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씨는 명쾌한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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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박대통령 기초연금법안 이해 못했을 것.. 알았으면 도입할 리 없어"
경향신문 | 송윤경·김형규 기자 | 입력 2013.10.04 19:44 | 수정 2013.10.04 21:10
정계 은퇴 후 꼭 반년 만이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54)은 4일 귀를 약간 덮는 긴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정치인 분위기를 벗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터뷰를 줄곧 거절했던 그는 "정부의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중 앞에 나서기로 결정한 이유였고, "(2007년) 기초노령연금제도법을 만든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애프터서비스 차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앞뜰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의 손에는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진 기초연금법 제정안이 쥐여 있었다. 유 전 장관은 정부의 기초연금안에 대해 " '20만원 준다'고 유혹해놓고 생애 전체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액은 줄인 것"이라면서 "사기성이 농후하고 뻔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정부의 기초연금 제정안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현행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이 아니고 기초연금법 제정안이 있길래 '완전히 새로운 제도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법안을 살펴봤더니 기초노령연금법과 본질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본문의 7조와 부칙 3조 외엔 없었다.'바람직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입법기술상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 무슨 뜻인가.
"'왜 다 20만원 안 주느냐'에 대한 평가는 정치권과 국민의 몫이다. 공약 수정을 한 것인데, 문제는 이상하게 수정을 한 것이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고 정당화할 논리적 근거가 없다. 정부 제정안 부칙 3조를 보면 '현재의 기준연금액'(기초연금 최대지급액)을 국민연금 가입자 최근 3년간 평균소득(A값)의 10%로 한다고 돼 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이 190만원 정도 되므로 기준연금액은 (A값의 10%인) 20만원이 된다. 그런데 본문 7조를 보라. 내년 이후부터는 이 20만원 금액을 물가인상률과 연동해 물가가 오르면 그만큼 (20만원에)더하겠다고 한다. 즉 기초연금 최댓값을 물가만 반영시켜서 지금의 20만원 가치로 고정시켜버린 것이다."
- 지금의 기초노령연금법은 다른가.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연금액을 국민연금 가입자 최근 3년 평균소득에 연동시켰다. 소득수준이 오르면 연금액도 오른다. 15년 전을 생각해보자. 1998년엔 IMF 금융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소득수준이 1만달러 이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2만달러가 넘는다. 두 배가 된 건데, 이 가운데 반만 '실질적'인 상승이라고 쳐보자. 앞으로의 15년도 실질적인 소득상승률이 50%라면 2028년엔 현재가치 20만원이 아니라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새 법이 통과되면 소득이 아닌 물가에 연동한 탓에 기초연금 최대지급액을 받는다해도 현재가치 20만원만 되는 거다."
- 기초노령연금액이 2008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서 2028년 10%까지 점점 오르게 돼 있다고 했는데 실제론 비율이 달라진 게 없다.
"이명박 정부가 이 부칙을 외면했다. 기초노령연금액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10%에 도달하는 시점이 왜 2028년인지 아는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깎여 40%가 되는 시점이 바로 2028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매 2년마다 내려오니까 기초노령연금도 여기에 맞춰서 매 2년마다 0.5%씩 올리든가 해야 했다. 아니면 4년마다 1%씩 혹은 1년마다 0.25%씩 올려왔어야 했던 거다. (이렇게 비율이 오르고, 소득수준 향상까지 감안하면)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현행 기초노령연금법보다 불리해지는 '크로스' 시점이 2020년이 될 거다. 2021년이 되면 저절로 현재가치 20만원 이상 받게 돼 있는데 이걸 막아놓은 게 현 정부의 기초연금안이다. 이건 조삼모사도 아니고 그보다 못하다. 현 고령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고령세대로 들어갈 세대가 받을 연금을 묶은 거다."
- 왜 이렇게 설계했다고 보나.
"경제부처에서 속임수를 넣은 것이라고 본다. '20만원 준다' '두 배로 준다'고 해놓고 생애 전체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액은 줄인 거다.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은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기초(노령)연금액도 그에 따라 높아지도록 했던 것인데, 이건(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일관성도 없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기초연금 제정법안은) 사기성이 농후한 법이다.
- 7조의 또 다른 핵심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의 연계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제도에서는 500만명의 노인을 소득순으로 줄을 쫙 세워서 일정한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잘라서 (전체 70%인) 350만명까지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노인들의 소득이 어디서 왔느냐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소득이 주로 임대소득일 수도 있고, 국민연금일 수도 있다. 정부안대로 가면 국민연금이 자기 소득의 대부분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거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이 '손해 안 본다'고 했다. 절대적으로는 맞다. 국가에서 단돈 몇만원 더 주면 이익이라는 건 다 안다. 그런데 '내가 왜 국민연금 몇십년 성실납부했다는 이유로 나만 깎느냐'는 것이다.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화를 내는 것이다. 소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충을 해주는 제도인데 왜 소득의 출처를 국민연금에만 따지느냐는 거다."
