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가 올린 친구부부이야기 글로 인해 시끄러웠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올립니다. 제가 이곳에 날것처럼 핏기나는 글을 올리는건 이제는 아는 사람과/또 만날사람과 속내를 이야기 하는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하고싶고, 이야기하자니 이리저리 걸리기에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히 비슷한 또래(?)가 상주하는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분이 허락없이 글을 다른곳으로 퍼 날랐더군요.
예의에 한참 어긋난 일인듯 합니다. 제글은 불펌입니다.
그냥 이곳에서 냄새나는 중년 남자들끼리 재미있으면 웃고, 재미없으면 스킵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 이야기입니다 -
작년 추석전 본가로 호출을 받았습니다.
부모님 형편이 아주 어려우니 도우라니 호출내용입니다.
아버지는 69세로 아주 건강하십니다. 올해 44살인 전 아버지랑 팔씨름해서 이길 자신 없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쭈어 보니,
빚 4천을 대신 상환해 주고, 안양에 20평 내외의 집을 구해주고, 월 150정도 생활비 지원해달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일시금 2억과 연금 150 이라는 이야기네요
능력 안됩니다. 결혼후 15년 동안 1억정도 본가로 지원한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화수분이 될수 없기에,,,,,
부모님 두분은 저희집으로 들어오시고, 월 30만원 용돈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40넘어 혼자인 남동생은 부양 불가능 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노발대발,,,,,인연 끊자고 하시네요 ㅠㅠ
네 그러시지요 라고 말씀드리고 나왔고, 그후 연락 안하고 살고 있습니다.
1975년
깜깜한 밤에 온식구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도착한곳은 까만문이 있고, 문 양옆으로는 좁다란,,,,이쁘지도 않고 지저분한 그런 화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몇일 후 어머니는 아기를 안고 오셨습니다. 여동생 출생에 관한 기억입니다.
44살이 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제가 71년 12월생이니 생후 44개월의 기억이네요
1977년
예쁜 돌담길로 어머니와 저, 동생들이 놀러 갔습니다. 분명히 미술관인건 기억나는데, 그림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네요
나중에 이곳이 덕수궁인걸 알았습니다.
미술관 구경하고, 돌담길에서 어머니가 이야기 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테니, 아빠 따라가서 잘 살아라"
잠시후 아버지가 오셔서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그집엔 어떤 아줌마가 있었고, 아버지는 지금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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