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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중동전 이야기입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8-29 14:50:10
추천수 3
조회수   926

제목

4차 중동전 이야기입니다.

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내용
Related Link: http://blog.daum.net/uesgi2003/71

링크에 걸린 이야기를 자세하게 읽어도 좋고 욤 키푸르 전쟁에 대해 검색해보시면 알 겁니다.



이스라엘 공군에게 번번히 막힌 아랍측은 소련 군사고문단의 조언에 따라 SAM 지대공 미사일을 대량 배치하고 육군을 전진시킵니다.



이스라엘 육군의 초인적인 저항으로 이집트와 시리아 공조가 어긋나고 이집트 육군은 SAM 대공 방어막을 벗어나는 모험을 하게 되지만 참패하게 됩니다.



4차 중동전을 이겼다니??? 역사를 새로 만드는군요. 거꾸로 수에즈 운하까지 빼앗겨서 이집트가 몰락할 뻔 한 것을 국제사회가 막았습니다. 국제사회라기 보다는 미국이 맞겠죠. 미국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카이로까지 밀고 들어갔을 겁니다.



반대편 전선을 책임졌던 시리아가 거의 전멸 상태였고 자국 국경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밀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모든 전력을 이집트에 돌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해군은 이집트 해안을 봉쇄했을 정도로 일방적이었습니다.



... 1974년 1월,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에서 병력 철수 협정에 조인했고 유엔 정전감시단은 이집트의 이스라엘의 정전을 감시해 국경에서 순회 경비를 실시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1973_sinai_war_maps2.jpg 에서 4차 중동전 말미에 이스라엘이 카이로 방면으로 확장한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워낙 황당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만, 와싸다 회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자료를 남깁니다.





김현수님께서 2013-08-29 14:37:52에 쓰신 내용입니다

: 북한이 고슴도치에서 이리로 변신한 과정인것 같아서

: 퍼 왔습니다.^^

:

: 문외한이라 아래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 =================================================================

: 북한인민군의 제4차 중동전쟁에서의 용감무쌍한 대활약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

: 중동에서 북한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가를 일본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 북한의 미사일은 아랍민족과의 혈연적인 연대감의 상징이며 그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정을 가지고 있다.

:

:

: 아랍나라들은 국토, 경제력, 인구, 병력수, 장비의 질과 양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압도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

: 더군다나 장비들은 소련제였고 고문단도 소련군 장교들이었다.

:

:

: 제1차 중동전쟁 1948년 5월 8일

: 제2차 중동전쟁 1956년 10월 27일

: 제3차 중동전쟁 1967년 6월 5일

: 제4차 중동전쟁 1973년 10월 6일

:

:

: 1차~3차 전쟁에서 아랍 측은 한번도 이기지 못하였고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공군 공격부대의 전격작전으로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4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

:

: 소련군사고문단의 지도에도 불과하고 아랍나라들은 패배하였던 것이다. 아랍민족의 명예와 자존심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

: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던 이집트는 전쟁결과에 분통을 터뜨렸고 소련군사고문단은 귀국의 길에 올라서게 되었다.

:

: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집트는 다시 싸울 의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

: 그런데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한국전쟁이나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EC 121 격추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북미군사정치대결에서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북한으로 극비리에 특사를 파견했다.

:

: 제4차 중동전쟁을 일으킬 것을 계획한다면서 군사고문단과 비행기 조종사들의 파견을 요청했던 것이다.

:

: 북한에게는 기후나 자연 지리적 조건도 다르고 국제환경도 맞지 않는 중동까지 가서 싸운다는 것은

:

: 무모한 것이었고 게다가 이스라엘과 싸울 이유도 없었다.

:

: 더군다나 소련군장교들이 실패하고 쫓겨난 후에 고문단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

: 그렇지만 김일성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은 대미전략의 일환이며 국제적 연대성강화의 일환이라고 판단, 김정일과의 협의를 거쳐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던 것이다.

:

:

: 북한은 약 1천 5백명 정도의 군사요원을 파견하였다.

