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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학살·생매장" 외신이 본 '잔학한 일제'
3·1 운동 학살 참상 보도한 워싱턴 타임스
(광주=연합뉴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본이 조선의 민간인들을 불태우거나 총살, 생매장하는 등 대량 학살한 참상을 목격한 미국인의 고발이 1922년 3월 5일자 워싱턴 타임스에 보도됐다. 사진은 당시 기사 전문으로 기고자인 로버트 워드(Rovert L. Ward)는 윗 사진은 어린 조선 소녀들에게 총구가 겨눠진 모습, 아랫 사진은 처형 후 살아남은 조선인을 일본군이 다시 생매장하려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자료) areum@yna.co.kr
워싱턴 타임스, 일제 학살 직접 목격한 르포 게재
"잔혹한 日 보니 美와 전쟁도 머지않은 것 같다" 대비 촉구도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남편과 아들의 행방을 말하지 않은 86명의 아내와 12명의 어머니가 처형당했다.'
1919년 3·1 운동을 전후해 한국과 중국 등에 체류했던 미국인이 고국에 돌아가 현지 언론에 일본군이 조선에서 자행한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워싱턴 타임스 1922년 3월 5일 자 4면에는 '일본이 조선을 총과 대검으로 억압하며 98명의 여성이 대량학살당했다'는 제하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전면에 실렸다.
워싱턴 타임스는 이날 기사에서 조선의 독립 투쟁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미국인 사업가 로버트 워드(Robert L. Ward)가 3년여간 극동 아시아를 다니며 직접 보거나 들은 참상을 르포 형태로 풀어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역사학 교수들에 따르면 워드가 기사에서 고발한 사건은 간도 참변, 수원 제암리 집단학살사건 등이다.
워드는 1920년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을 위해 한국인 마을을 습격, 3천600여명이 학살된 간도 참변의 한 현장을 언급하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해 대량 학살을 자행했던 사건에 비유했다.
워드는 조선인 336명이 한 곳에서 간단히 처형당했고 이들 중에는 남편과 아들의 행방을 말하지 않아 처형된 여성 98명이 포함돼 있었다며 부녀자 학살까지 서슴지 않았던 일본인의 만행을 고발했다.
일본 경찰이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저지른 1919년 수원 제암리 집단학살 사건의 잔혹한 실상도 전했다.
일본 경찰은 미국인 선교사와 접촉하거나 교회에 모여 독립운동을 계획한 것으로 의심되는 조선인들을 학대했다.
워드는 일본군이 제암리 학살을 숨기려 모든 남성주민을 교회에 들어가라고 한 뒤 불을 질렀고 (밖으로 나오는 이는) 총검으로 찔렀다고 서술했다.
그는 일본군이 당시 교회 근처로 다가온 여성 두 명도 총검으로 찔렀으며 시체와 교회 건물에 등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
워드는 총살과 생매장 현장 등 자신이 직접 목격한 참상을 설명하며 일본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미국과의 전쟁이 머지않았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드는 당시 서울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길거리에서 14∼15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총검이 겨눠진 상황을 목도했다며 관련 사진을 함께 게재하기도 했다.
소녀들은 일본인 관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고문이나 굶김을 당하거나 서로 엄지손가락이 묶인 상태로 군인들에게 끌려가기도 했다.
워드는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남성이 집에서 끌려나와 처형을 당했으나 숨지지 않고 고통에 괴로워하자 일본군들이 돌아와 남성을 산 채로 생매장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워드가 남성이 처형을 위해 끌려가는 동안 그의 집과 가족들은 불에 탔다고 서술한 점으로 볼 때 간도 참변의 한 현장을 서술한 것으로 추정했다.
3·1 운동은 도시에서 시작된 국내 독립운동 움직임이 농촌 등 전국을 넘어 중국, 미국 등지까지 확대되게 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의 탄압과 우리의 항일투쟁 상황이 전달됐고 1919년 4월 뉴욕 타임스 기사를 시작으로 해외 언론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문화말살정책, 민간인 학살 등이 소개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