된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찾는자는 끝까지 찾아야한다 그리고 발견했을 때 그는 놀랄것이다 그는 놀라서 나라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얻은후에 휴식할 것이다



이러한 말의 몇 가지는 초기 기독교의 저자들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인용되어 그들의 시대네 유포되어 있는 여러가지 서적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모든 말과함께 100개 정도의 말이 [토마스복음서] 라는 제목이 붙은 채 코프토 사본으로써 확인되었다.



이것은 다음에 인용한 서문과 나라에 대한 말로 시작된다

이 코프토어 문서는 1945년경 이집트 나그 하마드(혹소르에서 약 북쪽으로 60마일)부근에서 다행이도 우연히 발견된13권의 가죽으로 장정한 파피루스 사본에 포함되어 있는 49개의 문서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코프토 문서는 어느 그노시스적 공동체의 서고에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희랍어의 원문에서 번역된 것이다



제 4세기의 사본인 코프토어의 [토마스 복음서]는 희랍어 본문에서 번역되어 있다 그 희랍어 본문은 3개의 옥시린코스 파피루스1(645,655)에 속해 있는 희랍어 본문과 매우 유사하지만 똑같ㅇ은 것은 아니다 이 희랍어 본문의 집대성이 이루어진 장소는 시리아아고 하는 증거가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집트에서 전해지는 사이에 그노시스적 색체를 띄게 된것이다



로마의 교부(敎父) 히토리누스(3세기초)에 의하면 나하슈라고 불리우는 그노시스 그룹이 [토마스 복음서]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것은 거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책일것이다

1959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코프토어의 역 은 사실상 완한전한 것으로 다음114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살아있는 부이신 예수가 말씀하시고 토마스가 기록한 비밀의 말이다

<살아계신 분 예수>는 아마 <항상 살아계신 예수>를 의미한다

비교적인 가르침 또는 그노시스를 제시하는 것은 그노시스적인 여러 복음서의 일반적 형식이다 그 비의적 가르침또는 그노시스는 예수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소생된 후 그 선택된 제자들에게 나타나닜는 동안에 그들에게 준 것으로써 그러한 복음서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토마스복음서]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말도 실제로는 같은 종류의 것이다 아마 편집자가 비빌로 간주한것은 언어 자체가 아니고 [토마스복음서]를 근원으로 삼은 한 그룹에 있어서의 그 말에 대한 해석이었다 대루모,유다,토마스,라는 3중의 이름으로 말할것 같으면 대루모는 쌍둥이를 의미하는 희랍어로 요한 복음서에서는 토마스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토마스는 쌍둥이를 의미하는 아람어(toma)이다 시리아의 기독교 전승에서는 그는 12제자에 속해 있었다 그는 <이스카리아우데가 아닌 유다>와 동일시 된다 오래된 시리아어 여러 복음서에 있어서는 요한 복음서 14:22절의 질문은 유다 토마스가 주로 한 것이라고 한다



ㅡ<본문 의 말씀 1 >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누구나 이 말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말의 표면적 의미가 아니고 말의 보다 깊은 해석을 전수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나타내 주는 소문의 인상은 이것으로 확실해진다 이말은 요한복음서 8:51과 닮아있다 예수는 거기서 "누구나 나의 말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언명(言明)은 그의 질문자들에 의해서 취금되며 (누구나 나의 말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는 형식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52절).그러나 "나의 말을 지킨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나의 계율을 지킨다"를 의미하며 <그 해석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ㅡ 제 4복음서에 있어서의 의도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이며 한편 [토마스 복음서]레 있어서의 의도는 주로 지적이다

ㅡ<말씀 ㅡ2 >ㅡ



예수는 말씀하셨다."찾는자는 찾아낼 때까지 찾아야 할것이다 찾았을때 그는 당황할 것이다 당황할때 그는 놀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지 만물을 지배 하게 될것이다."



코프토어의 표현으로는 이미 번역을 재현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645의 2의 희람어 표현과는 좀 다르다 알렉산드리아의 크리멘스는 헤브르인 복음서에서도 실제로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ㅡ<말씀 3>ㅡ



예수는 말씀 하셨다 "(A)너희들을 현혹하는 자들이 오나라 '천국은 하늘에 있다'라고 너희들에게 말한다면 하늘의 새가 너희들 보다 먼져 거기에 갈것이다 그들이 그것은 바다에 있다고 말한다면 불고기가 너희들보다 먼져 천국에 갈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너희드,ㄹ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밖에도 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너희들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밖에도 있다 "(B)"너희들이 자기 자신을 안다면 알게될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아버지릐 자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자기자신을 모른다면 너희들은 빈곤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자신이 빈곤한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서 17:21의 확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신의 나라는 보이는 징조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또 사람들은 '보아라 거기에있다!'또는 '저기에 있다!'라고 말하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아라 신의 나라는 너희들(또는 노희들 내부에)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토마스복음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써 <신>을 사용하는것을 피하고 있다 (말씀100의 주를 참고).나라는 여기서는 매외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참된 지식에 있다 '오! 보이지않는 세계여! 우리들은 그대를본다'로 시작한다.프랑시스 돔손의 시 신의나라는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의 3에 유래하는 이러한 언어의 희랍어 본문에 기반을 두고있다



ㅡ< 말씀 4 >ㅡ



예수는 말씀 하셨다 "해는 넘치고 노인은 생명의 장소에 있어서 생후7일째된 어린아이에게 묻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살게 될것이다 수많은 최초의 자는 최후가 되고 그리고 그들은 단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요점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어린애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존성서의 말과 유사하다 "누구나 어린애처럼 신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마가복음10:15)

"수많은 최초의 자는 최후가 될것이다."라는 말 뒤에 희랍어 원문(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의4)에응 "그리고 마지막 자는 최초가 될것이다 ."(마가10:31.그밖 참조)를 부가하고 있다



이 구절은 아마 우연히 코프토어의 본문에서 생략되었을 것이다 이 말의 결말에 있는 '단독자'란 연령과 성(性)의 차이를 최종적으로 초월한 인격이다ㅡ 성의 차이를 넘는다는 것은 [토마스복음서]에 있어서는 되풀이 표현되어 있는 이상이다(말씀 11,16,23,49,106,114참조).그 배후에 있는 사상은 아담이 최초의 인간으로 창조되었을때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지지않고 남녀 양성을 다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창세기2:21,23).



ㅡ< 말씀 5 >ㅡ

계속해서 이러한 분량으로 [토마스 복음서]의 마지막 말씀114까지를 여기서 다기록하기란 분량이 보통 일반서적의 양 150 페이지 가량이 소요될것이기에 줄여서 약식으로 옮겨드리기도 그렇고 언제고 필요하시다면 토마스 복음서 전권을 보내 드리겟습니다 그럼여기서 [토마스 복음서의 전반적인 주해를 간략히 말씀 드리면서 답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 복음서]의 끝말.



오시코린스(Oxyhynchus)는 알렉산드리아 현제의 에트베네시ㅏ의 약 180마일 남쪽 이집트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1896년과1907년 사이에 거기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는 현제가지 41권의 시리즈로 출판되였다 처음 쪽의 권은 P.그렝파르(Grenfell)와 A.S.한트(Hunt)에 의해서 편집되었다 이 파피루스는 발견 출판의 순으로 번호가 붙어잇다 각기 통번호 앞에는 POXY(Oxyrhnchus Papyrus의약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옥시코린코스 파피루스는 단연 제1권으로 (런던 1898년)옥시코린코스 파피루스(654,656)는 제4권(1904년)으로 출판되었다



[토마스복음서는 나그하마드 북쪽 약5마일 나일강의 해안의 미대르 하리타리프 근처에 있는 4세기 기독교도의 무덤에 있는 큰 단지 속에서 발견된것이다 그것이 나그 하마드에 운반되어 일반적으로 나그 하마드 파피린크스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어로 쓰여진 3세기의 그노시스적 로망스인 토마스행전에 있어서는 특히 물질질서의 속박으로 부터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복음을 제시한다



맨체스타이 존 라이란스 대학 도서관에는 <막달라마리아에의한 복음서>의3세기초기의 희랍어 파피루스 단편이 있다 (라이란스 파피루스463).거기에는 구세주가 마리아에게 주었다고 하는 계시에 대해서 제자들이 논하고 있다 베드로는 구세주가 남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진리를 한 여자에게 몰래 맡겼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랍비는 그를 비난하고 마리아를 옹호 한다

(이저서는 베르린 파피루스8502에 있어서 코프토어 역으로 부분적으로 남아있다)마리아에 대해서는 말씀 22참조.

이것은 신부의 방의 비의의 요점이다(말씀75).이것은 죽음이 드는 과정은 역으로 하도록 의도된 일종의 입회식이었다 "이브가 아담 속에 있을때는 죽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에게서 분리되었을때 죽음이 생긴 것이다 '(필립보복음서71)

이 말씀집은 일반적으로 Q문서라고 불리워진다. 



