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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자유게시판에 18살 김의중 학생이 올린 글입니다.
안녕하실 박근혜 대통령님. 모두가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분명 안녕한 생활을 영위 하고 있을 걸로 보이는 몇 안 되는 인사들 중 하나이기에 저는 굳이 안녕하세요? 하고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습니다.
글의 시작이 조금 버릇없는 것 같이 느껴져 잠시 고민했습니다. 어른께 올리는 글에 흔히 붙는 ‘존경하는’이란 수식어가 빠져서 그런 것도 같지만 저는 끝내 그 말을 써 넣지 않았습니다. 분명 당신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지위에 올라가 있고 또 그런 나이를 가진 사람이나 저는 당신을 눈곱만큼도 존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입니다. 당신을 비판하기엔 분명 어린 나이이나 저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무책임한 정부를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무능한 정부를 향한 제 또래 아이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당신이 굳이 낮은 곳까지 와서 저희의 의견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제가 직접 글이라는, 인터넷이라는 매개를 통해 당신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어 이 늦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저는 고 2, 18살 입니다. 이번에 세월호에 탔던 친구들과 같은 나이이지요.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라 저와 직접적인 연고가 있는 아이들은 아니나 저는 이번 사건을 뉴스를 통해, 또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접하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아이들 속에서 저를 보았고 또 제 친구들을 보았기 때문에. 참 의문이 드는 점이 많습니다. 그와 함께 쓰고 싶은 말들도 많습니다. 해경은 왜 초동 대처를 빨리 하지 않았을까? 원래 구조 헬기를 보내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일까? 직접 현장까지 방문한 당신은 분명 그 현장이 매우 어수선하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아무런 도움도 되어주지 못했던 걸까? 만일 그 아이들이 안산의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아닌, 서울의 대치동이나 청담동과 같은 부자동네에 사는 아이들이었다면, 아니 그 안에 국회의원이나 장관 자제가 한 명이라도 들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형편없는 인명 구조작업을 펼쳤을까?
음모론적인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언론들이 정부가 아닌 선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에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선장은 찢어 죽여도 모자랄만한 비 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정부가 초동 대처만 잘 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그 깊고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1차적인 책임은 선장에게 있지만 그 이후 벌어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분명 정부에게 있는데...... 이런 음모론적인 저의 생각을 일일이 다 나열했다가는 허위 사실 유포죄로 체포가 될지도 몰라 두려우니 그런 생각을 나열하는 것은 그만 두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애도의 상태입니다. 그 많은 친구들이 그토록 안타깝고 억울한 마지막을 맞이했는데 어찌 애도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나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각 학교에서는 각종 수학여행, 수련회, 체육대회, 심지어 스승의 날 행사까지도 모두 연기 되거나 취소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웃고 즐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는 하나 저는 이런 정부의 대응이 정말 진정으로 그들을 다 함께 애도하자는 의미에서 비롯된 대응인건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해서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상황무마식의 대응인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제가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에는 얼마 전 당신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당신이 입고 갔던 파란 빛의 고운 옷과 미국 기자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푸틴이 물에 빠지면 구할 것인가?’ 하는 분명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분명한 그 질문에 당신이 웃은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당신의 행동이나 그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 사건을 이용해 벌써 법안을 몇 개씩이나 통과시킨 국회를 보면 우리의 정부는 그들을 별로 애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화가 납니다. 이런 상황무마식의 대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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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으면 월드컵을 하고 그 뒤를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이 개최됩니다. 당신은 혹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큰 행사들 뒤로 이 사건이 묻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을 그렇게 되면 국정원 사건이 그랬듯이, 대통령 선거 당시 당신을 뽑았던 51%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당신 아버지의 친일과 독재가 잊혔듯이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사건과 정부의 잘못을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제 잊지 않으렵니다. 당신이 우리가 잊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제가 기억하고 있듯이 이 사건 또한 기억하고 있으렵니다.
제발 상황 무마하기 식의 대응이 아닌 진심이 담긴 대응을 해 주십시오. 우리 미개하지 않은 국민들은 스스로 애도를 표할 줄 압니다. 당신은 실천하지 않는 애도를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정부의 애도 강요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식의 대응에 대해 우리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만 쌓여갑니다. 당신이 뭘 원하는 건지는 전 정말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 아닙니까? 저는 아직 어려서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나 적어도 당신과 정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거라는 거, 솔직히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글이 올라오는 이 게시판에서 굳이 당신이 제 글을 찾아 읽지는 않겠지요. 허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대통령인 당신이 기본적인 책임이 있다면 지나가는 목소리로라도 이런 불만이 있다는 것을 듣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글을 올립니다. 긴 글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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