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나무들로 이루어져 왠지 모를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한 온도를 머금은 낮은 지형도를 이루는 병풍 같은 뒷산이, 그보다 더 낮은 저지대에 형성된 아파트 단지의 행렬을 굽이 보는 가운데, 드높은 곳에서 푸른 빛깔로 유영하는 신지무의한 하늘은, 미적거리는 저온과 함께 휘몰아치는 바람에 의해 한층 그 투명함이 지상으로까지 회향했다. 내게는 이러한 전경이 아련하게만 느껴졌다. 바야흐로 가을인 것이다.
버스의 창에는 지긋한 관록의 느낌을 심어주는 바랜 햇살이, 어느 찰나에 비스듬히 투과한다. 회색과 하얀색이 전체적으로 섞여 둔탁한 일곱 가지 무지개의 나뉨이, 어떤 반영의 그림자를 그리듯 기내에 쓸쓸한 수채화를 소묘한다. 이러한 인식은 빛바랜 과거의 연상과 같은 것이다. 마치 플라이미드 필름으로 나의 과거사를 찍은 다음 현상해서 널어놓은 다음, 이 갈색 사진들을 자조하여 바라보는 듯한.
이런 순간들, 시공이 연계되는 감수성의 임계점에서 터져 나올 것같이 흐느끼면서도 결국에는 관조하는 초연한 순간들을, 마치 생동하는 물질처럼 의식 안에서 빚어낸다. 풍경과 풍경의 이음새가 형용할 수 없는 정신현상, 이를테면 반추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고 그리하여 감수성의 떨림이 일정한 이미지로 설계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건 자연적인 현상에 다름없다. 최소한 나의 지각에 있어서는 부지불식간 스스로 그러하다.
이윽고 산 밑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필라멘트들의 노란 행렬이 양쪽에서 가차 없이 육박하며 어둠 속에서 한없이 무한한 긴장을 형성할 때, 아직까지도 마모되지 않는 시간의 사슬을 알아차린다. 기억과 기억이 이어져 있는 것, 그것은 한 개인의 역사성으로서의 시간성이, 현재로서의 뚜렷한 지적 인식 없이 한없이 흘러가, 꼭 한 가닥 가느다란 희망도 좌절도 없는 초연한 가운데서 주체할 수 없는 삶의 통시성으로서(혹은 발전하다가 퇴보하면서도 다시금 진보하는 전체적 과정으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바를 기억을 공리로 세운 시간적 순서의 연역, 이른바 역설적인 소급이라면 그러할 것이다.
전철이 역사(驛社)를 떠나 행군하는 모습이 아랑곳하다. 반면 굴다리 밑으로 동시에 버스는 행진하면서 순식간에 그 기계적인 율동을 흘려보내 마치 십자가 모양으로 속도가 가리키는 방향의식의 수맥을 만든다. 그리고 또다시 시골풍광으로 들어간다. 아스팔트의 끝물에 서있는 인공적인 울타리들 안에 펼쳐진 도랑과 석간수(石間水)며, 수맥의 힘을 받은 기다란 수풀과 어렴풋이 부는 사뿐한 바람은 내게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강변에 비친 가을하늘은 정적인 매무새를 가지고 있다.
희 번득하게 유난한 가을햇빛과 이 주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느림 같은 것이 창가에 비친다. 아득하게나마 나는 유년시절의 간절함을 애상하며, 그런 고귀한 가치가 현재성에 거울처럼 반영되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비의를 말미암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서글프기도 했다가 이내 스스로가 매우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나의 청춘을 양주에서 불사른 것과 이곳에서 보낸 지난 칠년이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살아가마고 다짐한지 딱 그만큼이 흘렀다. 만 가지의 순간들은 이미 일련의 문장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듯 어떤 의미에서는 자서전적으로 하나의 필설밖에 논할 수 없는 글쟁이의 숙명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작가나 철학자가 말이 많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평생은 몇 권의 책으로만 남겨질 뿐이다.
