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만화가게방 아가씨(5편)
◇ 백수
만화방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걸 봤다.
무슨 날일까?
아마 한달에 한번정도 그 삭막한 아저씨가 오는 그날인가 보다.
무슨날인가...?
[음흉한 웃음] 조심해야겠다.
내가 그녈 좋아하긴 해도 그녀의 성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통 같은 걸 알고있다.
그날 잘못 걸리면 뭔가 날라올 것 같은 으시함이 들었다.
♥ 만화방 아가씨
며칠 있으면 내 생일이다.
이젠 내 생일날을 축하해줄 사람도 별로 없다. 슬프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나를 달래봤다.
혹시 그 백수가 이 표를 보고 내 생일인걸 생각할 수 있을까?
괜한 기대는 하지말자.
그 녀석은 인간의 탈을 쓴 바보다.
저길봐라... 가스통 맞은것 처럼 으시시대고 있지 않은가...
◇ 백수
그녀를 보러 만화방으로 갔다. 오늘은 이름과 나이를 꼭 알아야겠다.
"에... 말이죠. 아줌마...
아줌마, 노처녀 맞죠?"
얼떨결에 이렇게 말해버렸다.
♥ 만화방 아가씨
이 백수 녀석이 아줌마도 모자라서 이제는 노처녀라고 놀린다.
열받아서 25살도 노처녀야? 라고 따졌다.
◇ 백수
25살?
생각보다 훨씬 어리네. 그럼 나하고 3살차이니까. 음...
딱좋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 만화방 아가씨
그 녀석이 내가 만으로 25살인걸 눈치챈것 같은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7살이라고 말해버릴까?
저 녀석 나이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쪽은 몇살먹은 백순데요?" 라고 말했다.
◇ 백수
역시 그때 내가 백수라고 한걸 들었구나...
흑 28살이나 되어 가지고 백수라 그럴까봐 "아줌마보다 한살 많아요"라고 말했다.
잘했쥐...
♥ 만화방 아가씨
뭐야 연하잖아!
연하도 괜찮을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 녀석이 나하고 무슨상관이라고, 다음에 기회봐서 말을 놓아야 겠다.
◇ 백수
만화방에 오늘은 좀 늦게 갔다.
안에는 그때 그 삭막하게 생긴 아저씨가 있었다.
그래서 만화책만 뒤적이다.
그냥 집으로 갔다.
가다가 생각하니 오늘이 그날이다.
조심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껏 그녀를 좋아만했지 뭐하나 준게없다.
편지도 한번 안보냈으니... 호주머니에는 만원짜리하나가 있다.
뭘 사가지고 갈까?
아무래도 먹는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하는 것을 떠올렸다.
순대, 족발, 통닭, 닭똥집....비암.....
아무리 떠올려도 그녀가 좋아할만한게 없다.
근처에 제과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저기 가면 뭔가 살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케익을 샀다.
너무 비쌌다... 흑,
만원으론 거기 있는 것중에 제일 작은것밖에 살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장을 해 놓니 순대나 족발싸놓은것 보다는 있어 보인다.
아직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저 자리는 졸리게 만드는 귀신이 붙은 것 같다.
그 아저씨한테 이 물건을 주며 어떤 멋있는 단골이 줬다라고만 말하라고 했다.
쓰윽 나를 쳐다봤다. 왜 보셨을까?
나도 의심이 갔다.
그래서 한마디 더했다.
"이거 먹지 마요..."
그 아저씨가 왠지 그녈 안주고 먹어버릴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내 마음을 표시한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았다.
♥ 만화방 아가씨
오늘 내 생일이다.
아빠 엄마한테서 연락온 것 말고는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며 전화해준 사람이 없다...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 술이나 한잔하고 자축 해야겠다.
그러던 차에 삼촌이 오셨다.
오늘 내 생일이신걸 아셨나보다.
친구랑 실컷놀고 만화방에 가니 삼촌이 뭘 준다.
좀 덜떨어진 백수같은게 그냥 단골이라 준다 그러면서 놓고갔다는 것이다.
케익이다. 누굴까?
혹시 그백술까?
좀덜떨어지는 놈이라니..
그런것 같다.
근데 그에겐 그럴만한 센스가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나 오래 못살거 같다.
내 미모는 아무리 감출려고 해도 안되나 보다.
흑흑.. 미!인!박!명!
그 녀석이 주었을까...
감히 백수연하주제에.. 근데 이거 그가 선물한 것이면 좋겠다.
◇ 백수
그녀 이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오늘은 과감하게 만화책을 몇권 빌리자.
자연스럽게 내 이름도 가르쳐 주고 기회를 봐서 그녀 이름도 물어봐야 겠다.
그 케익은 잘먹었을까?
♥ 만화방 아가씨
그 녀석이 오늘 무슨 결의를 하고 온것 같다.
역시 그때 케익은 그가 준 것이... 무슨 고백이라도?
