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ed Link: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1509.html
독립운동가이셨던 조소앙 선생의 손자이자 제 절친인 조승래 교수의 번역서 소개가
한겨레 신문에 대문짝만하게(거짓말 닝꼽만큼 보태서^^) 실렸길래 자랑삼아 올립니다.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분은 링크한 기사로 들어가 보세요~~ㅇ --- 넘 닥쌀인감?^^
책 제목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원저자 제럴드 앨런 코언, 역자 조승래, 출판사 이숲, 정가 1만원
------------------------------------------------------------------
캠핑장에서 구현된 평등주의와 공동체 원리
캐나다 출신 정치철학자인 제럴드 코언 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평등주의’와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한 연구에 평생 동안 몰두했다. 이숲 제공
사회주의가 왜 옳은지를 논증
태생과 운에서 오는 불평등도
공동체의 이름으로 금지 주장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제럴드 앨런 코언 지음
조승래 옮김/이숲·1만원
제럴드 앨런 코언(1941~2009) 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학자는 아니지만, 영미권에서는 주요한 좌파 정치철학자로 꼽힌다. 공장 노동자였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공산주의 계열의 학교를 다니면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라났다. 옥스퍼드대 박사과정에서 익힌 영미 분석철학의 논리적·언어학적 엄밀성을 마르크스주의에 결합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라는 학파를 개척했다. 1978년 나온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의 새 장을 연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그 뒤 여러 사상적 변화를 거치면서, 더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사회주의의 필연성’, ‘역사유물론’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등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만은 68살에 사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평등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그는 당시 영미권 정치·사회 철학계를 풍미했던 자유 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과 자유주의자 존 롤스를 비판했고, ‘사회적 정의’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의 원제는 <사회주의는 왜 안돼?>다. 2001년 펴낸 논문집 <민주주의적 평등>에 있던 같은 제목의 논문을 수정·보충해, 금융위기가 일어난 직후인 2009년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그 한달 전 코언이 숨지면서 결과적으로 이 책은 그의 유작이 됐다. 한국어판 제목은 본문 중 캠핑의 비유에서 따온 것이다.
원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사회주의가 왜 옳은지를 논증한 것이다.
우리 모두 캠핑장에 왔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을 선호한다. 우리 사이에는 계급도 서열도 없고, 우리 공동의 목적은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주전자, 프라이팬, 기름, 축구공 등 각종 도구는 공동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낚시를 하고, 어떤 이는 요리를 한다. 서로 협동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여기서 갑자기 내가 감자를 썰 칼을 빌릴 때 얼마를 낼지, 그리고 그렇게 썬 감자 값으로 얼마를 받을지를 정하자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모두 싫어할 것이다. 해리는 낚시를 아주 잘해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지만, 그가 그 이유로 더 좋은 물고기를 먹겠다고 고집한다면 사람들은 반대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런저런 수고를 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아버지가 옛날에 자기를 위해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풀어놓은 것을 발견했다며, 자기 덕분에 물고기를 먹게 됐으니 자기가 더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감자와 도마, 해리, 모건 등의 비유는 시장교환과 사유재산권, 타고난 재능에 대한 보상, 상속 등에 대한 비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원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리 당연하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코언은 이 캠핑에서 구현된 원리를 ‘평등주의 원리’와 ‘공동체 원리’라고 말한다. 그는 ‘정의’에 부합하는 진정한 평등의 원리로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을 제시한다. 이는 신분·인종 차별처럼 형식적, 비형식적으로 개인 삶의 기회를 제약하는 것에 반대하는 ‘부르주아적 기회 평등’,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것 같은 사회적 배경의 제약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좌파’의 기회 평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코언은 타고난 재능, 지능 같은 태생적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도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태생적 차이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사회적 배경으로서 불평등을 낳기 때문이다. .
사회주의적 기회 평등이 실현된다 해도 불평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코언은 불평등의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불평등과 그럴 수 없는 불평등으로 나눈다.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운’의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이다. 코언은 이런 불평등은 공동체를 위해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 원리는 ‘상호호혜’ 원칙으로도 나타난다. 이 원칙은 “서로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 서로 배려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대가를 바라고 남을 배려하는 시장의 상호호혜와 대비되는 것이다.
코언은 이런 원칙들을 제시한 뒤 이어지는 의문점에 차례차례 답한다. 캠핑에서 볼 수 있는 사회주의적 관계가 매력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해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를 저지하는 현실적 권력관계가 없다 해도, 과연 인간의 본성에 비춰 사회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가?
코언이 이런 질문들에 모두 만족스러운 대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캠핑의 과정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고, 그런 규모에서 나타나는 복잡성과 다양성 안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모른다는 것이 앞으로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 이상의 옳음을 퇴색시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가 ‘인간의 발전 단계에서 포식의 단계를 극복하고 진보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시장은 포식의 체계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옳은 생각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50여쪽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간명하지만 정확한 언어로 논증해나가는 석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