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년 마다 이런 류의 글을 한번씩은 올리는 것 같네요.
너무 경기도 어렵고 직장생활도 붙어있기 어렵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에서 나오는 분들 앞으로는 더 많아지겠죠.
이런 분들 다시 일어서기를 지원하는 사회 인프라는 있으나마나하고 결국은 홀로서기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어깨에는 늙으신 부모님, 커가는 아이들 무겁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자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밝혀 본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또 키보드를 두들겨봅니다.
때는 1997년 저는 5년여의 직장생활을 접게 됩니다. 제가 원래 의상전공에 의류회사 디자이너/MD일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몸담은 곳은 아웃도어 수입의류인데 이걸 반듯하게 국내에 정착시키고나서 단물 다 빼먹었다 판단했는지 사장과 상무가 짝짝꿍이 되어 말도 안돼는 이유로 저를 퇴출 시킵니다.
당시 제 나이 서른셋에 부장대우 차장 직급으로 업계에서는 거의 탑에 가까운 높은 월급을 받았거든요. 오르막이 빠르니 내리막도 빠른 케이스지요.
5년여의 직장생활 동안 직장을 세번 옮겼습니다. 마지막 직장은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웃 됐죠. 당시에 의류업계에서 제이름이 좀 네임밸류가 있었거든요.
더럽고 치사해서 이 일을 계기로 직장생활 때려치기로 합니다. 자영업에 도전하겠다! 마음먹으면서 각오는 다른 사람과 다를바 없었죠. 매우 야심찬 각오 ㅎㅎㅎ
그러나 저희집이 사업이나 장사와는 좀 거리가 먼 가풍 입니다. 사업한다고 일 벌여서 잘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단 거지요.
그래서 신중하게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계획을 잡고 뭘 제일 먼저하게 되냐하면 운전면허시험을 다시 보기로 합니다. 2종보통면허라서 택시운전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보는거 기왕이면 큰걸로 하자해서 1종대형면허를 단 한번에 따 버립니다.
그 다음 택시회사에 갔습니다. 집근처에 택시회사 많거든요. 왜 택시운전을 결정했냐하면 제일 많이 돌아다니고 거리의 정보를 얻기 쉬워서 입니다. 거의 3년을 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주요상권, 잘되는 가게, 왜 잘되는지 그런게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잘 단련된게 손님의 대응태도죠.
별 별 진상들 손님으로 맞이해 봤습니다. 경찰서에도 여러번 가봤구요,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정말 많다를 몸소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은 도움이 지금도 됩니다.
운전을 하면서 앞으로 뭘 할껀가를 계속 생각 했습니다. 조건은 내가 잘알고 잘 할 수 있고 또 제적성에 맞아야 한다는게 조건이었죠.
그래서 결정한게 비디오대여점 입니다.
운전 하면서 서울 곳곳의 큰 비디오대여점은 다 들어가서 주인과 얘기 했습니다. 이쪽 업계의 돌아가는걸 미리 귀동냥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난 어떤식으로 할껀가를 그렸죠.
그래서 결정한건 개인샵 보다는 비디오 체인인 영화마X로 하기로 합니다. 이유는 특별한 조건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비디오샵중 제일 잘되는 곳이 영화마X 이었구요. 신프로 사입이나 이런 제약이 없이 그런건 샵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매월 비싸지 않은 로얄티만 내면 되는 조건 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마X을 2000년 4월에 오픈합니다. 저희동네에서 제대로 인테리어 되고 프로 빵빵한 대여점 1호 였습니다. 그 전에는 다 후줄그레 어두침침하고 노인네들이 자리 지키는 그런 대여점만 있었거든요.
열자마자 동네를 석권합니다. 제가 오픈 하기전에 저희 점빵 라인에 대여점이 세군데 있었는데 하나는 미리 폐업, 두군데는 얼마못가 폐업 합니다. 저랑 상대가 안됐으니까요.
당시 월매출이 천만원 정도 였는데 프로사입비, 알바비, 임대료, 공과금 제하고도 500은 남았습니다. 최고로 많이 남긴 달은 800도 남겼어요.
월매출 천만원이면 많지 않은듯 한데 평일에 25~30, 주말/휴일에 40은 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단가가 최신프로 1000원, 구프로 300원, 만화책 200원, 소설 500원 이런 낮은 객단가로 평일에 2~30만원 매출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영화마X 매장도 다니면서 차이점, 개발점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실천하고 이런 저런 아이디어 및 효과등을 영화마X 업주들만 들어가는 인트라넷에 올리곤 했어요. 그래서 많은 가맹점주들의 호응을 받았죠.
점포는 크지 않지만 하다못해 신프로 안내 포스터도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보니 전국 영화마X내에서도 유명한 샵이 됐고, 가맹점을 내려고 하는 예비 가맹점주들이 꼭 들르는 견학코스가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관련잡지나 신문에도 몇번 나오기도 했구요.
저는 가게 쇼윈도우나 내부에 영업사원이 주는 신프로 포스터 이런거 절대 안붙였어요. 대신 제가 직접 만들어서 한켠에 따로 일목요연하게 게시했죠. 많이 까먹었지만 암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내고 실행했어요. 여기 와싸다 게시판에도 전에 많이 올렸었죠.
그리고 알바도 아무나 뽑아서 쓰지 않았고 일단 예쁘고, 책임감 있는 아가씨만 썼구요.
