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붓고 끓이면 되는 단순한 봉지 라면... 그런데 왜 맛 타령?
1. 세운 상가 라면
벌서 30년도 넘게 지난 이야기가 되었네요다. 바야흐로, 그 때는
전자 제품, 가전제품이라고 하면 최고의 상가로 뽑던 서울 종로 세운상가...
누구는 헬기도 하나 조립할 수 있을 정도라고 과장도 하던...
중2 시절, 전자 잡지의 회로를 보고 부품을 구하러 드나들던 어느날, 허기가 져,
건물 안에 있던 식당을 찾았습니다. 중학생이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 것은
거의 분식 뿐이었으니, 당연히 라면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라면이 도착하였는데, 오잉? 라면 국물이 짬봉보다 더 붉습니다.
김치라면인감? 약간 긴장하며 라면의 맛을 보는데... 헠.
생전 처음 경험하는 황당한 맛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화장품들을 퍼넣고 끓이면 이 맛이 나겠다 싶더군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나는 라면 스프 안쓰고, 내가 국물 만들어서 끓여. 이상해?'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고문 그 자체더군요. 그날 처음 만든 음식이 아니라면
분명 이 맛이 좋아 또 시켜먹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2. 여의도 포장마차 라면
오늘 특근을 나왔는데, 출근한 사람이 안보입니다. 혼자 먹기 난감한 상황인데,
그보다도 여의도 식당가의 특성 상 주말에는 모두 쉽니다.
지하 식당가는 짜장면이 9,000원, 제일 싼 스파게티가 25,000원 인 분위기...
일요일 점심 때 혼자 편의점에서 사발면 먹는 모습도 영 안좋을 것 같아
일단 밖으로 나왔는데, 예상 대로 연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는 중 초대형 포장마차가 열려있는데 메뉴 중 라면이 보이네요?
아무도 없기에 잘 되었다 하고 시킨 라면... 아, 이건 또 무슨 맛이 이럴까요?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식감과 맛이 배어 있지 않은 특이한 면발.
상상을 초월하는 비린내가 나는 국물, 생선비린내도 아니고, 계란 비린내도 아니고...
게다가 울면도 아닌 것이 왜 이리 국물은 걸죽한지? 있는 김치 다 부어넣고
휘져어서 억지로 먹었는데 가격이 4,000원. 미티...
3. 군대 라면
한달에 한번 정도 군에서 라면을 끓여주었습니다. 처음 군에서 라면을 먹던 날,
식판 양쪽이 다 넘치도록 받아와서 큰 기대를 하며 한입 후루룩 흡입하는데...
순간적으로 코와 혀에서 느껴지는 묵은, 아니 썩어 문드러지는 맛과 향...
묵어도 대충 묵은 것이 아니라 유효기간이 정말 수년 지났을 듯한 끔찍한 상태.
그러면서 들은 이야기가, 비상 식량으로 쌓아놓은 라면인데, 유효기간 임박한 것들을
먹어 없애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건 임박이 아니라 한 2주년쯤 된 라면같다는...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은 다들 너무 맛있게 먹어 그것이 문제. 내가 예민한 것인가...
요즘은 다들 몸 생각을 많이 해서 주변에 라면 먹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다른 이와 달리 라면을 좀 많이 먹는 편인데, 싸서 먹는다기보다는
양이 적어 살짝 요기하기 좋고, 맛도 괜찮고...
라면은... 정말 특별한 재주가 없다면 그냥 물과 라면만으로 끓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 같습니다. '파'까지는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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