근데... 약간이나마 기대를 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들어올때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만화책 몇 권을 뽑아와가지고
경색된 얼굴로 "이거 빌려가겠습니다." 라고 그랬다.
난 또... 좀 아쉽다.
그러고보니 오늘 처음 빌려 가는것 같다.
이 녀석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 절호의 찬스다.
나보다 한살 어린걸 알고 있는 터라....... 버릇처럼 반말이 나왔다.
"이름이 뭐야?
주소하구 전화번호 불러봐요."
◇ 백수
뭐야.. 지금 나한테 반말을 한건가?
한살정도 많은 놈한테는 자연스레 반말이 나온다?
옛날에 잘나갔던 여자같다.
그래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맘은 변함이 없다.
♥ 만화방 아가씨
이름이 배준용이고 전화번호가..
758-**** 흠.. 심심하면 장난 전화나 걸어봐야 겠다.
◇ 백수
우쒸.. 내 이름만 가르쳐주고, 그녀 이름을 못물어봤다.
만화책 안갖다 주면 울집에 전화가 오겠지.
그때 기회를 잡자.
♥ 만화방 아가씨
그 백수녀석이 또 며칠째 안나온다.
내가 그 동안 장난전화쳤던 걸 눈치챈걸까?
빌려간 만화책을 잃어버렸나?
내일도 안나오면 만화책 가져오라고 전화를 해야겠다.
만화방안에 손님은 많은데 그 녀석이 없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녀석 전화 받는 태도는 고쳐야겠다.
나보고 사오정 귀파는 소리하지말고 썩 꺼져라고 그랬다.
나쁜놈..
◇ 백수
만화책을 사흘 동안이나 안갖다줬는데도 그녀한테서 전화가 없다.
요 며칠동안 어떤 이상한 여자가 자꾸 장난전화를 했다.
동물원이냐?
사자한테 밥은 줬냐?
심지어 아우웅 아우웅 별 개같은 소리까지 냈다.
그렇지만 난 좋은말로 타일러 이런짓 하지 말라고 했다.
내일도 전화가 안오면 그냥 갖다줘야 겠다.
지금 그녀가 몹시도 보고싶다.
◇ 백수
그녀에게서 오늘도 전화가 안올것 같다.
그래서 아침일찍 만화책을 들고 만화방으로 향했다.
설렌다.
오랜만에 그녀의 모습을 본다는 기대에 만화책을 들고 하늘을 날듯이 뛰어갔다.
♥ 만화방 아가씨
오늘도 그 녀석이 안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화장을 하고 아침 일찍 그 녀석 집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할려고 하던차에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만화방으로 들이 닥쳤다.
◇ 백수
뭘 들고 함부로 뛰어서는 안된다는 걸 새삼느꼈다.
만화방 들어 가기도 전에 탈진해 죽는줄 알았다.
만화방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다.
화장을 하고 그녀가 어디에 전화를 하고 있다.
그새 딴놈하고 선본게 아닌가 싶다. 찌리릭 쳐다봤다.
♥ 만화방 아가씨
숨을 헐떡거리며 못마땅한 듯 날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장난전화 한걸 이 녀석이 눈치챈것 같다.
그런거 같다고 생각하니 난 줄 알면서도 그딴 소릴 나한테 했단말이야?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래 내가 사오정이다!" 라고 말했다.
◇ 백수
갑자기 왠 사오정?
그녀 이름이 오정이었나?
내가 그녀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그녀도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데 이름이 너무 이상하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나서 "이름이 오정이었어요?
여기 만화책 가져왔는데요.
이름이 참 이쁘군요.
성도 특이하고..." 라고 내딴에는 엄청 길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할수 있다. 아자!
♥ 만화방 아가씨
뭐야!
이 녀석 누가 오정이라고... 내가 장난 전화한것 모르는 건가?
그렇다고 내 이름을 사오정이라고 믿어버리다니.
확실히 덜 떨어진 놈임에 틀림없다.
할수없다.
저녀석 성격에 아줌마. 노처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오정이라고 날 부를게 틀림없다.
성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래서 "제 이름은 지윤이에요.
권지윤. 누가 오정이라고 그랬어요?
하여간 준용씨 연체료 물어야 겠네요." 말했다.
◇ 백수
야, 단골한테 이럴수 있나?
하루 늦은걸로 연체료라니.......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
난 그녀한테 그런말 할 용기가 없으니까...
아까 왜 사오정이라고 그랬을까?
연체료 내고 나니 만화책 볼 돈이 없다.
할수 없이 그냥 집으로 왔다.
그녀 이름이 권지윤이랜다.
권지윤....... 햐~ 이름한번 이쁘다.
그리고 그녀가 오늘 내이름을 불러주었다.
내 마음은 그녀가 그려져 있는 아침 하늘을 날고 있었다.
♥ 만화방 아가씨
괜히 연체료를 내라고했나?
바보같은 자식 그렇다고 삐져서 집에 가버리다니.
화장까지 했는데... 한살이라도 많은 내가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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