 신을 섬기는 수많은 종교 중에서 비교적 수자가 많은 이슬람교와 힌두교 캐톨릭 다음으로 신도수가 많은 개신교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 야훼(YHWH)와 여호와(Yeh0wah)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계시된 신의 이름이다



 헤브라이어 구약성서에 기록된 YHWH네개의 자음으로 된 이 야훼라는 신의 이름은 문자로서는 모음이 없는 소리를 표기하는데 불완전한 헤브라이어의 부족함으로 정확한 발음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BC3세기부터 유태인들은 민족신 YHWH 더이상 호칭을 못하게 율법으로 금지시키게 됩니다 그이유는 절대 지존자이며 나라를 잃고 고통에 헤매이는 이스라엘인들을 언제가 구원하러 오실 절대자 지존자이므로 경외하는 뜻으로 직접 호징을 못하게 되자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간접 대명사로 "우리의주 즉 구세주"라는 뜻의 "엘로힘(Elohm)"이 사용되였으며 구약성서를 번역한 70인역(Septupaginta)은 이를 "퀴오스(Kyrio)즉 나의주,구세주로 옮겼고 유태인들은 이 낱말을 예배용어인 아도나이(Adonai=나의주)로 읽었는데 아도나이의 모음자 a-o-ai를 YHWH야훼라는 자음자음 사이에 끼워 읽을때 Yehowah여호와 또는 예호바(독일어)라는 발음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는데는 기원전 부터 로마가 유럽전역과 아프리가 북부 지역까지 통치를 하게 되던시절 중동 지역도 로마 군단의 지배를 받게 될당시 이스라엘의 전통 종교이며 나라를 통치하는 율법으로서의 유태교에서 예수라는 한 인간이 자신이 신이다 라고 주장을 하자 유태교의 랍비(유태교를 이끄는 지도자 즉 목사나 신부에 해당함)들이 어떻게 형상있는 인간 예수가 위대한 구세주 야훼신과 동일시를 하는 것을 용납 할수가 없어 당시 정치 권력의 로마 총독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발을 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하였고 유태교에서는 지금도 구세주 애훼는 오지 않았다는데 예수를 믿는 추종자들에 의해 예수가 설교한 말을 복음서라고 하여 제자들에의 해 전파가 되여지다가 AD50년부터 그 유명한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후 양피지 두루말이로 난립하여 기록되여지던 예수의 복음이 당시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니우스 의명에 의해 하나의 성서로 묶여지게 될때까지 근 삼백년 동안을 양피지 필사본으로 스승과 제자로 대를 이여가며 성서가 많이 기록되여져 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은 예수가 죽고 나서 복음을 전파하고자 12제자중 유다는 바로 죽었기에 11명의 직계제자와 그외 막달라 마리아 사도 바을 디모데우스등 추가되는 제자들이 모여 각지역으로 전도 행각을 도모하게 될대 누구는 편하고 환경이 좋은곳으로 누구는 험하고 힘든지역을 공평하게 하기위하여 조그만 나무토막에 전도 할지역을 적어서 공중에 던진다음 떨어지는 전도지역이 적힌 조각을 집게 되는데 제자중 베드로가 집은 나무토막이 로마가 되였기에 베드로는 이태리로마로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할때 자신은 스승예수를 배반한자였기에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라고 하여 순교한자리에 기념비로 만들어진 것이 베드로 성당이며 마태복음을 적게된 마태우스(마태)는 흑해연안 현제의 루마니아 불가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눈알이 불에달군 쇠꼬챙이로 빠져지는 상태로 순교를 하였고 세무사출신 사도 바울(로마식 말음 유태교발음으로 사울)은 제자 디모데우스를 데리고 그리스지역로 전도 하여 코린트(고린도)지역에서 앞서적은 양피지가 훗날 신구약 성서를 집필할때 고린도 전서가 되며 뒷날 적은 양피지가 고린도 후서가 된것이며 제자 디모데우스는 스승 바울곁을떠나 데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스승 바울과 자신의 데살로니카에서 전도를 한내용을 편지로 주고받은 양피지의 기록들 성서를 만들어질때 데살로니카 전서,후서가 된것 입니다.


 

 또 제일 당시로서는 마태우스처럼 힘들고 고된지역의 인도를 나무토막을 집은이가 토마스(도마)였는데 바로 이 토마스가 적은 예수님의 성경에 없는 12세이후부터 고향에 나타나는 29세의 기록이 가장많은데 325년 니케아종교회의후 만들어지게 되는 성서 결집때 통체로 빠져 버린것은 신의 아들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토마스는 가장인간적인 또 인도의 많은 종교철학을 학습한 기록이 예수가 신의 아들로 만들어지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였기에 통채로 빠졌을것이라는 중론이 많습니다



  이렇게 성서는 예수 죽은후 50년부터 300년이 넘도록 종이가 없던 시절 양피지에 필사본으로 무수한 제자들에 의해 난립해서 내려오던 것을 동로마제국 황제가 현제의 터키지역 콘스탄니노풀(이스탄불)에 수도를 정하고 유럽과 아래로 아프리카지역 까지 통치를 하는데 당시로서 그지역이 타종교인 이슬람세력도 있고 복잡한 민족의 석인상태에서 예수추종자들의 숫자도 많이지고 자신도 예수의 사상에 도취되는 면도 있고하여 어느날 예수 추종자들을 모아서 난립되여있는 양피지 두루마리 성서를 하나로 모아 한권의 복음서로 만들라고 막대한 자금을 대어 주었는데 각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시간이 지연이되자 예나지금이나 정치인들이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듯이 동로마제국을 기독교국가로 선포하면서 성서를 좀더 강한 신의 율서로 만드는데 힘을 실어주자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지게 되는 세력들의 주축으로 오늘날의 신구약 성경으로 만들어지게 된것입니다.



 그 한예로 헤블라이어의 유태교의 구약성서를 조금더 간편하게 개정하여 만들어지게 되는데 당시 구약성서 70인이 번역한 (SeptuaGinta) 구약 번역서를 뭐라고 믿게 합리화 하였는가하면 70인이 지역과 시간도 다른곳에서 서러 교통도 한번 하지않고 번역한것을 모아서 구약을 신약과 함게 만드는데 한글자도 안틀리고 꼭같았더라 이러하니 하나님의 글이다 라고 신비스럽게 주장하엿지만 그것은 오늘날 당시의 신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성서를 신의 복음서로 믿게하려는 지나친 의도에서 나온것이다



 신약도 많은 모순이 있는데 요한계시록에도 절대적으로 믿게 하기위하여 복음서기록을 마치는 끝구절레 이복음서에 한글자를 빼거나 한글자라도 보태는자는 자가나오면 영원히 하늘나라에 못가는 영원히 꺼지지않는 불에 태워버린다고 겁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말도 모순이 뭔가 하면은 신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를 상세히 보다보면은 예수의 생몰 연대가 50년차이가난다 이런것도 요한계시록의 말에 위배가 되지않으려면 일체 함구를 해야 그러힌 지 여태것 어느목사나 신부에게 물어보아도 시원한 대답을 못들어봤고



 특히 예수가 신의 독생자 외아들이라고 하는 것에서 누가복음1장 1절~80절까지를 보면은 천사 가부리엘은 사가라부인 엘리자벹이 성령으로 요한을 수태한지 6개월째에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사는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들어간다...28절에 천사 가브리엘은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지어다 "하니까 29절에 마리아가 놀라며 이런 인사가 어찌한인가 놀라며... 내가 사내를 모르는데 어찌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는가...30절에 마리아를 달래는 내용으로 무서워 말라 네가 은혜를 받아서 수태하고 아들을 낳아 예수라고 이름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요한 계시록 대로 한글자도 보태지 않고 더하지도 않은체 목화자들 에게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라는 외아들이 안닌것이 친척인 사촌언니 엘리자벳이 이미 요한을 먼져 성령으로 6개월전에 잉태하고 낳은 요한이라는 형이 있으니 하느님의 형제이여야지 맞지 않는가 하면은 일체 함구이고 토를 다는 사람을 못봤고 어느 예배에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는 상세한 장면을 설교하는 것을 보지못하고 듣지도 못하였다



 여기서 본인은 기독교를 비방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가 형성될때 또 동로마 황제의 강한 힘의 독촉으로 당시의 학자들이 성서를 결집할때 요즘으로 비교 하자면 출판 하면서 원고의 교정을 잘못본 부분도 많이 있을것인데 이것을 절대적으로 신이내린 계시이라고 믿게 하는데서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았는가 한다