무진하게 살아온 세월은 덧없는 인생 속으로 미끄러져 청운을 지향하는 것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예도(藝道)의 층위로서 글쓰기에 스며든 대의의 칼날은 더욱 시퍼레졌다. 이로써 예술은 도와, 그러니까 텍스트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혼과, 깊이 있는 의미성을 지닌 격물치지라는 인식이 일체가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구문론적 장이 역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실한 독법과 해석학, 곧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가 보는 언어적 사유의 세계가, 진정 감수성의 영역인 것이다. 고결함의 영역은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어떻게든 타자로서 뻗어나가지 않고 온전한 동일자로서, 즉 존재자 안에 본질과 현상이 일치하는 향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2
양주 연변풍경을 바라보던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곳에서 나는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여기는 내 고향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 고향보다 더 중요한 장소다. 이미 내가 되돌아갈 수 있는 곳, 고향이나 도피처는 없었다. 이 양주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결해야 하며 오로지 이 별볼 것 없는 장소에서 나 자신과 세계, 관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개인과 사회, 그리고 양자의 동적인 관계와 이의 정합성을 규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반성적인 규정, 이른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현실’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방방곡곡 버스로 돌아다니면서 나는 이 공간 저 공간 속에 감겨있는 좋은 추억이며 악몽과 같은 기억들이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양주는 내 청년시절 그 자체였다. 나는 열아홉의 끝 무렵부터 스물여섯의 가을이 다가오기까지 양주에 내 꿈이며 고고한 사유며 혁혁한 사상이며,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내 마음을 전부 주었다. 여기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눈부신 시절과 비참한 시절이 이중주처럼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숲도 도심도 아닌 어정쩡한 양주, 이 가난한 사람들의 땅이 내겐 끔찍한 제2의 고향과 같은 장소가 되어버렸다. 생에 있어 한 지역에 이토록 오래 머문 전례는 없었다. 비록 내가 여기에서 비참한 일들을 겪고, 말 많은 마을노인네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며 정신병자라고 낙인찍었는데, 이러한 현실들이 갖가지 우여곡절과 고통의 나락의 연쇄가 운무처럼 흔들거리고 있을지언정, 나는 이 비애의 땅을 사랑한다. 여기서 보낸 칠년이 내겐 청년의 대의의 목적을 향한 발걸음과 같은 것이고, 그 열정의 종횡무진을 나는 아직도 뜨겁게 기억한다. 하필 이곳은 찬란한 도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의 땅을 사랑한다. 임꺽정의 영(靈)이 산 위에서 굽어보는 이 소박한 지역을 오래도록 뿌리 깊게 증오하다가, 이제야 나는 양주라는 대자연의 이름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내가 여기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에도 나는 이 양주의 풍경에서 여전히 살리라 예상한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스무 살에 양주에 망명 와서(아버지가 주식에 집 한 채를 축내 의정부에서 쫓기듯 왔으니 망명 아닌 무엇인가)부터 나는 정식으로 운필하기 시작했다. 펜과 a4용지에 미친 듯이 자신의 생각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내용들이었지만, 그 힘 있는 자세는 현재와 비교해서도 결단코 부족하지 않다.
글에 내 이성과 감수성을 담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는 눈부신 젊음의 지적 폭발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느끼던 언어가 의식 속에서 폭발하며, 하루라도 아포리즘을 그적거리며 잠들 수 없었던 밤들. 세월의 풍파 속에 나는 이상의 [날개]에서 고립되고 무능한 룸펜지식인의 자화상을 내 안에 반영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부모 밑에 기생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철학한다, 문학한다는 소리나 하며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
내 의식의 지적 비약이 현현의 형식으로 아로새겨지기를.
“단 한 번만이라도 날자, 날자 꾸나”,를 외치고 싶었다. 멈출 수 없는 자의식적 욕망은 언제나 그렇듯 노벨문학상의 허영을 상기시킨다. 문인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나 받지도 못할 노벨문학상을 망상한다. 하지만 그러한 포부가 과연 작가가 겪는 생활고 속에서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도권 공부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문적인 작가이외에 어떤 길이 내게 또 있을 것인가.
연방 햇살이 찌부러진다. 버스는 천천히 달리다가 이윽고 ‘카페 갤러리아’에 멈춰 선다.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버스 계단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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