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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11-27 17:01:43
추천수 3
조회수   716

제목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글쓴이

이숭규 [가입일자 : 2004-07-29]
내용
요즘 게시판 시사관련 글에 노이즈가 따라 붙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그때마다 연상하게 되는 김수영 시인의 시(1965년)입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월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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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호 2013-11-27 18:45:54
답글

좋으신 말씀입니다 자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ㅜㅜ

김인호 2013-11-27 20:17:39
답글

ㅜㅜ 슬프디 슬픈 자화상이라까요? <br />
<br />
아~ 너무너무 작은 나 자신아.

이기철 2013-11-27 23:14:29
답글

김수영시인의 시는 늘,,,, 생각을 깊게 만드네요..<br />
<br />
이숭규님이 이 시를 올린 이유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용정훈 2013-11-27 23:51:23
답글

이 시를 보면 육사의 초월적 독백에 대한 수영의 부끄러운 자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br />
하지만 적어도 완전한 굴종만큼, 자발적 노예화만큼 비겁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br />
옹졸하게나 마나 반항하고, 그 옹졸함을 부끄러워 하니까요. <br />
너스들 옆에서 거즈를 게키는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듯이, 인터넷에서 소리치고, 하다못해 "담벼락에다 대고라도" 욕하는 것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br />

이숭규 2013-11-28 02:18:09
답글

이 시를 볼 땐 누구나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죠. <br />
근데 요즘 게시판을 보면 아예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분들이 보여서<br />
오늘은 만용을 부려 그분들 보라고 올려봤습니다.

안유림 2013-11-28 09:52:43
답글

그렇지요. 정말 분노해야할 일에는 침묵한채....... 그래도 비겁할 지언정, 비겁하다는 것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얼마나 비겁한지, 얼마나 안타까운 세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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