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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해체하라,,, 그리고 재 구성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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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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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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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해체하라,,, 그리고 재 구성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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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호 [가입일자 : 2001-08-24]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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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경향신문 칼럼 입니다.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할 대목이라고 믿습니다. 최소한 진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우리가 더 늙었을때 우리가 한떄 한국사회의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느낄려면 말 입니다.
저는 솔직히 486 세대 입니다만...아직도 우리가 대학생때 분연히 일어나 많은 희생을 하면서도,,, 저야 우리 동료나 더 치열히 산 분들보다는 지극히 미약한 도움을 했겠지만,,, 열심히 투쟁했던게 우리나라 민주화에 중요한 도움과 자산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 입니다.
아래는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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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대로 혁명전쟁이라고 해도 좋고, 공안세력의 어법대로 내란음모라고 해도 좋다. 어차피 항일시대의 정서를 간직한 주사파와 유신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국정원, 두 과거 세력이 박물관을 뛰쳐나와 거리에서 뒤엉켜 소란을 피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두 세력은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 사회를 전쟁과 혁명의 시대, 혹은 무성영화 시대라고도 한다는 100년 전으로 초대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사양하겠다. 물론 혁명이 흥미 없는 일이란 뜻은 아니다. 한 사회의 모순과 낡은 질서를 한 번에 뒤엎는 그 장엄한 스펙터클을 누가 보고 싶지 않겠는가. 억눌러왔던 열정을 터뜨리며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와 절정의 순간을 누가 맛보고 싶지 않겠는가. 불의의 세상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신나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는가. 그런 로망 때문에 세계인들이 멋으로 게바라 티셔츠를 즐겨 입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바라 티셔츠는 혁명의 부재를 상징한다. 궁극의 것, 완전한 인간 사회는 너무 아름다워 때 묻은 현실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사회가 있을 곳은 속세보다 각자의 가슴속이 더 적당하다. 그래서 게바라 티셔츠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래도 혁명을 하겠다면 대상을 잘 골라야 한다. 국제규범은 독재체제 혹은 부당한 권력이 기본권을 박탈하고 시민을 억압해도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로는 개선할 방법이 없을 때 저항권으로서 혁명을 인정한다. 중동 민주화 혁명이 좋은 예다. 한반도에서 그럴 만한 대상을 굳이 찾자면 남녘에는 없고, 북녘에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헌법에 따른 합법적 정부이고 민주적 절차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지율도 높다. 그러므로 무너뜨릴 방법은 하나, 선거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자금 모으고 무기 준비하고 파괴할 시설의 정보를 파악하고 지하조직 생활하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정당은 전례 없이 13석을 차지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기성 양당체제를 흔들며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들이 키워준 보답으로 진보정치세력이 한 일은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경선 무효화 불복, 분열, 그리고 이정희 대표에 따르면 지하 모임에서 농담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었다. 서민의 세금을 받아쓰는 정당과 의원이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로 애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북한체제를 이식하는 딴짓을 하느라 돈과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었다! 이게 배신 아니면 무언가. 게다가 국정원에 먹잇감을 던져줌으로써 진보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정치는 냉전체제, 기득권, 보수 우위의 사회, 양당체제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성장이 매우 더디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의 이념과 정체성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자기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들이 대안으로 여기는 북한 모델은 수령제다. 수령제에서는 오직 수령만이 뇌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수령만이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외 뇌수가 없는 나머지 전부는 그의 생각을 구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이 혁명에 성공해봤자 한 사람만 행복해진다. 자주를 목숨보다 중시한다면 그런 외래 사상과 제도보다 지금 여기 남녘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묻어 있는 고통, 그들의 한숨과 기쁨의 정화(精華)로, 그리고 그들이 쏟은 피와 땀의 진액으로 빚은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서민들의 곁에서 그들의 슬픔을 슬퍼하고 그들의 고민을 고민하며 그들의 숨결이 일으키는 미세한 파동에 감응하는 감각을 발달시키고 그들의 구어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서민들의 열망을 실현하는 무기는 압력밥솥 폭탄이나 개조한 장난감 총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시민들의 결집된 의지와 올바른 노선의 당이다. 세상을 바꾸는 마지막 수단은 폭동이 아니라 신뢰받는 진보정당에 의한 선거 승리다. 새누리당도 그렇게 했다. 실권한 10년간 절치부심하며 하루 하루 자기의 무기를 다듬었고 그 결과 정권을 탈환해 10년 집권시대를 열었다. 인간 삶의 개선은 일상의 구차함과 지루함을 견디면서 하나하나 축적해간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한 발의 총성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혁명이나 폭력에 의한 권력 쟁취는 또 다른 폭력과 권력의 등장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역설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압축해도 압축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적 과정이다. 이 강을 건너지 않고는 어디도 가 닿을 수 없다.
진보의 패권세력은 진보의 행진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진보를 진취적인 것이 아닌 수구·퇴행적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려 진보를 오염시켰다. 그런데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이 세상이 농담 하나 때문에 야단법석인 것처럼 전혀 진지한 자세를 보이지 않은 채 덮는 데 급급해하고 있다. 지금은 진보정치의 복구가 아니라 해체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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