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자아-존중감입니다.
즉, 자아를 인식해야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자아를 모르는데 존중하라면, 뭔지 모르는 것에 닥치고 존중하는 태도만 보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당연히 존중감이 생길리 없죠.
자존감을 가져라. 자존감을 가져라.....백날 외쳐봐야.. 그냥 허공의 메아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아라는 개념이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자아를 느끼라고 하면,
-내가 나 아냐?
-그게 뭐 어떻다는거지?
-뭐라는 거야?
-뭔 소리래?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면,
-뭐야? 주제파악이나 하란 말이냐?.....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장과정에서 천천히 상실해버린 자아는(우리나라 가정과 정규교육이 이렇게 만듭니다.)
어른이 된 후에 되찾으려면, 정말 많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5년 걸렸습니다.
헉~ 소리 날 텐데.. 처음엔 자아가 뭔지 자존감이 뭔지, 심리학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한동안 텅~ 비어버린 듯한 극도의 공허함에 시달리다가,
(내 몸이 인형같은 느낌 피부의 껍데기만 남아 있고,
안쪽은 다 비어버린 듯한 극도의 공허함)
대체 왜 이러지? 남들도 그런가?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거 같은데, 난 왜 이럴까?
이런 의문(자괴감이죠)에 시달리다가... 겨우 생각해낸 게,
내가 공부를 지지리도 안해서(못해서) 그렇가?... 였습니다.
물론 이유는 그게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 밖에 못했던 거죠.
주변과 이야기 해봐도..... 남들 다 그렇게 산다. 원래 그렇다... 라는
피상적인 대화만 오갈뿐,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누가 그거 왜 보냐? 고 물으면..
- 머리가 텅빈 거 같아....뭐라도 좀 채워 넣을려고~....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 그런 느낌으로 책을 봤습니다. 그런데 책도 피상적으로 봤죠.
책 읽는 방법을 몰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책을 읽나 싶어..
책읽는 책, 혹은 독서법 관련 책도 참 많이 봤습니다.
지금은, 다독을 강조하는 이유, 속독을 강조하는 이유, 그리고 한권을 여러 번 읽는
심독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고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책을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내가 제대로 읽는 게 맞나? 하는 의심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피상적인 책읽기를 5년 가까이 하고 나서야 자아를 겨우 인식했고,
그때부터 피상적인 시선이 점점 걷혀지더군요.
자아를 인식하는 순간 [확~] 걷히는 느낌이었는데, 지나보니 ....
그때도 여전히 피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지더군요.
암튼 마흔 다 되어가서야... 책 읽는 법을 겨우 터득했다니..
정말 한심하더군요. 이런 건 10대 때 배웠어야 하는 건데...
과정을 디테일하게 적었다가, 생각해보니 남의 인생사에 관심 없을거다 싶어,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그렇게 자아를 인식하자 온 변화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사람마다, 자존감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자아를 인식했을 때 온 변화도 아마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많은 변화가 왔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1.시야각이 확~ 넓어졌습니다.
그동안 정말! 정말!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군요.
비유하자면, 경주마들이 경주할 때 눈에 차고 있는 차안대를 끼고 살았던 것입니다.
자아를 안식하자. 그게 벗겨지면서 시야각이 넓어졌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각도가 넓어 졌다는 게 아닌, 인식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이해가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정상범주로 되돌아 온 것이었는데,
워낙에 좁은 시야를 가졌던 만큼 대단히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고의 폭이 좁으면, 다른 것과의 연관성이나 연계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A를 바라 볼 때는 A만 생각하고, B를 바라 볼 때는 B만 생각하는 단순함을 유지합니다.
즉,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연계 짓지 못하고,
본질적인 면과 현상적인 면을 연결 짓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게 피상적인 시선이죠.
현재의 현상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는.... 이전에 있는 본질은 못보고 있는겁니다.
아예 안보입니다. 일부러 안보는 게 아니라, 연관이 아예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설명하면? 웃기지마라.. 뭔 개소리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말싸움할 때.. 상대는 넓은 범위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전 좁은 범위만 보면서, 상대의 말이 구라다면서 바락바락 우긴 적 많았는데...
제 시각이 어느 정도 넓어지고 나니... 참 부끄럽더군요.
아...그때 내가 병신이었구나...하는.. 그런 생각으로요. ㅎㅎ
게시판에 이런 벌레들 몇 보이죠?
자기는 균형감각 있다는 생각으로 우기는 애도 비슷합니다.
대게 보면 보수성이 강할수록, 이런 성향이 강합니다.
