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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子時]고정희 시인의 호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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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5 23:3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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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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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子時]고정희 시인의 호박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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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가입일자 : ]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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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Link: http://www.youtube.com/watch
호박
호박이 익었다
우리나라 땅에서만 자라온
토종호박들이
불볕 더위 아래 이리 딩굴 저리 딩굴
누릿누릿 호박이 익었다
조선땅 어디서나 흙에 심기만 하면
토담이고 울타리고 쑥쑥 뻗어올라
못생긴 꽃타래를 피워내고
하대받는 풋호박을 주렁주렁 달아
놀고먹는 건달들이 쿡쿡 찔러보는
토종호박
흉년 들면 서민들의 밥이 되고
난세에는 마적떼들의 죽밥이 되는
조선 토종호박이 익었다
호박은 호박인 탓으로, 그러나
손톱에 할퀸 데는 할퀸 자죽을 내고
도리깨질 당한 데는 당한 자죽을 내고
군화발에 밟힌 데는 밟힌 자죽을 내고
철사줄에 묶인 데는 묶인 자죽을 그대로
지난 아픔 그대로
또렷이 익어버린 조선호박,
삼천리의 밥인 호박
케이농장에서 호박이 익었다
노릿노릿 뭉실뭉실
호박이 익었다
엿 해먹기 좋은 호박이 익었다
에잇, 엿먹어라
※출전: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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