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부딪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 형제도 갈등으로 인해, 차라리 이웃사촌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하지요.
그것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책임 일 수도 있고,
그 자식의 비뚤어진 성장과정이 요인 일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인과관계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뜻과 상관없이 그 누군가의 아들 딸로 태어난다는 것이죠.
저는 지금도 제 어릴적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섯 여섯 살 무렵 쯤인가, 어느 겨울날 제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신적이 있습니다.
1960 년 대 기차도 전기도 볼수 없던 두메산골 오지마을에서는, 밤을 밝히기 위해 호롱불을 켜고 지내던 시절인데,
혹시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예비로 쓰기위해 집집마다 석유를 소주 대 병 짜리 유리병에 담아, 방 벽에 매달아 놓곤 했지요.
부모님께서 무슨 일로 싸웠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나신 술취한 아버지께서 집안 살림살이를 집어던지고, 어머니께선 죽여라! 죽여라! 하며 악을 써대시고,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어린 저에게는, 그 광경이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하신 아버지께서, 불 싸질러 다죽어버리자며 벽에 매달린 석유병의 석유를 바닥에 끼얹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석유가 제 아랫도리를 흥건히 적시게 되었는데,
여린살이라서 그런지 기름독으로 사타구니 피부가 부풀어 올라, 이 날 이 후 어머니께서 몆날 몆일을 고약을 발라줬던 생각이 납니다.
이후로도 부모님의 잡다한 다툼은 수도 없이 많이 보았지만,
그때의 석유사건은 제 삶을 통틀어 가장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 입니다.
어쨋거나 저는 무럭무럭 자라나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인으로 자라나며 다짐하게 된 것이,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세월이 흘러 저도 결혼을 하였습니다.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고단한 생활고로 인해, 그토록 다짐했던 맹세는 언제 그랬느냥,
예전 아버지께서 하셨던 행동 그대로가 내 모습에서 재현되는걸 보고,
저 자신조차 충격을 먹었습니다.
참으로 무던한 사람...
온갖 폭언과 폭행에도,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길 가겠다는듯이 대꾸 한번 안하던 당신...
이리 살바엔 차라리 이혼을 하자는 내말에,
"내가 당신하고 살려고 했을때,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헤어질려고 마음을 먹었었으면 진작 헤어졌지...
이만큼 고생하고, 이제와서 헤어지자고? 이혼할려면 혼자나 해! 나는 절대 이혼안해!!"
네.....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의 그 우직함이 나를 살렸습니다.
그때 당신이 내 말을 따랐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십중팔구는 가랑닢 나뒹구는 쓸쓸한 벤취에 퍼질러 앉아,
대낮부터 술에 쩔어 허우적거리는 알콜중독 노숙자신세로 전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당신이 해준 밥을 먹고, 당신이 세탁해준 옷을 입고 출근을 합니다.
밖에 나가면 저의 번듯한 외모를 보고 사람들은 다 내가 잘난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나마 이만큼이나 사람행세 하고 다니게 된 그 뒷편에는,
당신의 눈물이 있었고 당신의 노고가 있었다는걸...
P.S
엊그제 막내 아들놈이 부모님께 할말이 있다며, 여친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이 달에 양가 상견례자리를 가졌으면 한다더군요.
예비며느리에게,
밥은 먹었니? 하고 물으니, 아직 안먹었답니다.
가자! 내가 닭도리탕 사줄께~
식사를 하며,
두사람을 앞에 두고 한마디 했습니다.
"사랑! 그거 2 년도 못간다~ 부부는 정으로 지내며 측은지심으로 살아가는 거다.
상대를 불쌍하게 보면, 애틋한 감정에 하나라도 자꾸 도와주고 싶어지는 거다.
나중에 가서 사네 마네 소리 나올것 같으면, 지금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라.
예비며느리가 그러더군요.
"네 아버님 명심할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