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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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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00:2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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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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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추억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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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선 [가입일자 : 2009-01-25]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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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때 푹 빠져 살던 취미가 낚시인데요.
아쉽게도 지금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자주 가진 못합니다.
총각땐 낚시갈래 소개시켜 줄테니 여자 만날래 하면 두말 않고 낚시 간다 할 정도로
좋아했는데요.
자다가도 낚시친구넘이 전화해서 어디 지금 터진다드라 하면 곧바로 옷 주섬주섬 줏어 입고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하도 만성이 되셔서 자다가 눈 비비며 부랴부랴 나가면 저 자슥 또 물고기 잡으러
가나 보다 하고 어딜 가는지 묻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산란철엔 직장결근하고 삼박사일 출조도 허다하게 했는데요.
젊은 혈기에 먹을거도 안 싸들고 전국 댐이란 댐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싸돌아 다녔죠.
그때는 젤 부러운 게 댐 주변에 움막 짓고 한달씩 먹고 자며 낚시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의암댐에서는 하루에 한번씩 부인이 밥 싸들고 나룻배 저어서 댐 건너로 찾아오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충주호가 한창 터지던 댐 조성 초창기에 일미터가 넘는 찌를 세우고 오륙미터 수심에서 커다랗고
새카만 댐 붕어를 끌어 올리던 추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그렇지만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깊게 남아있는 낚시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 고향 동네에서의
둠벙낚시입니다.
시골집 뒤뜰 대나무밭에서 얇고 길쭉한 대나무를 베어 두툼한 실을 묶고 수수깡으로 찌를 만들었죠.
그땐 봉돌이 없어서 그만하고 단단한 돌멩이를 주워다 얼기설기 실로 엮어서
목줄달아 바늘을 연결했습니다,
바늘은 물론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쓰던 옷핀을 이용했는데요.
날카로운 부분을 구부리고 동그랗게 말린 부분에 목줄을 연결하면 그럴싸한 채비의 세팅을
완성할 수 있었죠.
미끼야 뭐 그때그때 파리도 잡고 지렁이도 캐고 그것도 없으면 보리밥풀을 달아서
물에 담궜는데요.
순진하고 때가 덜 탄 손바닥 만한 붕어들이 가끔 물려 올라오곤 했었죠.
마을 한편 둠벙에 앉아서 하루종일 붕어를 찾다가 해질 무렵 밥 먹으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돌아 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둠벙낚시를 하다 보면 저 조그만 곳에 과연 고기가 몇 마리나 살까 하는
호기심이 컸는데요.
그러다가 농사철이 끝나고 한숨 돌릴 무렵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일년에 한번씩
둠벙의 물을 퍼냈었습니다.
그땐 모터펌프가 없던 시절이라 길다란 나무장대 세개를 둠벙 주변에 세우고 맨 위 끝을
서로 하나로 묶고 거기서 부터 밧줄을 늘어뜨려서 물 뜨는 커다란 바가지를 연결한 뒤
앞 뒤로 몇사람씩 줄을 연결해 둠벙의 물을 퍼냈습니다.
언제쯤 저 물을 다 퍼내나 싶지만 동네 어른들이 모두 모여 막걸리 말통을 앞에 놓고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근 하루걸려 바닥이 보였습니다.
물이 다 빠진 둠벙 뻘밭 위에 각종 민물고기 장어 드렁이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며 충을 추듯
퍼덕거리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죠.
숯불 피워 온 동네에 고소한 냄새 피우며 익어가던 장어의 살 한점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구요.
지금은 낚시환경도 많이 변하고 현란한 가지 각색의 장비들이 다양한 낚시 방법들로
유혹하며 꾼들의 수를 늘려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축제같던 물가 풍경과 물고기 한 마리 잡고싶어 애타게 몰두하던
어린 시절의 고기잡이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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