그래서 본인은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아니라 더욱 역사적인 객관적인 사고로서 깊은 이해를 시키고자 기독교를 나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면은 성경을 최소한도 10번이상은 읽고 연구 하고나서 다시 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혹 기독교도들이 오해 소지가 있을까 보아서 불교의 한면의 예를 집어보자면 부처님이 태여나는 탄생설을 보자면 마야부인이 친정에 태자를 낳으러가다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옆구리로서 석가모니를 낳으니 세상에 나오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곰걸음을 걸으신후 한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키며 하늘위에서나 하늘아레에서 나홀로 가장 존귀하다 하셨다는데 이것으이 현실적으로 액면그대로 사실이겟습니까..? 이런것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도 돌아가신후 제자들에 의헤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기록서 경전을 만들게 될때 부처님이 태여나는 기록을 하여야는데 인도라는 나라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카스트라는 제도가 현존하는데 물론 국가의 법으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21세기를 지난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람도 아니라는 제5계급 탄트라라고 하는 계급하나가 더생겼다고 하는 나라에서 이천오백여년전 제자들에의해 경전이 만들어지게 될때 부처님의 탄생을 어디로 하여야 겠습니까 카스트제도 계급에서 정신적 지도자 브라흐만이라는 힌두교의 승려들은 머리부분인 백회혈로 태여난다고 하고 왕족인 크샤트리아들은 몸통으로 평민인 바이샤들은 허벅다리사이로 천민인 수두라들은 발바닥으로 태여난다고 하는 구분을 두었으니 왕족출신인부처님은 당연히 몸통으로 나와야하니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빌려서 표현한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옆구리로 태여나서 동서남북 사방 일곱걸음후 중안에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외침도 사실은 29세출가후 35세에 보리수나무아래 40일간의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후 하신 일성 이였으나 성인의 탄생시에 35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하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설화이지요 이렇게 부처님의 경전기록 대로의 말을 뒤집고 사실적으로 이해시킨다고 부터님의 진리의 말씀이나 불교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와같이 기독교의 역사적 객관적인 사실을 밝힌다고 예수님이 도달한 하느님의 박애정신 즉 무한한 사랑이 훼손된다거나 기독교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지금도 영국의 성공회라는 교회에서는 성서가 만들어질때 기록되지 못한 많은 외경 중에서 여섯편을 별도의 성서로서 참고하며 예배를보며 로마캐톨릭 바티칸 이층 도서실에서는 성서의 기록에서 다 들어오지 못한 외경들을 참고로 보며 언제고 인쇄를 별도로 할것이라고 합니다 현제 서구 선교사들에의해 많은 새로운 종파가 생겨지고 믿고 있는 기독교도들도 현제의 성서에 외경의 역사가 이단들의 소행이라고만 거부를 하지를 말고 신앙심은 고취 시키는 차원에서 역사적 사실인 초기 성경의 많은 원전들도 볼수 있는 기회기 생기면 참고 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의 기독교인들이 되기를 바라며



 특히 신을 섬기는 기독교들을 위하여 종교(宗敎)라는 말의 뜻을 모르고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다 라고 하는 무식한 소치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알려드리자면 종교(宗敎)라는 낱말 자체가 처음 쓰여진것이 불교의 수많은 경전중에서도 법화경 이라는 경전에 최초의 기록으로 쓰여집니다



 종교의 宗은 얼마되지 않은 순수한 우리말의 가장 높은 마루 즉 '산마루' 높은 산의 높은 등성이를 '마루'라고 하는 것인데 법화경에서 부처님의 높은 진리의지혜를 가리켜서 宗(마루)이요 그것을 가르키고 배운다는 교(敎)이렇게 하여 종교(宗敎)가 생겼으니 부처님의 지혜를 가르킨다 라는 종교를 들어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종교의 낱말 뜻을 모르는 무식한 웃음거리 밖에 안되는 소치인것 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기독교도 들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그들의 신 야훼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주예수 하나님 하도 갖다가 붙여서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기독교의시이 하나님이 된것 같지만 하나님이라는 말도 몇 안되는 우리말 중에서 우리 한민족의 조상 단군 할아버지를 창제한 하늘에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인 것인데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할때 그들의 신을 영어로는 God, 야훼,여호와하는것인데, 한국인들이 생활속에서 자주 어떤 급한 상황에서 찾는 것이 '아이쿠 하나님' 또는 '하느님' 하는 것에 착안하여 하나님이 야훼나 여호와 God 와 합일화 된것이지 하나님은 본래로 우리 단군조상의 하나님 또는 하느님 인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늘님에서 'ㄹ' 발음이 생략된것이 하느님이고 캐톨릭에서 삼위일체설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활용한것이 마치 기독교의 하나님이 되어버린것입니다 그러하니 유일신을 섬기는 이슬람의 알라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알라 하나님이 될것이요 중국의 옥황상제도 우리말로 번역 하면 하나님이 되며 모든 신을 자신들의 신이 유일하다는 외래종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번역을 하자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신부(神父) 신학대학(神學大學)하면서 신(神)을 사용할때 그 '신'자가 귀신'신(神)'자 이므로 우리나라 토속 민간신앙인 무속인들을 보고 샤먼이니 미신이니 비하시키는 것을 보고 당신들도 귀신을 믿으면서 왜 타종교를 미신이니 귀신을 믿느니 흉봅니까? 하면 벌컥 화를 냅니다 그래서 아니 사전에도 분명히 귀신神자이니 어디 내가 지어낸말입니까 하며 옥편을 들이대면서 당신들이 스스로 귀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종교의 신은 미신이니 귀신하는것이 어패가 있지 않습니까 하면 조용해 지더군요 그리고 귀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구제되어야 할 불쌍한 한맺힌 몸이 없는 존제이지 배척되고 버림 받아야 할존제가 아닌것입니다



 샤마니즘이란 낱말이 정령주의 인것을 바로 기독교도 들이 신을 믿는 정령주의이면서 군소종단의 신을 모시는 집단을 보고 자신들의 신만이 정통이고 타종교의 신은 미신이다 하는 것이 바로 미신인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들의 신만이 유일하다는 신의 고집으로 오늘현제 가지도 서러죽이고 살륙하고 테러하는 존제들이 바로 정령주의 자신들의 신만이 옳바른 절대의 하나밖에 없는신이다 하는 모순에서 21세기를 지난 오늘날 전세계를 매일같이 피로 더럽히면서 시오니즘을 외쳐데는데 왜 한반도의 단군자손이 중동 사막의 잡신에게 빙의되여 믿습니다 외쳐되는지 이스라엘의 조상은 참된신이며 우리를 있게 한 조상에게 하는 옳리는 예절을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외쳐대는 한국인들을 어찌해야 하는지 그들의교주 예수를 믿으면 천국가고 불신하면 지옥간다는 욕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을 욕인지도 모르고 도취되여 거리귀신들이 되여가지고 외쳐대 광신도들 자신이믿는 종단은 정통이고 타종단은 이단이라고 외쳐대는 광신도들 모두 중동사막으로 이주시켜야 옳치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던 지구상에 수많은 종교중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택하는것은 자유이나 우리말의 '얼굴'이라는 것이 우리'정신'도 한문이요 혼 '영혼' '신' '귀신' 모두 한자를 빌린 말인데 일체 한자를 빌리지 않은 우리 민족정신이 '얼'이요 그것을 담고 있는 '굴'해서 우리의 안면인 "얼굴"인 것인데 중동 사막의 다른 민족의 조상을 섬기는 "얼"빠진 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 가득차있는 제 부모와 제 조상들을 대대로 섬기는 얼굴을 찾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며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답변을 마치려다 보니 환생에대한 언급을 못해드렸군요 불교에서 윤회를 하며 환생이라는 무엇으로라도 태여난다고 하는 것은 어떤 몸으로라도 태여나서 삶을 영위할때 일어나는 모든 것이 업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업을 사람이 평생짖는 예로 들자면 몸과 입과 뜻으로 크게 10가지업을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짖다가 가는데 10업이란 ㅡ살생업 투도, 음행, 망어, 악구, 양설, 기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라는 기본으로 무수한 업을 평생 동안 알게 모르게 짖고가다가 육체의 수명이 다하면은 육체라는 물질은 흩어져 물질의 기본 요소인 115가지의 원소로 모두 분해하여 없어지지만 이 물질이 모여서 이뤄진 몸에 오관과 (눈,귀,코,혀,몸,)과 뜻(의식意識),으로 무수한 지은 업의 결과대로 다음생을 받게 되는데 이육신은 단 일회 금생으로 끝나는 것이지 이몸이 그대로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意識)과 잠재 의식을 포함 한 더구나 전생으로 부터의 모든 의식까지 합쳐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본체를 제8식 아뢰야 식장이라고 하는것인입니다



 질문자님도 금생을 살아 가다가 수명이 다하면 마음을 담고있던 이육체와 이별을 하고 나라고 고집하던 그 마음의 본체인 제8식 아뢰야 식장이라는 중음신이 49일동안의 한정된 시간에 존재를 하다가 49일이지나면 새로운 마음의 집인 마땅한 몸을 찾아 떠나는 것이데 바로 이제8식 아뢰야식으로 된 중음신은 형체가 없는 비물질인 유령체로서 새로운 몸이란 앞서 얘기한 우주법계안의 한없이 많은 세계에 무엇으로라도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몸 받았을때 업을 잘 지어야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하고 다음에 또 만나자는 등의 꿈은 바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꿈이요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대로 가는 것이니 아직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나라고 하는 존재의 밝고 좋은 삶을 원한다면 금생에 짖느대로의 결과가 미래의 내집을 짖는 즉 나의 새몸을 받는 것이니 현제 순간 순간 마다 옳바른 업을 짖는것이 다음 환생하는 나의 몸의 설계도가 되는 것 이겠지요



그래서 불자들은 열심히 살아가면서 틈틈히 집에서나 절에서나 틈나는대로 업장을 소멸하는 참회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짖게 되는 열가지업을 항상 좋은 쪽으로 짖다가 보면은 현실에서도 보다낳은 삶이 도모될 것이며 금생을 하직하고 미래에 새로이 펼쳐지는 환생의 삶도 행복이 보장되는 삶이 도래 할것 입니다 고로 나의 행복 불행은 나 이외의 누가 있어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짖는 업에 의해 좌우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날마다 좋은 업으로 좋은 날이 되여지시기를 바랍니다ㅡ


 


2)기독교의 성경이 만들어진때는 언제였나?


