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흙이 있어 그릇을 빚었다.
그 그릇에 밥을 담고 국을 담고 반찬을 담았다.
어떤이는 그 그릇에 밥을 담으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행복해 했다.
꽃이 피고
바람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그가 밥상을 뒤엎는다.
내 마음이 변한건 세월 탓이다.
그의 말한마디가 야속할새도 없이 깨진 그릇을 쓸어 담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당신이 변한건 세월 탓이 아니다.
어떤 그릇은 귀한 곳에 놓여 고급 음식을 담아 빛을 발하지만,
어떤 그릇은,
세월을 원망하며 외톨이로 전락한 한 잉여인간의 푸념과 함께 들이키는 금간 소줏잔이 되기도 한다.
당신 또한 어느 자리에 놓여 귀하게 쓰이기도 하고, 천하게 쓰이기도 하는 하나의 그릇에 불과할뿐이다.
귀하고 천한게 그리 중요한가?
술그릇이던 밥그릇이던 내 그릇을 알고 한세상을 담아 노래하다 가면 그만 인것을...
어찌 내앞에서 세월을 원망하는가?
내가 꿈꾸던 세상은,
당신과 마주앉아 서로 눈웃음 지며, 평생 밥 같이 먹으며 다정한 얘기 나누는게 소박한 내 마음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그릇은 그 용도가 정해져 있거늘,
어찌 국그릇이 밥그릇 되려 하는가?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 모든것이 거대한 우주안에서 보면,
한 점 모래알이 움직이는 짓거리만도 못하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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