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원래 10여년 전 실용오디오에 올렸던 글로 보신 분들도 있겠습니디만
대 청주고의 대선배이신 주항 슨배님께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 다시 올립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참으로 재미있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더랍니다.
원래는 최승덕 선생님이란 분이셨는데, 모두들 멀쩡한 성함 놔두고 “닭장사”라고 별명을 불렀지요. 사실 학생들 중 그 선생님 성함을 아는 아이는 아마 2-30%도 안 되었을 겁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신입생이 들어오기 무섭게 선배들이 일부러 각 학급을 돌며 그 별명을 가르쳐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닭장사 선생님이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어느 녀석이건 그 별명을 입 밖에 내기만 하면 그대로 초주검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었지요. 그 왜, 있잖아요, 못하게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거.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유머 감각과 순발력이 있는 아이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까지 관대했지요.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는 뒤에 가서 밝혀질 걸요, 아마?
그 선생님이 어떻게 해서 닭장사라는 별명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다수설은 어느 날 그 분이 기르던 닭을 몇 마리 팔 셈으로 촌부처럼 차리고 장터에 나왔다가(물론 닭을 몇 마리 들고) 다른 선생님에게 들켜서 그날 이후로 닭장사가 되었다는 것이더군요. 암튼, 그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선생님이 전직 형사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그래서인지 닭이 아니라 ㄷ 소리만 나와도 눈이 무섭게 홱홱 돌아갔었지요.
누구든 그 선생님 앞에서 “닭” 소리 한 번 잘못 꺼냈다간 그야말로 초주검이 될 정도로 얻어맞기 일쑤였답니다. 제가 실제로 목격한 것만도 세 번이나 되니까요. 참, 그 시절 좋았지요. 학생을 그렇게 두들겨 패고 밟고서도(이 선생님은 진짜로 밟았슴다! 맹세함다!!) 형사 입건은커녕 부모에게서 항의 받은 일도 한 번 없었으니까요.
암튼, 제가 목격한 구타 사건 중 첫 번째는 도축세에 대해서 설명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 선생님이 “예를 들자면 도살장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세금을 얼마 내야 해.” 하셨고, 예나 지금이나 장난질 좋아하는 저는 “그럼 새끼 돼지를 잡아도 그만큼 내야 하나요?” 하며 토를 달았고, 그 선생님은 기분 좋게 “그럼!” 하고 대답하셨지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한*수라는 녀석이 눈치 없게도 “선생님, 치킨센터에서 한 마리 잡는 데는 얼만가요?” 하고 깐족거린 겁니다. 다음 순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바뀌었지요. 그런데 이 닭장사 선생님, 형사 경력이 있어선지 화를 내기는커녕 아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너 이름이 뭐니? 이리 함 나와 볼래?” 하면서 싱글싱글 웃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이 한*수도 멋모르고 실실 따라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고요. 하지만 그 녀석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자 양손으로 번갈아 따귀가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전광석화더군요. 제가 20대까지는 세었는데, 올려붙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이상은 더 못 세겠습디다. 그 녀석 볼따구니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고요.
두 번째 사건은 그 선생님이 교감 강습을 받고 돌아온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때를 놓칠세라 그 선생님에게 수업 대신 강습 받은 얘기를 해 달라고 졸랐고, 그 선생님도 기분 좋게 응하셨지요.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윽고 마지막 날 소풍갔던 이야기로 접어들었는데, 이 선생님 이야기 솜씨가 참 구수했습니다. “그래서 떽두... 하구~~ 술두... 받구~~ 돼지두... 잡구~~” 하시는데, 전에 그 “뱀이 무섭다는 거지 뭐!” 한 친구, 감성이 너무 풍부하다 보니 고개를 끄떡~끄떡~하며 듣고 있다가 얼결에 나온 말이 “닭!두 잡구~” 였습니다. 분위기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시죠? 닭장사 선생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는가 싶더니, “얌마! 나와!”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그 다음엔 당연히 “엎드려뻗쳐! 한 발 들어!! 두 발 다 들어!!!” 하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이어졌구요. 그러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그 선생님 계속 구시렁거렸지요. “나 참, 그 눔 새끼, 한참 기분 좋은데, 싹 잡쳐 놔?”, “내가 오늘은 날이 날이니까 그냥 넘어가지 다른 날 같았으면 너 같은 놈 뼈 추렸을 거다.” 어쩌구 저쩌구...... 말은 그러면서도 수시로 그 엎드려뻗쳐 하고 있는 윤*상이란 친구를 째려보다 궁둥이가 좀 높아졌으면 “얌마, 너무 높아!” 하면서 쿡 밟고, 처졌으면 “얌마, 너무 낮아!” 하면서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밑에서부터 올려 차고...... 그런 식으로 한 시간이 지나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 사건은 최*진이라는 친구가 그 선생님이 계단통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고(그 당시 충북의 옥스퍼드(?)였던 대 청주고^^는 원탑이었답니다. 그래서 건물 중심에 있는 계단통에서 올려다보면 5층 계단까지 다 보였더랬지요) 다른 아이들에게 “닭장사 온다!” 하고 알려준 게 빌미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 닭장사 선생님이 누굽니까? 역시 전직 형사(?)답게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실실 웃으면서, “야, 너희들 중에 누가 닭장사 온다고 소리쳤냐? 야단 안 칠 테니 손들어 봐.” 하셨지요. 그리고 최*진은 순진하게도 “저요!”하고 손을 번쩍 들었고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냐구요? 물론 그 선생님은 약속대로 야단을 치지는 않았답니다. 그 녀석이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그대로 밟아버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여기서 더 얘기하면 착하디착한 동호인님들께 충격이 될 것 같아 고만 할랍니다.
