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만큼이나 뜨거운 사이였던 그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훈련소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그녀가 말없이 뒤에서 지켜 보는 가운데 얼굴을 반쯤 덮었던 장발을
깨끗하게 밀었죠.
기억도 안날 만큼 안타깝게 돌아보길 반복하던 작별을 뒤로하고 한달 간의
훈련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훈련병이 끝나고 자대배치 받기 전 3개월간의 일정으로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홍천으로 가게됐죠.
내무반 배정을 받던 날, 제 바로 오른쪽 자리로 멀대같이 생긴 착한 녀석을 만나게 됐습니다.
쾌활한 성격의 그 친구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무척 친한 사이가 됐는데, 어느 일요일
자그마한 사진을 애인이라며 제게 불쑥 내밀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사진을 받아들었는데 그 속엔 입대하기 전 삼개월 정도 따로 만나던 여자가 웃고 있었죠.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엔 비슷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 아닌척하며 사는 동네와 이름을 확인했는데 100% 일치했고
틀림없는 그녀였습니다.
오래 사귄 여친이 있었기 때문에 잠깐 만난 그녀와는 제대로 작별인사도 없이 입대했었죠.
진한 블랙커피를 좋아하고 술도 즐겼던 그녀와 벚꽃이 만개해서 흩날리던 날 신림동에서
신사동까지 무작장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암튼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던 그 친구와는 삼개월의 후반기 교육 뒤에 그렇게 헤어졌구요.
두 사람이 결혼했는지는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저보단 소리결로 보나 와트수로 보나 살짜쿵 더 좋은 매칭이라 생각하구요.
그 후로 행복하게 맺어졌길 바랍니다.
아! ........
물론.... 당연히......
지금의 와이프는 그때 절 훈련소까지 에스코트했던 그녀는 아닙니다.
진짜 짝은 그 후로도 14년이나 지나서 간신히 만났구요.
제 인생의 9회말 천금같은 승리를 지켜주는 구원투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런 멘트는 해줘야 후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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