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시나위반도의 시나위 성지를 순례하려던 진천의 한 교인들이 살해를 당했고,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다음의 댓글을 보니,
1.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천국을 갔으니 잘됐다.
2. 무례한 성지 순례의 참극을 자초한 것이니 비난받아야 한다.
3. 죽음은 애도할 것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라고 정리가 되더군요.
여기 두 분의 회원님들의 가까운 지인께서 운명하셨고, 그리고 많은 다른 회원님들이 애도의 글을 올리셨더군요.
저는 죽음은 애도해야할 슬픈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고 있으면,
억눌리고, 불안하며, 고독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보아,
모두 죽음은 나쁘고 슬픈 어떤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서 두가지 사유를 하게 됩니다.
첫째, 천국과 지옥이 있는가?(영혼이 있는가의 문제)
둘째, 죽음은 고통스럽고 슬픈 일인가?(애도의 문제)
첫째 질문에 대해서 와싸다 횐님들은 다들 아시고 있는 듯 하여 논의를 줄입니다.^^
"영혼따위은 없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떤 이들은 죽음 이후에 또 무엇이 존재하는가? 라고 질문하는데,
이것은 "연극이 끝났는데, 또 연극이 있는가? 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질문이 좀 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명제가 와 닿아서 인용해 봅니다.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니 슬플일이 없는 것이죠.
결국 슬픔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것이고, 그들의 연민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닐까요? 산 사람이 만든 상대적인 박탈감, 그것이 죽음에 대한 정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힘듭니다. 더 자고 싶어서... 그리고, 저녁에 따듯한 이불속에서 잠을 청할 때 행복합니다.
정작 탄생이 고통이고 죽음이 행복을 가져오는 일인데, 우리는 슬퍼할 일에 축하를 하고 축복할 일에 슬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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