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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아버지는 진정 천재셨군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11-28 16:22:00
추천수 8
조회수   1,748

제목

컴퓨터의 아버지는 진정 천재셨군요..

글쓴이

김동환 [가입일자 : 2004-06-03]
내용
폰노이만



http://mirror.enha.kr/wiki/%EC%A1%B4%20%ED%8F%B0%20%EB%85%B8%EC%9D%B4%EB%A7%8C









그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 교사는 그를 유명한 수학 교수에게 데려갔는데, 그 교수는 그의 재능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제자들이 컴파일러와 고급언어를 만들라치면 노발대발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렇게 은혜로운 기계를 가지고 연구는 안하고 잔머리를 굴린다'고. 자신은 0과 1을 직접 입력해서 돌리면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사람이니...[5]

유진 위그너와 폰 노이만이 김나지움에 다녔을 때, 11살의 유진 위그너가 10살 폰 노이만으로부터 집합론과 정수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한다. 위그너가 노이만에게 어떤 정리에 대해 물어봤을 때 노이만은 다른 정리 A로부터 그 정리를 도출해내었다. 그런데 설명에 사용한 정리를 위그너가 모르고 있자, 노이만은 또 다른 정리 B에서 A를 도출해주었고, B를 모르자 다시 위그너가 알고 있는 C를 사용해서...

유진 위그너는 노벨상을 받을 때 노벨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폰 노이만이란 말을 했었다. 기자가 위그너에게 "왜 헝가리에는 그렇게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까?"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노이만과 위그너를 전후해서 대략 같은 세대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10명이었다(노이만과 위그너 등 친구들 여러 명이 제2차 세계대전 전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화성인들'이라고 불렸다). 이 질문에 위그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천재가 많다니요? 천재는 오직 노이만 한 사람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위그너도 매우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평생 폰 노이만의 그늘에서 살아야 했다(그렇다고 열폭한 건 아니고, 폰 노이만 덕분에 늘 겸손하게 살았을 뿐이다. 위그너는 폰 노이만을 아끼고 존경했다). 유진 위그너는 원래 수학전공이였으나 물리학으로 전공을 돌린 이유가 폰 노이만의 재능을 보고 자기는 수학으로 죽어도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토마스 쿤이 '본인의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나요?' 라고 물었을 때 '폰 노이만 만큼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취리히 대학에 다닐 때 뛰어난 수학자였던 조지 폴리아는 폰 노이만에 대해 회상할 때, "예전에 그가 있던 클래스에 강의할때 어떤 정리를 이야기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아마 꽤 어려울거다라 이야기했는데, 폰 노이만은 5분후 가만히 손을 들더니 칠판에 나와 증명을 바로 써내려갔다. 이 이후부터 나는 폰 노이만을 두려워했다" 라는 말도 남겼다. 흠좀무.

동료가 어릴 때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읽은 '두 도시 이야기'를 암송해 보라고 하니까 동료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30분 가량 외웠다.

동료 물리학자인 에이브러햄 파이스[6] 맨하탄 프로젝트 후 오펜하이마 사건 때, 폰 노이만과 오펜하이머[7]의 안 좋은 사이를 보며 오펜하이머가 폰 노이만의 재능에 대해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서술했다.

괴팅겐에서 힐베르트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된다. 양자역학 형식주의에 힐베르트 공간을 도입한 인물은 힐베르트가 아니라 노이만이다. 폰 노이만은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키려는 버트런드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시도를 냉소했고, 역시 수학의 한 이론의 무모순성을 증명체계 속에서 증명하려는 힐베르트의 시도에 회의적이었다. 전자의 시도는 다수의 수학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후자의 시도는 괴델의 등장으로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실은 노이만 역시 괴델의 아이디어를 이미 생각해본 적이 있었으나 힐베르트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의 시도를 도왔다고 한다.

또, 위의 물리학자가 쓴 일화로, 또 다른 뛰어난 수학자 친구가 며칠 동안 밤을 세서 푼 문제로 폰 노이만에게 장난치려고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숨기고 같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폰 노이만이 문제를 순식간에 술술 풀어나가고 동료 수학자가 밤을 세워서 풀었던 가장 어려운 부분만 남겨놓자 화난 수학자가 답을 말하고 나가버렸다. 1분 후 폰 노이만은 그가 말한 답이 옳다고 말한 후 30분 동안 어떻게 자신보다 빨리 풀었는지 고민하다가 물리학자가 사실을 이야기해주자 그제야 웃으면서 밥 먹으러 갔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에이브러햄 파이스는 폰 노이만 보다 위대한 인물은 만났지만,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이 분도 만날 과학자 다 만난 유명 과학자다) 이는 그의 동료도 동의했다.

