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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 : 20세기 중반에야 이 땅에서 사라진 노비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01-11 19:19:22
추천수 13
조회수   2,855

제목

조선시대 노비 : 20세기 중반에야 이 땅에서 사라진 노비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blog.naver.com/alsn76/40204143285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17세기에는 전체 인구의 60% 가까이가 노비였고

18세기까지만 해도 40% 정도가 노비였다.





한 집에 수백명의 노비를 두었던 집도 적지 않았는데

신사임당의 친정에만 노비가 162명 었었다고 한다.

신사임당





퇴계 이황의 경우는

손자들에게 나눠줬던 노비들 수만 367명에 달했다.

이황







그런가하면 유성룡의 집안도

임진왜란에 기근과 돌림병까지 덮여서

많은 노비들이 죽고 뿔뿔이 흩어졌다는데도, 146명의 노비가 있었다.

유성룡







고로 노비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들은 그토록 허례허식을 채워가며

고상하고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 계집종에게 수치심이란 사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내 종은 머리에 두건을 동여매고

계집 종은 종아리를 드러내고 산다고 표현하는데,



지금에야 여인들의 늘씬한 각선미는

섹시한 미모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지만



전통시대만 하더라도

여자의 맨다리는 궂은 일을 한다는 뜻과

천하다는 뜻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성종 때 명나라 사신은









"조선의 계집종들은 종아리를 내놓고 다닌다."

라고 비꼬았고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도 고생만 하는 아내를 두고





정지용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벗은 아내'

라고 표현하고 있다.



원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벗은 발은 성(sex)을 상징했다.



그래서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에서는

피아노의 다리도 음탕하다고 천을 감싸게 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기생들에게도

'발 벗기기'는 무서운 벌이었고





종아리를 남에게 보였다가 수치심에

자살하던 사대부가의 규수들도 있었으니



이런 시절에 발과 종아리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계집종은 수치심을 내팽개친,

인간 이하의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저고리가 짧아지는 18세기 이후부터는

평민 아녀자들도 젖가슴을 드러낸 채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활보한다.









다만 이는 자식을 낳은 유부녀들의 특권이었다.









● 노비의 분류 : 노비라고 다 같은 노비는 아니었다.





노비는 크게 구분하면

국가기관에 소속된 공노비, 개인에게 소속된 사노비가 있다.





공노비

┌ 내(內)노비 : 왕실 기관에 소속

├ 사(寺)노비 : 중앙 관청에 소속

└ 관(官)노비 : 지방 관아에 소속





사노비

┌ 솔거노비 : 주인 집 호적에 등재된 노비

└ 외거노비 : 주인과 멀리 떨어져 독립되어 살아가는 노비



여기서 외거노비와 솔거노비에 대해서

조금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다.





외거노비들은 솔직히 노비라고 보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중세시대 농노, 일본 장원의 농민들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인을 위해 일을 하다가

가을걷이 후에 일정량의 쌀, 무명 따위를 바치기만 하면

별로 간섭 받지 않고 살았다.







한편 솔거노비들의 경우는

주인집에서 함께 살던 노비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조선시대에 수 많은 노비들을

모두 한 데 데리고 살만큼 큰 집을 가졌던

양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개는 주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가삼간을 짓고 사는 솔거노비들이 많았다.





이들의 집이라고 해봐야 방한 칸이 전부였으니

이런 집을 일컬여, 호지집, 가람집 등으로 불렀다.





▲ 호지집







● 죄를 크게 지면, 식구들 모두가 노비가 됐다.



동아시아에서 노비는

애초에 전쟁포로나 범죄자에서 비롯되었다.



경국대전에서도 노비에 관한 조항은,

민법이 아니라, 형법 파트에 올라와 있다.







특히 대역죄를 지으면 조선시대 특유의 연좌죄로

삼족(부계+모계+처계)이 모두 종으로 내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조 때 단종복위 운동을 하다가 붙잡힌 사육신들은

모두 능지처참(정확히는 거열형) 되어 처참한 죽음을 당했는데,



이중에 박팽년은 국문 중에 죽었음에도

죽은 시신을 가지고 사지를 오등분으로 찢었고

박팽년





그들의 식솔들 중 남자는 모두 교수형을 집행했고,

여자들은 모두 관노비로 내쳐졌는데

이때 박팽년의 며느리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에 세조는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세조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계집 아이가 태어나면 관노로 내쳐라."



그러자 전전긍긍하던 박팽년의 며느리에게

한 여종이 제안을 했다.

마침 그녀도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만약 아씨가 아들을 낳고

소인이 딸을 낳으면 자식을 바꿉시다."



라고 제안을 하였는데,





진짜로 박팽년의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여종은 딸을 낳아 자식을 서로 바꾸게 됐다.