:

: 그러나 복장이 사복이어서 그런지 이스라엘과 미국은 북한노동자들이 외화벌이를 위하여 작업하러 온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

: 사다트 대통령과 무바라크 공군사령관은 북한고문단과 작전회의를 열고 어떻게 이스라엘에 침공하여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

:

: 스에즈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를 횡단하여 동쪽으로 침공하는 것이 최단거리였다.

:

: 그러나 스에즈운하의 대안과 시나이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방위선을 돌파하고 이스라엘방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북한군사고문단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쓴 전격작전과 같은 방법을 거꾸로 리용하자고 건의하였다.

:

: 즉 이집트 공군공격기는 시나이반도를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번 북상했다가 지중해에 나가 바다로부터 저공비행으로 이스라엘에 침입하면 방공망을 손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 이집트측의 동의를 얻어 북한군사요원들은 아랍어훈련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

:

: 북한비행사가 이집트 공군부대를 지휘하기로 하였다. 또한 북한미사일요원들은 카이로의 방공미사일을 조작하였고 시나이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지대지 미사일에 대한 지휘임무에 착수하였다.

:

: 극비리에 반공격의 준비는 진척되어나갔다.

:

: 이스라엘은 이에 대하여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

: 북한조종사가 이끄는 이집트공군 특별부대 수백 기가 1973년 10월 6일 긴급 출격했다.

:

: 공격부대는 먼저 북상, 지중해로 나와 진로를 바꾸어 저공으로 이스라엘에 침공하여 전격적인 기습을 감행하였다.

:

:

: 이것은 완전히 성공하였다. 이집트공군기들은 이스라엘 공군기지를 비롯하여 군사 시설과 전략거점을 울분을 토하듯 사정없이 폭격해버렸다.

:

: 격납고와 활주로에 있던 미국제 판톰기나 프랑스제 밀라쥬 전투기를 파괴하였고 간신히 하늘로 올라온 적기는 공중전에서 무자비하게 격추시켰다.

:

:

: 이 이스라엘전격작전이 성공했다는 보고가 카이로에 전달되자 이집트군 지상군부대는 스에즈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의 이스라엘기지에 일제 포화력을 퍼부었다.

:

: 이와 동시에 기갑부대가 쳐들어가 시나이반도를 석권하고 이스라엘군을 내몰고 승리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

: 당시 이스라엘 국방상이었던 외눈 다얀은 조종사들이 한국어를 말한다고 발표했으나 북한은 즉시 이것을 부정했다.

:

:

: 이집트의 역사적 승리에 아랍민족은 미칠 듯이 기뻐하였다.

:

: 그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의 명성은 중동에서 높아졌다. 소련군사고문단의 지휘를 받으면서 세 번이나 패배의 쓴맛을 본 이집트사람들은 북한에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표시하였다.

:

: 아랍의 이슬람세계가 기독교세계의 구미열강들과 그 후원을 받는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때려눕힌 역사적인 승리였던 것이다.

:

:

: 그것도 소련의 지원이 아니라 멀고 먼 동방의 나라 북한의 군사지도와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이루어진 승리였다.

:

: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북한 정부와 군대와 인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

: 소련이 북한에 공여를 거절했던 스커드미사일을 극비리에 평양으로 보내주었다.

:

:

: 그것을 북한은 Reverse Engineering수법으로 분해, 해석하여 개량한 것이 오늘의 소위"노동 1호" 미사일이나 "대포동미사일" 개발배비의 모체로 되었던 것이다.

:

: 이것은 미국이나 소련이 나치스 독일로부터 "V2로켓"을 훔쳐다가 그에 기초하여 각종 미사일을 개발한 것과 비슷한 일이다.

:

: 이 결과 북한이라는 작은 "고슴도치"는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어 날개 돋친 "고슴도치"로 되었다.

:

: 그때까지의 "고슴도치"는 방위전문으로 미국"사자"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한 공격을 가할 수 없었으나 상황은 크게 변하였다.

:

: 북한 "이리"는 멀리에서도 미국본토에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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