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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몰운대行 황동규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10-23 09:55:00
추천수 8
조회수   886

제목

[시가 있는 아침] 몰운대行 황동규

글쓴이

이민재 [가입일자 : ]
내용
Related Link: http://windshoes.new21.org/photopoem-hwangdongkyu01.htm

몰운대행(沒雲臺行)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지오로

덤프트럭 자국 깊이 파인 언덕을 오른다.

길의 신이 급커브를 약간 풀어놓으며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크롬 옐로우가 꿈결처럼 몸을 바꿔

흑인 영가로 흐르기 시작한다.

흑인 영가의 어두운 음을 끼고

에어콘 끄고도 헐떡이는 차를 천천히 몰아

온갖 생물학이 모여 썩고 있는 쓰레기 낟가리를 돈다.

아! 폐광 하나가 검은 입을 벌리고 비탈에 박혀 있다.

입술 위로 너와지붕이 튀어나오고

그 위엔 다듬지 않은 풀들이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빠지고 남은 이빨처럼 녹슨 쇠기둥 두 개가 박혀 있고

녹슨 밀차 한 대가 굴 밖으로 나오려다 말고

뒤틀린 선로 위에 심드렁하게 서 있다.

들이밀면 머리부터 씹힐 것 같아

목을 움츠리고 슬쩍 몸을 들이민다.

귀가 먹먹

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

천정에서 물 한 방울이

정확히 머리 위에 떨어진다.



3



고개가 가파르다.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

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

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

가만, 자장이며 의상(義湘)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

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



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

입적지(入寂地) 미상의 의상도

강원도 산골의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

이곳 어디쯤에서?

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

해발 1280m의 만항재.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

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가문비나무의 물결

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

저 날것,

도는 군침!

황룡사 9층탑과 63빌딩이

골짜기 저 밑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없이도 마음이 온통 시원하다.

잠시 목숨을 잊고 험한 길 한번 마음놓고 차를 채찍질해

황룡사, 63빌딩, 정암사를 순식간에 지나서

정선 쪽으로 차를 몬다.



4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제철인 데다 버섯 재배농가 회의로

정선군 모든 방이 다 찼지요.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밤도와 영월이나 평창으로 나가시죠.”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황동규



※ 출전: 몰운대행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1

※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그 자리에서 명상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딜 가나 안가나 우리는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매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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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일진 2013-10-23 10:04:08
답글

민재님은 황동규 시인을 무척 좋아 하시납보니다.<br />
<br />
저도 차츰 좋아질려고 하네요.<br />
<br />
가능한 앞으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br />
<br />
근데 몰운대란....부산 사하구 다대포에 있는 그 몰운대인줄..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0:08:33
답글

황동규 시인이 말씀 하시는 곳은 정선의 몰운대입니다. 이곳 사이트 참조하세요. 믈론 부산의 몰운대도 유명한 곳입니다. ^^<br />
<br />
http://www.koreasan.com/theme/theme_view.php?category=5&id=tour_board&num=403

김주항 2013-10-23 10:14:10
답글

ㄴㄴ구름이 쉬어가는 곳은 모두<br />
몰운대라 하니 부산에도 있겠져....~.~!!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0:32:00
답글

사족하나 붙입니다. 어려서는 긴 호흡을 요하는 장편의 산문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주어진 여건이 이런 긴 호흡이 필요한 장편의 글은 아무래도 무리더군요. 그래서 짧고 압축적인 글을 찾다보니 운문 즉 시를 찾게 되더군요. 짧은 짜투리 시간에 조금의 수고(가방에 혹은 외투 주머니에 아니면 손에)만 한다면 이만한 친구는 주위에 없더군요.

개인적으로 이어폰으로 음악 듣기는 귀에 무리가 가서 좀 꺼리게 되고 그렇습니다.

