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시만 해도 저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전 일베 자료를 보기전까지 매미관련 건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래서 알게된 김에 당시에 반응등을 좀 찾아 봤습니다.
우선 매미의 상륙일은 2003년 9월 12일 오후 8시반이고, 오후 3시경 부터 제주도가 영향권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정부는 이미 2일 전인 10일부터 대책 안내와 태풍에 대한 경고등 나름의 사전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산쪽에서 제대로 대비가 안된 부분이 있어 상당한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뉴스검색 결과는 나옵니다.
(당시 사망 132명으로 적은 피해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전해인 2002년도 루사의 사망/실종 246명에 비하면 피해는 적었습니다. 태풍의 위력은 매미가 더 세고, 강수량도 비슷한 것을 생각한다면 태풍의 위력에 비해서는 피해 규모는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태풍의 상륙시점의 노무현 대통령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찾아보니 당시 뮤지컬의 시작시간은 6시이고, 대략 2시간 반을 하는 공연 이었습니다. 공연장소인 삼청각은 청와대에서 직선거리로 약 1.5km떨어진 지점이었습니다. 바람이 좀 세긴 했지만, 서울은 태풍의 영향권이 아니었으므로, 비상상황이 오면 얼마든지 신속하게 조치 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나름의 충실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자만도 있었겠지요..
이러한 임기 첫해의 미숙한 안일함이 피해를 어느정도 키웠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난의 여지도 있고, 청와대가 해당 사건에 대한 변명을 한 것은 절대 잘했다고 할 일은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이것이 자세의 문제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작은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이유는 사전 대피 등 지시가 완료되고, 이행에 있어서 특별한 이상이 없을 경우, 정부와 대책 본부의 주요 역할은 재난이 지나간 이후, 즉, 사후 구조와 복구에 집중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람이 강한 동안은 구조 작업 자체가 현장의 판단에 맡겨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시스템의 문제로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복구 과정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했습니다. 피해에 대한 기사는 많았지만, 복구를 못했다고 비난하는 기사는 오히려 거의 없으니, 나름 무난하게 복구 작업이 이루어 진 것으로 봐야 할 듯 합니다. 특별 재난 구역으로 전국 대부분이 선포되었다고 되어 있고, 1조 정도의 정부 지원금에 대한 기사와 1년정도 뒤인 2004년 6월경에 복구 완료 기사가 일부보이긴 합니다.
제가 집고자 하는 다른 부분은 그후 정부의 법적 대응입니다. 2003년 9월에 이러한 피해를 내고, 여러 비난을 격고 난 이후 정부의 반응입니다. 당시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중 하나가, 재난시 대응이 일원화 되지 못해 대응이 늦어 졌다는 점 입니다.
당시 행자부는 이러한 지적에 따라서 2003년 11월에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을 제출해 법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통합적인 재난대응 및 구조, 사전 예방등을 종합관리하기 위한 법이 만들어진 것이죠. 그 밖에도 다양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구축하시 시작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 오만했을지 모르지만, 비판을 수용했고, 나름의 개선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재난으로부터 배웠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두고볼 일입니다만 별로 기대가 안됩니다.
ps. 저는 컵라면이나 기념사진 사건보다도, 잘 보이진 않지만, 언플하는 대책본부와 민간 협조를 꺼리는 해경이 100배쯤 문제라고 봅니다. 정서의 문제도 상당히 욕먹을 문제고, 사이코 패스같은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지만, 구조를 방해하는 실질적인 행위들에 비하면 그 실질적인 피해는 미미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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