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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펌)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5-02 16:12:48
추천수 8
조회수   737

제목

라이언 일병 구하기(펌)

글쓴이

박현 [가입일자 : 2014-01-15]
내용
Related Link: http://surprise.or.kr/board/view.php
참 공감이 가는 글이라 퍼와봅니다.

불합리한 사회 – 생명의 가치, 그 부등가의 법칙


시놉시스의 시작은 항상 이런 식이다. 네 아들 중 셋을 잃어버린 어머니, 이제 그 라이언 부인은 세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아야 하며, 남은 마지막 아들 또한 적진 깊숙이 투입돼 있다. 육군 참모총장 마셜은 마지막 아들을 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여덟명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조직한다. 특공대의 임무는 하나, 라이언을 무사히 구해오는 것이다. 미국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본지 10년 하고도 절반을 넘은 것 같다. 정말 리얼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몇몇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기억남은 장면은 사실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질문,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계속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연 그 결정은 옳았는가?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명의 생명을 담보로 한 그 행위는 과연 옳았는가? 이 질문은 제법 오랬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따뜻한 봄 햇살에 눈 녹아버리듯 뇌리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가장 나약한 자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같은 미국의 사회적 가치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영화,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미국적이다. 정작 미국의 사회적 가치추구가 그러한지 이 점을 살짝 유보하기만 하면, 왜 한명의 일병을 구하기 위해, 여덟명의 목숨을 담보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저절로 쉬워진다. 그들이 구한 것은 일개 병사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가치를 구하고자 함이었다. 이렇게 이해를 할 때, 1대 8이라는 생명교환 부등가의 법칙도 조금씩 이해가 가능해진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나약한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는 사실 생존할 수 없다. 언젠가 나는 동물의 왕국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들소들의 무리로 사자 몇 마리가 끼어든다. 그 중 약하고 어린 새끼 한 마리를 순식간에 물어 끌어내는 장면이었는데,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들소 몇 마리가 사자에게 덤벼드는 장면이 그랬다. 사자들은 들소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함께 있었으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사자에게 자칫 또 다른 사냥감이 될 수도 있는 터였다. 하지만, 몇몇 들소들은 아무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곧장 사자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이미 사자로부터 치명상을 입은 새끼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지만, 들소들의 생존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나약한 것을 포기하고는 집단이 유지될 수 없다는 철칙을 미물들도 알고 있었음일까? 하물며 미물도 그러할진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어쩌면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매우 당연한 명제일 수도 있다. 비록 전쟁중이라고는 하나, 평범한 한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는 존재가 무너질 것임을 이 영화는 질문이라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암시해준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또 한 번 감동스러운 영화다. 비록 그 감동이란게 영화가 끝나고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오기도 하겠지만...


누구의 생명도 소중하다. 하지만 어린 것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른의 생명을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법칙이다. 물에 빠진 배 안에서 자신들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어린 것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하더라도, 물 속에 뛰어드는 잠수부가 존재하는 사회가 역설적이지만 더 건강하고 생명력이 있는 사회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우리 사회도 그랬다.


그러나 어린 것들을 구해야겠다는 잠수부의 무조건적인 소망이, 돈이나 권력, 혹은 이해관계에 의해 막혀버린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회다. 아니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을 어린 것들을 물안에 두고, 누구도 물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다.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고 무릎꿇고 빌며 호소하는 약하디 약한 한 어미의 몸짓을, 싸늘한 눈길로 바라만보는 지도자,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구성원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바로 보이지 않는 한 발 앞에 천길 낭떨어지가 있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회다. 한낱 들소 같은 미물들도 어린 것에게서 집단의 희망을 읽는 능력을 갖추고 있거늘, 제아무리 이성적인 존재라 떠들어도, 어린 희망을 물속에 묻어버리는 무리에게 희망인들 무슨 희망이 있으랴. 그날 물 속에 묻힌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사회가 응당 추구해야 할 가치 또한 아이들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나갔다.


좋다, 백번 혹은 천번을 양보해서 언딘이니 뭐니 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치자. 해경이 나름 최선을 다했다 치자. 그 순간 잠수부들에게 그 위험한 일을 시킬 수 없었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구조다운 구조조차 해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정당하게 변명할 수 있을까? 어떤 너그러운 생존의 법칙이 우리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볼 것인가? 1대 8일이라는 부등가의 법칙이 통했던 불합리한 사회가 일대일이라는 등가의 법칙조자 두려워하는 우리 사회보다 정말 더 불합리한 사회일까? 아니 어린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많은 잠수부들을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이상하고 잘못된 사회일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질문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이렇게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P.S

요즘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시다. 호주에 동생이 산다. 아버님 병원비를 한푼이라도 더 내려고 하는 착한 동생이다. 애들 다 크고 나면 한국 우리집 근처에 와서 서울 사는 막내와 함께 삼형제가 재밌게 살겠다고 입처럼 떠드는 동생이다. 아버님 병원비 더 들면 꼭 말하라는 카톡이 왔다. 이틀쯤 있다가 답장을 했다. 정말이지 이런 답장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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