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유병언 회장 때문인가요?"
"네, 검문·검색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뒤를 좀 봐도 될까요?"
검문 경찰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차 트렁크 쪽으로 향했다. 순간 화가 났다. 이렇게 검문·검색을 해서 유 전 회장을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우리 차가 빠져나간 곳은 전주-광양간 고속도로의 황전 나들목이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남녘으로 바람을 쐬러 나선 길이었다. 그 첫 길목에서 경찰에게 검문·검색을 당한 것이다. 검문·검색은 어느 때, 어떤 곳에서 하든 기분 나쁜 일이다.
황전 나들목은 순천과 30여분 거리다. 순천 일대에 은신해 있다는 유 전 회장을 검거할 요량이라면 상행선과 하행선 쪽 모두에 검문소를 설치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경찰은 하행선, 그러니까 전주에서 구례 방면으로 향하는 곳에만 있었다. 구례에서 전주로 향하는 상행 방면으로는 차량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유병언 탓에 검문검색... 짜증났다
나는 도어 록 장치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조금 골탕(?)을 먹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검문 경찰은 이미 차 뒤쪽에 가 서 있었다. 할 수 없이 잠금 장치를 눌렀다. 잠시 후 문을 열어 트렁크를 확인한 경찰이 조수석 쪽으로 걸어왔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유병언 잡을 수 있겠어요? 경찰력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건가요?"
일부러 냉소하 듯 말했다. 경찰이 말했다.
"저희도 죽겠습니다요."
내뱉는 말투에 자신들도 한심스러워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득, 한숨을 내쉬는 경찰이나 짜증스러워하는 나나 유 전 회장 검거를 위한 "유병언 몰이극"의 조연인 듯한 감이 들었다.
대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유 전 회장은 언제쯤이나 잡힐까. 검찰과 경찰은 유 전 회장을 안 잡는 것일까, 못 잡는 것일까.
애초 검찰은 유 전 회장 검거를 자신했다. 유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의 중심지인 경기 안산 금수원에 은거하고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자취를 감춘 뒤 그의 정확한 행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유 전 회장을 추적하기 시작한 지 보름여가 지났지만 계속 헛발만 짚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유 전 회장이 17일 전후로 금수원을 빠져나갔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금수원 인근의 시시티브이(CCTV) 화면을 분석한 결과 유 전 회장이 이달 초 이미 금수원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수도권을 빠져나간 유 전 회장이 순천 일대로 잠입한 것으로 보았다. 현재 순천의 은신처 반경 20킬로 내에는 검문소 20여개가 설치되어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은 신출귀몰하면서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 같다. 29일에는 전북 전주의 한 장례식장에 유 전 회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타 승용차 이야기가 티브이 화면을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엉뚱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유 전 회장이 전남 순천의 송치재를 빠져나가 지리산으로 도피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구례 지리산 자락의 피아골이 구체적인 장소로 지목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유 전 회장이 한국전쟁 시기 빨치산 부대인 남부군이 이용한 빨치산 루트를 이용하고 있다는 보도도 내놓고 있다. 검찰은 수색 과정에서 지리산 토굴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지금 유 전 회장에게는 5억 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외제 승용차 벤틀리가 난데없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유 전 회장이 이용했다는 승용차가 벤틀리 차량이어서다. 유 전 회장의 차량번호인 "45루 1800"과 비슷한 번호를 단 차량들도 때 아닌 수난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악당몰이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다.
언론에서는 유 전 회장이 은신한 것으로 알려진 순천 일대를 구원파의 "아지트"처럼 묘사하고 있다. 순천 시내 곳곳에 있다는 구원파 교회, 순천과 구례를 잇는 17번 국도상의 송치재와 그곳에 있다는 유 전 회장의 별장 등이 구체적인 소재들이다. 순천에는 구원파 소유의 땅과 시설물이 많아 유 전 회장이 도주에 필요한 도움을 받기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구원파로 불리는 적군이 출현했다. 적군의 우두머리 유병언이 은신해 있는 악의 도시도 만들어졌다. 교육과 교통의 중심지를 빼고 나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남녘의 전통적인 도시가 졸지에 사악한 악당의 은거지가 돼버렸다.
여기에 적군의 우두머리를 돕는 악의 무리는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아군들을 조롱한다. 우두머리 검거에 여념이 없는 검찰과 경찰이다. 아군은 빨치산이라는 옛 적군의 아지트까지 헤집을 기세다. 고풍스러운 단어인 "남부군"과 "빨치산"만으로 눈이 휘둥그레질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정도면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스릴 있는 "정치 활극" 한 판이 되지 않을까.
검문·검색을 마치고 국도로 접어드는 길섶에 사복을 입은 경찰(검찰 수사관?) 한 명이 승용차에 기대 서 있었다. 무전기를 든 그는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애매한 표정의 그를 지나치며 바라보자니 문득 어설픈 "음모론" 한 자락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했다.
"검찰과 경찰이 유병언을 언제 잡는지 맞춰 볼까?"
"언제 잡는데?"
"6월 3일에 잡을 거야."
"왜?"
"그래야 사람들 시선을 그쪽으로 확 잡아끌 수 있으니까. 적군 우두머리를 잡았으니 대통령과 정부도 좋은 점수를 받겠지. 그다음 날 선거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풋,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지금 이렇게 난리를 쳐도 못 잡는데 어떻게 며칠만에 잡는대? 확실하다면 내기 해요, 5만 원!"
요새 용돈이 떨어져 선뜻 "그러자"고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머리에는 어떤 확신 아닌 확신이 서 있었다. 사건을 사건으로 덮으며 요동치는 정국을 주물럭거리는 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 아닌가.
세월호 참사 정국으로 인해 지금 대통령과 정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6·4지방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유병언"과 "구원파"라는 "악당"이 필요한 이유다. 그 덕분일까. 사람들은 이들 "악당"들이 출현하는 한바탕 활극을 보는 재미에 세월호 참사로부터 점점 눈길을 거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놀라운 별호를 가진 분이었다. 박 대통령이 총애해 마지 않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법관을 지낸 이 나라 최고 수재마저 "그분에 비하면 발바닥"이라며 납작 엎드리는, 지능지수 170의 소유자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분들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내가 아내에게 예언한, 시시각각 다가오는 6월 3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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