 


은 B.C 1,500년에서 A.D 150년까지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구약(舊約) 성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고 신약(新約) 성경은 예수(Jesus)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것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AD313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난립되어 있던 예수의 복음서들을 한권으로 만들자고 합의를본후 AD325년 2차 니케아 종교회의 에서 동로마제국의 학자들과 서로마 학자들간의 여러 부분에서 의견상충과 예수를 신의 아들로 격상 시키자는데 반대의견이 많았으나 동로마 황제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예수가 신으로 격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동로마황제 콘스탄티니우스는 오늘날의 터키이며 수도 이스탄블(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국교를 기독교로 선포한후 세력을 더욱 확장할 계획 아래 당시 그 지역과 주변이 모두 회교세력권이라 이교도들보다 강력한 세력과 기독교로 전도할 계획아래 당시 예수의 복음이 양피지두루마리로 각제자들마다 스승과 제자로 교제로 쓰여지며 AD50부터 AD150까지 만들어진 필사본의 예수의 복음이 AD313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때까지 스승과 제자들에의해 수많은 양으로 늘어나가던 복음서들을 한권의 성서로 만들라고 하는 지시가 내려지게 됩니다.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로 세력이 양분되어 있었으나 동로마황제는 서로마의 성직자들과 동로마의 성직자들을 니케아 항구도시에서 성서를 하나로 편찬하고자 서로마 성직자 들을 배를 보내어 콘스탄티노플의 니케아로 초대를하게 됩니다.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난립된 복음서를 하나로 모아 만들기로 합의를하고 AD325년에는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동로마황제는 모아진 성서의 내용을 보다더 강력하게 하기위하여 예수를 신으로 격상시키고자 동로마학자들을 조정하나 동로마의 일부학자들과 서로마 성직자들간의 대립이 팽대하여가자 황제는 성서를 한권으로 만들려는 막대한 출판자금을 대었으나 학자들간에 의견대립으로 예수를 신이냐 신의 아들이냐 또는 어떻게 인간 예수를 신으로 만드느냐는등의 이유로 논쟁이 심하여 가자 동로마황제의 명령으로 동과 서로마 모든 성직자들이 투표로서 예수가 신으로 결정이 나게됩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의 기록을 기독교의 발상지인 이태리 에서나 그외 구라파 모든 기독교를 믿는 국가들에서나 전세계 모든 기독교 학자들은 이렇게 니케아 종교회의를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 개신교 일부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니케아 종교회의 역사를 부정하고 아예 그부분은 모르는 신도들에게 언급도 하지않고 니케아 종교회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게 하는것입니다.

 

예수가 인간들의 투표로서 신으로 격상되게 된다고 기독교가 허물어지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역사는 역사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신앙은 신앙대로 더욱깊게 옳바르게 고취시킬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대다수 한국 교인들이 모르고 있는 예수의 탄생일도 알고보면 실제가 아닌 성서를 하나로 교정하여 만들게 될때 예수의 정확한 생일의 기록이 언급이 되어있지를 않아 예수의 생일을 어느날로 정할까 고심 하던중 중요한 대목이기에 콘스탄티니우스 황제에게 자문을 구하게 됩니다.

 

로마역사 에서는 조상 대대로 태양신을 모시는 민족들이였고 태양력으로12월24일이 일년중 해가가장 짧은 동지이였고 바로 그다음 날인 12월25일이 태양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지난 첫날인지라 로마인들은 태양을 맞는 축제일로 정하고 일년중 가장 큰 태양축제 일이기에 동로마 황제가 예수의 생일을 곰곰히 생각 하다가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태양 축제일에 예수의 생일을 하라고 지시를 하여 그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까지 12월25일이 크리스마스 라고 하여 많은 이들이 축하 하는 예수의 탄생일로 정하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 성경은 동로마 황제의 세력에 편승한 학자들과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13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양피지 두루마리에 예수 사망후 AD50부터 AD150에걸쳐 스승과 제자들간에 필사본으로 각 복음서들이 양이 많이 늘어나 있던시절  동로마황제의 막대한 자금의 지원아래 양피지 두루마리에 예수의 복음이 각기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던것을 한권으로 모아서 편찬을 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고

 

 325년 2차종교회의후 성서를 하나로 만들기위하여 서로마 학자들과 동로마 학자들이 모였으나 예수를 신으로 하느냐 인간 예수로 하느냐 와 그외 여러부분의 기록에 의견이 분분하여 시간이 오래걸리자 속히 한권으로 된 성서를 보고 싶어하던 황제에의해 정해진 시간을 만들어 그때까지 완결짖지않으면 엄한 처벌 명령까지 더해져 시간에 쫓기고 학자들간에 단른의견 대립으로 소위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책을 출간하는데 교정을 섬세히 하지를 못하게된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를 신의 아들이냐 아니냐에서 가장 의견 충돌이 나자 동로마 황제의 명에의해 신과 동일시 되는 예수를 투표로 하여서 결정되게 된것이 바로 325년의 제2차 종교회의 였다 그래서 예수는 처음부터 신의 아들이 아닌 동로마 황제의 힘을받은 학자들 쪽으로 결정이나자 예수를 신으로 확고히 하기 위하여 니케아 신경을 따로히 새로 제정하게 된다.

 

 니케아 신경의 핵심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는 동정녀 마리아와 본디오 빌라도에게 박해를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3일후 부활한다는 내용을 핵심의 줄거리로 간편하게 줄여서 만든것이 오늘날 예배때마다 모든 성도들에게 믿을수 없는 사실을 믿게하기 위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되뇌우고 있는 것이 바로 니케아신경의 줄여서 엑기스로 만든사도 신경이 된것입니다.

 

 그외에도 많은 제자들에의해 예수사 인간적인 역사는 모두 성서결집에서 삭제를 하게되어 현제의 성서에는 예수의 12세이후로부터 17년후인 29세에 고향에 나타날떼까지의 기록이 일체 없는것이다.바로 그기간이 예수가 당시 대상들을따라 고향을 떠나 인도로 들어가 7년간 많은 종교 철학을 섭렵했으나 만족하지를 못했고 히말라야 히미스사원 에서 10년가까이 수행을한후 고향에 돌아 오게 되는것이다.

 

2차 니케아 종교회의후 인간적인면의 기록이 실린 많은 복음은 성서에서 삭제되며 외경이라는 취급을 받게되고 예수를 신으로 추대되는 내용들로만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신으로 정해지는데 방해되는 외경으로 몰아 삭제된 것이  45권의 양피지의 두루마리의 복음서였는데 모두 삭제해 버렸다. 그중 대표적인 복음서가 도마 즉 토마스 복음서가 가장 많은 부분이 예수의 17년간의 인간적인 기록들이기에 한글자도 현제의 성서에 들어오지를 못하고 외경이라고 취급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성서를 만들때 동로마황제 명에 쫓기어 교정이 확실히 덜되게 된 것의 예가 많지만 특히 예수가 29세에 고향에 돌아와서 집에 당도하여 어머니마리아와 형제 자매들이 형님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할때 어머니인 마리아에게도 물론 2남2녀인 다섯동생들 모두 집을버리고 나오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니 예수가 13세부터 인도로 대상들을 따라 많은 학문을 7년간 섭렵하고 만족할수가 없어 히말라야 5천고지가 약간 안되는 곳에 위치한 히미스 불교 사원에 들어가서 10년간 수행을 하게된후 고향으로 돌아왔기에 불교에서 출가자들은 모두 속세의 집을 떠나는 전통을 따라 속가 집에 들어가지를 않은것입니다.

 

 예수도 고향에 돌아온 첫날부터 동생들을 향하여 모두 집을나와 자신을 따르게 한것입니다 성서에도 예수가 복음을 전하는동안 늘 동산이나 야외에서 있었지 집에들어간 기록이 없는것도 바로 출가 수행자였기 때문인것입니다.

 

 '예수가 가라사대 누가진정한 나의 형제자매이더냐 나와 진리의 형제 자매가 되려 하거든 모두 집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며 문앞에서 돌아가는 장면이 누가복음1장에 그대로 서술된것도 성서를 동로마 황제의 독촉으로 시간에 쫓기어 교정을 덜보게된 실수요 성서를 급하게 만들때 예수의기록 가장 중요한 실수는 생몰 연대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50년차이가 나는것등 입니다.

 

그외에도 잘못된것이 허다히 많지만 이러한 잘못을 따지는 사람이 못나오도록 절대 믿게하기 위하여 성서의 마자막구절인 요한계시록에 여기에 한글자를 보태거나 한들자를 삭제하는자가 나오면 영원히 꺼지지않는불에 태워 버린다는 신의저주가 내린다는 표현은 바로 상기한 내용등과 믿을수 없는 사실들을 믿게하기 위함인것입니다.