프린스턴에선 그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터득한 반신반인-혹은 외계인-이라는 설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아내와 영화를 볼 때, 영화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뉴스는 정말 집중해서 봤으나,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자버렸다고 한다. 그 후 나와서 아내가 영화에 대해 물으면 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였지만 영화내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폰 노이만 스스로 만든 컴퓨터와 계산 능력 대결에서 승리한 적이 있다.

수소폭탄의 효율을 계산하기 위해 페르미는 대형 계산자, 파인만은 탁상 계산기로, 노이만은 천정을 바라보며 암산했지만, 노이만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값을 냈다고 한다.[8]

7개의 외국어를 모국어 같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발음 또한 완벽하다고 전해진다. 외국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한번 읽거나 들은것은 모조리 외워버리기 때문에 점점 외국어 실력이 쌓여만 갔다고 한다. 어릴때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에 오면서 좀 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도했다.

김나지움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어느 연구기관이든 동료들은 압도적인 천재성을 인정했다.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뇌세포가 증식이라도 하는지 계산능력과 암기력이 갈수록 좋아졌다고 한다.

운전을 잘 하지 못했지만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낸 뒤에 진술서에는 "내가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른쪽의 가로수들은 시속 6마일의 규칙적인 속도로 나를 스쳐가고 있었다. 갑자기 그 중 하나가 내 길을 막았다."라고 진술했다고...

엔리코 페르미의 부인은 "자니(노이만의 애칭)는 뒤에서 험담을 듣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비서의 책상 앞부분을 없애놓고 가끔씩 허리를 숙여 비서의 치마 속을 보는 취미를 가져서 비서가 마분지로 책상 앞을 가려놓았다고 한다. 이런 변태 영감!

누군가 "200마일 길이의 철로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두 대의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 때부터 두 기차가 서로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도로 두 기차 사이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파리가 이동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일까요?"라는 질문을 노이만에게 했다. 노이만은 1초의 지체도 없이 150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실망하면서 "역시 당신은 속임수에 걸리지 않는군요. 대개 이 문제는 무한급수를 이용해서 풀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논리를 이용해서 파리가 2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알아내면 금방 풀리죠. 당신은 그렇게 풀어낸거죠?"[9] 노이만은 대답했다. "아뇨.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10]

MIT 학생이 복도에서 폰 노이만을 만났다. 학생이 "실례합니다. 노이만 교수님, 계산문제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자 노이만이 자신은 바쁜 남자라며 빨리 하자고 한다. 학생이 이 적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자, 노이만은 잠깐 생각하고 답이 2파이라고 말했다. 학생이 답은 알지만 그 과정을 모르겠다고 하자, 노이만이 다시 본다고 하며 또 잠깐 멈춘 후 답은 2파이라고 말했다. 학생은 당황하며 얻는 과정을 모르겠다고 말하자 노이만은 "뭘 원하는 거야, 소니. 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풀었는데!"

그에 따르면 그의 머릿속에는 1헥타르 규모의 버추얼 화이트 보드가 있어서 종이와 연필을 이용하지 않고도 즉각적인 계산이 가능했다고 한다(...).

언젠가 "현대 수학은 매우 복잡합니다. 당신은 과연 현대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노이만은 이 질문에는 그답지 않게 한참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가 28퍼센트라고 대답했다. [11]

인생의 대부분을 불가지론자 혹은 훼이크 기독교도로 살았지만, 죽기 직전 암으로 투병 중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레알 가톨릭 신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12] 주변인물들에 따르면 이러한 개종은 평소 건강할 때의 발언이나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그의 병자성사를 주관한 신부에 따르면, 그 자신은 개종으로 그다지 큰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못미 ▶◀

그 외의 수 많은 성적 농담과 음담패설(...) 유명세에 비해 일화가 많이 안 남은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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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권 2013-11-28 17:38:17
답글

천재가 아니라 외계인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만...

이준식 2013-11-28 17:50:42
답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한번 읽어보시면 두 사람의 천재성이 어떤 면에서<br />
다른지 참고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송만기 2013-11-28 18:13:04
답글

인도의 라마누잔과 비교시 어떨까 궁금하네요..

권윤길 2013-11-28 18:41:12
답글

오펜하이머가 과학자로서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책략가이자 정치(?)인으로는 인정합니다.<br />
국가주의라는 명제만 주어지면 어떤 일이라도 가리지 않은 인물이기도... 과학자의 양심을 고뇌하던 사람들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른 걸 고민했던 인물이기도...

심병주 2013-11-28 21:59:34
답글

28프로. ㅎㅎ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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