여러가지 사안들을 연관성 있게 이해하지 못하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식으로 이해합니다.
참고로 저도 20대까지는 무척 보수적이었습니다.
경상도에서 30년 살았으니....당연하겠죠.
그리고 저 좁아터진 시선이 정답주의 더군요.
답만 알면 된다고 길들여진 시선...
동시에 다른 걸 틀렸다고 인식하는 시선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겁니다. 왜? ..... 아예 안보이니까!
벌레새끼들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소리는... 진짜 다름이 아닌 그냥 개소리죠.
이런건 무시해도 됩니다.
그래서 순위를 볼 때도, 1등 근처만 바라보고 (최고 스펙주의) 나머지는 무시하고,
(다 틀린 것들이라고 무의식에서 인식하고 있으니...)
외모를 볼 때도 제일 이쁜 애들만 쳐다보고,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닌, 길들여진 사람들 대부분 그럴 겁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면, 초점이 아예 없거나(이건 극심한 상태),
한곳만을 지향하는데... 이게 인식의 지향점과 거의 같습니다.
눈은 내면의 창이니까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저렇게 시선(인식의 폭)은 좁아집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은
학업 성적도 나쁜 편이죠.
수학이나 영어, 국어, 특히 역사 같은 건....앞뒤 연계가 안 되니..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문장을 읽어도 앞에 뭐 읽었는지
제대로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물론 공부 잘하는 애들중에 시각이 좁아터진 애들도 있습니다.
이런 애들은 전 그냥 암기 기계라고 봅니다. 암기에 특화된 애들....
2.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잃어버린 내면, 텅 비었다고 생각했던 내면의 존재가 느껴지고,
내 의식과 연결이 되자(인식하자)..... 이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내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는데, 그게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불안에 시달린다는 사실조차 인지를 못했습니다.
안정감이 느껴지자....그제서야.. 아~ 내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구나....
하는 걸 인식하게 된거죠.
바다의 풍랑에 내내 흔들리다가, 육지에 올라온 느낌이 이거였습니다.
그렇게 안정감이 생기자... 점차 마음의 여유가 생겨납니다.
나도 모르게 전방위적으로 신경쓰고, 불안해하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자....
신경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거죠.
다른 말로 스트레스가 줄어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받고 있던 스트레스들이 사라진겁니다.
물론 100%로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이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야각이 넓어진데다가, 안정감이 생기다 보니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집니다.
하늘의 푸르름, 자전거 도로의 옆에 핀 꽃들...풀내음 등등..
이전에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아무것도 아닌,
인식에 잡히지도 않았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좁은 시각일 때 는 항상 목표(도착지점)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이젠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이렇게 느껴지더군요.
제 자신도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라? 저런게 있었나? ...하면서요.
덕분에 그동안, 하늘을 봐라, 주변을 돌아 봐라...하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나 조언은..
그냥 개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 들리는 사람에게 백날 그런 말 해봐야, 의미가 없죠.
단순한 잔소리가 되어, 스트레스만 더 늘릴 뿐입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러느냐?
죽을 용기로 살아라..... 등등....의 조언도.. 다 개소리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편리한 대답이죠.
앞서도 언급했듯이....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해서 그렇게 길들여져 있는데,
왜 입을 안 여느냐? ....라고 또 다그치면, 화만 날뿐...
해결 되는 게 아닙니다.
또 옆길로 새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사람이 안정감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데, 불안한 느낌이 들 리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니, 이게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행복이라는 다큐보면....잘나가는 치과 의사도,
늘 불안하다고 하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느냐....라고 인터뷰 하던데.
상황적으로 안정되어 있어도,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3.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늘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여유가 생기는데,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신경 쓰고 있던 게 사라지고(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여유분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집중을 하면, 그 여유분의 에너지까지 집중력에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학습능력이 향상됩니다.
피상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걷혀지고, 연관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거기에 집중하는 집중력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니 이전과는 다르게 학습능력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해력이 쑥쑥 올라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이해력이 향상되자.
정말 10대나 하다못해 20대쯤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비통한 느낌도 들더군요.
20~30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이걸 느꼈으니...
참 먼 길 돌아왔다....하는 느낌(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공부 잘하던 분들이야, 이런 말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들리겠지만....
저 같은 경우 머리에 통 안 들어오던 것들이....들어오기 시작하자..
정말 새로운 느낌입니다.
아, 배운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하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거죠.
그리고 뭔가를 볼 때, 막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래서 기초가 중요하구나......하는 느낌도 많이 받습니다.
시야각이 넓어지고, 연계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학습 능력이 향상 되어 가면서....