 

 신약성서의 모든 핵심이 불교 법화경과 아주 흡사한 내용이 많은데 '탕자의 비유'라든가 빵 하나로  칠백명 이상되는 수많은 이들을 먹인것' 또 예수가 물위를 걷는것등 모두 불교의 법화경의 내용보다 조금축소 된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예수가 히말라야 히미스 사원에서 10년간 불교를 수행하고 불교수행자로 돌아왔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예수는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최후의 말씀인즉 "주여 주여 정녕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간적인 술회를 한후 최후로 "엘리 엘리 나막 사막다니"(Eli Eli Sama Sabachthani)"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성서 요한시록에  기록되어있고 기록한 요한도 예수님의 숨거두기 하신이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이 히미스 사원에서 밀교승으로 산스크릿트어를 사용하여 그뜻은 '어서 어서 고통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가게하소서' 라고하는 마지막 진언을 염불하신 것입니다 .



요한 계시록의 요한도 예수의 이 마지막 말을 전해듣고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예수가12세이후 인도 전역을 거치며 많은 공부를 섭렵하다가 고향에 돌아오기 십년전 부터 불교에 심취해 히말라야에 있는 히미스사원에서 밀교 공부를 하신 까닭에 밀교의 진언 "엘리 엘리 라마 삼먁 삼보리'(Eli Eli Sama Samach Sam Bori"가 로마어로 전달되고 영어로 번역되고 여러과정을 거치며 서양 선교사들의 에 의해 번역될 때 조금씩 변형 된것이다.

 

 그뜻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절대의 피안의 경지 즉 "열반"으로 향하는 최후의 진언을 읊었는데 그소리를 직접들은 로마 병사나 전해 들은 사람들이 그뜻을 알수 있겠는가 라마승 들로 부터 배운 산스크릿트어(범어)로 읊으 셨으니 성경이 결집 될때 사도바울 AD50후부터 150년동안 여러제자 들에의해 교재용 (전도용)으로 양피지에 두루 마리로 여러곳에 산재되어 있던 것을 'AD313년1차 니케아종교회의'와 'AD325년 2차 니케아 종교 회의'후 성경이 하나로 만들어 질때

 

 당시 막대한 츨판비용(성경만드는 비용)을 댄 당시 동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의 독촉으로 시간에 쫓겨 요즘 말로 표현 하자면 교정을 덜 봤다고나 해야할까? 성경으로서 불리한 부분은 삭제가 덜된 부분 이라고 할수있는 것입니다.신약의 대부분의  전체를 불교법화경과 비교하여 서술할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상기한 몇가지만의 예를 드렸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허구투성이로 만들어진 성경만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은 없었습니다.세계 3대 유일신 종교(monotheism)인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두 구약성경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또한 성경은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많은 부수의 책이 출판 반포 되었습니다.과거 2천년동안 성경만큼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독서와 명상의 대상이 되어온 책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수가 없습니다.



성경책의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면, 구약은 본래 히브리어로 "하 세파림"(Ha Sefarim)이라고 불리었습니다.이 뜻은 단순히 "그 책들"(The Book)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이 본래 쓰였던 히브리어(Hebrew)에서 희랍어(Greek)로 번역될때, 책의 명칭도 "ta biblia" (the book)로 번역되었고, 이 이름은 라틴어(Latin)를 거쳐 영어의 "Bible"이 되었습니다.



구약이라는 말은 신약과 대칭되는 말입니다.



"구약"이라는 이름 자체는 이미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반대로 "구약"이 없이는 "신약"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말은 구약의 예언자 예례미야의 말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란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new convenant)를 세우리라"

[예레미야31:31]여기서 예례미야는 "새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새 언약"이란 곧 "신약"이라는 말입니다.그리하여 신약이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이에 대비하여 구약이라는 말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약"이라는 말은 언약 또는 계약이라는 말로 히브리어의 브리트(berith)라는 말의 번역입니다.



이 말은 본래 "계약"(covenant)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희랍어로 번역될때 diatheke라고 번역되었고, 다시 라틴어의 Testamentum을 거쳐 영어의 Testament가 되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언약 / 계약 (Old Covenant / Testment) 이요, 신약은 "새 이스라엘"과 맺으신 새 언약 / 계약 (New Covenant / Testment )입니다.



2.정경과 외경



구약은 신약과 함께 성경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약과 신약 성경책은 기독교의 정경입니다.

정경이라는 말은 영어로 Can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의 카네(qaneh)에서 나온말입니다.

"카네"란 곧은 막대기, 곧은 갈대(stick, rod, reed)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희랍어로 건너와서 Kanon이 되었고, 그 말의 뜻도 단순한 막대기라는 말에서 무엇을 재고 측량하는지, 기준 표준의 뜻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습니다.

이 말을 주후 4세기경 기독교 신학에 들어와서는 정경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정경(Canon)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이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입니다.

그러면 구약을 구성하고 있는 39권의 책들은 언제부터 정경이 되었습니까?

구약 책들중에서 "5경"(Pentateuch,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은 가장 먼저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고, (에스라시대, 주전450년경) 다음은 에언서가 정경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주전 2세기경)

마지막으로 5경과 예언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성문서)은주후 90년경, 팔레스틴의 얌니야(Jamnia)에서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그 범위가 확정되었습니다.



<얌니야는 팔레스틴 지중해 연안지역에 있던 도시로 Jabneh, Javneh, Jabneel 등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얌니야 회의"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책 이외에 희랍어로 쓰여진 종교 문헌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은 "얌니야회의"에서 정경의 범위 (39권의책)가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Hebrew Old Testament)를 일명 "팔레스틴 정경(Palestinian Can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외경(Apocrypha)이란 무엇입니까?

외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소위 "70인역"(희랍어 번역 구약성경)을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70인역"(희랍어 번역 구약성경)을 모두 다른사람들이 각기 다른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기록한것을 모아보니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모두 같았더라... 이러하니 신의 계시로 씌여진것이다 라고한 자체가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니우스의 막대한 자금과 명령을 받은 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성경을 믿게하려는 목적으로 꾸며낸 것입니다.

주전 333년 알렌산더 대왕이 페르샤 제국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고대 근동 지역은 희랍세계로 전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는 희랍어(Greek)가 고대 근동세계에의 통용어가 되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모국어인 히브리어(Hebrew)를 점차 잊게 되었고, 희랍어를 상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책들을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구약 번역작업은 주전 3세기 중엽, 당시 희랍 문명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이루어졌습니다.이렇게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을 "70인역"(Septuagint)라고 부릅니다



<"70인역"은 처음에는 5경 부분만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할때는 희랍어 번역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이름은 이것을 번여할때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6인씩 선출되어 모두 72인(어림순자로70)이 번역 했다고 해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70인이 각각 독방에서 70일만에 번역을 완성하였고, 이를 대조해보니 모든 번역이 완전히 일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승은 "70인역"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꾸며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희랍시대에 있어서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구약 이외에 많은 종교적 문헌들이 양산되었고, 또 애독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출현한 많은 종교적 저작들 중에서 "15권"의 책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본래의 구약 책들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70인역"이 완성되었을때, 이 15권의 책들도 이에 첨가되어 전체가 구약성경으로 읽혀지게 되었습니다.



즉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 (Greek Old Testament)은 "70인역" 번역부분에 15권의 책을 첨부하여 (70인역+15권)이 모두를 합쳐서 "구약성경"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5권이 포함된 희랍어 구약성경을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 Canon)이라고 부릅니다.



"얌니야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15권의 책들은 정경으로써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것입니다.



따라서 Palestinan Canon의 입장에서는 이 15권의 책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됩니다.



"얌니야 회의"이후부터 구약 성경의 정경(Canon)은 두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15권을 제외시키는 Palestinan Canon과 15권의 책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 전승, 즉 Alexandrian Canon입니다.



15권의 책 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토비트 (Tobit = Tobias)

유디트 (Judith)

솔로몬의지혜 (Wisdom of Solomon)

바룩 (Baruch)

예레미야의 편지 (The Letter of Jeremiah)

마카비서 상 (1 Maccabees)

마카비서 하 (2 Maccabees)

수산나 (Susanna)

세 청년의 노래 (The Song of Three Young Men)

벨과 용(뱀) (Bel and Dragon)

에스더 속편 (Additition to Esther)

벤시락 또는 집회서 (Ben Sirach, Ecclesiasticus)

에스드라스 상 ( 1 Esdras)

에스드라스 하 ( 2 Esdras)

므낫세의 기도 (The Prayer of Manasseh)



위에서 언급한 "얌니야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15권의 책들은 정경으로써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것이었습니다.

따라서 Palestinan Canon의 입장에서는 이 15권의 책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됩니다.