- 정부는 '소득하위 70%'를 가려낸 다음 다시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연동해서 차감하겠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행정수요가 들어갈 것이다. 노인인구가 500만명이라고 할 때 70% 자르면 됐지, 국민연금 가입기간 기준으로 감액하면 지급 대상자를 일일이, 잘 알 수도 없는 산식을 적용해서 계산하겠다는 거다. 한마디로 멍청한 짓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 정부는 원래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만원은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입법예고한 제정안에는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득이 대부분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감액이 많이 될 텐데, 삭감한도가 명시돼 있지 않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정부 재량으로 넘어간 것이다. '10만원까지는 준다'고 해놓고 법적인 보장은 못해준다는 거다. 지금까지 얘기한 문제점들과 소소한 기술적인 부분을 빼고 나면, 현행 기초노령연금법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러면서 현행 제도를 폐지하고 새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정치도의상…(잠시 말을 멈춤)…너무나 뻔뻔하다. 완전히 새로운 제도라면 인정하겠는데, 사회복지제도의 역사에서 '노무현의 복지제도'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 애초 기초노령연금법에서 액수를 이른바 'A값'(국민연금 가입자 최근 3년 평균소득)에 연동시켰던 취지는 무엇이었나.
"50년, 100년을 내다본 것이다. 소득수준에 따라서 기초노령연금액이 오르도록…. 그런데 이 '연동'을 풀어버렸다. 굉장히 부도덕하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현 정부가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이번 제정법안은 '영원한 재정 절감을 위한 일시적 재정지출 확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 박 대통령이 이번 기초연금법안의 내용을 이해했을 리 없다. 알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시민단체 평가나 언론 제안을 거치면 수정해야 하는데, 문제점을 수정하면 도로 기초노령연금법(현행법)으로 돌아간다. 굳이 원한다면 법명은 바꿀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현행 기초노령연금법 부칙을 조정해서 기초연금액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9%로 가고 나머지 1%는 다음 대통령에게 맡기겠다고 하든가, 그러면 야당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고 후세대 피해도 없잖나. 아니면 대선공약대로 20만원 다 주면 12조원이 되는데, 지금 기초노령연금 재정소요액이 1년에 7조원 정도 되니까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재정이 부족하다면 양극화 해소 방식으로 제일 좋은 건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를 올려서, 이를테면 소득세에 10%를 복지 명목으로 붙이거나 하면 서민들 부담은 없게 된다."
- 물러난 진영 장관을 두고 여권에선 '무책임하다'고 공격하고 있다.
"복지부에서 지금 나온 기초연금 제정법안을 원래 찬성했을 리가 없다. 내부 논의에서 아마 진영 장관에게 이런 식(국민연금 연계)도 안되고 국민연금 손해주는 것도 안될 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장관이 소위 '물'을 먹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법안이 날림으로 올라가 있는데, 그런 조건에서 장관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나. 못한다. 영이 서지 않는다. 앞으로 복지부에서 잘하려는 사람들은 청와대 수석한테 보고하러 다니게 돼 있다. 공무원 사회가 그렇다. 진영 장관은 (내막을 다 공개하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게 되니까 우물우물 흐리면서 그만두려고 한 것 같은데 청와대에서 공격하면서 이 문제를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진영 장관이 '젠틀맨'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명권자에게 도리를 지키려고 한 것 아닌가 싶다."
- 지난 3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나.
"남북 정상의 대화록은 제가 볼 수 없는 물건인데 (지난 NLL 포기 논란을 거치면서) 다 보게 됐다. 너무 재밌었고 이 내용을 그대로 독해할 수 있도록 뭔가 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했다. 대화록을 녹화된 필름 보듯이 책을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었고 이미 탈고했다. 10월 말에 나오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제목은 '노무현과 김정일의 264분'을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이 대화한 시간이 264분이다."
-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로 시작된 쟁점이 지금 '사초 실종'으로 전환됐다.
"정치인들끼리 그러는 거다. 이 모든 소란은 지나가는 것이다. 이건 나중에 아무도 기억 못한다. 7·4 남북공동성명과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만든 남북기본합의서는 실현은 안됐지만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끌어왔고 그 바탕 위에서 6·15선언과 10·4선언이 나왔다.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과 살아남을 것을 구분해서 발견하려는 노력을 언론과 지식인들이 했으면 좋겠다."
- 박근혜 대통령은 10·4 선언의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계승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은 6·15 이전, 혹은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온 1995년 이전으로 가고 있다. 개성공단 하나만 살려놨다. 하지만 서해평화협력지대 아니고는 남북이 서해상의 대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다. 서해평화지대는 결국 (후대로) 이어질 것이다."
<송윤경·김형규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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