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중용.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할까?
부자? 사회적 지위? 권력? 학력? 잘생긴 외모?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부터 깨우쳐야 행복의 문고리라도
잡을 수가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명하다.
주위로부터 칭찬이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냉소를 받거나 미움을 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치며 불행 속으로 빠져든다.
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주위로부터 칭찬받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어떤 삶이 필요할까?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나의 육신과 영혼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로 대자연의 산물이다.
내 몸 속의 모든 원리는 대자연의 이치로부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숙성되고 다시 조합되어 만들어졌고 그 몸을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
영혼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대가 행복해지기 위한 첫 걸음은
대자연의 이치를 공부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학이나 의학 그리고 인류학이나 생물학에 취미를 가져야한다.
그것이 힘들면 주말마다 여행이나 산행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함과 동시에 자연을 관조하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한다.
그리고 두 번째 걸음이 있다.
바로 인간사회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이나 사회학에 취미를 가져야한다.
그것이 힘들면 규칙적인 글쓰기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훑어보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한다.
만일 ‘난 저 친구마음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어.’라고
하소연하는 자라면 분명 자신부터 잘 모르는 자라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내는 방법은 너무나 간명하다.
가능한 한 깊고 폭넓은 대화를 가지려하는 자세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자신을 서서히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다.
대자연은 모두 중용의 이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자연에 의해 탄생된 인간의 육신과 영혼 또한
중용의 이치를 벗어날 수가 없으며,
남을 아는 이치도 중용의 이치를 깨우쳐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고로 나를 안다는 것은 중용의 이치를 터득하여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이 매우 탁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위해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고 외쳤고,
그것은 곧 중용을 외쳤던 것이다.
행복은 행운처럼 그냥 다가오지 않는다.
끝없는 사색과 체험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공부하여
자신의 본성을 멋지고 아름답게 갈고닦는 이성이 완숙된 자에게만
도둑처럼 다가온다.
자신을 잘 모르는 자가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리더십이 결핍된 자가 높은 직위를 바라는 것처럼 참으로 우매한 짓이며
불행의 올가미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육신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중용의 품속에 잠길 때
비로소 나를 알게 되고 행복 속에 잠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훌륭한 명언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 이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위대한 논리는 바로 ‘중용’인 것이다.
즐~밤 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