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광화문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음식맛이 좋아 가끔 찾는 안국동 쪽 노포에 들렀습니다. 순두부나 순대국이 꽤 맛있는 곳이거든요.
밥을 먹고 있는 동안 옆자리에서는 연배가 꽤 되는 노인들이 조촐한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인 듯 하니,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이들의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정몽준 아들내미의 실언은 오히려 정곡을 찌른 날카로운 지적이고 그래서 정몽준의 인기가 더 올라가고 있다고 했고, 대통령이 내려와 사고를 수습하려 하는데 거기에 물병을 집어던지며 표현한 유족들은 야만적이고 이 사건의 주범들과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도 했습니다. 내가 일베를 들여다 보고 있는건지 현실세계에서 밥을 먹고 있는건지 모르겠더군요.
그들 대부분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그럼 믿고 따라야지, 저렇게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유족들은 한심하다고도 이야기했고,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은 노무현에 대한 향수를 노린 누군가의 조작이라고도 했습니다. 여닐곱쯤 되는 노인들중 반론을 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애써 자위했습니다. 저들의 관심은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구실로 서로를 엮는 결속력에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저 사건을 구실로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 하는 것이상 더 큰 의미를 찾는 건 아닐 거라고.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어보이는 한 노인이 대화를 주도했고 나머지는 장단을 맞추거나 동의하면서 웃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 정말로 정몽준은 아들 덕에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묘한 자기충족적 예언이죠.
문득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다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제가 새삼스러웠습니다. 아, 난 이 현실을 이제 인정하고 있구나. 화가 나지 않는 다는 것은 이것이 현실임을 인정한다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내 주위를 둘러싼 1/2 이상이라는 것을, 이제 7년이나 시간이 흘렀으니 몸으로 느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화가 나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가게를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평소 즐기던 음식을 거의 즐기지 못하고 그저 우겨넣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무감각에 오히려 조금은 안도를 느꼈습니다. 음식 맛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미쳐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그 해괴한 대화에 아직은 조금이나마,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테니까요.
이 비루한 자위라니. 그래도 이 비루함이이나마 꺼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품고 있으렵니다. 이 비루함들이 서로 만나 부끄러워 하면서, 절실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7~80년대를 통과했던 깨인 시민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지 요즘에야 조금 상상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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