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 오던 손엔 포도 한송이가 들려있다.
문을 따기 위해 잠시 바닥에 내려 놓은 송이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풀어져 나온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그 향기는 후각을 파고 들고,
이윽고 들어 간 컴컴한 방구석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앉은 아낙은
인기척에도 꿈쩍도 않는다.
왜 샀을까 포도 한송이.
습관일까,
아니면 희미한 한줄기 빛을 구함인가.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지금 이 순간의 포도 한송이를 상기하노라면
이 향기가 생각이 날까?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한송이 포도.
창틈으로 새어 들어 온
어스럼한 저녁 햇살에 그저 말없이 놓여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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