이렇게 하니 제가 영원히 동네를 석권하냐 당근 아니죠. 곧 여기저기 다른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치고 들어옵니다. 규모도 저보다 더 컸구요
다 제가 물리쳤습니다. 어떻게 물리쳤냐?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쥔장을 만나보면 감이 옵니다. 이 양반이 초짜인지 아닌지와, 이 업종을 사랑하는지 그냥 돈만 벌려고 하는 장사꾼인지
아예 견제샵이 저 죽이러 들어왔다고 대놓고 얘기한 점주도 있었고 최신프로 오백원, 만화 100원으로 가격 후려치고 들어왔지만 결론은 저의 승리였죠.
저는 가격 안내렸어요. 대신 물량으로 조졌고 나중엔 되려 올렸어요. 제가 이미 이동네 장사를 경험으로 적정수요를 알거든요. 가령 매트릭스같은 초대박이 나왔다 하면 매트릭스 처음에는 40~50세트 들입니다. 열혈강호 같은거 나오면 최하 20권 꽂습니다. 상대 가게는 처음엔 따라하다가 점점 수량이 줄어듭니다. 잘 안볼거 같은 B급 C급, 애로영화도 나오는건 다 갖다 꽂습니다. 상대가게는 못 꽂습니다. 이런식으로 몇달가면 게임 끝 입니다.
비디오나 책은 최신프로 싸움이기 때문에 수명이 길어야 한달반 이면 끝납니다. 그 기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합니다. 새로 문여는 집들 두어달 지난 프로를 2,30개씩 꽂고 최신 제일 잘나가는 프로는 대여섯개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나가면 저한테 못이깁니다. ㅎㅎㅎ 여기엔 물건사입운영의 묘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게다가 저는 비디오 테이프 망가뜨려와도 다 제가 수리할줄 아니 손님에게 스트레스 안주고, 물에 빠뜨려와도 뭐라 안합니다. 아기가 테입을 잡아빼서 케이스에 둘둘 말아와도 다음엔 좀 조심하세요 하고 말지 뭐라 안했습니다, 게다가 비디오와 관련된 다양한 많은 서비스(AV기기 설치라던지)가 가능하고 이 집은 오면 거의 볼게 있다라고 인식이 되니 저 죽이러 온집이 저랑은 처음 부터 끝까지 마인드에서 차이가 나니 게임이 안됐습니다.
정작 적은 따로 있었으니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부터 감지하게 되죠. 이 업을 그리 오래는 못하겠구나, 트랜드가 점점 바뀌고 있다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샵에서는 못하는 것들을 접목 시킵니다. 하나는 복권판매와 또 하나는 DVD변환
로또복권은 그리하여 초반에 대박을 터뜨렸고, 2003년인가 토요일 저녁에 가게에 내려왔다 본 장관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알바처자는 계속 복권찍고 있고, 생전 처음본 처자 셋이 한애는 빌려가는 비디오와 책에 바코드 계속찍고, 두처자는 카운터에 쌓인 반납된 책과 비디오케이스 도로 갖다꽂기 바쁘더군요. 알바처자는 돈을 금고에 넣을 시간이 없어 박스를 발밑에 놓고 거기에 돈을 떨구고...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알바애가 혼자서는 안돼겠으니 자기 친구를 불러서 일을 시킨겁니다. 너무도 대견하고 예뻐서 두둑하게 수고비와 회식비를 줬고 그때 와서 일을 도운 친구들도 나중에 다 알바로 고용합니다.
DVD변환은 처음에는 단순변환만 실시 하다가 점차 영상편집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고 그 준비를 몇년간 합니다. 그러다 이제는 할만하다 판단한 2006년에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오픈하고 지금도 이 일은 처음과는 매우 다른방향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죠.
그러다가 2008년에 대여점을 접기로하고 (그냥 해도 됐지만 일요일을 못쉬는게 너무 힘들어서 겸사겸사) 전혀 안어울리는 업종인 부동산중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네사람들이 대여점 다시하면 안돼냐고 하는 사람 많습니다 ^^
암튼 여기서 얘기 드리고 싶은건 저는 성공한건 절대 아닙니다. 망하지는 않았지만 돈은 그냥저냥 빚만 안지고 사는 정도죠.
그러나 빚만 안지고 먹고 사는 정도지만 그 준비는 위에서 보셨겠지만 설렁설렁 하지는 않았어요. 대여점도 그렇고 영상편집도 그렇고 몇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세상에 귀를 열고 트랜드를 잡으려 노력했고 그 변화의 흐름을 타려고 했어요.
대여점은 사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업종입니다. 그러나 남들 처럼만 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다른 업종을 선택 할때는 아무나 쉽게 못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지요.
영상편집은 아무나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같은 업계에서 동일한 수준으로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다른데서는 못하거나 안하는 차별점을 두고있고 또 틈새를 나름대로 개척해서 틈새시장에서 일을 합니다.
대여점시절 업계 최초로 DVD렌탈 서비스를 제가 했듯이 영상편집도 업계 최초로 블루레이디스크 제작을 했거든요. 지금도 포탈에 블루레이디스크, 블루레이제작 검색하면 타이틀 파는 곳 말고 제작하는 곳은 오랜기간 저밖에 없었고 지금도 저랑 또한군데 빼고는 안나옵니다. 그래서 요즘 U-HD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
부동산은 따로 얘기 안하겠습니다. 이건 제 적성과도 맞지 않아서 별로 하고싶은 생각이 없는데(적어도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는거고 정말로 필요한 때가 올때 필요할거 같아서 자격증을 딴 경우라서...
얘기가 길었는데 아무튼 철저한 준비는 아무리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과 일단 개업했으면 남과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마음을 열어두고 어떤쪽으로 진화할 것인지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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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장담 못하고 저정도로 빚은 안지고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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