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등산하고 비슷한 상황이 아닐런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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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고봉을 초등한 등산가들은 대단한 영웅 취급을 받았죠.<br />
14개의 봉우리 중 하나만 초등해도 말이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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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4개를 모두 다 등정해버린 슈퍼 등산가들이 등장하더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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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가 올라가든 별 관심 밖이죠.<br />
이미 올라갈 산들은 다 올라가버린 상황이라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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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래식은 죽은 음악입니다. 사실상 쇤베르그의 무조주의가 클래식의 종말이고요. <br />
할게 더 이상 없습니다. 유럽중심 백인중심의 클래식은 명을 다 했습니다. 단지 그 보편성 때문에<br />
그리고 아직 유럽위주의 세계구도라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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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 현대음악의 주류는 클래식이 아니죠. 많습니다. 재즈를 위시해서 천재작곡가들 많아요.
여기 작곡천재가 있다고 칩시다. 클래식 공부를 해서 낭만주의 , 고전주의 풍으로 멋드러진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한뜰 베토벤, 모짜르트, 로시니를 능가할 수 있을까요? 능가해도 주목받기 힘듭니다. 사람들이 잘 듣지도 않고 있는지도 모를 건데. <br />
차라리 그룹 결성해서 앨범을 내겠죠.
쇼팽과 슈만이 위대한건 기존 고전주의에서 벗어난 낭만파를 추구했기 때문이고<br />
드뷔시가 뛰어난건 로맨티시즘에서 벗어난 인상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며 <br />
쉰베르그가 뛰어난건 서양 음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계를 창조했기 때문이죠 <br />
모두 당대 주류음악의 틀에서 벗어난 파이오니어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br />
게다가 뛰어난 작곡가일수록 당대에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구요 <br />
글고 실력과 상업
말러가 우리에게 익숙해지는데 거의 50년의 시간이 걸렸죠.<br />
우리나라엔 거의 80년이 걸렸구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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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메시앙이나 리게티부터 시작해서<br />
불레즈, 볼프강 림, 헬무트 라헨만, 한스 첸더. 루이지 노노.등등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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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엔 이런 사람들 중 말러 정도로 많이 연주되는 사람이 나오리라 봅니다.
음,,,, 그렇다면 클래식은 그저 클래식일 뿐 인건가요? 현대의 천재가 교향곡을 예전 시대보다 더 뛰어나게 작곡을 해도 어렵다는 거군요.<br />
하긴,,, 몇백년이 흐른후엔 요즘의 힙합도 클래식?이 되겠군요.....ㄷㄷㄷ<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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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궁금했던건 클래식 이라는 장르가 꼭 오래전의 음악만 클래식이라고 칭하는 건 아닌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클래식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작곡된 대로 작곡자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음악의 형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정의는 녹음 시설이 없었으므로 기보에 의존해 보전될 수 밖에 없는 환경 탓도 큽니다.<br />
요즘은 녹음이 가능하니 예전처럼 비틀즈 예스터데이 악보대로 연주하는 천재적 연주가도 필요없고,<br />
고전의 반열에 든 음원 파일만 틀면 되겠죠.
지금은 클래식의 ㅈ시대가 아니니까 대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하네요 클래식은 19세기로 끝났다고 보는것이 어떻까 하고요 인제 남은 클래식 산업이지 싶네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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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비틀즈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사람들이 나중에 모짤트나 베토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에 댓글을 달려면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해 할 수 없는것이 아쉽네요.<br />
간단히 이야기하면 클래식, 즉 고전 음악은 편의상 부르는 것이고 적확히는 순수음악입니다.<br />
아마 의미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편의상 클래식이라 부르는 순수 음악에는 우리가 배운 바로크, 클래식, 낭만등으로 나뉘어 지는 것이고요.<br />
과거와 같은 천재나 음악이 없는 이유는 작곡자들이 과거 형태의 음악을 작곡하지 않습니다.<br />
시대가 지
그리고 비틀즈와 베토벤은 절대 같은 급이 될 수 없습니다.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은 분야가 완전 다르니까요.<br />
비틀즈는 대중음악에서 천재이고 베토벤은 클래식이란 순수음악에서 천재일 뿐이죠.<br />
도스토예프스키와 김용이 같은 급은 아니지요.<br />
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감명 받았지만 김용 소설은 밤을 새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