이전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가,
제가 가끔 언급하는 남녀 차이의 세계관입니다.
이것도 기회가 되면 별도로 언급하겠습니다.
4. 모든 행위나 대상에 의미가 부여됩니다.
정답주의에 길들어 있으면, 답 이외에는 [무가치하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게 단순한 답뿐만 아닌, 모든 영역에도 같이 적용됩니다.
귀찮고 짜증난다.... 라는 개념도 줄어들고...
더럽고 징그럽다....이런 느낌도 줄어듭니다.
음식물 찌꺼기나, 걸레조차도,
다 필요한 존재들 혹은 이유가 있는 존재라는...개념으로 다가오니까요.
즉, 나라는 존재에 의미(가치)가 부여되는 순간...
다른 것들의 의미(가치)도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삶의 의미....라는 개념도 다시 이해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설명해도...그냥 피상적으로 다가올테니..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자아의 인식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다른 내용들 더 있지만, 이정도만 소개합니다.
자존감의 회복은 다시 자아와는 별개로 이루어 집니다.
처음에는 자아와 자존감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을 계속 들여다보니 구분이 되더군요.
자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질수록,
자존감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다시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역시 100% 회복은 아닙니다.
아 이정도가 자존감이 높은 상태구나..... 라는걸 느끼게 된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회복되자....
1. 충만감이 더 강해집니다.
자아의 인식으로 내면이 텅빈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아가 점차 뚜렷해지자, 자존감도 같이 회복되는데...
그로 인해 충만감도 더 커집니다.
그리고 이게 행복의 근간이 됩니다.
이 충만감으로 인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낄수 있게 됩니다.
물론 자존감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므로,
늘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아니지만....
(자존감이 높아질수록 변동의 폭도 줄어듭니다.)
이제는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 가능성이 커졌고,
사소한 것에 대한 반응(화내거나 짜증나는)이 줄어듭니다.
2. 열등감이 줄어듭니다.
나라는 존재가 뚜렷해지면, 나와 타인의 경계도 뚜렷해집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나는 나고, 저 사람은 저 사람이라는
인식이 분명해지므로, 나와 저 사람을 비교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됩니다.
비교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안 납니다.
비교를 하지 않으니... 열등감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낮은 자존감이 열등감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왜 쓸데없이 비교하고 있었나?....라는 생각마져 듭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비교하지 마라, 비교하지 마라.....외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를 주는겁니다. 비교 안할래도, 자연스레 비교가 되는데,
하지마라, 하지마라...외치는 건, 와 닿지도 않고,
잔소리로 들려 짜증만 날 뿐입니다.
비교를 안 하면, 경쟁을 안하고, 그럼 발전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전형적인 피상적 시선이죠.
자존감이 높아지면, 불필요한 경쟁이 아닌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됩니다.
자아를 욕구의 집합체라고 보는 학자도 있는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고,
그걸 이루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집니다.
이게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힘입니다.
그 동안은 외적 동력(남의시선, 압박, 의무 등)에 의해 싫은데 억지로 움직이다가......
이젠 내적 동력에 의해 자연스레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게 외적 동기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니까요.
경쟁과 이기심만이 모든 움직임의 원동력이라 생각하는 수꼴들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영역일겁니다.
3. 스트레스가 더 줄어듭니다. 1
존재 인식이 뚜렷해지고, 그 존재의 가치를 높게 인식하면,
존재를 손상하는 외적 자극에 둔감해집니다.
데미지를 입지 않는 거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누가 나를 욕해도 기분 나쁘지가 않습니다.
제 자신도 깜짝 놀랐는데, 정말 신기한 느낌입니다.
자기계발서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 누군가 나를 욕할 때, 내가 그걸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내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글을 접하면,
- 뭔 개소리래? C8 날 욕하는데, 내가 안 받으면 된다고? 뭔 빙다리 핫바지 같은 소리냐..
이렇게 반응했는데..
내 존재에 대한 경계가 뚜렷해지니...
그 경계를 느낄 수 있게 되고, 나를 향한 욕이 그 경계를 넘어 들어오지 않더군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실드가 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자아를 인식했을 때는 이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니 방어막이 생기더군요.
자연스럽게 욕을 안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젠 욕 배틀 뜨면 좋습니다.
제가 받는 데미지는 거의 없이, 상대에게 욕을 퍼부어주는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예전에는, 열 받아 씩씩거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
(덕분에 비아냥대는 스킬은 잔뜩 늘었죠.)
지금은 그런 연기조차 필요 없이,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콧꾸멍 후비면서, 사타구니 벅벅 긁어가면서, 가지고 노는 거죠.
