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부(?) 개신교인들이 불교 성지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그것을 지적한 승려에게 오히려 저주를 퍼부었다는 이야기가 뉴스로 보도되면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셨죠.
이런 사건이 사실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고가 터질 때마다 몇몇 개신교인들은 일부(?) 광신도들의 문제로 폄하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수십 년 동안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살아오던 제가 무신론자로 돌아서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던 [신 벗어던지기]라는 책에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돌직구로 적혀있습니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땅 밟기'라는 것이 과연 일부의 문제인지, 아니면 개신교라는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인지 잘 알 수 있는 내용이라 글이 길지만 다 타이핑해서 옮겨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엔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어.
기독교인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사찰에 들어가 ‘하나님에 의해 이 땅은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라고 예배 드리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지.
동영상 속의 젊은이들이 “우상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라고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더라고.
이 동영상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당사자들이 봉은사에 찾아가 사과했지만, 난 그들이 진정으로 사과했다고 생각지 않아.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사과를 했을 뿐이라고 보거든.
‘땅 밟기’는 성경에 기록된 야훼의 명령이자, 다른 민족과 종교를 향한 기독교의 폭력적인 점령 방법이야.
「여호수아」 6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5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으로 향할 때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쓰지 않았어.
야훼의 명령대로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씩 성벽을 돌았을 뿐이지.
그리고 일곱째 날에 성벽을 일곱 번 돌고 큰 함성을 외치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게 「여호수아」 6장의 내용이야.
그 후 유대인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성 안의 모든 생명을 죽이지.
즉 땅 밟기는 기독교에서 야훼를 믿지 않는 자들을 상대하는 지극히 폭력적인 점령 방식이야.
땅 밟기의 효력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었어.
「신명기」 11장을 봐.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여호수아」 14장에도 땅 밟기의 효력이 나와.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인은 드러내놓고 선교 활동을 벌일 수 없는 지역에 가서 땅 밟기를 실행에 옮기는 거야.
봉은사 사건 전에도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지.
기독교인이 2004년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벌인 ‘평화 행진’도 땅 밟기를 실천한 거야.
2006년엔 한국 선교팀이 이란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주변을 여러 차례 돌다가 현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지.
그 외에도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나라의 웬만한 사찰에선 기독교인이 벌이는 불상 훼손, 탱화 찢기, 방화, 땅 밟기 등 해코지를 당해보지 않은 곳이 드물다고.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독교인이 ‘그건 일부 광신도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선을 긋는 건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물의를 일으키는 건 결코 일부 기독교인이 아니야.
적어도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땅 밟기든, 동성애자에 대한 핍박이든 신실한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이거든.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을 찍은 사람들은 찬양인도자학교라는 단체에서 교육을 받던 사람들이야.
그 단체는 각 교회의 예배 인도자를 모아놓고 훈련하는 곳인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천 군데 교회에 속한 예배 인도자를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어.
실제로 찬양인도자학교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지.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중소 교회에서 온 그 교회의 VIP(Very Important Person)입니다. 그들은 교회 내 핵심 사역 부서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각 교회의 핵심 사역 부서에 속한 리더들을 향해 일부(?) 광신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경멸하는 광고를 실은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을 이끄는 사람들은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소속된 목사와 기독교인이야.
기독교인도 차마 한기총을 일부 광신도의 집단이라고 말하진 못할 거야.
한기총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우리나라 기독교 주류 교단이 대부분 속한 단체지.
그런 단체에 소속된 목사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차별적인 시선으로 광고를 싣는 게 과연 일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야.
‘일부’가 대다수라는 게 엄연한 현실이잖아.
다른 종교와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목사가 몇 명이나 될까?
밖으로는 쉬쉬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다른 종교를 향해 어서 저 사탄의 세력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대다수 교인과 목사들이잖아.
그걸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숨기려 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서글프지 않아?
이렇게 조목조목 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열거해도 종교는 개인의 신념이니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이기적인 태도야.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른 카스트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계급이 정해지고, 그것을 운명으로 여기며 살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반발을 종교의 이름으로 억누르는 서글픈 예라고 할 수 있지.
기독교인은 신분제도를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도인을 보며 힌두교의 불합리함과 차별을 비판해.
그런데 내가 기독교의 야훼를 비판하는 이유도 힌두교의 카스트를 바라보는 시각과 똑같아.
앞에서 내가 야훼는 결코 이 땅에서 공의를 드러낸 적이 없다고 얘기한 거 기억해?
지금 이 시간에도 독재자가 판치고 인종 학살이 일어나며, 기득권층이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공의롭지 못한 세상을 보란 말이야.
기독교인은 신의 공의로움은 죽음 이후의 심판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하겠지만,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해봐.
자신이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이번 생에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것이라 믿는 힌두교나, 심판은 죽음 이후에 있는 거니까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죄악에 대해선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고 가르치는 기독교, 이 두 가지 종교의 가르침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에 있어서 다른 점이 얼마나 있을까?
