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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9-10 11:31:50
추천수 1
조회수   460

제목

선비정신...

글쓴이

김동수 [가입일자 : 2002-01-20]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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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퍼왔어요.. 이런걸 아직도 안읽어봤냐 하시겠지만...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책에서 흘려 듣던 선비정신...

그런 것은 개나 줘야 할, 우리 민족을 사대주의에나 빠트려 조선을 망하게 하는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이해를 했었는데..



요즘 이런 시국에, 정말 힘없는 작은 시민으로서 저 자신의 미미하지만 한걸음의 움직임을 해보려 함에 한계도 느끼면서도, 나름 이런 생각으로 정리를 해보려 합니다...



정말 지금의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의리와 지조는 없고 욕망과 그걸 지키려는 기득권적 질서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있는 놈은 염치가 없고, 없는 놈이 선비정신을 되뇌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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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정신



선비 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한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지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인간이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짐승의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人性論)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조선 전기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 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 체계였다.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시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주도국으로 하는 공산주의 체제로 양분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물적 기초를 우선 가치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물주의(唯物主義)와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성장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체제의 유지 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에서 도출한 실리주의(實利主義)가 현대인의 삶의 기준이라면 조선 후기 사회는 명분을 최우선으로 하는 명분주의(名分主義) 사회였다. 이것이 나나 내 가족,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이득이 되느냐 해로우냐가 현대적 판단의 기준이라면, 이것이 명분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조선시대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었다. 명분을 잃느냐 얻느냐에 그 지식인의 사활이 달려 있었다.



현대의 실리주의적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 절하한다. 명분은 핑계로, 의리는 깡패용어로,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사기(士氣)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淸貧)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하는 결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선비 정신은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 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또한 선비 정신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 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정신이다. 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 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 그들은 ‘청(淸)’ 자를 선호하여 청의(淸議), 청백리(淸白吏), 청요직(淸要職), 청명(淸名), 청류(淸流) 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 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 사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고 사회 저변에 확산되어 일반 백성도 ‘염치 없는 놈’이란 말을 최악의 욕으로 인식했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상부 상조와 평화 공존의 성리학적 이념은 개인 생활이나 농촌 공동체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무력으로 흔들어 놓은 일본이나 여진족의 청(淸)을 ‘오랑캐’라고 폄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하여 명나라가 망하고 난 뒤에도 임진왜란 때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은 것은 국가 간의 의리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세계관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리는 문화 가치, 특히 유교적 문화 질서인 중화 문화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로 표현되었고, 조선이 명을 계승하여 그 문화의 정수를 담지한다는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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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선비 정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2002.12.10,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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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록 2013-09-10 12:56:06
답글

과거 조선시대에 과거제도를 통해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공무원)를 뽑을때 당락의 기준은 대부분 중국의 고전의 통달 여부로 결정했어요.<br />
중국의 고전이란게 다분히 관념적인 영역의, 대단히 고차원적인 학문들인데,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철학서적들이라고 할 수가 있죠.<br />
즉, 철학자를 관리로 선발하는게 과거제도죠.<br />
따라서 과거를 준비하는 반상의 양반의 자제들은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고, <br />
과거를 통과한

김동수 2013-09-10 14:10:23
답글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착취나 당파 싸움 등 온갖 패악짓거리에 다들 신물나는 조선사지만 여기저기 찾아보면 분명 그런 정신을 찾아볼 수 있겠죠

유영록 2013-09-10 17:25:22
답글

집 구석에 애 새끼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 합니다.<br />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양 부모 슬하에,<br />
대학을 다닐 많큼의 윤택한 경제에, <br />
제도권의 체계적인 교육 제도와, <br />
국가와 사회의 안전한 보호가 톱니바퀴 같이 맞물려져서,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야만,<br />
<br />
비로소 건강한 신체,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국민 하나가 만들어지는 겁니다......참 어려운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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