이기고 지는 것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이기나 지나 상대는 열 받고, 전 안받으니까요.
제 3자의 불편함이나, 귀차니즘만 아니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외적 자극에 대한 데미지를 거의 안 받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확~ 높아졌기 때문에,
내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면, 그걸 컨트롤 할 능력이 생깁니다.
아예 안 받지는 않는데, 엄청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서 아프고,
피곤해서 쓰러져야 하는(아무것도 못하고 자야만하는) 그런 상황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습니다.
전에 잠시 언급했지만,
누군가를 많이 기다려야 하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짜증나거나 답답해하는 것들이 현저하게 줄어드니..
사람 자체가 여유가 생깁니다.
늘 화나 있고, 찌들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므로, 인상도 펴집니다.
사람을 대하는데도 더 편안해집니다.
이걸 육아에 적용한다고 생각해보면,
아이가 뭔가 실수하고 잘못한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고 타이를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또 아이가 뭔가를 못해서 낑낑댄다 해도...
내가 답답해서 개입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지켜봐 줄 수 있는 거죠.
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는데, 이전에 비하면 월등히 빠르게 회복됩니다.
이전에는 한달씩 가고, 지속적으로 누적 되던 게...이젠 하루 이틀이면, 웬만큼 회복됩니다.
물론 이전까지 계속 쌓여 있던 건,
서서히 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금방 사라지진 않습니다.
4. 존재의 인식이 강해진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이 뚜렷해지면, 사물과 나의 관계도 완전히 분리 됩니다.
물건은 물건이고, 나는 나죠.
그래서 사물로 나를 규정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사물로 다른 사람을 규정하지 않게 됩니다.
이전에는 스펙 좋은 사람,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 참 커 보이고,
대단해 보이던데... 이젠 그냥 사람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외모(옷)에 더 신경 안 쓰게 됩니다.
점점 더 거지같이 나다니는 모양새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옷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도 밖에 나갈 때는 챙겨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이젠 아예 거지같이 입고 다닙니다.
또 내가 가진 물건,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속한 집단 등에 대한 욕에도 둔감해집니다.
이전에는 나와 연관된 어떤 것에 대해 누가 욕을 하면,
자동으로 반응을 했는데... 이제는 수용을 하거나, 대응을 하거나...선택할 수 있습니다.
속으로 울컥해서 뭐가 올라오는 자동반응이 없어진 거죠.
같이 놀아주고 싶으면 놀고, 아니면 말고입니다.
이외에도, 공감력도 올라가고,
나를 규정하는 말에도 신경이 안 쓰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간에....
내가 나대로 존재하면(남에게 직접적 피해 안주면서)
그런 나를 판단하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지 제 몫이 아니더군요.
간단한 예로, 박그네라는 존재를 우리는 닭으로 보지만,
수꼴들은 공주님으로 보듯... 그 존재는 그대로 있는데
보는 사람의 평가만 다릅니다.
문재인 같이 청렴한 인권변호사도, 수꼴들에게는 한 게 뭐있냐?는 무능자이며,
빨갱이로 보일뿐이죠.
어떤 존재로 보이고 싶거나, 어떤 존재가 되려고 해봐야, 별 의미 없더군요.
이런 설명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면, 제멋대로 산다....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물론 피상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설명을 해도 이해 못할 확률이 높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뭘 하며 살아야겠다.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개념이 분명히 잡혔습니다.
이전에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개념이 뚜렷해졌습니다.
돈이 필요 없다는 소리가 아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생각나는 것 몇 개만 적어 봤습니다.
제 경험적 관점으로 봐도 그렇고,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봐도 그렇고...
자존감을 높여주면,
아이는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하고, 그런 삶을 찾아갑니다.
그게 돈을 많이 버는 일 일수도 있고,
돈은 안되고 봉사만 잔뜩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치만 그 당사자는 그걸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닥치고 공부해라...라는 말보다.
자존감을 키워주는게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설사 행복하지 않다 하더라도,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더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멘탈)도 훨씬 강해집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도 커지는 만큼, 제멋대로 굴지도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으면 자기수용능력도 높은데,
이는 자신이 처한 현실도 같이 수용하는 능력입니다.
즉 자신의 처지에 맞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그에 맞는 발판을 밟고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택도 없는 이상을 가지거나,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듯, 무조건 그렇다고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은
아바타적인 삶을 사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습니다.
남의 삶을 산다는 말과, 자신의 삶을 산다는 말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분들 많은데....분명 다릅니다.
다만 내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같아 보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