인정하기 싫겠지만 공의롭다는 야훼의 가르침은 기독교인이 비판하는 힌두교의 카스트와 전혀 다르지 않아.
현실 세계의 삶이 억울하고 불합리하더라도 죽음 이후의 심판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라는 가르침은 양쪽 모두 똑같단 말이야.
재물과 권력욕에 찌든 종교라 할지라도 제대로 개혁된다면 나눔과 구제를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도 종교의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볼 때 그건 큰 오해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회 소외층을 위한 구제와 나눔은 교회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걸 종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기대하는 순간, 정부 차원에서 복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은 미뤄진다고.
종교단체가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
그렇다고 해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유와 인본주의를 죄악시하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영화 ‘아바타’가 한창 흥행할 때 일부(?) 교회에서는 교인에게 그 영화를 관람하지 못하도록 했어.
‘아바타’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공격하는 범신론을 담은 사탄의 의도라고 겁을 준 거지.
영화 한 편 보는데도 죄책감을 갖게 하는 종교가 인간에게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난 종교가 심어주는 그런 죄책감과 자기 검열이 인간의 자유와 인권,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해.
종교가 차별과 편 가르기, 전쟁을 부추긴다는 말이야.
사람마다 좋고 싫은 것이 있을 수는 있어.
하지만 내가 꼴 보기 싫다고 해서 그것이 죄악은 아니잖아.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얼마 전만 해도 동성동본의 결혼이 위법이었지만, 현재는 합법으로 바뀌었지.
그런데 지금도 성균관이나 유교를 떠받드는 사람들 중엔 동성동본의 결혼을 짐승만도 못한 짓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 글을 읽는 기독교인 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동성동본인데, 가족이 당신을 짐승만도 못한 사람 취급하고 절대로 결혼을 못 하게 반대한다면 뭐라고 할 거야?
흑인은 인간의 말을 하는 짐승이라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어.
그 시대의 가치관에선 흑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고,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
흑인에 대한 차별, 동성동본 금혼법,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범법자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니라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시야가 과연 어디서 기인했는지 특히 종교인은 한번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어.
종교가 현실 사회의 괴로움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인도의 최하층 불가촉천민도 힌두교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시궁창 같은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더러운 자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게 자신이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런 불가촉천민을 보고도 힌두교가 소외된 사람들의 버팀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 자체를 꺾는 게 종교의 순기능인지 생각해보라고.
삶의 버팀목이 현실에 눈감고 체념하도록 하는 건 아니잖아.
성경을 당시 역사와 주위 환경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는 건 기독교인도 동의할 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봐.
역사를 통해 성경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전이었는지 생각해보란 말이야.
죽음 이후의 심판을 기대하며 현실을 견디게(체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힌두교는 기득권층의 이득을 대변하기 위한 종교였다고.
야훼를 믿는 종교의 핵심은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신이 자기만족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인본주의를 얘기하는 건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죄악이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신을 위해 현실 세계의 인간이 희생해야 한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서글픈 일이야.
왜 인본주의가 죄악이라고 가르치는 종교에 심취해야 할까?
인간이 신을 위한 기쁨조라는 게 감사할 일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거든.
릭 워런 목사는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의 초대를 받아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무신론자인 샘 해리스와 대담을 나누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지.
우리는 모두 도박을 하는 셈이다. 샘(무신론자)은 자기 생각이 옳다며 인생을 건 도박을 한다. 그리고 나는 인생을 걸고 예수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도박을 한다. 우리가 죽을 때 만일 샘이 옳다 해도 난 손해 볼 게 없다. 하지만 내가 옳다면 그는 몽땅 잃는다. 그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상당수 기독교인은 릭 워런 목사의 말처럼 보험에 드는 심정으로 교회에 다녀.
하지만 보험(종교)은 여러 회사에서 출시되지.
죽음의 순간에 기독교라는 보험이 당신의 천국행을 보장해주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이야.
불교나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어느 회사의 보험이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해줄지 아무도 알 수 없어.
기독교인은 그중에서 야훼를 믿을 뿐이지.
그리고 우리는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약관을 꼼꼼히 읽어보는 과정을 거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
성경과 성경 속에 묘사된 신의 성품을 살펴보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단 말이야.
당신이 보험약관을 꼼꼼히 살펴보고 의문을 품는다고 해서 설계사가 “그런 의문을 품어서는 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왜 그렇게 성경에서 보이는 신의 모습을 비판했는지 알아?
나는 기독교인이 달콤하게 복종하는 신의 성품이 과연 당신들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이냐고 물어본 거야.
온 우주를 창조했다는 야훼가 그토록 편협하고, 차별을 일삼고, 폭력과 학살을 부추기는 모습이라도 당신들은 그런 신에게 복종하는 게 행복하냐는 말이지.
