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 선언은 냉담자인 저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시국선언 – 말씀 선포와 시작기도
집회 현장을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노동자가 하라는 일은 안하고 신부가 하라는 기도는 안하고. 이 모두가 거대한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놓은 관념인데 이것을 만고의 진리인양 알고 살아가는 거 같습니다. 시국선언 한다니까 사제 수도자가 하라는 기도는 안하고 쓸데없이 정치판에 끼어든다고 하도 말들이 많아서 시국선언에 앞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시작기도를 주도하는 이 사람 역시 수도원에서 낮기도 바치고 오면서도 차 안에서 기도를 하며 왔으니까 괜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오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 신부의 거룩한 죽음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꼴베 신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사형을 선고받은 동료를 대신하여 아사감방에 자진하여 들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수도 사제가 왜 나치 정권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 갇혔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꼴베 신부가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이유는 나치 정권의 인종말살 정책에 협조하지 않고 유대인들을 자신의 수도원에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라는 잡지에 기고한 “자유”라는 글 때문입니다. 100만부에 이르는 발행부수를 자랑했던 이 잡지의 발행인이 바로 꼴베 신부였습니다. 나치 정권은 이 잡지를 통해 폴란드 민중들에게 끼치고 있었던 그의 지대한 영향력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불의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및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광기어린 전체주의 정권에 대항해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를 목숨을 내놓고 부르짖으며 항거했던 꼴베 신부의 정신을 되새깁니다.
아울러 불의에 저항하는 이 목소리가 바로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신음하는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향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민주화의 격변기 혹은 사회의 위기적 상황이 닥칠 적마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시국선언의 원조라 하겠습니다. 오늘 시국선언 및 기자회견에 앞서 예수님의 원조 시국선언인 루카 복음 4,16-21절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이 시국선언이 사람들이 듣고 보는 가운데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주님께 기도드립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의와 사랑의 하느님, 무너진 민주주의 질서에 가슴 아파하고 은폐되는 진실에 가슴을 치는 당신의 종들을 굽어보소서. 대구 대교구와 안동 교구 그리고 대구·경북 지역의 수도회에 속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작고 여린 목소리를 모아 이 나라가 진리와 정의가 존중받고 거짓과 부정에 대항하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청하오니 들어주소서. 또한 우리의 목소리가 결코 파괴를 위한 증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회복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사람들이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당신의 영을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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