"얌니야회의"이후부터 구약성경의 정경(Canon)은 두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15권을 제외시키는 Palestinian Canon과 15권의 책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전승, 즉 Alexandrian Canon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기독교회에서는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었습니다

당시 희랍어가 당시의 공용어였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교회는 구약 정경에 있어서 Alexandrian Canon 전통을 채택한 것이고, 이것은 로마 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서 계속되어 유지되어 내려왔습니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는 Alexandrian Canon 전승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구약의 전경의 전승



Palestinian Canon

1>언어:히브리어(Hebrew)

2>15권의 책은 외경으로 정경에서 제외됨

3>유대인들과 개신교 교회(Protestant)의 정경전승 [개신교]



Alexandrian Canon

1>언어:히랍어(Greek)

2>15권의 책도 정경에 포함된다

3>초대교회, 로마 카톨릭교회 정경전승[카톨릭]



이러한 기독교의 정경 전승은 마틴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루터나 칼빈은 정경문제에 관해서 Palestinian Canon의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5권의 책을 외경으로써 제외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Protestant에서는 외경을 제외한 39권의 책만을 구약의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틴루터와 동시대의 종교개혁가 칼빈(John Calvin)도 정경문제에 관해서 같은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루터는 15권의 책을 외경으로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한편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트 종교회의 (Trent Council 1545-1563)가 소집되었고, 여기서 정경문제에 관해서는 종래의 Alexandrian Canon의 기본입장을 재확인 하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항은 카톨릭은 15권의 책 가운데서 3권의 책 에스드라스 상 하 (1 2 Esdras)와 므낫세의 기도 (The Prayer of Manasseh)를 제외시켰습니다.



그결과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외경은 Alexandrian Canon의 15권이 아닌 12권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회의 3대 주류가운데 하나인 희랍정교회 (Geek Orthodox Church)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같이 Alexandrian Canon전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것은 1672년 예루살렘회의 (Jerusalem Synod)에서 희랍정교회는 바룩(Baruch)과 예레미야의 편지(The Letter of Jermiah)두권의 책을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신약에는 구약성경의 구절들에 대해서 263번의 직접적인 인용이 있으며, 370번의 간접적인 인용이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단 한 번도 외경을 인용하지 않으셨으며, 예수님께서직접 밝히신 구약의 기준에서도 제외되는 것입니다(마23:35). 구약외경은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시락)등과 같은 교훈서, 토빗, 유디스 등과 같은 종교소설, 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 등과 같은 역사서, 바룩, 에레미야의 서신, 에스드라 2서와 같은 예언서, 에스더 첨가, 아사랴의 기도(또는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등과 같은 전설 등 15권이 있습니다.



초기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Against Apion, Book I, sec. 8) 그의 당대에 외경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배제한 채 성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신약에 대한 정경은 같습니다.



문제되는 것은 구약의 정경입니다. 39권이냐 46권이냐입니다.



마태복음 23:34,35을 통해 볼 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창세기에서 역대기하(당시의 성경 배열 순서는 창세기가 처음이었고, 역대기하가 구약의 마지막 책이었음)까지를 확증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아벨에서부터 성전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카랴까지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외경에 대해서는 언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가하신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 한 차례도 외경을 인용하신 것은 고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은 263 차례나 직접 인용하였으며, 간접 인용하신 것은 370여 차례나 됩니다. 외경의 책들은 소실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버림받은 책이었습니다.



외경의 가르침



마카비 2서( 2 Maccabees) 12장에서 우리는 유다 마카비(Judas the Maccabean)가 기도회를 연 후 율법에서 금하는 바, 우상을 부적으로 지닌 채 전사한 자들의 죄가 용서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과 또한 그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에 쓰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모금하였다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 책의 저자에 따르면, 마카비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속죄 제물을 바친 것은 영생 및 그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확신이 어디서 온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죽은 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항상 그러한 구절들을 원용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구절들을 대할때마다, 어째서 로마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 삽입시키려는 일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는지를 쉽게 납득할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외경에서 농부, 기술자, 대장장이, 옹기장이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경 학자가 될수 없다는 부분(집회서:Ecclesiasticus 또는 Sirach 38:24~34)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써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제까지 논거한 대로 그 가르침의 대부분이 성경적이지 않으며 기괴하고 허황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외경이 전혀 쓸데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로 오늘날의 성경책은 동로마 황제의 힘에의해 막대한 자금을 받은 당대 학자들이 필사본으로 양피지 두루마리로 전해오져 오던 것을 예수를 신으로 부합시키는데 유리한것을 모으고 예수의 인간적인 면이 나오게 되는 토마전서등 상기한 외경이라고 삭제하게된 복음들을 모두 성경에 넣지를 않고 동로마 황제의 독촉에 쫓기던 학자들이 성경을 소위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출판을 하는데 교정을 섬세하게 보지를 않았기에 예수의 13세이후부터 고향에 돌아오는29세까지의 기록이 아무런 설명없이 통체로 빠지게 된것이다.



 

동로마 황제는 제국을 코스탄티노풀에 도읍을하고 세력을 확장해나가는데 자신이 예수의 복음에 심취도하였지만 주변 이교도들의 세력을 누루고 제국을 통치하는데 구심점으로 힘을 모으기위하여 성경책을 만드는데 자금과 세력모두를 활용한덕에 오늘날의 성서가 탄생하게된것이다.

 

모든 기독교도들이 예배때마다 신앙을 고취시키기위해 외우게되는 기도문 사도신경도 동로마 황제가 제2차 니케아종교회의를 주최하고 투표로서 예수를 신으로 부합시킨후 믿을수 없는 것을 믿게하기위하여 니케아 신경을 만들게 하였는데 바로 AD325년 회의후 만들어진 "니케아신경"에서 핵심적인것을 축소하여 만들어진것이 오늘날 모든 기독교도들이 신앙심을 고취시키게 되는 사도신경인것입니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과 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똑같다는것은 믿을수 없는 사실을 믿게하기위한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지금의 성경은 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예수의 기록은 마가복음(A.D 60년대), 누가복음(A.D 80년대), 마태복음(A.D 85년대), 요한복음(A.D 100년대)이 전부이다. 지금과 같은 신약성서는 여러번의 공의회에서 주교와 장로들의 동의를 거쳐 성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그외의 교회의 신성을 모독하거나 교회의 이익을 크게 해친다는 이유로 누락시킨 것은 “외경(外經)”이라하여 구분했다.







복음서는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복음의 네 권을 말하고,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서기 60년경 희랍과 로마인을 상대로 로마에서 씌여진 책이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거나 진압되어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씌여진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기 80년경 희랍인 의사였던 누가(Luke)가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 시자리아(Caesarea)에서 로마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마태복음은 서기 85년경 희랍어로 희랍풍으로 씌여졌지만, 절반 이상이 마가복음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마태는 팔레스타인 출신 피난민인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예수의 제자 마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경 에페수(Ephesus)라는 한 희랍의 도시에서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썼다는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


성경은 B.C 1,500년에서 A.D 100년까지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구약(舊約) 성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고 신약(新約) 성경은 예수(Jesus)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신의 아들로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AD313부터~AD325이후 몇년)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동로마 황제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13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특히 12세이후 13세에 고향을떠나 대상들을 따라서 인도로들어가서 약7년간 무수한 종교철학을 섭렵하고 10년간은 히말라야의 히미스 사원에서 불교중에서도 밀교를 수행한고 고향돌아오기 직전까지의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과 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똑같다는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지금의 성경은 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예수의 기록은 마가복음(A.D 60년대), 누가복음(A.D 80년대), 마태복음(A.D 85년대), 요한복음(A.D 100년대)이 전부이다. 지금과 같은 신약성서는 여러번의 공의회에서 주교와 장로들의 동의를 거쳐 성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그외의 교회의 신성을 모독하거나 교회의 이익을 크게 해친다는 이유로 누락시킨 것은 “외경(外經)”이라하여 구분했다.





복음서는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복음의 네 권을 말하고,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서기 60년경 희랍과 로마인을 상대로 로마에서 씌여진 책이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거나 진압되어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씌여진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기 80년경 희랍인 의사였던 누가(Luke)가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 시자리아(Caesarea)에서 로마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마태복음은 서기 85년경 희랍어로 희랍풍으로 씌여졌지만, 절반 이상이 마가복음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마태는 팔레스타인 출신 피난민인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예수의 제자 마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경 에페수(Ephesus)라는 한 희랍의 도시에서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썼다는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

 





성경책의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면, 구약은 본래 히브리어로 "하 세파림"(Ha Sefarim)이라고 불리었습니다.이 뜻은 단순히 "그 책들"(The Book)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이 본래 쓰였던 히브리어(Hebrew)에서 희랍어(Greek)로 번역될때, 책의 명칭도 "ta biblia" (the book)로 번역되었고, 이 이름은 라틴어(Latin)를 거쳐 영어의 "Bible"이 되었습니다.



구약이라는 말은 신약과 대칭되는 말입니다.



"구약"이라는 이름 자체는 이미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반대로 "구약"이 없이는 "신약"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말은 구약의 예언자 예례미야의 말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란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new convenant)를 세우리라"

[예레미야31:31]

여기서 예례미야는 "새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새 언약"이란 곧 "신약"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신약이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이에 대비하여 구약이라는 말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약"이라는 말은 언약 또는 계약이라는 말로 히브리어의 브리트(berith)라는 말의 번역입니다.



이 말은 본래 "계약"(covenant)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희랍어로 번역될때 diatheke라고 번역되었고, 다시 라틴어의 Testamentum을 거쳐 영어의 Testament가 되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언약 / 계약 (Old Covenant / Testment) 이요, 신약은 "새 이스라엘"과 맺으신 새 언약 / 계약 (New Covenant / Testment )입니다.