진성기 2013-10-23 10:42:05
답글

아주 오래 전 친구 두명 과 함께 몰운대 갔습니다.<br />
둘다 여자 ^ ^;;<br />
당시 세상이 하 시끄러워 세상 에서 좀 벗어난 곳에 가 볼가 해서 여자 친구 두명 데불고<br />
몰ㅇ운데도 가보고 화암 동굴도 갔고 <br />
화암 동굴에 갔더니 문이 잠겨져 있더군요.<br />
마을 이장에게 가서 동굴문이 잠겨 있는 데 좀 열어 달라고 담배값좀 찔러 줬더니 <br />
좀 만 기다려 달라해서 동굴 앞에서 세명이 고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0:51:24
답글

사족 하나 더해서 둘 붙입니다. 만약에 부산에 가게되면 보수동에 있다는 헌책방거리를 가보고 싶습니다. 예전에(벌써 10여년이 흐른 것 같습니다) 보수동을 살짝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요. 이래서 기억이라는 것이 믿을 것이 못되나 봅니다. 서울의 헌책방거리는?이제는 명맥만 유지한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띄엄띄엄 몇 군데 있는 것이 전부이지요. 그러고 보면 인터넷에서 설핏 보았지만 헌책방 군상을 이루고

진성기 2013-10-23 10:54:08
답글

보수동 책방 골목도 이제 많이 쇠락 해졌습니다.<br />
예전에는 책방이 참많았고 책도 넘쳐 났었는 데<br />
요즘 가보니 예전 같지가 않더군요.<br />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1:04:11
답글

ㄴ성기님. 제가 지극히 아마추어 시 독자라서 시를 잘 몰라요. 정답에 가까운 힌트를 주셔야겠습니다. 시 내용을 풀어줘 보세요. 그리하다보면 이곳 와싸다의 숨은 고수께서 답을 풀어 주실지도 모릅니다.^^ <br />
<br />
헌책방 거리가 그렇게 되었군요. 안타깝군요. 부산의 자랑꺼리가 해운대 마천루가 아니라 보수동 헌책방거리 이렇게 된다면 이러한 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나라에 가까워지는데 말입니다. <br />

진성기 2013-10-23 11:21:53
답글

ㅍㅎㅎㅎㅎㅎ <br />
제가 찾았습니다.<br />
황동규 시군요..<br />
몰운대는 왜 정선에 있었는 가 <br />
<br />
3<br />
이젠 어떤 선(線) 어떤 면(面) 어떤 색(色)이 인간<br />
의 마음을 구해주리라 믿지 않는다. 어떤 믿음이 믿<br />
음을 구해주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봄꽃 다<br />
지고 가을꽃떼 채 출몰하기 전 이 산천의 녹음, 저 <br />
무선(無線) 무형(無形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1:33:17
답글

몇 년전에 ' 몰운대行 ' 시집을 가지고 지하철 선반위에 시집이 든 서류봉투 올려 놓고는 깜박해서 분실했던 것이 떠오르는군요. 위의 시가 어느 시집에 실려 있는지 나중에 찾아 봐야겠습니다.

다 내려놓고 당장 몰운대行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에는 멀쩡한 사내?를 바람나게 하나 봅니다. ^^;;

진성기 2013-10-23 11:39:50
답글

문학과 지성에서 나온 "미시령 큰바람" 일겁니다.<br />

lalenteur@hotmail.com 2013-10-23 12:07:41
답글

'미시령 큰바람' 이 맞습니다. 성기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동시인의 '풍장' 이 참 좋더군요. 저도 '풍장I'에서 황동규 시인이 '삶과 죽음은 한가지에 핀 꽃' 이라는 짧지만 응축된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풍장에서 그린 것처럼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고 싶습니다.

진성기 2013-10-23 12:21:45
답글

풍장 .. 조장 <br />
좋습니다.<br />
그렇게 죽은 내 욱신은 바람따라 혹은 하늘을 나는 새와 함께 이 지구를 떠돌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기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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