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응 님이 쓰신 주말농장 작물 글과 좋은 댓글들을 읽다가 저도 한번 적어봅니다.
아파트 뒤 조그만 텃밭에서 주말 농장 몇년 하면서 삶의 재미를 느낍니다..
큰 밭에서 힘들게직업으로 농사일이야 중노동이지요. 저는 거기에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밭에 이것저것 가꾸서 한 철정도 자급자족 밥상을 차려서 먹습니다.
먹거리 자급자족을 떠나서 밭일이 정신건강에도 참 좋더군요. 뭐 노동으로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땡볕에 넓은 밭 하루종일 매달려 있는게 얼마나 힘드실지는 알겠으나 저처럼 게으른 텃밭지기는 밭에서 한두시간 보내는 순간은 아무 생각도 안들고 정말 마음이 평온합니다.
제 밭 바로 앞 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습니다. 시집 안 간 골드 미쓰 딸 미모를 가끔 자랑하시는 거 보면 젊었을때 한참 날리셨을 듯합니다.
작년에 그 전 해에 비해 자주 다녔더니 주인이 바뀐줄 알았다시며 커피도 한잔씩 주시고 살갑게 대해주시더군요. 제가 비올때 집에도 태워드리고 거금 들여 장만한 비싼 무 씨앗(3천원에서 만원까지 있더군요.만원짜리 사서 부농임을 과시했습니다.)을 나눠드릴때 쯤 우리는 오누이 마냥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에 배추 무우 다 걷고 나니 한 동안 발걸음이 뜸해졌고 겨울이 왔습니다. 할머니 안부가 궁금해 가끔 아파트 뒷 베란다 창문으로 주말농장 쳐다보느라 목이 겨울사이에 삼센치정도 길어졌네요.
금년 봄에 밭에 가서 할머니를 만난 순간 진짜 눈물이 찔끔 날뻔 했습니다. 주위의 시선도 있고 체면도 있어 안지는 못하고 손만 잡았습니다. 할머니도 주름사이에 숨어있는 미모가 활짝 웃는 걸로 봐서는 반가우신 듯 했습니다.
그 할머니께서 그렇기 활기차게 사시는 것도 밭일의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오년뒤에도 십년 뒤에도 밭에서 뵐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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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심었던거...쫙. 뽑아보니 좁은 땅에 엄청 많은걸 시도해봤네요.
상추(적상추. 청상추. 부활상추. 로메인 상추 등등 종류도 많네). 케일. 비타민. 치커리. 셀러리.쑥갓. 열무. 알타리무.고추(청양고추. 아삭고추 등등). 토마토. 방울 토마토. 호박(이것도 다양. 주로 마디호박을 키우는데 헬로윈 호박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오이. 가지. 비트. 깻잎. 당귀. 서리태콩. 땅콩. 파. 부추. 감자. 고구마. 딸기(이건 안 자라서 진작에 포기). 갓.당귀. 수박. 참외.배추. 무우. 해바라기. 쑥. 돌나물. 양배추. 양상추.시금치. 근대. 옥수수.야콘. 강남콩.아욱. 고수풀. 바질. 민트. 캐모마일. 등등 어휴 ..많네요.
주말농장이라고 주말만 갈수는 없고 일주일에 한 두세번은 가야 그나마 밭이 유지가 되는거 같구요. 겨울 지나 싹트는거 볼때의 즐거움이나..장마비에 고추대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거나...뭐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즐거움을 주는 땅에게 감사하고 빗물과 쨍쨍한 햇빛과 제가 기른 오이를 아침마다 하나씩 먹어주는 자식들에게도 감사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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