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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군요ㄷㄷㄷ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3-15 00:22:38
추천수 21
조회수   2,430

제목

이런 일도 있었군요ㄷㄷㄷ

글쓴이

이희정 [가입일자 : 2003-01-06]
내용
Related Link: http://m.blog.naver.com/PostView.nhn



22사단 조준희 월북 사고 (GP 총기 사고)



GP에서 총기 사고 가 났다. 먼저 이런 군내에서의 사고가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시대에 산다는 것 자체가 감개 무량 하다. 내가 소대장을 했던 소대는 이미 유사한 사고가 1984년 에 있었다. 물론 신문은 커녕 인근 부대에도 쉬쉬 했던 사고 이었다.

 

1984년 6월 26일 강원도 동해안 육군 모부대에서 총기 난사 및 수류탄 3발 투척 사건이 벌어져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 주요 총기 사고 일지 중

 

 

이 간략 한 사고 내용에도 불구 이면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내용이 감추어져 있다. 당시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83학번으로 건봉산 까치봉 GP 에 근무 하던 조준희 일병은 위 같은 사고를 내고 유유히 월북을 했고  그 후 수도 없이 대남 방송에 나와서 우리의 기를 죽이곤 했었다, 이때 교체된 사단장이 그 유명한 청보 라면- 이순자 것이라고 소문났던 사장 이 되었다.

 

< 참고>

 

1984년에 풍한방직 김회장의 셋째 아들이었던 김정우 씨(당시 풍한방직 사장)를 회장으로 해 청보식품을 창업하게 된다. 청보식품은 당시 삼양그룹의 전무, 이사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고 삼양식품의 직원 90명을 무더기로 스카웃했다. 그리고 사장에는 육군소장 출신인 장기하 씨를 선임한다. 육군 장성 출신을 사장으로 앉힌 덕분인지 청보는 군납 라면을 독점하게 되고 공격적인 광고마케팅을 펼쳐 라면시장 진출 4개월 만에 점유율 5%를 달성하기에 이른다.(군사정권 시절 육군 장성 출신이 사장이라는 건 큰 이점이었다.)

 

당시 조준희는 치밀한 계획하에, 수류탄을 먼저 내무반에 투척 후 중상을 입고 기어 나오는 동료들을  한발 한발 조준 사격을 가했고, 이후 완전히 소대를 제압했다고 판단한 후엔 걸어서 자진 월북 까지 감행 했었다. 그가 후반야 근무를 해야 하는 소대장과 전반야에 바둑을 둠으로써  전반야 마친 선임하사가 취침을 든 이후 지휘 공백을 만들었다. 이후 대북 방송 소리에 옆 사람 소리도 잘 안들리는 상황실 과 초소 근무자를 사살하는 것 부터 시작, 사고사례로 들은 이야기 지만 무사한 사람은 마침 화장실에 가있던 병사와 각각 독립공간에서 취침했던 소대장과 선임하사 라고 들었다.  총 9명의 아군이 전사 했고, 선임하사가 조용해진 이후에 미친듯이 자동화기를 깜깜한 밤에 난사한 것 이외엔 우리 군은 아무것도 한게 없었던 것이다. 더 열받는 건 추적하던 수색대원 3명 조차도 지뢰를 밟아 사망 한 우리 군 사상 최악의 총기 (군기) 사건 이었다.

 

 그의 월북 동기는 여러가지로 조사 되었지만, 당시 5공 출범기의 암울한 정치 상황과 연계된 자생 공산주의자 라는 설과

 

( 조준희가 당시 대학재학중 데모하다가 현장에서 군에끌려온 "녹화사업" - 소위 특수학적변동자 였다는 이야기 가 있음. )

 

 군내 폭력 문화의 비극이란 설 두가지 였었다. 월북 직전  군내 폭력 문화의 비극이란 설 두가지 였었다. 월북 직전 휴가때 여자친구하고 이별 하는 등의 행동을 볼때 아마 전자가 많은 의심을 받았지만 조준희의 대남 방송에 따르면 군대 폭력이 원인이었다 ( 밑에 더보기 참조).

 

당시 나는GP 소대장을 하면서 적이 내려올 것을 대비한 경계 보단 우리 소대원들의 사고 가능성, 월북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근무를 했었다.  월북전 징후 암기 (가령 물말아 먹는 병사를 주의 해라 등) , 문제 사병 면담록 작성  심지어는 GP 투입직전 사단장 배석 대대 회식 까지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가? 결론은 개선의 포인트는  군대의 민주화 가 아니라 인권화 이다. 군대는 비 민주화 집단이다.  어느 소대장이 돌격 앞으로 !!를 소대원과 동의를 구해서 하는가? 미군 조차도 "Don't ask, Don't tell" Policy 라는 게 있다. 즉 우리 식으로 하면 까라면 까라는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룹의 비젼제시는  바로 CEO 의 책임인것이다.

 

단, 내가 후보생 시절 우리 연대장님 말씀 대로, 월남에서 미군은 겉으론 빠져 보이지만, 총소리가 나면 즉각 반응 한 반면, 우리는 겉으로는 각이 잡혔어도 탕 한발에 차 밑으로 기어 갔다고 한다. 겉으로만 그럴듯 하게 보이는 우리의소위 "군기"는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 되어야 한다.

 

우선 내무반 침상 부터 바꾸고 정훈 장교의 활동을 강화 해서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인 군대의 인권 현실을 개선 해야 하는 것이 다.  최소한 대대급 정훈 장교는 매일 분대 하나씩 하고 대화 해서 문제를 파악하여야 한다.

 

또한 현 장교와 하사관 을 대상으로 군 인권 개선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 하다.

 

 또한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 실현에 대해서 물질적인 보상을 해라.

 

 군 수뇌부 자체가 자제들을 군대 안보내는 이유가 왜 일까? 바로 인권사각지대의 군 현실을 알기 때문인것이다. 

 

마지막,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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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2014-03-15 00:35:04
답글

오타가 많아 글이 짤리네요 링크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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