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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려다가 막힌 날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8-13 15: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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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034

제목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려다가 막힌 날

글쓴이

석경욱 [가입일자 : 2001-09-17]
내용
현재의 직업(전자엔지니어)를 가지게 된 오랜 원인들 중에는 음악 듣기를 좋아했던 것과 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단순한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했겠습니까? 뭔가 예술을 하고는 싶었지만, 제 감성 수준은 그쪽 길과는 상관없었습니다. 겨우 예술을 어느 정도 즐기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요. 그렇지만, 뭔가 그쪽에 걸치고는 싶었습니다. 수백 년 전 유럽의 바이올린 장인들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자들이었지만 예술적 냄새가 많이 나고, 음악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지요. 하지만, 공예 쪽은 별 관심이 없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자회로에는 조금 친숙했으니, 음악듣기 좋은 앰프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여 년 동안 생활인으로 바쁘게 지내다가, 전자회로를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마침, 좀 비싸게 주고 산 앰프가 자꾸만 고장 나서, 직접 고쳐보기로 했습니다.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아버렸습니다. 앰프는 예술적인 뭔가를 집어넣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한 기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제 앰프가 십여 만 원짜리 인켈, 아남 앰프들 보다는 소리가 훨씬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급형 앰프들의 소리가 좋지 않은 것은, 원가절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앰프의 기본 개념조차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가 앰프를 잘 만들어서 보급형 앰프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외제 앰프들 보다는 싸게 제공할 수 있으면 음악애호가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근처 동호인들을 모아서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 보급형 앰프들과 제 비싼 앰프, 그리고, 제 자작앰프가 모두 구분 불가능한 똑 같은 소리를 내었고, 측정결과는 보급형 앰프들이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그날, 제가 예술에 기여할 길은 닫혀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꽤 비싼 앰프를 쓰시는 분과 앰프 비교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싸구려 보급형앰프와 오실로스코프, 펑션제너레이터 등을 가지고 출동하였습니다. 하던 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좀 쉬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비싼 앰프로 음악을 들으니 싸구려 앰프보다 확실히 소리가 고급스러웠습니다.



그 동안의 제 주장이 오늘 깨지는 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일 수 있다. 저 비싼 앰프의 소리가 왜 좋은지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그 원인을 알아내기만 하면, 성공적인 사업을 하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면서 그래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꾸민 수고가 아까우니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비싼 앰프의 주인께는 이미 졌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앰프의 소리 크기를 동일하게 맞춰가는 동안, 두 앰프들의 소리가 서로를 닮아가더니 급기야는 서로 같아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황당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날,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려다가 닫혀버렸습니다.



그 비싼 앰프의 주인께서는 저보다도 충격을 많이 받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셀렉터를 바꿔가면서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두 앰프에 아주 작은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 고급스럽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그 주인께서는 그 비싼 앰프들을 장터에서 처분해 버리시더군요. 저는 그 분을 위해서, 또 그 앰프를 구입하신 분을 위해서 이 이야기는 그 후 1년 이상 지나서야 인터넷에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이후, 와싸다의 신세를 지며 세 번인가 네 번인가 공개 블라인드 테스트를 주관했습니다. 인켈의 AV리시버가 서랍장만한 덩치의 초고가 앰프와 너무나 같은 소리를 내어 블라인드 테스트가 시도조차 되지 못했던 일, 좌우 밸런스가 틀어진 것을 모르고 블테를 했다가 한 실용주의자분과 저만 높은 점수를 받았던 일 등등 소소하게 흥미로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더 이상 호기심이 땡기지 않는, 그저, 휴일을 심심하지 않게 보낸다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정말로 고급스러운 소리를 내는 앰프의 비밀을 알아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확률이 낮겠죠? (자세가 안되어 있다는 등등 비아냥거리기부터 할 분들이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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