2.정경과 외경



구약은 신약과 함께 성경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약과 신약 성경책은 기독교의 정경입니다.

정경이라는 말은 영어로 Can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의 카네(qaneh)에서 나온말입니다.

"카네"란 곧은 막대기, 곧은 갈대(stick, rod, reed)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희랍어로 건너와서 Kanon이 되었고, 그 말의 뜻도 단순한 막대기라는 말에서 무엇을 재고 측?求쩝? 기준 표준의 뜻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습니다.

이 말을 주후 4세기경 기독교 신학에 들어와서는 정경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정경(Canon)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이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입니다. 그러면 구약을 구성하고 있는 39권의 책들은 언제부터 정경이 되었습니까?

구약 책들중에서 "5경"(Pentateuch,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은 가장 먼저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고, (에스라시대, 주전450년경) 다음은 에언서가 정경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주전 2세기경)


마지막으로 5경과 예언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성문서)은주후 90년경, 팔레스틴의 얌니야(Jamnia)에서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그 범위가 확정되었습니다.

<얌니야는 팔레스틴 지중해 연안지역에 있던 도시로 Jabneh, Javneh, Jabneel 등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얌니야 회의"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책 이외에 희랍어로 쓰여진 종교 문헌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은 "얌니야회의"에서 정경의 범위 (39권의책)가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Hebrew Old Testament)를 일명 "팔레스틴 정경(Palestinian Can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외경(Apocrypha)이란 무엇입니까?

외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소위 "70인역"(희랍어 번역 구약성경)을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70인역"(희랍어 번역 구약성경)을 모두 다른사람들이 각기 다른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기록한것을 모아보니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모두 같았더라... 이러하니 신의 계시로 씌여진것이다. 라고한 자체가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니우스의 막대한 자금과 명령을 받은 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성경을 믿게하려는 목적으로 꾸며낸 것입니다.


주전 333년 알렌산더 대왕이 페르샤 제국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고대 근동 지역은 희랍세계로 전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는 희랍어(Greek)가 고대 근동세계에의 통용어가 되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모국어인 히브리어(Hebrew)를 점차 잊게 되었고, 희랍어를 상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책들을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구약 번역작업은 주전 3세기 중엽, 당시 희랍 문명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이루어졌습니다.이렇게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을 "70인역"(Septuagint)라고 부릅니다



<"70인역"은 처음에는 5경 부분만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할때는 희랍어 번역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이름은 이것을 번여할때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6인씩 선출되어 모두 72인(어림순자로70)이 번역 했다고 해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70인이 각각 독방에서 70일만에 번역을 완성하였고, 이를 대조해보니 모든 번역이 완전히 일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승은 "70인역"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희랍시대에 있어서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구약 이외에 많은 종교적 문헌들이 양산되었고, 또 애독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출현한 많은 종교적 저작들 중에서 "15권"의 책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본래의 구약 책들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70인역"이 완성되었을때, 이 15권의 책들도 이에 첨가되어 전체가 구약성경으로 읽혀지게 되었습니다.

즉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 (Greek Old Testament)은 "70인역" 번역부분에 15권의 책을 첨부하여 (70인역+15권)이 모두를 합쳐서 "구약성경"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5권이 포함된 희랍어 구약성경을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 Canon)이라고 부릅니다.

"얌니야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15권의 책들은 정경으로써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것입니다.



따라서 Palestinan Canon의 입장에서는 이 15권의 책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됩니다.



"얌니야 회의"이후부터 구약 성경의 정경(Canon)은 두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15권을 제외시키는 Palestinan Canon과 15권의 책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 전승, 즉 Alexandrian Canon입니다.



15권의 책 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토비트 (Tobit = Tobias)

유디트 (Judith)

솔로몬의지혜 (Wisdom of Solomon)

바룩 (Baruch)

예레미야의 편지 (The Letter of Jeremiah)

마카비서 상 (1 Maccabees)

마카비서 하 (2 Maccabees)

수산나 (Susanna)

세 청년의 노래 (The Song of Three Young Men)

벨과 용(뱀) (Bel and Dragon)

에스더 속편 (Additition to Esther)

벤시락 또는 집회서 (Ben Sirach, Ecclesiasticus)

에스드라스 상 ( 1 Esdras)

에스드라스 하 ( 2 Esdras)

므낫세의 기도 (The Prayer of Manasseh)



위에서 언급한 "얌니야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15권의 책들은 정경으로써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것이었습니다.

따라서 Palestinan Canon의 입장에서는 이 15권의 책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됩니다.



"얌니야회의"이후부터 구약성경의 정경(Canon)은 두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15권을 제외시키는 Palestinian Canon과 15권의 책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전승, 즉 Alexandrian Canon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기독교회에서는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었습니다

당시 희랍어가 당시의 공용어였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교회는 구약 정경에 있어서 Alexandrian Canon 전통을 채택한 것이고, 이것은 로마 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서 계속되어 유지되어 내려왔습니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는 Alexandrian Canon 전승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구약의 전경의 전승



Palestinian Canon

1>언어:히브리어(Hebrew)

2>15권의 책은 외경으로 정경에서 제외됨

3>유대인들과 개신교 교회(Protestant)의 정경전승 [개신교]



Alexandrian Canon

1>언어:히랍어(Greek)

2>15권의 책도 정경에 포함된다

3>초대교회, 로마 카톨릭교회 정경전승[카톨릭]



이러한 기독교의 정경 전승은 마틴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루터나 칼빈은 정경문제에 관해서 Palestinian Canon의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5권의 책을 외경으로써 제외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Protestant에서는 외경을 제외한 39권의 책만을 구약의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틴루터와 동시대의 종교개혁가 칼빈(John Calvin)도 정경문제에 관해서 같은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루터는 15권의 책을 외경으로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한편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트 종교회의 (Trent Council 1545-1563)가 소집되었고, 여기서 정경문제에 관해서는 종래의 Alexandrian Canon의 기본입장을 재확인 하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항은 카톨릭은 15권의 책 가운데서 3권의 책 에스드라스 상 하 (1 2 Esdras)와 므낫세의 기도 (The Prayer of Manasseh)를 제외시켰습니다.



그결과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외경은 Alexandrian Canon의 15권이 아닌 12권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회의 3대 주류가운데 하나인 희랍정교회 (Geek Orthodox Church)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같이 Alexandrian Canon전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것은 1672년 예루살렘회의 (Jerusalem Synod)에서 희랍정교회는 바룩(Baruch)과 예레미야의 편지(The Letter of Jermiah)두권의 책을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신약에는 구약성경의 구절들에 대해서 263번의 직접적인 인용이 있으며, 370번의 간접적인 인용이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단 한 번도 외경을 인용하지 않으셨으며, 예수님께서직접 밝히신 구약의 기준에서도 제외되는 것입니다(마23:35).


 


구약외경은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시락)등과 같은 교훈서, 토빗, 유디스 등과 같은 종교소설, 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 등과 같은 역사서, 바룩, 에레미야의 서신, 에스드라 2서와 같은 예언서, 에스더 첨가, 아사랴의 기도(또는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등과 같은 전설 등 15권이 있습니다.



초기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Against Apion, Book I, sec. 8) 그의 당대에 외경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배제한 채 성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신약에 대한 정경은 같습니다.



문제되는 것은 구약의 정경입니다. 39권이냐 46권이냐입니다.



마태복음 23:34,35을 통해 볼 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창세기에서 역대기하(당시의 성경 배열 순서는 창세기가 처음이었고, 역대기하가 구약의 마지막 책이었음)까지를 확증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아벨에서부터 성전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카랴까지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외경에 대해서는 언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가하신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 한 차례도 외경을 인용하신 것은 고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은 263 차례나 직접 인용하였으며, 간접 인용하신 것은 370여 차례나 됩니다. 외경의 책들은 소실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버림받은 책이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성경은 언제 만들어졌나? 에 대한답을 간추려 간단히 말한다면 오늘날의 터키지역을 강점하고 국교를 기독교로 선포한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니우스 대제에의해 AD313년 부터 AD325년 동안 서로마와 동로마 학자들이 AD50년부터 사도바울에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예수의 복음서와 그외의 제자들에의해 150년간 양피지두루마리에 만들어지고 계속하여 스승과제자들로 이여지면서 더욱많은 양의 필사본의 복음서들이 많은양으로 늘어나면서 난립하게된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예수의 복음을 당시 동로마지역이 이교도들의 지역인지라 제국팽창과 강한 기독교국가로서의 위상으로 그지역외에 주변의 이교도들을 전더더하고 지배하기위하며 종이가 없던시절 양피지에 필사본으로 하나의 성경을 만들도록 지시한 AD325년임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직후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출처 : 종교교재 출판 위원회[성서와기독교] 참조 서술





                   


 