그래서 박팽년의 손자 박비는 목숨을 부지하여

대구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후 100여년이 지나

명종 때 대구 부사가 사건의 내막을 알고는

죽은 박비의 아들 박충후를 노비문적에서 빼내어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조정에도 알려지게 되어

박충후는 관직까지 제수받게 되었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의 스토리는

드라마 '마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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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2014-01-11 19:26:55
답글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br />
<br />
17세기에는 전체 인구의........... 60% 가까이가 노비였고<br />
18세기까지만 해도.................... 40% 정도가 노비였다.<br />
<br />
한 집에 수백명의 노비를 두었던 집도 적지 않았는데 <br />
신사임당의 친정에만 노비가 162명 었었다고 한다. <br />
<br />
퇴계 이황의 경우는 <br />
손자들에게

이영갑 2014-01-11 19:35:02
답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제 어머니도 시집올 적에 '몸종' 두 분을 데려왔었다네요. <br />
노비제도가 없어진 일본강점기 말기까지도 시골에서는 그 잔재가 남아 있었던거죠.

김재용 2014-01-11 19:41:32
답글

한국에도,,,,,,,,,, 분명히 50 % 이상의,, 수드라의 천민들이 있었네요.. <br />
지금 이 시대의 천민은 ??? <br />
<br />
역사적으로 보아도,,, 기회의 균등이나 평등보다는 <br />
불평등 !!! 의 착취의 역사이지 않나.................... <br />
<br />
정의는............ 현실세계에서는,,,,,,,,,,,,,, 없다.......... ?? <br />
<br /

황준승 2014-01-11 20:32:12
답글

그당시 사람들은 노비제도를 당연시 했겠죠<br />
그래도 서양 노예들처럼 주인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게 했다 합니다

hugoalto@comcast.net 2014-01-11 22:02:24
답글

노비제도가 사라졌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br />
그 정도만 달라졌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노비들이 스스로 노비임을 부정하고 사는것 뿐입니다. 양반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고용일 2014-01-11 22:11:23
답글

노예들 지금도 많지요<br />
<br />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하기 싫으면 관둘수도 있다는거<br />
<br />
하지만 그 노예들은 자진해서 노예가 되지요..먹고 사는게 좀 더 낫다고

임상호 2014-01-11 22:29:04
답글

<br />
저는 남자 화장실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들 보면<br />
화가 치밉니다.<br />
<br />
남자들 화장실에서 저런게 고생하시면서<br />
봉급은 돈 100정도 받고서 저 고생을 하시는걸 보면서<br />
저분들 하루 일당이 적어도 10만원씩 300만원은 되어야 하고,<br />
4대보험 모두 가입을 시켜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br />
<br />
이왕 나온김에<br />
화장실에서 큰 ~ 일보고 화장지

이동호 2014-01-12 00:30:31
답글

조선시대 노비가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리고 양반을 제외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br />
왜 모두들 양반들이나 지내던 제사를 따라서 지내고 있는 건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br />
평민들이 제사를 지내면 안 그래도 부족한 경제적 여건에 어려움만 생기지 실질적으로 좋은 점도 없었을텐데요. 모두가 양반이었던 척 하는 삶을 시작하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국민성이랄까 그런게 생겼지 싶네요<br />
지금의 제사 기원도 중국에서

이동호 2014-01-12 00:32:56
답글

양반흉내를 내고 있는 한 정신적으로 의식수준에서 아직 노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 아닐까<br />
이런 생각이 드네요

양민정 2014-01-12 08:24:11
답글

전에 KBS 역사 프로그램 에서 다룬것을 보면 <br />
그때 이미 노동력의 경제적 가치와 의미를 완전 파악하고 경제적 측면에서 노비를 늘이기 위한<br />
기득권들의 더러운 짱구 돌리기가 횡횡 했더군요.<br />
어문 사람을 노비로 만들었다는 거죠...때로는...<br />
<br />
지금의 현실과 본질은 같다고 봅니다. 본인들이 노비라고 생각을 전혀 못하는게 현실이고..

이지강 2014-01-12 08:56:20
답글

울나라 노예근성이 설명이 되네요~

부승헌 2014-01-12 08:57:50
답글

미국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장할때, 실상 노예들 60%이상이 반대했다고 하네요.<br />
<br />
노예 안하면 뭘해먹냐고...<br />
<br />
요즘 한국도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이 태반입니다.

문지욱 2014-01-12 15:51:22
답글

휴지 변기에 넣고 막히면 아주머니들이 더 고생하게 되죠.

김영일 2014-01-12 16:07:18
답글

지금도있잖아요? <br />
<br />
권력에 빌붙어서 서민들 쥐어짜는 ㅅㅋ들....

박상민 2014-01-13 08:53:25
답글

휴지변기는 양반이에요 여자들 생리대를 변기에 넣는사람도 많아요 ^^ 막히면 듀금임 잡으면 입에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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