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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위 영상의 음성 내용이며, 아래 출처 본문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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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전생 이야기
2005년 늦여름이 고비를 넘길 즈음, 동물의 전생을 궁금해 하는 친구의 궁금증도 해소할 겸 나도 한 번 알아볼 겸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다.
사자의 우리에도 가 보았고 원숭이 등도 만나 보았다. 모두 다 각기 다른 즉, 같은 종류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다른 의식 수준을 보였다. 같은 종류 안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종류의 동물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의식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작은 동물보다는 그래도 덩치가 좀 큰 동물이 영적 수준이 높지 않을까 하여 코끼리의 우리로 가 보았다. 여러 마리의 코끼리가 있었는데 모두 다른 영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한 코끼리는 그의 에너지장이 코발트색을 띠고 있었는데 상당한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의식이 높은 코발트색 코끼리를 대상으로 해 보기로 하고 나는 그의 전생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가장 최근의 전생은 몽골의 어느 산에서 수사자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새끼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산 속을 다녔는데 어느 날 수렵꾼에게 총을 맞고 죽어갔다.
내가 보고 읽고 있으면서도 놀란 것은, 그가 사람의 生을 살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동물과 식물이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
이 코끼리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동경에서 조금 북쪽의 어느 지방에서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 기저귀를 차고 좀 넓은 일본식 다다미방을 웃으며 뛰어 다니는 것을 그의 부모가 박수를 치면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어떤 여학생과 교제를 하기도 했고, 고교를 졸업한 후 학도병에 입대했다. 그는 영리하여서 진급도 남보다 빨랐다.
일본군 장교가 되어 장총을 옆에 차고 차렷한 자세와 연병장의 단 위에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그 후 다른 병사들과 줄지어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남태평양 부근의 어느 섬으로 간다.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알아졌다.) 그는 낙하지점을 잘못 알아서 섬 옆의 바다에 투하된다. 곧 미군에게 잡혀서 사살이 된다.
그 코끼리가 가장 행복했던 삶으로는, 몽골의 어느 족장의 딸로 살았던 삶이었다. 몽고의 집, 파오가 보이고 그는 그 때,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처녀였다. 말을 타면서 초원을 달리고 또 자기 부족의 어느 남자와 같이 말을 타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모습. 그들은 결혼을 하여 늙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해로한다.
이 코끼리는 한 때 남자로 태어나 사제의 보조적 역할로서 성소(聖所)에서 생활하며 지내는 삶도 있었고 어느 때에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로 태어난 적도 있었다.
그 코끼리에게 왜 동물원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영계에서 우리는 다음 생을 설계하게 되는데 이때 이 코끼리는 전생에 일본 군인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아 미안한 마음에 어차피 동물로 태어날 것이라면 한국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동물원에 사는 삶을 택했노라고 했다.
그리고 지구의 에너지 변화가 정리되는 때까지만 지구에 살기로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코끼리 생이 지구의 마지막 생이라고 했고 그래서 한국에 와서 ‘갚음’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개의 경우만 보아도 어떤 개는 의식이 높아 (그 중에서) 나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개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으로 내뛰기만 하고 또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마음도 자신의 의식 수준정도로만 가지고 있었다. 즉 지금 처해진 형편에 대한 만족도가 서로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의 교류도 또한 달랐다.
어떤 개는 이렇게 말했다. “개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힘이 들고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이 통하지 않음에, 또 참으로 개 같은 대접에 …. 나로서는 “참아라, 어쩌겠느냐.”고 밖에 해 줄 말이 없었다.
동물의 환생이라 하여 무조건 아무렇게나 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환생에는 해당 동물이 갖는 의식(파장)의 영역이 있고 그 안에서 선택, 혹은 설계되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생에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들의 표면의식에서 느껴지는 것만으로 모두를 알기엔 너무 넓고 깊다. 우리의 잣대, 우리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동물이라고 희생적 삶이, 또한 우호적이며 서로 도우는 삶이 없다고 뉘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기보다 못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때로 아니 너무도 많이, 동물보다도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그래서 나무로 태어나기를 소원했다고도 한다. 너무나 추악한 삶이 싫기 때문에 차라리 그나마 죄라도 짓지 않도록 말이다.
나무에도 의식이 들어가 있는 즉, 신령스러운 에너지체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영계에서의 설계에 의해 사람의 몸을 입지 않은 에너지체로서 그대로 들어가 있지만 육신을 가지지 않았을 뿐, 그도 하나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명의 관리나 체제가 사람의 몸을 입은 우리와 다를 뿐이다.
이 모두는 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받아들임도, 인내함도, 어떤 배움도 제 각각으로 다르다.
나는 누구였으며,
우리는 진정 누구였을까.
2006. 5. 4.
출처 : 「긴 여정을 거쳐 준비된 당신에게」 p.29~33
[출처] 코끼리의 전생이야기 (사람이 코끼리로 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