'기독'(基督)의 어원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Χριστ?ς'(Christos) 의 중국어 음역으로서,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문화의 중심이라는 대단한 자긍심의 발로로 인하여 어느나라 언어도 받아들일때 뜻번역을 하지를않고 그들의 발음 나는대로 소리 대로의 음역을 하는 관습대로 그리스토라는 원발음의 가장근사치 한자가 基督'기독'이 된것 입니다. 현재의 중국어 발음으로는 '지두'이지만 구개음화하기 전의 옛 발음은 '기도' 또는 '기독'에 가깝다. 중국 청 제국 시대에 만주족이 '기'의 발음을 '지'로 변화시킨 것이 영향을 끼쳐 현재의 발음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Χριστ?ς'(Christos) 의 중국어 음역으로서, 한문자가 가진뜻과는 아무상관이 없고 외래어를 오로지 소리나는 대로 음역하는 중국인들의 관습대로 한자가 크리스토스에 가장 가까이 발음되는 것으로써 현재의 중국어 발음으로는 '지두'이지만 구개음화하기 전의 옛 발음은 '기도' 또는 '기독'에 가깝다. 중국 청 제국 시대에 만주족이 '기'의 발음을 '지'로 변화시킨 것이 영향을 끼쳐 현재의 발음이 되었다고 하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의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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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2014-07-10 18:01:58
답글

http://www.youtube.com/watch?v=7aauXxuLHnQ&list=PLRSFoaGRZQtK3BXu_beI4vHP6_d5cTtDT&index=8

http://www.youtube.com/watch?v=UarQXlweIFk&list=PLRSFoaGRZQtK3BXu_beI4vHP6_d5cTtDT&index=5

Tomb of Jesus - kashmir... 캐시미르에 있는 예수님 무덤

--------- 동영상을 못올리겠네요.. 바뀌었나~~ ?
영어라 잘모르겠지만,, 어쨌든 무덤이 나옵니다..

기분이..... 좀 이상해집니다...

translator@hanafos.com 2014-07-10 18:44:32
답글

이 글의 원본인 "예수의 잃어버린 17년 세월" 제가 1986년에 번역했던 책입니다.

동국출판사 윤청광 사장님(세태풍자 프로로 꽤나 유명했던 오발탄 작가)에게서 의뢰를 받아 번역했었는데
충북대 영문과 모 교수가 제 번역서를 거의 그대로 베껴 다른 출판사에서 내는 바람에
(당시는 저작권법이 없던 시절이어서 해적판들이 횡행했음) 손해배상 소송까지 벌어졌었지요.

nuni1004@hanmail.net 2014-07-11 01:26:55
답글

예수가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고있다는 불교사상을 전파하면서 사람들에게 의술과 지혜를 베풀었는데...

그걸 로마제국이 악용해서, 권력유지를 위한 종교적 기반으로 활용한것이군요...

예수 당시의 사회상은, 조금만 병이 있어도 전염의 위험때문에 사막으로 내쫓아 버려 죽게 되는데, 예수가 그때 나서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니, 그야말로 구세주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당시에는 감염증이 가장 인류를 위협하는 병이였고, 사막의 특성상 한번 감염되면 다리가 썩어 앉은뱅이가 되거나, 눈이 감염되면 장님이될 위기에 처하거나 했을때,

예수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약초같은것을 처방해서 낫게 해주니까,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뜨는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과거시절에는 어디 다치면 무당이나 잡신주술사 불러다가 의식이나 치루면서 환자는 아무 치료없이 그대로 죽이는일이 대다수였습니다...(그런면에서 우리나라 동의보감이 그토록 가치가 있는 것일겁니다.)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의학이라는 진리를 사용하여서 사람들을 구원한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일부 개신교인들은 그 말을 오해하여서, 교회만 가면 병이 나을수있다고 혹세무민을 하고, 병이낫는 쑈도 하고 등등 많이 하는데...

참으로 진리를 강조하신 예수님이 당시의 백성들을 의학으로 구한 진리자체를 모조리 부정하는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새들은 모두 천국에 가겠구나 라는 비유는, 유명한 부처님의 일화중에 같은게 있죠...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는데

" 겐지즈강의 물을 마시거나 씻으면 죄가 씻어지고 천국에 갈수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그말이 사실이라면 겐지즈강의 물고기들이 모두 천국에 가겠구나.." 라고 하셨지요,,,,

nuni1004@hanmail.net 2014-07-11 01:29:17
답글

아마 요즘에도 서구문화권에서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하는것을 참으로 어렵게 생각하고, 겨우 요즘에 와서야 불교가 서구권에 퍼지기 시작하는데요...

아마 2000년전에 불교사상을 서구권에 퍼트리려는 예수님의 계획은 참으로 어려운일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가떼가떼 바라 가떼 바라 쌍가떼 보디 스바하~~"

이와 거의 같은 뜻의 말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셨다니,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달마조사는 인도인으로 중국에 가서 중국불교를 융성케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중국에는 이미 공사상과 비슷한 수준의 사상을 논하는 사상적 첨단을 걷는 여러 문명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지만,

예수님이 서구에 가서 당시 했던 일들은, 서구에서는 인문학이라는것이 동양보다는 매우 늦게 발달한 경향이 있었으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였을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은 너무 어렵다보니 그것이 개신교라는 너무도 많이 달라진 형태로 2000년후에 우리나라에 다시 유입되어,

그의 근본사상이였던 불교를 마귀라고하고, 최근에는 부처님의 수행지에 가서 땅밟기등을 하는등의 만행을 하고있으니, 인간의 무지라는것이 얼마나 무서우며, 부처님과 예수님이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신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nuni1004@hanmail.net 2014-07-11 14:01:09
답글

우리나라에서 과거 조선이 개국될때, 기존 고려시대의 불교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뒷받침 하기가 불가능하기에, 불교를 억제하고 심지어 승려들을 천민으로 전락시키며 매우 탄압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강력한 왕권을 뒷받침할수있는 유교를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것이 로마에서도 일어났군요, 불교를 서구에 퍼트리려는 예수의 일대기를 활용하고, 각종 서구의 신화를 짜집기해서, 예수를 왕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종교를 로마황제의 명령에 의해 창립하고 이것을 통하여, 절대권력을 정당화 하려는 것인데...

로마제국은 대중의 호감을 사던 예수라는 승려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후에, 그의 업적을 교묘히 활용하여 대중의 호감도 얻을뿐더러, 절대 통치자의 권위까지 높이는 유일신교를 창립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완전히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 이상의 계략에 성공한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도 불교는 외부적으로는 탄압되었지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지은 부처님의 일생을 다룬 일대기인 석보상절이나 월인천강지곡 등은 당시 불심으로 가득한 대중을 달래는데 쓰인것을 보면, 로마제국이 예수의 일대기를 자신들이 개발한 유일신 종교의 뼈대로 세운것처럼, 비슷한 대중 유화책을 펼치고 있지요...

반면에 불교는 위와같은 인간의 역사와는 별개로 진리 자체를 탐구하는 종교이며, 절대통치 왕권을 가진 자들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종교이지요...

유교나, 기독교처럼 왕을 섬기라는 메세지를 종교를 통하여 자꾸 세뇌시켜야, 자신들이 통치하기가 쉬운데, 불교처럼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주면 통치자 입장에서는 매우 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많은 전쟁과 학살을 벌인것은 결국은 그 태생자체에 불합리함이 있어서, 권력층에 이용당하여 그 앞잡이로 활용되는 종교였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생각할수있습니다.

고대시대에 부족국가들이 통일되어 단일 왕권을 가진 국가로 성장하면서,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통합입니다. 통합은 남의것도 내것으로 빼앗아 통합하여야 하는데, 그런 정신적인 배경을 기독교가 아주 잘 뒷받침 해주고 있지요...


이렇듯 종교는 사회적인 흐름과 벗어나기 힘들고 권력층에 악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그 사회와 역사와 한 세트로 가서, 사회를 유지 통치하는데 이용되는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종교가 진정한 구원을 주는 종교는 드물다고 볼수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불교라는 종교의 비폭력사상과,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수있다는 만민평등 사상과, 진리에 대한 진실한 탐구는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을 줄수있는 거의 유일한 종교의 형태로서, 참으로 위대하다고 아니할수 없습니다.

nuni1004@hanmail.net 2014-07-11 14:32:09
답글

마무리 하자면,

무조건 자신위주의 통합만을 외치는 개신교등의 세력은 미래로 갈수록 점점 그 입지가 줄어들것입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토지점령 전쟁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는 가고, 각 개별 국가별로 안정된 통치를 하며
글로벌화된 경제체제로 세상이 운용되는 마당에...

유일신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타 종교를 마귀로 규정하고 죽이려고 덤벼드는 종교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또한 살아남으려면 천주교와 같이, 타 종교도 함께 인정하며, 모두 공존 공생하는것을 목표로 하는 그러한 긍정적인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며,

최근에 실제로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천주교로 이동하는 현상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불교는 그 입지가 점점 강화될것입니다. 타인을 죽여서 내 종으로 만드는 시대가

이미 지나버린 세상에서, 함께 살려면 불교와같은 타인을 인정하고, 공존공생에 유리하며, 만민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고등종교 사상이 필요한 시대가 왔으며,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사람들의 학력 및 지식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불교같은 고등사상도 어느정도 대중이 받아들일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가떼가떼 바라 가떼 바라 쌍가떼 보디 스바하~~

김재용 2014-07-12 10:13:20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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