또 제가 고 2때도 재미있는 사건이 한 가지 벌어졌었습니다. 학교 바로 앞에 양계장이 하나 있었는데, 양계장 냄새 지독한 거 아시죠? 특히 도시락 까먹을 시간에 그 냄새 풍겨오면 한 마디로 직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모를 벌였었지요. 시청까지 진출해서 시장님과의 면담을 요구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암튼, 그 당시 우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2층과 4층에서 “닭장사 나와라!”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게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닭장사 선생님을 놀리려는 의도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 닭장사 선생님, 못들은 척 넘어가면 그만일 것을, 날마다 둘째 쉬는 시간과 셋째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 드시고 점심시간에는 4층에서 2층으로, 다시 4층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시면서(교무실은 3층이었거든요) 소리치는 놈들 붙잡아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열정을 보이심으로써 적극 동참을 해주셨더랬지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았던 시절, “아 옛날이여!” 하는 노래 제목이 저절로 떠오르는 시절이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쪼깨 궁금하게 해드렸던 것---그 아이가 누구였는지는 뒤에 가서 밝혀질 걸요, 아마?---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는 감 잡으셨지요? 맞아요,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저였답니다.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었는데, 두 가지만 소개할게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제가 갓 입학을 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는 아직 대 청고^^의 조경이 엉성하던 시절이라서였는지, 입학을 하고 보니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미화 작업을 시키더라구요. 그것두 며칠씩 연달아! 저는 당연히 기분이 몹시 나빠서 “야! 우리가 이 학교에 공부하러 들어왔지 비싼 수업료 내고 쌩일하러 들어왔냐?” 하면서 다른 녀석들을 선동했지만, 녀석들 겁이 많아선지 저를 우습게 보아선지 호응이 신통찮더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저 혼자 땡땡이를 까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참으로 다행히도(?) 작업 감독이 저 유명하신 닭장사 선생님이어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열씨미 땅 파고 구루마 밀 때 거기 올라타고서 훼방이나 놓는 제가 눈에 안 띌 리 없었지요. 그 선생님 왈, “얌마, 다른 애들은 다 일하는데 넌 지금 뭐하는 거냐?” 그래서 저는 얼결에 “땅 파고 그러면 울 엄마한테 흙장난 한다고 혼나요.” 했는데, 어쩐 일인지 닭장사 선생님은 그 뒤로 저를 무지 이뻐해 주셨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망할 넘의 볼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지요. 하루는 제가 수업 중에 모나미 볼펜 꼭다리를 눌렀다 다시 눌러 뺐다 하면서 또깍거리고 있는데, 닭장사 선생님이 “어떤 놈이 20원짜리 가지고 시끄럽게 굴어?”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에이, 씨(발)......”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구요. 근데 전직 형사(?)셨던 그 선생님, 귀도 되게 밝았더랍니다. 당장 저를 째려보시면서 “얌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더라구요. 이번에도 역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예? 독백했는데요......” 당연히 무사통과였고 그 뒤로 그 선생님은 저를 “천재”라면서 더 이뻐하셨지요. 잘난 척이 점 심했나요? 하지만 모두 실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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