기독교인도 이슬람교도나 힌두교인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잖아.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코란이나 베다를 암송하며 글을 배우고, 한 치의 의심 없이 알라와 시바의 가르침을 자기 삶으로 여겨.
그들은 말 그대로 믿기 위해 믿을 뿐, 경전 내용에 의문을 품거나 자신의 신을 의심하지 않아.
릭 워런 목사의 말대로 각각 도박을 하는 거라면 자신의 패를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겠어?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의 내용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봐.
왜 단군을 신으로 섬기느냐고 물었을 때 “『삼국유사』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어.
그런데 그것과 똑같은 대답을 기독교인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왜 야훼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라고 대답하는 건 옳은 대답이 아니란 말이야.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의 역사와 주변 환경, 현대의 고고학과 철학, 윤리, 과학으로 밝혀낸 사실까지 종합해가며 자신의 신앙을 돌아봐.
진화론은 허황된 가설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목사들의 말만 믿지 말고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 150여 년이 흐른 지금, 과학이 밝혀낸 진화론의 위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란 말이야.
150년 전의 진화론은 여러 가지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랜 연구를 통해 확고부동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오해하지 마.
난 과학을 종교로 신봉하는 게 아니야.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라고.
진화론 역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로 증명되어 있어.
목사들의 말만 듣고 진화론이 말도 안 되는 가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직접 진화론을 공부해봐.
그런 다음에 진화론을 비판하는 게 맞지 않겠어?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무조건 믿는다는 자세를 잠시만 내려놓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성경을 바라보란 말이야.
힌두교의 카스트를 비판할 줄 아는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신앙에도 한번쯤 진지한 의문을 가져봐야 하잖아.
그런 고민을 해본 뒤에도 여전히 야훼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난 그 결정을 충분히 존중하고 싶어.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무조건 성경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고, 모든 해답을 성경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를 무조건 믿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지.
사랑이란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아.
신을 사랑한다면 신에 대해 치열하게 알아갈 필요가 있어.
설사 그것이 신과 헤어지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해도 말이지. ]
개신교인 중에는 저 책의 내용을 보고 '구약의 가르침으로 개신교를 폄훼하지 마라!'고 지적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예수 역시 땅 밟기에 대해서는 구약과 똑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예수의 이런 지상명령이 나오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저 구절에서 언급된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이방인을 지칭할 때 사용될 만큼 유명한 곳입니다.
거기엔 역사적인 배경이 있죠.
솔로몬을 마지막으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난 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삼아 다른 지역으로 강제이주시키고 앗수르인들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내용은 열왕기하 17장에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그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침략했을 때 그는 또 사마리아인들을 쫓아내고 마케도니아인들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켰죠.
그런 역사를 통해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인의 땅이었지만 실제로는 이방인들로 가득찬 땅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가 온 신약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 취급했고요.
따라서 예수가 말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명령은 기독교인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타 종교인들을 향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전도에 나서라는 명령이 됩니다.
물론 예수의 이런 가르침으로 인해 기독교는 유대인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야훼의 구원을 모든 민족과 열방으로 확대시키게 되었으니 한국 개신교인들 입장에선 굉장히 감사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예수의 저 명령은 타 종교인과 무신론자들을 기필코 전도시켜야하는 대상으로 지정하고 타인의 종교나 신념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 야훼와 예수는(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결국 야훼 자신임) 타 종교의 신상을 파괴하고 만약 야훼가 아닌 다른 신을 섬겨보라고 권유하는 자가 있거든 그가 설사 가족이라고 해도 반드시 죽여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타 종교의 포교에는 그 대상자를 가족이라고 해도 반드시 죽여버리라고 가르치는 개신교가 다른 종교를 향해서는 적극적이다못해 무례하기까지한 전도를 하면서도 전혀(!) 모순됨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죠.
왜냐하면 자신들의 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탄의 세력이라고 확고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만이 진리의 종교이며 타 종교는 선한(?) 영적인 싸움을 통해 반드시 짓밟아버려야하는 대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듯 천박한 교리는 기독교 안에서도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나뉘어 개신교는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저주하는 웃기는 상황까지 나오게 됩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의 저주가 이 정도이니 불교나 힌두교, 이슬람교에 대한 저주는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될 지경이죠.
분명한 건 개신교의 교리 자체가 저렇게 타 종교에 대해 폭력적이고 안하무인 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땅 밟기는 계속될 거라는 겁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타 종교를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교리를 바꿨습니다만, 그건 교황청의 유화적인 제스쳐일 뿐 성경 어디에도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가르침은 없죠.
그래서 개신교는 가톨릭을 이단으로 보고 저주하는 것이고 심지어 가톨릭 내부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리 수정 내용에 항거하는 세력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의 절대다수는 예수 외에 구원은 없으며 타 종교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영적싸움을 통해 무너뜨려야하는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교인들에게 설교합니다.
이걸 '일부 광신도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는 개신교인이 있다면 그건 명백한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